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

축구 선수, 미드필더, 스포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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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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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축구 선수로,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해 호주 유학을 다녀왔으며, FC 서울에서 프로 데뷔 후 셀틱, 스완지 시티 등 유럽 빅리그를 거쳐 다시 K리그로 복귀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핵심 미드필더이자 주장으로 런던 올림픽 동메달, 아시안컵 준우승 등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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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출생]

대한민국 광양시(현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 광양시(현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축구 감독 기영옥의 아들로 태어났다.

2001

[호주 유학 시작]

광양제철중학교에 다니던 중 축구와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로 유학을 떠났으며, 존 폴 칼리지 소속으로 활동했다.

광양제철중학교 축구부에 다니던 중 축구와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존 폴 칼리지 소속으로 활동했다.

2006

[FC 서울 입단]

금호고등학교 졸업 후 FC 서울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입단 첫 해에는 공식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금호고등학교 졸업 후 오스트레일리아 그리피스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1년 만에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2006년 FC 서울에 입단했다. 그러나 그 해에는 공식 경기에 단 1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2007

[K리그 데뷔]

대구 FC와의 홈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으며, K리그에서 20경기에 출전했다.

FC 서울에 셰놀 귀네슈 감독이 부임한 이후 경기 출전횟수를 늘려가기 시작하여, 2007년 3월 4일 대구 FC와의 리그 홈경기(2:0)에서 데뷔했고 2007 K리그에서 20경기에 출전했지만 공격 포인트를 쌓진 못했다.

[U-23 대표팀 데뷔]

바레인과의 경기로 첫 U-23 대표팀 경기를 치렀으며, 이후 2008년 하계 올림픽에도 참가했다.

대한민국 U-20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며 2007년 FIFA U-20 월드컵에 참가했다. 2007년 9월 8일 바레인과의 경기로 첫 U-23 대표팀 경기를 치렀고, 200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했다.

2008

[프로 첫 골 및 최연소 K리그 베스트 11]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 첫 골을 기록했으며, K리그 시상식에서 역대 최연소(19살)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2008 시즌 부상 후유증으로 시즌 초반 경기에 출전하지 못 하였으나 4월 2일 수원과의 컵대회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였고 8월 대구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 후 첫 골을 성공시켰다. 2008 시즌이 끝난 후 열린 시상식에서 베스트 11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으며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또한 최연소 베스트 11이 됐다는 사실로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A매치 데뷔 및 데뷔골]

요르단과의 친선경기에서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후, 북한과의 월드컵 예선에서 A매치 2경기 만에 첫 득점을 기록했다.

2008년 9월 5일 요르단과의 친선경기에서 데뷔하여, 2008년 9월 10일 북한과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A매치 2경기 만에 첫 A매치 득점을 올렸다.

2009

[셀틱 이적 발표]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셀틱이 러브콜을 보냈고, K리그 시즌 종료 후 2010년 1월에 합류하는 조건으로 이적이 공식 발표되었다.

유럽 무대에서도 관심은 끊이지 않았고, 결국 2009년 8월에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셀틱이 새 시즌을 앞두고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러브콜을 보내왔다. FC 서울이 주축 미드필더 이청용을 볼튼 원더러스로 이적시킨 상황에서 기성용까지 이탈하면 전력에 큰 누수가 생길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에, 양 팀은 기성용이 리그 일정이 모두 종료된 이후인 2010년 1월에 셀틱에 합류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고, 8월 28일에 FC 서울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기성용의 이적을 발표하였다.

2010

[셀틱 데뷔전]

폴커크와의 리그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르며 유럽 무대에 첫 발을 내디뎠다.

2009년 12월 21일 서울 강남에서 공식 입단식을 가졌으며 2010년 1월 17일 폴커크와의 리그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러 좋은 모습을 보였다.

2011

[아시안컵 '원숭이 세리머니']

일본과의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페널티킥 선제골을 기록한 후 원숭이 흉내를 내는 세리머니를 펼쳐 논란이 되었다. 그는 일본 관중의 욱일기 응원에 대한 분노였다고 밝혔다.

2011년 AFC 아시안컵에서 일본과의 준결승전 경기에서 페널티킥 선제골을 기록하고 원숭이 흉내를 내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기성용은 일본 관중이 내건 욱일기를 보고서 화가 나 이 같은 행동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런던 올림픽 축구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중앙 미드필더로 전 경기에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 병역 특례를 받았다. 특히 영국전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성공하며 4강 진출을 이끌었다.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중앙 미드필더로 전경기 출전하였고, 동메달을 획득해 병역특례를 받았다. 특히 8강전인 영국전에서는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서 골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의 4강 진출을 이끌어냈고, 골닷컴 선정 올림픽 축구 베스트 일레븐에 팀 동료 윤석영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스완지 시티 입단]

프리미어리그 스완지 시티와 구단 사상 최고액인 6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3년 계약을 체결하며 10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되었다.

2012년 8월 24일 프리미어리그 스완지 시티와 당시 스완지 구단 사상 최고액인 600만 파운드(약 108억원)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3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등번호는 그의 전임자였던 조 앨런이 사용했던 24번을 부여받았고, 데뷔전은 2012년 8월 28일, 리그컵 반즐리FC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76분을 뛰며 팀의 3-1 승리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치렀다. 기성용은 2012년 9월 1일, 선덜랜드와의 3라운드 경기에서 후반 32분, 미추와 교체되어 15분 정도를 뛰면서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2013

[배우 한혜진과 결혼]

8세 연상의 배우 한혜진과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2013년 7월 1일 8세 연상의 배우 한혜진과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은 일본으로 떠났다.

[최강희 감독 비난 SNS 논란]

비공개 트위터 계정으로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라는 글을 작성, 당시 국가대표팀 최강희 감독을 비난한 사실이 밝혀져 큰 논란을 빚었다. 이후 대한축구협회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고 공개 사과했다.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라는 말을 2013년 7월 4일 기자 김현회가 올린 칼럼에서 기성용이 비공개 트위터으로 작성했는데, 최강희 당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비난하는 말을 작성한 것이 드러나면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에 대해 대한축구협회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았다. 이후 석 달 만에 최강희 감독에게 공개 사과하였다.

[선덜랜드 1년 임대]

스완지 시티에서 경기 출전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선덜랜드로 1년간 임대 이적했으며, 구스타보 포예트 감독 체제 하에서 주전으로 도약하며 공격적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2013년 8월 31일 여름 이적시장에서 스완지 시티에서 선덜랜드로 1년간의 임대가 결정되었고, 등번호 4번을 부여받고 활약하게 되었다. 기성용은 선덜랜드 입단 초기에는 팀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여 그다지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으나, 당시 파올로 디 카니오 감독이 경질되고 구스타보 포예트 감독이 부임하면서부터 주전으로 도약하기 시작하였다. 포예트 감독은 자신의 4-1-4-1 전술 하에서 기성용에게 그가 이전 시즌에 맡았던 것과는 다르게 좀 더 공격적인 역할을 부여하였고, 이 포지션에서 기성용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2014

[스완지 복귀 및 개막전 골]

스완지 시티로 복귀한 후, 2014-15 시즌 개막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리그 첫 골이자 선제골을 기록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이전에 기성용과 불화가 있었던 미카엘 라우드루프 감독이 경질되고 개리 몽크 감독이 부임하였으며, 전 시즌 영입된 미드필더들이 팀을 떠나자, 2014-15 시즌을 앞두고 스완지 시티로 복귀하였다. 복귀 이후 몽크 감독의 신임하에 주전 중앙 미드필더로 완전히 자리잡은 기성용은 2014-15 시즌 개막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리그 개막 첫번째 골이자 선제골을 기록하여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2015

[프리미어리그 아시아 선수 최다골]

2014-15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8골을 기록하며 아시아 선수 역대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 시즌 종료 후 팬들이 뽑은 스완지 시티 올해의 선수로도 선정되었다.

2014-15시즌에 그는 프리미어리그에 33경기 출전해 8득점을 올리며 프리미어리그 아시아 선수 역대 최고 득점을 기록했다. 또, 리그에서 2690분을 뛰었는데 이는 2005-06시즌 이영표가 기록한 2735분에 이어 한국인 프리미어리그 출전시간 2위 기록이다. 시즌을 마치고 그는 팬들이 뽑은 스완지 시티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딸 기시온 출산]

배우자 한혜진이 딸 기시온을 출산했다.

2015년 9월 13일 배우자 한혜진이 딸 기시온을 출산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주장 참가]

러시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었으나, 종아리 부상으로 조별리그 마지막 독일전에는 결장했다.

2018년 FIFA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의 주장으로서 대한민국 대표팀을 이끌었다. 다만 왼쪽 종아리 부상으로 조별리그 3차전 독일전에는 결장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 입단]

프리미어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2년 계약을 맺고 입단했으며, 등번호 4번을 부여받았다.

2018년 6월 29일,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2년 계약을 맺으며 입단했고, 등번호 4번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2019-20시즌 스티브 브루스 감독 체제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밀려 여러 번 결장했고, 결국 2020년 1월 31일 상호 합의하에 계약 해지를 하며 뉴캐슬을 떠나게 됐다.

2019

[국가대표팀 은퇴]

2019년 AFC 아시안컵 본선 도중 부상 악화로 팀을 떠나며 국가대표팀에서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2018년 월드컵 이후 이미 은퇴 의사를 밝힌 바 있다.

2019년 1월에 열린 2019년 AFC 아시안컵 본선 도중 오른쪽 허벅지 뒷근육 부상이 악화되어 국가대표팀에서 스스로 나왔으며, 조별리그 첫 경기 대한민국 대 필리핀 경기를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기성용은 2018년 FIFA 월드컵이 끝난 뒤 국가대표팀 은퇴 의사를 내비쳤고, 이번 2019년 AFC 아시안컵이 대표선수로서 마지막 대회가 될 것으로 공언했다. 기성용이 자신의 의사를 번복하지 않는다면 대표팀에서 영구 은퇴하게 된다.

2020

[RCD 마요르카 입단]

뉴캐슬에서 상호 합의 하에 계약 해지 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RCD 마요르카에 입단했다.

뉴캐슬에서 퇴단한 기성용은 국내 복귀를 타진했으나 무산되었으며, 이후 스페인 클럽으로의 입단이 유력해지다가 2020년 2월 25일 RCD 마요르카 입단이 확정되었다.

[FC 서울 복귀]

11년 만에 FC 서울에 재입단하며 K리그로 복귀했으며, 2020 시즌에는 반 시즌 동안 5경기에 출전했다.

2020년 7월 19일 FC 서울 입단에 합의하면서 11년 만에 K리그로 복귀하였다. 2020시즌에는 반 시즌동안 5경기에 출전했다.

2021

[복귀 후 첫 어시스트]

수원 FC와의 경기에서 롱패스로 나상호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화제를 모았다.

2021년 3월 7일에 열린 수원 FC와의 경기에서 대지를 가르는 롱패스를 통해 나상호의 골을 어시스트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복귀 후 첫 골]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FC 서울 복귀 이후 첫 골을 기록했다.

2021년 3월 21일에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서울 복귀 이후 첫 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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