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축구 선수, 스포츠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35:06
대한민국 축구의 '축구 천재' 박주영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FC 서울의 K리그 및 FA컵 우승을 이끌며 팀의 레전드로 자리매김했고, AS 모나코, 아스널 등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하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여 병역 특례를 받으며 국가대표로서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은퇴 후에는 울산 현대의 플레잉 코치로 활동하며 지도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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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축구 천재의 탄생]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두각을 나타내며 대한민국 축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대구광역시 동구 각산동에서 태어난 박주영은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대한민국 축구의 차세대 스타로 기대를 모으며 축구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2004
[아시아를 빛낸 청소년 스타]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대회 MVP와 득점왕을 석권했습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AFC 올해의 청소년 선수상을 수상하며 아시아 무대에서 뛰어난 잠재력을 입증했습니다.
2004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개인적으로 대회 MVP와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받아 아시아 축구 연맹(AFC) 올해의 청소년 선수상을 수상하며 아시아 축구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2005
[FC 서울 입단, 프로 경력 시작]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높은 기대를 받던 박주영은 FC 서울과 역대 신인 선수 최고 대우 계약을 체결하며 프로 생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브라질 유학 복귀 후 포항 스틸러스가 우선 협상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FC 서울이 역대 신인 선수 최고 대우와 계약 위반 위약금까지 배상해주는 조건을 제시하며 2005년 2월 28일 FC 서울에 입단했습니다. 이후 3월 2일 공식 입단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프로 데뷔골 폭발]
프로 데뷔 두 경기 만에 성남과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하며 '축구 천재'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3월 9일 성남과의 리그컵 홈경기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른 박주영은 두 경기 만인 3월 13일 성남과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성공시키며 K리그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후 5월 18일 광주 상무 불사조와의 경기에서는 데뷔 후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였습니다.
[A매치 데뷔 및 데뷔골]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막내로 A매치에 첫 출전하여 우즈베키스탄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이자 자신의 데뷔골을 기록했습니다.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대표팀 막내로 A매치에 첫 출전한 박주영은 0-1로 뒤지던 후반 45분 극적인 동점골이자 자신의 데뷔골을 기록하며 강렬한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이후 쿠웨이트전에서도 선제 결승골을 기록하며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K리그 최초 만장일치 신인상]
K리그 최초로 만장일치 신인상을 수상하며 그해 K리그를 뒤흔든 '박주영 신드롬'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2005년 리그 득점 12골로 브라질 용병 마차도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리그컵 포함 30경기 18골을 기록하는 등 K리그에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힘입어 K리그 최초 만장일치로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K리그 베스트 11에도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2006
FC 서울은 2006년 K리그 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고, 박주영은 팀의 핵심 선수로서 우승에 기여하며 프로 커리어 첫 우승의 기쁨을 맛봤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카메룬전 프리킥골]
2008 베이징 올림픽 조별 예선 카메룬과의 경기에서 프리킥을 골로 연결하며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2008년 하계 올림픽 축구 종목에 참가한 박주영은 조별 예선 카메룬과의 경기에서 날카로운 프리킥을 성공시키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AS 모나코 이적, 유럽 진출]
프랑스 리그 1의 AS 모나코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에 진출했습니다. 데뷔전에서 1골 1도움으로 팀 승리를 이끌며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습니다.
2008년 8월 31일, 이적료 200만 유로(한화 32억 원)에 프랑스 리그 1의 AS 모나코 FC로 이적했습니다. FC 로리앙과의 데뷔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첫 시즌에 35경기 출장 5골 6도움을 기록하는 등 성공적인 유럽 무대 안착을 알렸습니다.
2010
[월드컵 원정 16강 확정 프리킥골]
2010 FIFA 월드컵 조별 예선 나이지리아와의 3차전에서 극적인 프리킥 결승골을 터뜨려 대한민국 축구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2010년 FIFA 월드컵 조별 예선 두 번째 경기인 아르헨티나전에서 아쉽게 자책골을 기록했으나, 이후 나이지리아와의 3차전에서 1-1 동점 상황이던 후반 4분 아크 왼쪽에서 얻어낸 프리킥 찬스를 골로 성공시키며 대한민국 축구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크게 일조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ESPN MOM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아시안 게임 동메달 획득]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이란과의 3위 결정전에서 만회골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습니다.
2010년 아시안 게임에서 요르단전 1도움, 팔레스타인전 첫 골, 중국전 두 번째 골, 우즈베키스탄전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을 준결승에 올렸습니다. 비록 준결승에서 UAE에 패했지만, 이란과의 3위 결정전에서 3-1로 뒤지던 후반 만회골을 기록하며 4-3 역전승을 이끌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2011
[무릎 부상으로 아시안컵 불참]
AS 모나코 경기 중 세리머니를 하다 무릎에 통증을 느껴 박리성 골연골염 진단을 받고 2011 AFC 아시안컵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AS 모나코와 FC 소쇼의 경기 종료 직전 극적인 결승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다 무릎에 통증을 느껴 정밀 진단한 결과 '우측무릎대퇴골 외측 박리성 골연골염' 진단을 받고 4주 이상 휴식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와 2011 AFC 아시안컵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대회 이후 박지성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 주장이 되었습니다.
[아스널 FC 이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구단 아스널 FC로 이적하며 '빅 클럽'에 입성, 당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2011년 8월 30일, 프랑스 리그 1의 AS 모나코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널 FC로 이적했습니다. 등번호 9번을 부여받으며 큰 기대를 모았으나, 주전 공격수들과의 경쟁에 밀려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레바논전 해트트릭]
2014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레바논과의 홈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득점력을 과시했습니다.
2011년 9월 2일 레바논과의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홈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6-0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이 해에 A매치 8경기에서 총 10골을 기록하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획득 및 병역 특례]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숙명의 라이벌 일본을 상대로 1골 1도움을 기록, 대한민국 축구 종목 사상 첫 올림픽 메달(동메달)을 안기고 예술체육요원 신분으로 전환되었습니다.
2012년 하계 올림픽 최종 명단에 와일드 카드로 참가하여 조별 예선 스위스전에서 다이빙 헤딩슛으로 선제골을 기록하며 8강 진출에 기여했습니다. 동메달 결정전인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축구 종목 사상 첫 올림픽 메달(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로 인해 예술체육요원 신분으로 전환되어 현역 복무를 면제받았습니다.
[셀타 비고 임대 이적]
아스널에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로 승격한 셀타 비고로 1년 임대 이적을 단행했습니다.
이적 시장 마지막 날인 2012년 8월 30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셀타 비고에 완전 이적 옵션 없이 1년 임대 이적했습니다. 9월 23일 헤타페와의 홈경기에서 프리메라리가 데뷔골을 기록했으며, 국왕컵에서도 득점하며 팀의 8강 진출에 기여했습니다.
2013
[위건 임대 이적 결렬]
아스널 복귀 후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자 위건 애슬레틱으로의 임대 이적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주급 문제로 인해 결렬되었다는 아르센 벵거 감독의 언급이 있었습니다.
셀타 비고 임대 복귀 후 아스널에서 다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던 박주영은 잉글랜드 챔피언십 소속 위건 애슬레틱으로부터 긴급 임대 제의를 받았으나, 아르센 벵거 감독은 첼시와의 리그컵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주급 문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해 임대가 무산되었다고 밝혔습니다.
2014
2014년 2월 1일 겨울 이적시장 폐장 직전, 왓퍼드 FC로 임대 이적이 공식 발표되었습니다. 2월 3일 브라이턴 호브 앨비언과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으나, 이후 봉와직염을 이유로 조기 귀국하며 팀에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전 결승골, A매치 득점 복귀]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손흥민의 어시스트를 받아 결승골을 터뜨리며 약 2년 4개월 만에 A매치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를 많이 잡지 못해 약 1년여간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으나, 2014년 3월 5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그리스와의 평가전에 선발 출전하여 전반 18분 손흥민의 어시스트를 받아서 결승골을 터트림으로써 약 2년 4개월 만에 A매치 득점을 기록하며 부활을 알렸습니다.
[아스널 FA컵 우승]
아스널 FC 소속으로 2013-14 시즌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개인 커리어에 주요 트로피를 추가했습니다.
아스널 FC는 2013-14 시즌 잉글랜드 FA컵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박주영은 비록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팀의 일원으로서 FA컵 우승의 영광을 함께했습니다.
[아스널 계약 만료 및 방출]
아스널 FC와의 계약이 만료되어 방출되었고, 이로 인해 예술체육요원 신분 박탈 위기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2014년 5월 23일 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에 자유계약 선수 목록에 이름이 올랐으며, 한 달 뒤인 6월 27일 아스널 FC와의 계약이 만료되어 방출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런던 올림픽 동메달로 얻었던 예술체육요원 신분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었습니다.
[알샤바브 이적]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샤바브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데뷔전에서 데뷔골이자 결승골을 기록했습니다.
2014년 10월 1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샤바브로 이적했습니다. 10월 17일에 열린 알힐랄과의 경기에서 데뷔골이자 결승골을 기록했지만, 이후에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7경기 1골에 그쳤습니다.
2015
알샤바브에서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던 박주영은 2015년 2월 6일 구단과 계약을 해지하며 새로운 팀을 찾아 나섰습니다.
2015년 3월 10일, 오랜 해외 생활을 마치고 친정팀인 FC 서울로 복귀를 확정했습니다. ITC 발급 지연으로 몇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4월 4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고, 4월 11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선 페널티 킥으로 시즌 첫 골을 기록하며 순조로운 복귀를 알렸습니다.
FC 서울은 2015년 FA컵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박주영은 이 대회 8강전에서 2골을 기록하는 등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시즌 총 9골 2어시스트로 활약했습니다.
2016
[FC 서울 K리그 클래식 우승]
K리그 클래식 스플릿 라운드 최종전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려 FC 서울의 극적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2016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34경기에 출전하여 10득점 1도움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리그 스플릿 라운드 최종전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려 FC 서울의 극적인 우승을 이끌며 팀의 레전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FC 서울 FA컵 준우승]
2016년 FA컵 결승 2차전에서 도움 2개를 기록하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으나,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2016년 FA컵에서 FC 서울은 결승전까지 진출했습니다. 결승 1차전에서 1-2로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결승 2차전에서 박주영이 도움 2개를 기록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지만, 승부차기에서의 실축으로 아쉽게 우승 달성에는 실패했습니다.
2017
2017 시즌 FC 서울의 주장으로 선임되어 팀을 이끌며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2018
2018 시즌, FC 서울과 2020년까지 유효한 3년 재계약을 체결하며 팀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시즌 초반 부상과 감독 교체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을용 감독 대행 체제에서 다시 주전으로 활약했습니다.
[승강 PO 극장골로 잔류 확정]
부산 아이파크와의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 종료 직전 40m 장거리 슛으로 극적인 결승골을 넣어 강등 위기에 처했던 FC 서울을 구해냈습니다.
2018년 12월 9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약 40m 거리에서 환상적인 장거리 슛으로 골을 터뜨리며 팀의 잔류를 확정 짓는 극적인 골을 기록했습니다. 이 골은 강등 위기에 처했던 FC 서울을 구해낸 결정적인 한 방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2019
2019 시즌에는 36경기 출전 12골 7도움을 기록하며 프로 커리어 사상 가장 많은 출전 시간과 경기를 소화했습니다. 또한, 가장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선수 생활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2021
[FC 서울과의 동행 종료]
2021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선수로 공시되었고, 선수 생활을 더 이어가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11년간 이어진 FC 서울과의 동행을 멈췄습니다.
2021 시즌이 끝난 후, 박주영은 FC 서울로부터 지도자 제의를 받았지만 본인은 선수 생활을 더 이어가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11년간 정들었던 FC 서울을 떠나 자유계약선수로 공시되었습니다.
2022
[울산 현대 이적]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최저 연봉과 상관없이 구단에 금전적 조건을 백지 위임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울산 현대FC로 이적했습니다.
FC 서울과 결별한 박주영은 현역 생활을 더 이어가기 위해 최저 연봉과 상관없이 구단에 금전적 조건을 백지 위임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후 2022년 1월 16일 울산 HD FC(당시 울산 현대)로 이적하여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2년 런던 올림픽,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사제의 인연을 맺었던 홍명보 감독과 울산에서 다시 한번 재회했습니다.
울산 현대는 2022년 K리그1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박주영은 팀의 일원으로서 우승에 기여하며 값진 경험을 더했습니다.
[울산 현대 플레잉 코치 합류]
홍명보 감독의 제안으로 2023 시즌부터 울산 현대의 플레잉 코치로 합류하며 지도자 연수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2022 시즌 후, 홍명보 감독의 제안을 받아 2023 시즌부터 울산 현대의 플레잉 코치로 합류하며 선수 겸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지도자 연수를 준비하며 새로운 커리어 전환을 시작했습니다.
2023
울산 현대는 2023년 K리그1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박주영은 플레잉 코치로서 팀의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2024
[선수 생활 은퇴 및 유종의 미]
수원 FC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공격포인트 101개를 달성하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2024년 11월 10일 친정팀 FC 서울과의 원정 경기에서 은퇴를 앞두고 엔트리에 포함되었습니다. 이후 11월 23일 수원 FC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공격포인트 101개를 달성, 유종의 미를 거두며 영광스러운 선수 생활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울산 현대 K리그1 3연패 및 공로상 수상]
울산 현대 소속으로 2024년 K리그1에서 우승하며 리그 3연패를 달성했고, K리그1 공로상을 수상하며 선수로서의 마지막 영예를 얻었습니다.
2024년 울산 현대는 K리그1에서 우승하며 리그 3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박주영은 플레잉 코치로서 팀의 우승에 기여했으며, 개인적으로 K리그1 공로상을 수상하며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