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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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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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멕시코를 꺾으며 국제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신생 독립국의 한계를 투혼으로 극복해 온 불굴의 상징입니다. 1954년 첫 월드컵의 쓰라린 대패를 딛고 아시아 최초 월드컵 10회 연속 진출과 2002년 4강 신화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작성했습니다. 아시안컵과 EAFF 챔피언십 등 대륙의 최강자로 군림해 왔으며, 박지성을 거쳐 세계적인 월드클래스 주장이 된 손흥민에 이르기까지 '붉은 악마'의 뜨거운 함성 속에서 수많은 극장골과 기적의 드라마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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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48

[런던 올림픽 첫 국제 무대 데뷔]

광복 후 새롭게 태어난 국가를 대표하는 축구팀이 올림픽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데뷔전에서 북중미의 강호를 만나 폭발적인 공격력으로 상대를 무너뜨리며 위대한 첫 승리를 장식합니다. 식민 지배의 아픔을 갓 벗어난 국민들에게 벅찬 희망을 안겨준 잊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
영국 런던 하계 올림픽 1라운드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5-3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가입 후 'Korea Republic'이라는 이름으로 치른 공식적인 첫 A매치이자 첫 승리로 역사에 자랑스럽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뼈아픈 역대 최다 점수차 패배]

첫 승리의 기쁨도 잠시, 며칠 뒤 유럽의 축구 강국을 만나 세계의 높은 벽을 처절하게 절감하게 됩니다. 무자비한 폭격 앞에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십여 골을 헌납하며 무너져 내립니다. 신생국의 전술적 한계를 뼈저리게 확인해야만 했던 가장 굴욕적인 참패였습니다.
런던 올림픽 8강전에서 당대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던 스웨덴에게 0-12로 참패를 당했습니다. 이는 2020년대가 넘도록 깨지지 않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다 점수 차 패배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1954

[눈물겨운 첫 월드컵 출전]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악전고투 끝에 세계 축구의 거대한 축제에 처음으로 합류합니다. 하지만 긴 이동 시간과 극심한 체력 저하로 인해 세계 최강팀을 상대로 연이어 대패를 당하고 맙니다. 비록 참혹한 결과였으나, 세계 축구의 장벽을 향한 위대한 도전이 비로소 시작된 출발점이었습니다.
스위스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당대 최강이었던 '매직 마자르' 헝가리 대표팀에게 0-9로 패배했습니다. 선수들은 미군 수송기를 간신히 얻어 타고 경기 시작 직전에야 현지에 도착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눈물겨운 사투를 벌였습니다.

1956

[초대 아시아의 제왕 등극]

대륙의 최강자를 가리는 새로운 국제 대회가 창설되자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내며 무패 우승을 차지합니다. 세계 무대에서의 참패를 딛고 아시아 지역에서는 상대할 팀이 없는 독보적인 강호임을 완벽하게 입증합니다. 아시아 축구 패권의 역사가 대한민국의 이름과 함께 화려하게 막을 올립니다.
홍콩에서 열린 첫 AFC 아시안컵에 출전하여 이스라엘, 홍콩, 남베트남을 상대로 무패를 기록하며 초대 챔피언 자리에 올랐습니다. 우승 트로피 대신 은쟁반을 수여받았으며, 이는 아시아 축구 연맹 초창기의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1960

[안방에서의 아시안컵 2연패]

자국에서 개최된 두 번째 대륙 대회에서도 수많은 홈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전승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립니다. 대회 2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으며 초기 아시아 축구의 생태계를 완벽하게 지배합니다. 그러나 이 찬란한 영광 이후 대한민국은 이 대회와 반세기가 넘는 기나긴 악연에 시달리게 됩니다.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안컵에서 3전 전승으로 우승하며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가 재정난으로 가짜 금메달을 지급했다가 무려 54년이 지난 2014년에야 진짜 금메달을 다시 수여하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1970

[아시안 게임 공동 금메달]

아시아 전역이 주목하는 종합 스포츠 대회에 참가해 막강한 위력을 과시하며 결승에 진출합니다. 개최국과의 팽팽한 혈투 끝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공동 우승으로 대회를 마무리 지으며 금메달을 목에 겁니다. 아시아 무대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강팀의 면모를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방콕 아시안 게임 축구 종목 결승전에서 개최국 태국과 0-0으로 비기며 규정에 따라 공동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메달 색깔을 떠나 아시아 전역에 대한민국 축구의 끈끈한 저력을 과시한 상징적인 대회였습니다.

1986

[32년 만의 월드컵 무대 복귀]

프로 리그의 출범과 함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국가대표팀이 기나긴 암흑기를 끝내고 월드컵 본선으로 귀환합니다. 남미의 막강한 우승 후보에게 패배했지만 강력한 중거리 슛으로 역사적인 본선 첫 골을 터뜨리며 포효합니다. 세계를 향한 두 번째 도전이자, 전설적인 10회 연속 진출의 위대한 닻을 올린 순간이었습니다.
멕시코 월드컵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1-3으로 패배했으나, 박창선 선수가 한국 축구 역사상 월드컵 본선 첫 골을 터뜨렸습니다. 이 대회를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아시아 국가 최초로 월드컵 본선 무대 단골손님이 되기 시작합니다.

1987

[대륙 간 대회 아프로-아시안컵 우승]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의 챔피언과 맞붙는 대륙 간 챔피언십에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합니다. 세계 무대에서의 아쉬움을 달래고 서로 다른 대륙의 피지컬을 상대로 완벽한 파훼법을 선보입니다. 아프리카 대륙 앞에서도 한국 특유의 끈적한 축구가 통한다는 것을 보여준 무대였습니다.
1986년 아시안 게임 우승팀 자격으로 출전한 아프로-아시안 네이션스컵에서 아프리카 챔피언 이집트를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무대에서 거둔 뜻깊은 국제 대회 타이틀입니다.

1990

[다이너스티컵 초대 챔피언]

동아시아 축구의 최강자를 가리기 위해 새롭게 창설된 국제 대회에 출전해 위용을 떨칩니다. 치열한 이웃 국가들의 견제를 이겨내고 당당히 초대 챔피언의 자리에 오릅니다. 동북아시아 축구의 맹주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각인시키는 선언과도 같은 우승이었습니다.
중국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제1회 다이너스티컵(현 EAFF E-1 챔피언십의 전신)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중·일 등 동아시아 축구 패권 경쟁의 역사적인 첫 승리자로 기록되었습니다.

1994

[흰색 유니폼으로의 일시적 파격]

오랫동안 국가대표팀의 상징이었던 붉은색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완전히 새로운 색상의 유니폼을 입게 됩니다. 시원한 하얀색 바탕으로 팀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월드컵 무대에서 새로운 도약을 꿈꿉니다. 수십 년간 이어지던 대표팀의 시각적 정체성에 파격적인 변화를 주었던 시기입니다.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으로 기존의 빨간색 홈 유니폼 대신 흰색 상의와 파란색 하의를 홈 유니폼으로 일시 도입했습니다. 이 유니폼을 입고 미국 월드컵에 출전하여 스페인, 독일 등 유럽의 강호들과 역사적인 명승부를 펼쳤습니다.

[댈러스의 기적적인 무승부]

유럽의 거함을 상대로 경기 막판까지 끌려가며 패색이 짙어졌으나 특유의 끈질긴 투혼으로 반격을 시작합니다. 종료를 눈앞에 두고 연속 골을 쏟아부으며 기적적인 무승부를 만들어 냅니다. 한국 축구의 끝을 모르는 근성과 폭발적인 체력이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은 위대한 명승부였습니다.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0-2로 지고 있던 후반 막판, 홍명보와 서정원의 득점이 연달아 터지며 2-2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댈러스의 살인적인 무더위에 지친 스페인 선수들을 상대로 폭발적인 활동량을 앞세워 일궈낸 짜릿한 결과였습니다.

1995

[영원한 상징, 붉은 유니폼 귀환]

불과 1년 만에 흰색 유니폼의 시대를 마감하고 다시 전통의 붉은색 유니폼으로 회귀합니다. 붉은색이 주는 강렬한 투지와 열정의 이미지가 태극전사들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듭니다. 이후 붉은색은 한 번도 홈 유니폼의 자리를 내주지 않으며 국가대표팀의 영원한 상징으로 완전히 굳어집니다.
1994년 월드컵 직후 여론과 축구계 내부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1995년에 홈 유니폼을 다시 전통의 붉은색으로 되돌렸습니다. 훗날 '붉은 악마'라는 범국민적 응원 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강력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1997

[적지에서 일궈낸 도쿄 대첩]

월드컵 본선 진출의 분수령이 된 가장 중요한 지역 예선에서 숙명의 라이벌과 적지에서 마주합니다. 경기 내내 끌려가며 위기를 맞았으나 후반 막판 두 번의 환상적인 득점이 터지며 전세를 극적으로 뒤집어엎습니다. 이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역전승은 온 나라를 뒤흔들며 축구 영웅들을 탄생시켰습니다.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일본 원정 경기에서 선제골을 내주고도 후반 38분 서정원의 동점 헤더 골과 41분 이민성의 역전 중거리 슛으로 2-1의 통쾌한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짜릿한 한일전 승리 중 하나로 꼽힙니다.

1998

[역대 최고 순위, FIFA 랭킹 17위]

월드컵에서의 뼈아픈 실패를 딛고 절치부심하여 여러 국제 무대에서 꾸준히 좋은 성과를 냅니다. 그 결과 세계 축구 연맹이 발표하는 랭킹에서 역대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는 기염을 토합니다. 한국 축구가 세계적인 강호의 반열에 수치상으로 가장 가깝게 다가갔던 영광스러운 기록입니다.
1998년 12월 발표된 FIFA 랭킹에서 무려 17위에 오르며 대표팀 역사상 최고 순위를 기록했습니다. 월드컵 직후 아시안 게임 등에서 거둔 호성적과 당시 랭킹 산정 방식이 결합하여 이뤄낸 자랑스러운 지표입니다.

2001

[위맹한 호랑이 엠블럼 도입]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단조로운 태극마크 대신 맹렬하게 포효하는 야수의 얼굴을 가슴에 새깁니다.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강렬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전 세계에 팀의 정체성을 선포합니다. 자국에서 열릴 거대한 축제를 앞두고 단행된 시각적인 혁명이자 자신감의 표출이었습니다.
2001년 5월, 대한축구협회가 기존 태극마크를 대체할 백호(호랑이) 형상의 새로운 공식 엠블럼을 발표했습니다. 이 엠블럼은 2002년부터 국가대표팀 유니폼에 정식으로 부착되어 4강 신화의 완벽한 상징으로 각인되었습니다.

2002

[48년 만의 월드컵 첫 승리]

공동 개최국 자격으로 나선 안방 무대에서 수십 년 묵은 월드컵 무승의 한을 마침내 풀어냅니다. 탄탄한 조직력과 폭발적인 스피드로 동유럽의 복병을 완벽하게 제압하며 전국을 붉은 물결로 뒤덮습니다. 온 나라가 기쁨의 함성으로 진동하며 세계를 놀라게 할 4강 돌풍의 닻을 올립니다.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황선홍의 선제골과 유상철의 호쾌한 쐐기골에 힘입어 2-0으로 완승했습니다. 1954년 첫 출전 이후 무려 48년, 15경기 만에 달성한 역사적인 월드컵 본선 첫 승리였습니다.

[거함 이탈리아를 침몰시키다]

월드컵 16강전에서 전통의 빗장 수비를 자랑하는 유럽 강호를 맞아 피 말리는 명승부를 연출합니다. 경기 막판 천금 같은 동점골로 기사회생한 뒤, 연장 혈투 끝에 극적인 역전 골든골을 터뜨리며 상대를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전 세계 축구 팬들을 경악시킨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극장 경기 중 하나였습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43분 설기현의 극적인 동점골에 이어, 연장 후반 12분 안정환이 헤더 골든골을 터뜨리며 2-1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과감하고 공격적인 전술 변화가 승리의 핵심 요인이었습니다.

[세계 4강 신화의 완성]

8강전에서 무적함대라 불리는 거함을 맞붙어 정규 시간과 연장전 내내 숨 막히는 혈전을 치릅니다. 승부차기에서 수문장의 신들린 선방과 마지막 키커의 깔끔한 마무리로 마침내 아시아 국가 최초로 준결승에 진출하는 대이변을 완성합니다. 대한민국 거리 전체가 환희와 감격의 눈물로 가득 찼습니다.
광주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120분간 0-0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승부차기에서 이운재 골키퍼가 상대 키커의 슛을 막아내고 홍명보가 마지막 키커로 성공시키며 5-3으로 승리했습니다. 이는 비유럽/비남미 국가 역사상 월드컵 최고 성적인 4강 진출 대기록입니다.

[위대한 두 전설의 은퇴식]

4강 신화를 이끌었던 두 명의 상징적인 베테랑 선수가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는 성대한 환송회가 열립니다. 엄청난 헌신으로 10년 넘게 태극마크를 지켜온 영웅들을 향해 수만 명의 관중이 기립 박수를 보냅니다. 한국 축구계에 국가대표 은퇴식이라는 명예로운 예우가 처음으로 뿌리내린 순간이었습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를 치르며, 7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으로 하는 대한축구협회 주관 공식 은퇴식의 첫 주인공으로 황선홍과 홍명보 선수가 선정되어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2003

[EAFF 챔피언십 초대 챔피언]

동아시아 축구의 패권을 가리기 위해 새롭게 출범한 지역 컵 대회에서 숙적들을 연달아 물리칩니다. 적지에서 벌어진 대회임에도 굴하지 않고 탄탄한 조직력을 뽐내며 당당히 초대 우승컵을 들어 올립니다. 동아시아 무대에서는 대한민국을 넘을 자가 없음을 만천하에 재확인시켰습니다.
일본에서 개최된 2003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EAFF 챔피언십)에 출전하여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다이너스티컵 폐지 이후 새롭게 시작된 동아시아 맹주 자리 쟁탈전에서 선제적인 승리를 거두며 기선을 제압했습니다.

[네팔전 16-0 역대 최다 점수차 승리]

대륙 컵 예선에서 한 수 아래의 약체를 만나 자비 없는 융단폭격을 퍼붓습니다. 전반전부터 소나기 골을 쏟아내며 상대의 혼을 빼놓았고, 무려 십여 번이나 골망을 흔드는 압도적인 파괴력을 과시합니다. 반세기 전 겪었던 최다 점수차 패배의 아픔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가공할 만한 대승이었습니다.
인천에서 열린 2004년 AFC 아시안컵 예선 경기에서 네팔을 16-0으로 대파하며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다 점수 차 승리 기록을 수립했습니다. 당시 박진섭 선수는 한 경기에서만 무려 5골을 터뜨렸습니다.

2010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

아프리카의 복병을 상대로 치른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피 말리는 난타전 끝에 값진 무승부를 챙깁니다. 사상 최초로 국내 축구인 출신 사령탑의 지휘 아래 해외파와 국내파 선수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원정 토너먼트 진출의 대업을 달성합니다. 한국 축구의 질적인 성장을 전 세계에 확실히 과시한 대회였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이정수와 박주영의 연속 득점으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한국인 지도자 최초로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한 명장으로 축구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2011

[막내 손흥민의 데뷔 축포]

아시안컵 무대에서 이제 막 성인 대표팀에 합류한 18세의 앳된 막내가 자신의 국가대표 첫 득점을 쏘아 올립니다. 한국 축구의 10년을 짊어질 거대한 재능이 국제 무대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순간이었습니다. 역대 최고의 득점 기계가 탄생을 알리는 웅장한 서막이 오릅니다.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인도와의 경기에서 손흥민 선수가 과감한 왼발 슈팅으로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습니다. 18세 194일의 나이로 터뜨린 이 득점은 대한민국 국가대표 통산 최연소 득점 2위에 해당하는 진기록입니다.

2014

[역대 최저 순위, FIFA 랭킹 69위]

월드컵 참패의 거센 후폭풍을 맞으며 대표팀의 국제적인 위상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한때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랭킹이 반세기 만에 최악의 성적표로 돌아오며 한국 축구는 깊은 절망감에 휩싸입니다. 거침없는 비판 속에서 대대적인 쇄신과 뼈를 깎는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되던 암흑기였습니다.
2014년 11월부터 2015년 1월까지 국제 축구 연맹(FIFA) 랭킹에서 69위를 기록하며 역대 최저 순위에 머물렀습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1무 2패 초라한 성적과 이후 이어진 평가전 부진이 겹치며 초래된 뼈아픈 결과였습니다.

2015

[아시안컵 결승의 극장골]

개최국과의 팽팽한 대륙 컵 결승전에서 패색이 짙던 경기 종료 직전, 에이스 손흥민이 극적인 동점골을 작렬시키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갑니다. 비록 최종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무서운 집념을 보여주며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합니다. 월드컵 참패 이후 바닥을 쳤던 대표팀의 투지가 다시 솟아오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호주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46분, 손흥민이 기성용의 패스를 받아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켰습니다. 비록 연장 접전 끝에 1-2로 패배했지만, 몸을 내던지는 투혼은 늪 축구의 진수를 보여주었습니다.

2018

[세계 최강을 꺾은 카잔의 기적]

피파랭킹 1위이자 디펜딩 챔피언인 전차 군단을 상대로 수비진의 육탄 방어와 수문장의 신들린 선방 쇼가 이어집니다. 추가시간 극적인 선제골에 이어 주장 완장을 찬 손흥민이 텅 빈 골문을 향해 폭풍 질주하여 쐐기골을 꽂아 넣습니다. 전 세계 축구사를 완전히 뒤흔든 엄청난 대이변이 러시아 땅에서 완성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김영권과 손흥민의 연속 득점으로 우승 후보 독일을 2-0으로 완파했습니다. 16강 진출에는 아쉽게 실패했으나, 이 패배로 독일 대표팀을 80년 만에 조별리그에서 탈락시키는 기적을 썼습니다. 손흥민의 독일전 골은 FIFA 선정 월드컵 100대 명장면에 꼽혔습니다.

2019

[E-1 챔피언십 5회 우승 대기록]

홈에서 열린 동아시아 지역 컵 대회에서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는 철벽 수비를 자랑하며 완벽한 우승을 거둡니다. 숙적과의 마지막 결승전에서 짜릿한 승리를 거두며 라이벌의 코를 완벽하게 납작하게 누릅니다. 이로써 해당 대회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다 우승국의 반열에 독보적으로 우뚝 섭니다.
대한민국 부산에서 개최된 2019년 EAFF E-1 풋볼 챔피언십에서 3전 전승 무실점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일본을 상대로 한 최종전 승리로 통산 5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대회 역사상 최다 우승국의 영예를 확고히 했습니다.

2022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원정 예선 경기에서 압도적인 점유율 축구를 바탕으로 완승을 거두며 세계에서 단 6개 국가만이 보유한 경이로운 대기록을 달성합니다. 온갖 위기론을 잠재우고 일찌감치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며 아시아 축구의 절대 강자임을 다시 한번 입증합니다. 뚝심 있는 리더십과 캡틴 손흥민을 위시한 조직력이 빚어낸 결실이었습니다.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8차전 시리아와의 원정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1986년 멕시코 대회부터 2022년 대회까지 무려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아시아 최초의 대기록을 수립했습니다.

[알라이얀의 기적과 마스크 투혼]

안면 골절이라는 치명적인 부상에도 굽히지 않고 마스크를 쓴 캡틴이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기적을 배달합니다. 후반 추가시간 무려 70m를 단독 돌파한 뒤 수비수 다리 사이로 찔러준 패스가 극적인 역전 결승골로 폭발합니다. 이 짜릿한 드라마로 유럽의 강호를 꺾고 거짓말처럼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합니다.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1-1로 맞서던 중, 손흥민의 폭풍 같은 드리블과 절묘한 어시스트를 황희찬이 마무리하며 2-1로 승리했습니다. 마스크를 집어 던지고 오열하는 주장의 모습은 전 국민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었습니다.

2024

[호주전 기적의 프리킥]

아시안컵 8강전에서 탈락 직전의 벼랑 끝에 몰렸으나, 후반 추가시간 캡틴 손흥민이 직접 얻어낸 페널티킥으로 간신히 승부를 원점으로 돌립니다. 이어진 연장전에서 주장이 페널티 박스 외곽에서 완벽한 궤적의 환상적인 프리킥 결승골을 꽂아 넣으며 짜릿한 역전극을 완성합니다. 수년 전 결승전 패배의 아픔을 소름 돋게 설욕하는 진정한 에이스의 증명이었습니다.
카타르 아시안컵 8강 호주전에서 0-1로 끌려가던 후반 추가시간 손흥민이 유도한 페널티킥을 황희찬이 성공시켰고, 이어 연장전에서 손흥민이 직접 그림 같은 프리킥 역전골을 터뜨려 2-1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1월 월드컵 3차 예선 명단 발표]

혼란스러웠던 대표팀의 상반기 아픔을 딛고 북중미로 향하는 월드컵 지역 예선을 위해 정예 멤버들이 다시 한번 결집합니다. 손흥민을 필두로 해외 무대를 누비는 핵심 전력들과 국내의 숨은 보석들이 총망라되어 국가의 부름을 받습니다. 본선을 향한 순항을 계속하기 위해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새로운 출항의 기적을 울립니다.
대한축구협회가 쿠웨이트 및 팔레스타인과의 202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원정 경기에 나설 국가대표팀 소집 명단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내홍을 겪고 새롭게 출범한 홍명보 감독 체제하에서의 팀 융화와 조화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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