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한민국
대한민국대한민국 1953 ~
무궁화대훈장7
무궁화대훈장무궁화대훈장 2022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2018 지도자
포춘 선정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50인포춘 선정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50인 2018
대서양협의회 세계시민상대서양협의회 세계시민상 2017
제17회 백봉신사상제17회 백봉신사상 2015
제16회 백봉신사상제16회 백봉신사상 2014
법무부장관상법무부장관상 1983
경희대학교
경희대학교 1972 ~ 1980 졸업
경남고등학교 ~ 1971 졸업
경남중학교 ~ 1968 졸업
남항초등학교 ~ 1965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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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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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 정치인, 변호사 ★ 국가원수/대통령 의회 의원

인권 변호사에서 대통령까지 드라마틱한 삶의 주인공.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원한 동지로 불리며 두 차례의 대선 도전 끝에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재임 중 남북정상회담 3기 신도시 발표 등 굵직한 정책을 추진했지만 경제 및 인사 논란 등도 겪었다. 퇴임 후에도 다양한 이슈의 중심에 서며 여전히 대중의 관심을 받는 인물.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53

[탄생]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제군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한국 전쟁 당시 흥남 철수 작전에 참여하여 거제에 정착한 실향민이었다.

1965

[초등학교 졸업]

가난한 환경 속에서 남항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남중학교에 입학했다.

1968

[경남고 수석 입학]

경남중학교 졸업 후 경남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나 가난으로 방황하기도 했다.

1971

[재수 시작]

고교 시절 방황 끝에 대학 입시에 실패, 종로학원 진입 시험에서 1등을 하며 학원비를 면제받고 재수를 시작했다.

1972

[경희대 법대 수석 입학]

경희대학교 총장의 권유로 4년 전액 장학금을 약속받고 경희대학교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고 알려졌으나, 일화의 사실관계는 검증되지 않았다는 의혹도 존재한다.

1975

[학생운동 구속]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서 유신 독재에 항거하는 집회를 주도하다 구속.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었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특전사 강제 징집]

출소 후 신체검사 없이 군에 강제 징집되어 특수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특전여단에서 복무.

특수 훈련에서 우수한 평가로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전두환 공수여단장으로부터 두 차례 최우수 특전사 표창을 수상했다.

복무기간: 1975년 8월~1978년. 소속: 육군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계급: 병장.

1978

[군복무 마침]

육군특수전사령부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1980

[신군부 항거 투옥]

경희대학교에 복학해 복학생 대표로 전두환 군부 독재에 항거하다가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긴급 체포되어 청량리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옥중 사법시험 합격]

옥중에서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석방되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학생운동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거부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82

[인권변호사 활동 시작]

사법연수원 수료 후 부산에서 노무현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인권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1988

[정치 입문 거절]

김영삼으로부터 노무현, 김광일과 함께 국회의원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3명 중 유일하게 정치 입문을 거절하고 인권변호사 활동에 전념했다.

1995

[법무법인 부산 대표]

노무현과 함께 운영했던 합동 사무소를 '법무법인 부산'으로 개칭하고 대표 변호사로 이름을 올렸다.

2002

[노무현 대선 지원]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자 새천년민주당 부산 선대위원장직을 맡아 노무현의 당선에 기여했다.

2003

[민정수석 임명]

노무현 당선 이후 변호사 업무에 복귀하려 했으나, 노무현의 제안을 받아 참여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역임했다.

2004

[민정수석 사임]

녹내장과 고혈압 등 건강 악화로 인해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났다.

[노무현 탄핵 변호]

네팔 산행 중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 변호인단을 꾸려 탄핵 변호인단의 간사를 맡았다.

2005

[청와대 복귀]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를 거치며 참여정부의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

2006

[국정자문위원 보선]

국정자문회의 의원 138명 보궐 시 국정자문위원으로 추가 보선되었다.

2007

[대통령 비서실장]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청와대 안에서 '왕수석'으로 불리며 2인자로 주목받기도 했다.

[군사분계선 도보 제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어갈 것을 제의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실행되었다.

2008

[변호사 복귀]

참여정부 종료 후 경남 양산시로 칩거하다가 5년 만에 자신이 세운 법무법인 부산으로 복귀하여 대표 변호사로 취임했다.

2009

[노무현 국민장 상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서거하자, 담당 변호사를 맡았으며 국민장 위원회에서 상주를 맡아 장례 절차 전체를 총괄했다.

2010

[노무현재단 이사장]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듬해인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직을 맡았다.

2012

[제19대 총선 당선]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통합당의 대선 예비주자로 거론되었다.

[대선 출마 선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보통 사람이 중심 된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 캠프명은 '담쟁이 캠프'로 정해졌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국민참여경선에서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의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다.

[민주통합당 대행]

2기 지도부 총사퇴에 의해 민주통합당의 대표권한대행이 되었다.

[안철수 후보 사퇴]

유력 대권후보로 떠오른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추진하였으나, 단일화 과정을 둘러싼 문제로 안철수가 대선 후보직을 사퇴했다.

[제18대 대선 패배]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14,692,632표(48.0%)를 득표했으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약 100만 표 차이로 패배했다.

이는 탈락 후보 사상 최다 득표였다.

2013

[대선평가보고서]

민주통합당의 대선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패배의 주원인은 캐릭터 정립 실패로 국민들에게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2014

[공동 선대위원장]

새로 창당된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과 손학규를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세월호 사고 비판]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사망자 수가 늘어난 것에 대해 '왜 이렇게도 무기력하냐'며 '우리의 수준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총리 후보 비판]

새 총리 후보로 문창극이 지명되자 '국민도 불행하고 박근혜 정부에도 불행한 길'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사회적 가치' 법안 발의]

'사회적 가치 기본법'을 발의했다.

이는 공공기관이 정책 수립 및 집행에 있어 이윤과 효율뿐만 아니라 인권, 노동권, 안전, 생태 등 '사회적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통진당 해산 비판]

통합진보당이 헌재 판결로 해산되자 '너무나 안타깝다'며 '민주주의가 상처를 입었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는 이유는 다름을 포용하는 유일한 제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권 도전 선언]

새정치민주연합의 당권 도전을 선언하며 '정치인생 걸겠다'고 밝혔다.

당 대표가 되면 차기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약속했다.

2015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제1차 전당대회에서 45.3%를 얻으며 당대표에 당선되었다.

박지원 후보(41.8%)를 앞섰다.

[의원 400명 발언]

'국회의원 정수가 부족하다'며 OECD 주요 국가와 비교해 낮다고 주장했고, '국회의원 수를 늘리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개인적 생각'으로 선을 그었다.

[메르스 대처 비판]

메르스 유행 시기, 박근혜 대통령의 대처에 대해 '정부의 대응을 보면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무능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안철수 탈당]

안철수 의원의 탈당을 필두로 당이 분열되었다.

문재인은 이를 두고 '정말 정치가 싫은 날'이라고 말했으나, '총선 승리 항해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당명 개명]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으로 개명했다.

이는 안철수계의 흔적을 지우는 행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6

[당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총선 불출마 선언]

차기 정권교체를 위해 제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부산 사상구 후임으로 배재정을 언급하며 지역구를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독도 방문]

울릉도에 이어 독도를 방문하여 '8·15 광복절을 앞두고 영토 주권을 확고히 하자는 목적'이라고 밝혔다.

최낙정 전 해양수상부 장관이 동행했다.

[거국내각 요청]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알려지면서 박근혜 정권을 향한 민심이 폭발하자, 박근혜 정부에 거국중립내각을 요청했다.

[촛불집회 참석]

촛불집회에 참석하여 '200만 촛불이 세상을 바꾸는 횃불이 될 것'이라고 발언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적인 하야를 촉구했다.

[탄핵 가결 '국민 승리']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자 '국민이 이겼다'고 주장하며,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이 무렵 지지율 1위로 유력 대권주자로 꼽혔다.

2017

[박근혜 파면 후 대세론]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최종 파면되었다.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며 '문재인 대세론'이 굳어졌다.

[19대 대선 출마]

동영상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바라는 온 국민의 뜻을 모아 이제 정권교체의 첫발을 내딛는다'고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확정]

수도권 경선에서 60.4%를 득표하며 전 지역 1위 압승을 거두어, 최종 결선 투표 없이 곧바로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다.

[제19대 대통령 당선]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41.1%를 득표하여 24%를 득표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역대 최다 표차 승리.

[제19대 대통령 취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당선인 결정 시간인 2017년 5월 10일 8시 9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제19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국회 취임식은 취임 선서로만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야4당 방문]

취임 첫날 '국민 통합'을 강조하며 야4당을 방문하여 국정 협조를 부탁했다.

[새 정부 개혁 지시]

박근혜 정부의 황교안 국무총리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사표가 수리되었다.

국정교과서 폐지 및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했다.

[사드 예산 언급]

미국 민주당 딕 더빈 상원 원내총무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국이 사드 배치를 원치 않으면 미국 정부가 사드 배치 관련 예산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안경환 후보 사퇴]

1기 내각 인사 문제로 논란이 계속되자,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가 각종 결격 사유로 인한 논란으로 자진사퇴했다.

[미 의회 사드 발언]

미국 워싱턴D.C.에서 미 의회 지도부와 간담회를 갖고 '사드 배치는 한미동맹에 기초한 합의이며 한국 국민과 주한미군 생명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대엽 후보 사퇴]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가 각종 결격 사유로 인한 논란으로 자진사퇴하며 인사 문제가 계속 불거졌다.

[8·2 부동산 대책]

강남 3구, 서울 11개구, 세종시 등을 투기지역으로 지정하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각각 40%로 일괄 하향 조정하는 등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취임 100일 회견]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을 사전 각본 없이 진행하며 소통의 모습을 보였다.

[포항 지진, 수능 연기]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두고 포항 지진이 발생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수능을 1주일 연기하는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중국몽 동행 발언]

베이징 대학을 방문하여 강연하며 중국몽을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을 산봉우리의 대국, 대한민국은 소국이라고 표현했다.

2018

[1차 남북정상회담]

판문점에서 1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었다.

이에 대한 기대로 지지율이 70%대를 기록했다.

[2차 남북정상회담]

판문점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북미정상회담 개최]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각각 70%대, 50%대를 유지하며 국정 운영에 힘이 실렸다.

[최저임금 공약 파기]

2019년 최저임금이 2018년 대비 10% 오르게 되면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대선 공약 파기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고용 지표 최악]

취업자 증가폭이 5천 명을 기록해 2010년 1월 이후 역대 최악의 고용 상황으로 드러났다.

실업자는 103만 9천 명으로 증가했다.

[은산분리 완화 추진]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은 환영했으나, 기존 지지층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전기료 누진제 완화]

2018년 폭염으로 인해 청와대와 여당은 주택 전기료 누진제를 7~8월 동안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가구당 평균 19.5%의 인하 효과가 기대되었다.

[통계청장 경질 논란]

황수경 통계청장을 경질하고 강신욱 선임연구위원을 새 통계청장에 임명했다.

정부 정책기조에 맞지 않는 통계조사 결과로 인한 압박성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중폭 개각 단행]

장관급 인사 5명과 차관급 인사 4명에 대한 개각을 단행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등 논란이 있었던 인사들이 교체되었다.

[판문점 선언 비준]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고, 통일부는 비용 추계서와 함께 국회에 제출했다.

2019년에 2986억 원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9·13 부동산 대책]

서울·세종 전역 등 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해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을 노무현 정부 수준 이상인 최고 3.2%로 중과하는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3차 남북정상회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역대 대통령 중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3번째로 평양을 방문했다.

[김정은 서울 방문 약속]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가까운 시일 안에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백두산 천지 방문]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백두산 천지를 방문하여 두 정상 부부 동반 산책을 했다.

이로 인해 경제 문제로 하락했던 지지율이 6.4%p 상승하며 급반등했다.

[3기 신도시 계획 발표]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해 수도권 공공택지 17곳에서 3만 5천 호를 공급할 계획을 밝혔으며, '3기 신도시'를 조성하여 20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화해치유재단 해산 통보]

미국 뉴욕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국민의 반대로 화해·치유재단이 정상적 기능을 못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재단 해산 뜻을 통보했다.

[경제 수장 교체]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동시에 교체되었다.

이는 실질적 성과가 없는 경제 현실 및 정책 엇박자로 인한 문책성 인사라는 분석이 제기되었다.

[카드수수료 인하]

금융위원회는 당정협의를 거쳐 '카드수수료 개편방안'을 확정했다.

연매출 30억원 이하 가맹점의 우대수수료율 적용 구간을 대폭 확대하고, 일반가맹점 수수료율도 2% 이내로 인하하기로 했다.

[국민연금 개편안]

국민연금 개편안이 발표되었다.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조정을 포함한 4가지 방안이 제시되었다.

[3기 신도시 확정]

국토교통부는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계양테크노밸리, 과천 4곳을 3기 신도시 개발 대상으로 발표하며 수도권 주택 공급 계획을 구체화했다.

[첫 부정평가 우위]

경제 문제와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 의혹 등으로 인해 취임 후 처음으로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높은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긍정 45%, 부정 46%).

2019

[광화문 집무실 공약 파기]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은 현 단계에서 집무실을 광화문 청사로 이전할 대체 부지를 찾을 수 없어 사실상 공약이 파기되었다고 밝혔다.

[주요 참모진 개편]

임종석 비서실장 후임에 노영민 주중국대사, 한병도 정무수석 후임에 강기정 전 의원,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후임에 윤도한 전 MBC 논설위원 등 주요 참모진 개편을 발표했다.

[예타 면제 사업 발표]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총사업비 24조 1천억 원 규모의 23개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한다고 발표했다.

수도권 제외가 원칙이었으나, 낙후 접경지역은 포함되었다.

[조국 장관 임명]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으나, 가족 관련 논란으로 지명 철회 요청에도 불구하고 '법률 위반이나 본인 책임에 해당하는 일이 없다'는 이유로 임명을 강행했다.

[대규모 하야 요구 집회]

유신헌법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우파 세력이 중심이 되어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 앞에서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야간 집회를 개최하여 하야를 요구받았다.

[국민과의 대화]

사전 각본 없이 자유롭게 진행하는 국민과의 대화를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한-아세안 정상회의]

임기 중에 남방정책을 추진하며 아세안 연합 10개국과 정상회담을 했던 문재인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강 정상회의를 잇달아 개최하였다.

2020

[수출 1호차 현장 방문]

평택 부두를 방문하여 올해 수출 1호차를 선적하는 자동차 운반선 앞에서 연설을 했다.

수출 강국에 중심을 두는 내용으로 방송되었다.

[코로나19 국내 유입]

대한민국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입되었다.

이후 정부는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대응에 돌입했다.

[여름 휴가 취소]

전국적으로 호우 피해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여름 하계휴가를 포기하고 전국의 수해 복구를 시찰하는 데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2021

[4.7 재보선 참패]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했으며, 비슷한 시기 지지율 또한 사상 최초로 20%대로 떨어졌다.

임기말 레임덕 우려가 제기되었다.

[얀센 백신 지원]

2021년 한미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한국군에게 얀센 코로나19 백신 100만 회분을 지원받는 성과를 냈다.

2022

[대통령 퇴임]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다음날 후임으로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풍산개 정부 반납]

퇴임 이후 기르던 풍산개 '곰이'와 '송강이'를 정부에 반납했다.

[서훈 전 안보실장 구속]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문재인 수사 언급]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의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민주당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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