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환 (축구인)
축구인, 축구 선수, 축구 감독, 축구 심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58:48
대한민국 축구계의 거인이자 명장으로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1936년 출생, 2023년 별세. 선수와 국제 심판을 거쳐 지도자로 활약했습니다. 1983년 FIFA U-20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며 '붉은 악마'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일화 천마(현 성남 FC) 창단 감독으로 K리그 3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스파르타식 엄격한 지도 방식과 선수 폭행 논란 등으로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가졌으며, 말년에는 쓸쓸하게 지내다 영면, 한국 축구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본 문서는 위키백과 박종환 (축구인) 문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편집되었으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배포됩니다.
1936
일제강점기 황해도 옹진군에서 태어나, 훗날 대한민국 축구사에 한 획을 긋는 인물로 성장하게 됩니다.
1966
[선수 경력 마감]
대한석탄공사 축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이후 수원 유신고등학교 체육교사로도 근무했습니다.
1966년까지 실업 축구 팀 대한석탄공사에서 활약했으며, 같은 시기 수원 유신고등학교의 체육교사로도 근무하며 지도자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1971
[국제 축구 심판 활동 시작]
국제 축구 심판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1979년까지 활약하며 정확한 경기 진행 능력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71년부터 1979년까지 국제 축구 심판으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연·고전 축구 심판진 선정 시 단골로 주심 역할을 맡을 정도로 정확한 경기 진행 능력이 발군이었습니다.
1979
[국제 축구 심판 활동 종료]
국제 축구 심판으로서의 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이후 그는 지도자로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하게 됩니다.
1971년부터 시작된 국제 축구 심판 경력을 1979년 마무리했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그의 지도자 경력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83
1983년 멕시코 FIFA U-20 월드컵에서 청소년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체육훈장 백마장을 수훈하며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FIFA U-20 월드컵 4강 신화]
멕시코 FIFA U-20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기적적인 4강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FIFA 주관 대회 첫 4강 기록이자, '붉은 악마' 신화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당초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으나, 북한이 아시안 게임 축구 경기에서 심판을 집단 구타하여 2년간 국제 대회 출전 금지 징계를 받으면서 대신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박종환 감독은 멕시코의 희박한 고지대 공기에 적응하기 위해 미리 마스크를 쓰고 훈련하는 등 철저히 준비했고, 선수들의 투혼을 이끌어내 '붉은 복수의 여신(Red Furies)'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4강 신화를 달성했습니다. 이 일화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애칭인 '붉은악마'의 기원이 됩니다.
1984
[대한민국 체육상 수상 및 LA 올림픽 예선 탈락]
대한민국 체육상 지도자부문을 수상하며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LA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강압적인 지도 방식으로 선수 이탈과 아시아 예선 탈락이라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대한민국 체육상 지도자부문을 수상하며 역량을 인정받았지만, LA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는 그의 강압적인 지도 방식에 불만을 품은 일부 선수가 태릉선수촌을 이탈하는 등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면서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는 뼈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1989
[일화 천마 창단 감독 부임]
K리그 팀 일화 천마(현 성남 FC)의 창단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그의 지휘 아래 일화 천마는 K리그 강팀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1989년 K리그 팀 일화 천마의 창단 감독으로 부임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팀을 이끌고 K리그 역사에 남을 위대한 기록들을 달성하게 됩니다.
1993
[일화 천마 K리그 첫 우승 및 감독상 수상]
일화 천마를 이끌고 K리그 첫 우승을 차지했으며, K리그1 감독상을 수상하며 명장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K리그 3연패의 서막을 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박종환 감독은 1993년 일화 천마를 K리그 정상에 올리며 구단 역사상 첫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이 해 K리그1 감독상을 수상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이는 일화 천마의 K리그 3년 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1994
[일화 천마 K리그 2연패]
K리그1 감독상을 수상하며 일화 천마의 K리그 2연패를 이끌었습니다. 그의 강력한 지도력이 빛을 발한 시기였습니다.
1994년에도 일화 천마를 K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이로써 박종환 감독은 다시 한번 K리그1 감독상을 수상하며 명장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1995
[일화 천마 K리그 3연패 및 AFC 올해의 감독상 수상]
일화 천마의 K리그 3연패를 달성하며 K리그1 감독상과 AFC 올해의 감독상을 동시에 수상, 대한민국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박종환 감독은 1995년 일화 천마를 K리그 3연패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업적으로 그는 K리그1 감독상과 함께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감독상까지 수상하며 아시아 축구계에도 그 이름을 알렸습니다.
1996
[일화 천마 감독직 사퇴]
단장과의 갈등으로 일화 천마 감독직에서 전격 사퇴했습니다. 이는 K리그 역사상 큰 이슈 중 하나였습니다.
1996 시즌 개막을 앞두고 구단 단장과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4월 2일 일화 천마 감독직에서 전격 사퇴했습니다. 그의 강력한 스파르타식 조련 방식은 팀 내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으며, 이 과정에서 팀의 창단 멤버였던 김용세 선수와 마찰을 겪기도 했습니다.
[국가대표팀 감독 재선임 및 사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다시 선임되었으나, 같은 해 AFC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이란에 2-6으로 대패하며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국가대표팀과의 인연은 없었습니다.
일화 천마 감독직 사퇴 한 달 후인 1996년 5월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재선임되었으나, 그 해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AFC 아시안컵 대회에서 무기력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특히 이란과의 8강전에서 2-6으로 대패한 일이 결정타가 되어 감독직을 차범근 감독에게 넘겼고, 이후 더 이상 국가대표팀과 인연을 맺지 못했습니다.
1999
[숭민 원더스 단장 부임]
여자 축구단 숭민 원더스의 단장으로 부임하여, 2002년 팀이 해체될 때까지 활동하며 여자 축구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1999년 여자 축구단 숭민 원더스의 단장으로 부임하여 2002년에 팀이 해체할 때까지 재직하며 대한민국 여자 축구 발전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2001
2001년 3월에 여자축구연맹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며 대한민국 여자 축구계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왔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03
2003년 K리그 신생팀 대구 FC의 창단 감독으로 부임하여 2006년까지 팀을 이끌었습니다. 계약 만료 후 변병주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겼습니다.
2006
대구 FC의 창단 감독으로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팀을 이끌었던 계약이 만료되어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변병주 감독이 대구 FC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2010
2010년 AFC 공로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과 아시아 축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2014
[성남 FC 감독 복귀 및 사퇴]
친정팀 성남 FC의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했으나, 선수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불과 4개월 만에 사퇴하는 안타까운 결말을 맞았습니다.
2014년 성남 FC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하며 다시 한번 기대를 모았으나, 선수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논란이 일자 불과 4개월 만에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했습니다. 이는 그의 지도자 경력에 또 다른 오점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2018
2018년 K3리그 여주 FC의 창단 총감독으로 부임하여 2020년까지 활동했습니다. 이는 그의 마지막 공식적인 축구계 활동이 되었습니다.
2020
[여주 FC 총감독 퇴임 및 축구계 은퇴]
K3리그 여주 FC 총감독직에서 물러나면서 사실상 축구계 은퇴와 함께 쓸쓸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여주 FC의 총감독으로 활동한 뒤, 공식적인 축구계 직책에서 물러나며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았습니다. 이후 자신의 집 없이 지인의 집과 요양병원에서 생활하는 등 쓸쓸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2022
[방송 출연으로 근황 공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여 자신의 근황과 쓸쓸한 말년을 공개했으며, 손흥민 선수의 부친 손웅정을 지도했던 일화를 밝혀 화제가 되었습니다.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여 자신의 근황을 공개했습니다. 자신의 집 없이 지인의 집과 요양병원을 전전하는 쓸쓸한 말년의 모습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이 방송에서 그는 자신이 지도한 선수들 중 한 명이 손흥민 선수의 부친인 손웅정이라고 언급하며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2023
[별세]
코로나19 감염 후 패혈증으로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향년 85세의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한국 축구계의 큰 별이 지는 순간이었습니다.
2023년 코로나19에 감염된 이후 코로나19에 따른 패혈증으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이 열린 2023년 10월 7일 향년 85세의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한국 축구계에 큰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축구협회장 장례 영결식]
대한축구협회 주관으로 축구협회장 장례 영결식이 엄수되었으며, FIFA 회장 잔니 인판티노도 추모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논란이 많았던 축구인이었지만, 멕시코 FIFA U-20 월드컵 4강 등의 공로를 들어 대한축구협회가 장례식을 주관하여 축구협회장으로 영결식을 거행했습니다. 장지는 경기도 성남시의 영생원 에덴공원이며,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도 대한축구협회에 공문을 보내 그를 애도했습니다.
2023년 10월 15일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 고 박종환 감독을 추모하는 특집 방송을 방영하며 그의 삶과 업적을 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