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

대한민국
대한민국대한민국
K리그 감독상16
K리그 감독상K리그 감독상 2016 지도자
K리그 감독상K리그 감독상 2013 지도자
FA컵 최우수 감독상FA컵 최우수 감독상 2013 지도자
FA컵 최우수 감독상FA컵 최우수 감독상 2012 지도자
FA컵 최우수 코치상FA컵 최우수 코치상 2006 지도자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2002 개인
체육훈장 맹호장체육훈장 맹호장 2002 수훈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득점 3위상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득점 3위상 2001 개인
J리그 득점왕J리그 득점왕 1999 개인
J리그 베스트 11J리그 베스트 11 1999 개인
AFC 특별상AFC 특별상 1995 개인
한국프로축구 브론즈슈한국프로축구 브론즈슈 1995 개인
한국프로축구 골든볼한국프로축구 골든볼 1995 개인
K리그 베스트 11K리그 베스트 11 1995 개인
1994년 아시안 게임 득점왕1994년 아시안 게임 득점왕 1994 개인
체육포장체육포장 1989 수훈
건국대학교
건국대학교 1987 ~ 1991 졸업
용문중학교
용문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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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황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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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선수, 축구 감독 ★ 축구 선수 감독/코치

한국 축구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이자 명장으로 평가받습니다. 선수 시절 1999년 외국인 최초 J리그 득점왕 등 수많은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국가대표 A매치 50골로 역대 2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감독으로 포항과 FC 서울에 K리그 우승을 안기며 더블을 달성하는 등 뛰어난 지도력을 선보였습니다. 2022년 아시안게임 축구 금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68

[축구 전설의 탄생]

대한민국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축구계의 거목이 될 황선홍이 태어났습니다.

1988

[아시안컵 준우승 기여]

1988년 AFC 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준우승을 이끌며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국가대표 첫 발, 첫 골]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컵 일본과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르며 첫 골을 기록, 대한민국 축구의 새로운 스트라이커 시대를 알렸습니다.

1990

[아시안 게임 동메달 획득]

베이징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동메달을 획득하며 팀의 성과에 기여했습니다.

1991

[유럽 도전의 시작]

대학 졸업 후 대한민국 선수의 유럽 진출이 흔치 않던 시절, 독일 바이어 04 레버쿠젠 II(아마추어)에 입단하며 유럽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이는 그의 도전 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1992

[K리그 명가 포항 입단]

드래프트에서 완산 푸마의 지명을 받았으나, 1:8 트레이드를 통해 포항제철 아톰즈(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며 K리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K리그 역사의 중요한 이적 중 하나입니다.

1993

[포항 리그컵 우승 견인]

포항 스틸러스 소속으로 리그컵 우승을 차지하며 팀의 주요 공격수로 활약했습니다.

이는 포항에서의 첫 우승 기록입니다.

1994

[월드컵 데뷔골 폭발]

1994년 FIFA 월드컵 독일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골을 기록하며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의 첫 득점을 올렸습니다.

그의 월드컵 역사가 시작된 순간입니다.

[아시안 게임 득점왕 등극]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뛰어난 득점력을 바탕으로 대회 득점왕에 오르며 아시아 무대 최고 공격수임을 입증했습니다.

[역사적인 8골 대기록]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네팔전에서 무려 8골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단일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의 폭발적인 득점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경기였습니다.

1995

[K리그 전설의 연속골]

K리그에서 8경기 연속골이라는 전무후무한 신기록을 세우며 압도적인 득점력을 과시했습니다.

이는 K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입니다.

[최고의 해, 준우승과 개인상]

포항 스틸러스의 K리그 준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AFC 특별상, 한국프로축구 브론즈슈, 골든볼, K리그 베스트 11을 수상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1996

[포항 국내대회 우승과 준우승]

포항 스틸러스 소속으로 FA컵 우승을 차지하고 리그컵 준우승을 거두며 팀의 국내 대회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올림픽 와일드카드 출전]

1996년 애틀랜타 하계 올림픽 축구 대표팀에 와일드카드 선수로 발탁되어 본선 2경기에 출장하며 올림픽 무대를 밟았습니다.

1997

[아시아 클럽 챔피언 등극]

포항 스틸러스 소속으로 AFC 챔피언스리그(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며 팀을 아시아 최고의 클럽으로 만들었습니다.

1998

[아시아 클럽 챔피언 2연패]

포항 스틸러스와 함께 AFC 챔피언스리그(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서 2년 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일본 J리그 진출]

K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일본 J리그 세레소 오사카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이는 그의 국제적인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9

[J리그 외국인 최초 득점왕]

일본 J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J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J리그 베스트 11에도 선정되며 아시아 무대 최고 공격수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2000

[가시와 레이솔로 임대]

수원 삼성에서의 부상으로 인해 J리그 가시와 레이솔로 임대 이적하며 다시 일본 무대를 밟게 되었습니다.

당시 샤샤와의 맞트레이드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가시와 레이솔 완전 이적]

가시와 레이솔로 완전 이적하며 홍명보, 유상철 선수와 함께 '코리안 트리오'를 형성, 일본 축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2002

[미국전 부상 투혼 발휘]

2002년 FIFA 월드컵 미국전에서 상대 선수와의 충돌로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과다 출혈 속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을 보여주었습니다.

[월드컵 4강 신화 주역]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2002년 FIFA 월드컵 4위라는 기적적인 성과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의 헌신과 리더십은 팀을 한 단계 더 성장시켰습니다.

[월드컵 첫 승리 선제골]

2002년 FIFA 월드컵 조별리그 폴란드전에서 선제골을 넣어 대한민국 월드컵 사상 첫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는 4강 신화의 위대한 서막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국가대표 은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전을 끝으로 홍명보 선수와 함께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며 팬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정들었던 태극마크를 내려놓았습니다.

A매치 통산 103경기 50골이라는 대기록을 남겼습니다.

2003

[그라운드와 작별]

부상으로 인해 현역 선수 경력을 마무리하는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습니다.

'황새'라는 애칭과 함께 한국 축구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지도자 경력의 시작]

선수 은퇴 후 곧바로 전남 드래곤즈 2군 코치로 임명되며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의 축구 인생 2막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2007

[프로팀 감독 데뷔]

해외 지도자 연수 후 K리그 부산 아이파크의 신임 감독으로 취임하며 처음으로 프로팀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본격적인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2010

[FA컵 준우승 이끌다]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서 FA컵 준우승을 이끌며 팀의 최고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그의 지도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친정팀 포항 복귀]

현역 시절 활약했던 포항 스틸러스의 부름을 받아 감독으로 부임하며 친정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팬들의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2012

[감독 첫 우승컵 FA컵]

포항 스틸러스 감독으로서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감독 생활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이는 그의 지도자 커리어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2013

[FA컵 2년 연속 우승]

포항 스틸러스와 FA컵 2년 연속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그의 전술과 리더십이 빛을 발한 결과입니다.

[K리그 우승, 역사적 더블]

K리그 클래식 최종전에서 울산과의 운명적인 대결 끝에 극적인 역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FA컵 우승과 함께 대한민국 프로 축구 최초로 '더블'을 달성하며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단 한 명의 외국인 선수도 없이 이뤄낸 성과였습니다.

2016

[FC 서울 사령탑 부임]

FC 서울의 11대 감독으로 공식 선임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최용수 감독의 후임으로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극적인 K리그 역전 우승]

FC 서울을 이끌고 치열한 우승 경쟁 끝에 리그 최종전에서 전북 현대를 꺾고 극적인 역전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2013년 포항 감독 시절의 기적을 재연하며 '승부사'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2018

[FC 서울 감독직 사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FC 서울 감독직에서 사퇴했습니다.

그의 지도력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중국 리그 첫 도전]

중국 갑급리그 옌볜 푸더의 감독으로 선임되며 해외 리그 감독으로서의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2019

[갑작스러운 팀 해체]

옌볜 푸더 팀이 갑작스럽게 해체되면서 부임 3개월 만에 감독직을 잃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았습니다.

2020

[대전 하나 시티즌 초대 감독]

하나금융그룹이 인수한 대전 하나 시티즌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며 새로운 출발을 알렸습니다.

1부 리그 진입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대전 감독직 사임]

선수단 구성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과 경기력으로 인해 대전 하나 시티즌 감독직에서 사임했습니다.

2021

[U-23 대표팀 감독 부임]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며 젊은 선수들을 지도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미래 한국 축구의 주역들을 육성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2022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

대한민국 U-23 대표팀 감독으로서 2022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아시안 게임 3연패를 이끌었습니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대회를 제패했습니다.

2023

[프랑스 U-21팀 완파]

티에리 앙리가 이끄는 프랑스 U-21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3대 0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며 유럽 강팀을 상대로 경쟁력을 보여주었습니다.

2024

[A대표팀 임시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 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임시 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국가대표팀을 안정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주민규 최초 발탁 파격]

태국과의 월드컵 2차 예선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 명단을 발표하며 3년간 리그에서 50골 이상 넣은 베테랑 공격수 주민규를 역대 최고령으로 처음 발탁해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올림픽 본선 진출 좌절]

2024년 AFC U-23 아시안컵 8강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U-23 팀에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며 10회 연속 올림픽 축구 본선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이 결과로 U-23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대전하나시티즌 2기 감독]

대전 하나 시티즌의 15대 감독으로 다시 선임되며 두 번째로 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라며 각오를 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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