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영연방 수장, 군주
최근 수정 시각 : 2025-12-02- 06:03:28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과 영연방 왕국의 여왕으로 70년간 재위하며 영국 역사상 최장수 통치자 기록을 세웠다. 대영 제국의 해체 속에서 연방 국가들의 단합을 이끌었고, 입헌군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도 국민과 소통하며 왕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러 국내외 도전과 왕실 스캔들을 극복하며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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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
[엘리자베스 공주 탄생]
요크 공 앨버트와 요크 공작부인 엘리자베스의 장녀로 런던 메이페어에서 제왕절개를 통해 태어났다. 할아버지 조지 5세는 그를 "릴리벳"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1926년 4월 21일 2시 40분(GMT) 런던 메이페어의 브루턴 거리 17번지에서 요크 공 앨버트(훗날의 조지 6세)와 요크 공작부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장녀로 제왕절개를 통해 태어났다. 버킹엄 궁전의 개인 부속 예배당에서 코스모 고든 랭 요크 대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았으며, 할아버지 조지 5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조지 5세는 엘리자베스가 어릴적에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옹알거리는 것을 보고 "릴리벳"라는 애칭을 그에게 주었다.
1930
엘리자베스 공주의 유일한 자매인 마거릿 공주가 1930년에 태어났으며, 두 공주는 집에서 어머니의 감독 아래 교육을 받았다.
1936
[추정 상속인으로 등극]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자식 없이 퇴위하면서 아버지 조지 6세가 왕위에 올랐고, 엘리자베스는 왕위 계승 1순위인 추정 상속인이 되었다.
1936년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자식을 남기지 못한 채 퇴위하고 엘리자베스의 아버지가 조지 6세로 왕위에 오르면서 엘리자베스는 "엘리자베스 공주 전하"로 불리는 추정 상속인이 되었다.
1945
[제2차 세계대전 참전 및 군 복무 시작]
스무 살의 나이로 아버지 조지 6세를 설득하여 영국 여자 국방군에 입대, 보조 영토 서비스에 배치되어 운전병으로 복무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왕위 계승자임에도 사병이나 부사관이 아닌 장교로 강제되어 보급수송장교로 임무를 수행했다.
1945년 3월 4일, 스무 살의 엘리자베스 공주는 전쟁에 직접 참가해 조국에 봉사하고 싶다며 아버지 조지 6세를 설득하여 허락을 받아냈다. 영국 여자 국방군에 입대하여 보조 영토 서비스에 배치되었으며, 군번 230873의 엘리자베스 윈저 소위로 불리며 군용 트럭을 모는 운전병으로 복무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였다. 여성 왕족 중 다른 학생들과 동등한 훈련을 받으며 군 복무를 한 첫 사례이다.
1947
엘리자베스는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 필리포스와 결혼하였으며, 필립이 정교회 신자이고 후원 세력이 없으며 나치 독일 지지자와 결혼한 누이가 있어 논쟁이 있었으나, 조지 6세의 지지 아래 엘리자베스의 21번째 생일 전인 1947년 7월 두 사람의 약혼이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결혼]
필립 마운트배튼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필립은 결혼에 앞서 에든버러 공 작위를 받고 필립 마운트배튼 중위로 불리게 되었다.
1947년 11월 20일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필립 마운트배튼과 결혼식을 올렸다. 필립은 그리스에서의 왕위에 관한 권리를 포기하고 에든버러 공의 작위를 받기 전에 간결하게 필립 마운트배튼 중위로 불렸다.
1952
[조지 6세 서거, 여왕으로 즉위]
아버지 조지 6세가 암으로 사망하자, 케냐에 머물던 엘리자베스 공주는 즉시 영국으로 돌아왔고, 자동으로 왕위 계승 1순위인 엘리자베스에게 왕위가 돌아갔다. 같은 날 캐나다 추밀원에 의해 캐나다 여왕으로 선포되었다.
1951년에 조지 6세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엘리자베스는 왕실 행사를 자주 행했고, 1952년 2월 6일 엘리자베스가 케냐에 도착했을 때 조지 6세가 폐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엘리자베스에게 부왕의 부고 소식을 전한 사람은 남편인 필립 공이었다. 조지 6세의 사망은 자동으로 그의 맏딸이자 1순위 왕위계승권자인 엘리자베스에게 왕위가 돌아감을 의미했으며, 맨 처음 엘리자베스는 캐나다 추밀원에 의해 캐나다 여왕으로 선포되었다. 그의 영국 여왕으로서의 선포는 다음 날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이루어졌다.
1953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 거행]
조모 메리 대왕대비의 사망 후, 그의 소망대로 대관식은 연기되지 않고 TV를 통해 전 세계 2,500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웅장하게 거행되어 여왕으로 정식 즉위했다.
1953년 3월 24일에 조모 메리 대왕대비가 폐암으로 사망하였으나, 그의 소망은 손녀의 대관식이 뒤로 미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은 1953년 6월 2일 TV를 통해 전 세계에서 2,500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웅장하게 거행되어 여왕으로 정식 즉위하게 되었다. 당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대전쟁 후 위축되어가던 영국의 대외적 위상 회복과 국내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화려하게 진행할 것을 지시하였다고 한다.
[영국 연방 순회로 위상 강화]
독립하는 옛 식민지들을 접어두고 영국 연방만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6개월간 영국 연방을 순회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영국의 급속한 위상 추락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영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승전국이었음에도 위상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1947년 조지 6세의 치세에 인도를 상실한 여파는 스리랑카, 버마, 말라야, 이집트, 로디지아의 독립으로 줄줄이 이어졌다. 심지어 영국 연방의 자치령들도 모국인 영국과는 큰 틀만 유지하고 독립된 정치 구조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엘리자베스 2세는 이미 독립한 옛 식민지들은 접어두고라도 영국 연방만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1953년 11월부터 6개월간 영국 연방을 순회할 계획을 세웠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순방은 영국 군주로서는 처음 갖는 행사로 그들과의 유대를 맺게 해주었다. 또 영국 군주로서는 50년 만에 인도를 방문했으며 이후 남아프리카와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을 꾸준히 순방하였다. 그의 적극적인 행동은 성과를 거두어 1977년 여왕 즉위 25주년에는 영국 연방의 35개국 지도자들이 축하 연회에 참석하는 결실을 보았다. 한마디로 급속하게 추락하던 영국의 위상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1965
[총리 지명권 자발적 포기]
입헌군주제 원칙을 존중하여, 논란에 휩싸이자 의회에서 불신임된 집권 세력을 대신해 새 총리를 지명할 수 있는 전통적인 권한을 스스로 포기했다.
영국은 명예 혁명 이후로 국왕이 내정에 간섭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군주에게는 암묵적으로 지속돼 온 국왕의 정치적 권한이 있었다. 집권 세력이 의회에서 불신임됐을 때 새 총리를 지명할 수 있는 권한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두 차례 총리를 지명한 적이 있었지만 논란에 휩싸이자 1965년 이 권한을 스스로 포기했다.
1981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세기의 결혼]
결혼 전 염문이 많았던 웨일스 공 찰스가 정숙한 다이애나 스펜서와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면서, 한때 실추되었던 왕실의 권위가 다시 회복되는 듯했다.
결혼 전부터 염문을 많이 뿌리고 다니던 웨일스 공 찰스는 1981년 7월, 정숙하고 가문 좋은 스펜서 가문의 딸이며 유치원 보모로 일하던 다이애나와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으로 왕실의 권위는 다시 회복되는 듯하였다. 둘 사이에서 윌리엄 왕자와 헨리 왕자가 연이어 탄생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절정에 다다랐다.
1993
[왕실 면세 특권 자발적 포기]
윈저 성 대형화재 보수비 문제로 영국 사회에 논란이 일자, 엘리자베스 2세는 왕실의 면세 특권을 스스로 포기하며 국민의 비판에 응답했다.
1992년 11월 20일, 윈저 성의 대형화재에 따른 천문학적 보수비를 정부에서 지급하는 문제와 관련해 영국 사회에서 논란이 일자 엘리자베스 2세는 1993년 왕실의 면세 특권을 스스로 포기했다.
1996
[왕실 스캔들로 권위 실추]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 공주와 이혼하고, 같은 해 둘째 왕자인 앤드루 공작도 이혼하면서 왕실의 권위에 심각한 타격이 가해졌으며 국민들의 실망감이 커졌다.
결혼 전부터 사귀던 카밀라 파커 볼스와의 관계를 잊지 못하던 찰스는 결혼 1년쯤 뒤부터 다이애나와 불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찰스는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관해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거기에 대해 토론하기를 좋아하는 반면, 다이애나는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무도희나 파티 등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취미나 취향은 정반대였다. 반면에 카밀라 파커 볼스는 찰스와 같이 여러 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두루 갖추고 있어 두 사람은 서로 어떤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1986년부터 심심찮게 웨일스 공 부처의 불편한 관계가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더니 결국 1996년 이혼을 하면서 국민의 실망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거기에 같은 해 둘째 왕자인 요크 공작 앤드루도 사라 퍼거슨과 이혼을 하면서 충격을 더했다.
1997
[다이애나 비 사망, 왕실에 치명타]
파리에서 파파라치를 따돌리다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국민들의 원망이 찰스 왕세자에게 돌려지면서 왕실 권위에 치명적인 타격이 가해졌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사건은 1997년 8월 31일 다이애나가 프랑스 파리에서 연인 도디 알파예드와 함께 파파라치를 따돌리려는 와중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국민의 원망이 찰스에게로 돌려지면서 왕실 권위에 치명적인 타격이 가해졌다. 1992년 다이애나는 자신의 결혼 생활과 왕실의 뒷이야기를 다룬 책을 통해 삶의 어려움을 밝혔고, 이는 대중매체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그녀에 대한 동정과 왕실 및 찰스에 대한 안 좋은 시각이 커졌다.
1999
[대한민국 국빈 방문]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하회마을, 성공회 서울 주교좌 대성당, 이화여자대학교를 다녀가며 양국 간의 교류에 기여했다.
1999년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해 하회마을과 성공회 서울 주교좌 대성당, 이화여자대학교를 다녀갔다.
2007
[영국 왕실 유튜브 채널 '로열채널' 개설]
국민과의 소통을 확대하기 위해 유튜브에 전용 동영상 사이트인 '로열채널'을 개설하여 영국 왕실의 일상과 성탄 축하 메시지 등을 게시하며 대중에게 다가갔다.
2007년 12월 24일, 엘리자베스 2세는 유튜브에 전용 동영상 사이트를 개설하였다. 로열채널이라는 이름의 이 사이트(www.youtube.com/theroyalchannel)에서는 영국 왕실의 일상에 대한 옛 뉴스와 각종 동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성탄절에는 왕의 성탄축하 메시지도 게시된다. 이 사이트는 정기적으로 새로운 소식을 갱신해 영국 왕실에 대한 누리꾼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2011
[아일랜드 공식 방문 및 유감 표명]
영국 군주로서는 100년 만에 아일랜드를 공식 방문하여 양국의 아픈 역사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며 관계 개선에 힘썼다.
2011년 5월에는 영국 군주로서는 할아버지인 조지 5세 이후로 100년 만에 아일랜드를 공식 방문하여 양국의 아픈 역사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2012
[즉위 60주년 '다이아몬드 주빌리' 맞이]
재위 60주년을 맞이하며 영국 역사상 빅토리아 여왕에 이어 두 번째로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맞이한 군주가 되었다.
2012년 2월 6일에 재위 60주년을 맞은 엘리자베스 2세는 64년 동안 재위했던 빅토리아 여왕에 이어 영국 역사상 두 번째로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맞이하는 군주가 되었다. (원문은 6월로 표기되었으나, 즉위일 기준 2월 6일이 정확한 60주년이다.)
2015
[영국 역사상 최장수 통치자 기록 달성]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기간을 넘어서 영국 역사상 최장수 통치자로 기록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015년 9월 9일 오후 5시 30분을 기점으로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기간을 넘어서 영국의 최장수 통치자로 기록되었다.
2022
[즉위 70주년 '플래티넘 주빌리' 맞이]
사상 최초로 플래티넘 주빌리(즉위 70주년)를 맞이함으로써, 일본 쇼와 천황의 기록을 넘어섰다.
2022년 2월 6일에는 사상 최초로 플래티넘 주빌리(즉위 70주년)를 맞이함으로써, 일본의 124대 쇼와 천황의 기록을 깼다.
[밸모럴 성에서 서거]
스코틀랜드 밸모럴 성에서 향년 97세(만 96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그녀의 서거로 70년간의 영국 여왕 통치가 막을 내렸다.
2022년 9월 8일 버킹엄 궁전은 엘리자베스 2세가 밸모럴성에서 의료진의 감독하에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고, 같은 날 스코틀랜드 밸모럴 성에서 향년 97세(만 9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