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서
희극인, 영화배우, 코미디언, 방송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9- 18:39:42
대한민국 코미디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대부로 불리며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1926년 평양에서 태어나 1945년 아코디언 연주자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1956년 영화계에 데뷔한 이후, 1961년 희극으로 전향하며 배삼룡과 전설적인 콤비를 이뤘다. 특히 영화 '오부자'의 '막둥이' 역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2013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며 그의 공로를 인정받았고, 2016년 별세하기 전까지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본 문서는 위키백과 구봉서 문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편집되었으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배포됩니다.
1926
1926년 11월 5일, 평안남도 평양부에서 의료상을 하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1929
돌이 지나 3세 때 양친을 따라 평안남도 대동군에 이주하였다가 다시 경성부로 상경했다. 부유한 가정 환경 덕분에 여러 악기를 사서 다룰 수 있었고, 이런 인연으로 김용환 악극단의 단원이 됐다.
1945
대동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45년 태평양가극단에서 아코디언 연주자라는 악사 생활을 시작으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으며, 예명은 사용하지 않았다.
1947
1947년 일본 동양음악전문학교를 수료했다.
1956
1956년 《애정파도》로 영화에 데뷔하기 전까지 18년 동안 악극단 생활을 했다.
1961
[희극 데뷔 및 '막둥이' 별명 획득]
희극에 정식 데뷔하여 배삼룡과 콤비를 이루어 활동하며 한국 코미디 전성기를 이끌었다. 출세작 <오부자>에서 '막둥이' 애칭을 얻었다.
1961년 희극에 데뷔했고, 출세작 《오부자》에서 '막둥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1963
1963년 제1회 청룡영화상 특별상(집단연기)을 수상했다.
1975
1975년부터 1991년까지 농심 전속모델(농심 라면, 된장라면, 윙거초코, 꿀꽈배기, 바나나킥, 짜파게티, 새우 짜파게티, 신라면, 맛고기면, 포테토칩, 너구리, 사발면, 야짜, 안성탕면, 큰사발 외 다수)로 활동했다.
1987
1987년 문화포장을 수훈했다.
1992
1992년 옥관문화훈장(4등급)을 수훈했다.
1997
저서 <코미디 위의 인생>을 석필 刊으로 1997년 4월 1일에 출간했다.
2000
2000년 MBC 코미디언부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06
2006년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상(연기)을 수상했다.
2013
2013년 은관문화훈장(2등급)을 수훈했다.
2016
사망하기 약 보름 전인 8월 10일경 폐렴 증세가 나타나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했으며, 8월 말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2016년 8월 27일 새벽 1시경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노환에 따른 폐렴으로 고인이 되었다(향년 89세). 구봉서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으며, 그의 장례기간 동안 그의 빈소에는 많은 조문객들하고 후배 희극인들 및 개그맨들이 빈소를 찾았다.
8월 29일 그의 발인식이 진행될 때 송해를 포함한 많은 후배 희극인 및 개그맨들이 참석하여 눈물을 감추며 구봉서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그의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의 모란공원묘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