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홋스퍼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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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홋스퍼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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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클럽,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프로 스포츠 구단 축구 구단
1882년 북런던의 학생들에 의해 탄생한 토트넘 홋스퍼는 영국 축구 역사상 유일하게 비리그 팀으로 FA컵을 들어 올린 기적의 클럽입니다. 1961년 20세기 최초의 더블 달성을 비롯해 유럽대항전에서도 수많은 '영국 최초'의 기록을 썼으며, 특유의 공격적이고 매력적인 축구 철학을 굳건히 지켜왔습니다. 최근에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주장 손흥민이 구단의 핵심이자 비유럽인 최초의 주장으로 맹활약하며, 클럽의 새로운 역사를 눈부시게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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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882

[소년들의 꿈, 홋스퍼 창단]

런던 북부의 크리켓 클럽 소속 학생들이 겨울에도 운동을 이어가기 위해 축구팀을 결성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용맹한 인물 '해리 홋스퍼'의 이름을 따서 클럽명을 지었습니다. 이것이 훗날 잉글랜드 무대를 호령할 위대한 클럽의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당시 세인트 존스 장로교회의 성경 교사였던 존 립셔가 소년들을 도와 클럽의 첫 번째 회장 겸 구단주가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파란색과 흰색이 섞인 유니폼을 입었으며, 지역 공터에서 친선 경기를 치르며 점진적으로 실력을 키워나갔습니다.

1884

[토트넘 홋스퍼로 개명]

지역 내 다른 구단과 이름이 혼동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구단의 정식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우리가 아는 완벽한 클럽 이름이 탄생했습니다. 정식 명칭 확립과 함께 구단의 정체성도 한층 뚜렷해졌습니다.
새롭게 채택된 이름은 '토트넘 홋스퍼 풋볼 클럽(Tottenham Hotspur Football Club)'입니다. 이후 북런던 지역을 대표하는 핵심 구단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으며, 팬들 사이에서는 '스퍼스(Spurs)'라는 애칭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1899

[화이트 하트 레인 이전]

구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더 많은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홈구장으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새 경기장 개장 기념 친선 경기에서 시원한 대승을 거두며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이곳은 무려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스퍼스의 굳건한 요새로 자리 잡았습니다.
노츠 카운티를 상대로 치러진 개장 첫 경기에서 4-1의 대승을 거두었으며, 약 5,000명의 관중이 모여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이 경기장은 이후 수차례 증축을 거치며 잉글랜드 축구의 성지 중 하나인 '화이트 하트 레인'으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1901

[기적의 FA컵 제패]

1부 리그 소속이 아닌 비리그(Non-League) 팀 신분으로 잉글랜드 FA컵 우승을 차지하는 대이변을 연출했습니다. 이는 풋볼 리그 창설 이후 유일무이한 대기록으로 축구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 우승을 계기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결승전에서 셰필드 유나이티드와 무승부를 거둔 뒤, 재경기에서 3-1 역전승을 거두며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우승 트로피에 구단의 상징인 다채로운 리본을 묶는 전통이 이때 토트넘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출처: 토트넘 역사 보관소]

1908

[풋볼 리그 정식 입성]

프로 축구의 최상위 체계인 풋볼 리그에 정식으로 가입하며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열었습니다. 데뷔 첫 시즌부터 폭발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곧바로 1부 리그 승격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본격적인 명문 구단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순간입니다.
풋볼 리그 2부(Second Division)에 선출된 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첫 시즌 만에 2위를 기록하며 1부 리그(First Division)로 직행했습니다. 당시 지역 라이벌 구단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탄탄한 실력을 증명하며 관중 동원력도 크게 상승했습니다.

1921

[수탉 엠블럼과 두 번째 FA컵]

치열한 결승전 끝에 구단 역사상 두 번째 FA컵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이 결승전부터 유니폼 가슴에 구단을 상징하는 새로운 문양을 달고 뛰어 의미를 더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 침체되었던 팬들의 마음에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울버햄튼 원더러스를 상대로 1-0 신승을 거두었으며, 지미 디모크가 결승골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때 결승전을 위해 유니폼에 처음 새겨 넣은 '싸움닭(Cockerel)' 문양은 훗날 구단의 영원한 상징이자 공식 엠블럼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1951

[역사적인 첫 1부 리그 우승]

아서 로우 감독의 혁신적인 전술을 바탕으로 창단 이래 최초의 1부 리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패스를 주고 공간으로 뛰어드는 매력적인 전술은 잉글랜드 축구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2부 리그에서 승격한 직후 곧바로 최상위 리그를 제패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구사했던 이른바 '푸시 앤 런(Push and Run)' 전술은 현대 축구의 패스 앤 무브 개념을 앞서 구현한 것으로 극찬을 받았습니다. 빌 니콜슨, 알프 램지 등 훗날 감독으로서 잉글랜드 축구사를 빛낼 전설적인 선수들이 이 우승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습니다.

1961

[20세기 최초의 더블 달성]

빌 니콜슨 감독의 지휘 아래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20세기 최초로 정규 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우승하는 '더블(Double)'을 달성했습니다. 압도적인 공격력과 화려한 플레이로 한 시즌을 완벽하게 지배했습니다. 이 시즌의 팀은 구단 역대 최고의 황금 세대로 평가받습니다.
시즌 개막 후 11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우며 일찌감치 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고, FA컵 결승에서는 레스터 시티를 2-0으로 제압했습니다. 대니 블란치플라워 주장의 "경기는 승리하는 것만이 아니라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다(The game is about glory)"라는 명언이 이 시기의 철학을 대변합니다.

1962

[FA컵 타이틀 방어 성공]

전년도 더블의 기세를 이어가며 2년 연속 FA컵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리그에서도 우승 경쟁을 펼치고 유럽 대항전에서도 4강에 오르는 등 막강한 전력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황금기의 전력이 단기적인 돌풍이 아님을 확실히 증명했습니다.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번리를 3-1로 완파하며 트로피를 수성했습니다. 같은 시즌 참가한 유러피언컵(현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비록 4강에서 당대 최강 벤피카에게 패했지만, 훌륭한 경기력으로 유럽 무대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1963

[영국 최초 유럽대항전 우승]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결승에서 대승을 거두며 영국 축구 클럽 역사상 최초로 유럽 대항전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특유의 공격 축구가 유럽 최정상 무대에서도 완벽히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토트넘의 이름이 전 유럽에 위대한 구단으로 각인된 역사적인 밤입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열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결승전에서 지미 그리브스의 멀티골을 앞세워 5-1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승리는 잉글랜드 클럽의 유럽 무대 성공 시대를 여는 중요한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1967

[다섯 번째 FA컵 우승]

런던의 라이벌 구단과의 치열한 결승전에서 승리하며 통산 5번째 FA컵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1960년대에만 세 번의 FA컵을 들어 올리며 컵대회에 유독 강한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빌 니콜슨 체제의 성공 시대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결승전에서 첼시를 만나 2-1로 승리하며 우승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 경기는 FA컵 결승전 역사상 최초의 '런던 더비'였습니다. 지미 그리브스는 이 시즌에도 탁월한 득점 감각을 뽐내며 팀 공격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71

[구단 최초의 리그컵 우승]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잉글랜드 리그컵(League Cup) 결승에 올라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다시 한번 트로피 진열장을 풍성하게 채우며 명문 구단의 자존심을 세웠습니다. 또한 이 승리를 통해 다음 시즌 유럽 대항전 진출권까지 확보했습니다.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스톤 빌라와의 결승전에서 마틴 치버스의 연속 골에 힘입어 2-0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대회 우승으로 인해 신설된 유럽 대항전인 UEFA컵 출전 자격을 얻게 되며, 훗날 새로운 영광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2

[초대 UEFA컵 우승]

새롭게 창설된 유럽 클럽 대항전인 UEFA컵에서 잉글랜드 클럽 간의 치열한 결승전을 뚫고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영국 클럽 최초의 유럽 대항전 우승에 이어, 또 다른 유럽 대회의 초대 우승자라는 빛나는 기록을 추가했습니다. 구단의 유럽 무대 경쟁력을 다시 한번 입증한 쾌거입니다.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진 울버햄튼 원더러스와의 결승전에서 1차전 원정 2-1 승리, 2차전 홈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합계 3-2로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주장 마틴 피터스가 팀을 이끌었고, 골키퍼 팻 제닝스의 눈부신 선방이 결승전 내내 빛을 발했습니다.

1973

[두 번째 리그컵 우승]

2년 만에 다시 리그컵 결승에 올라 우승을 차지하며 컵대회의 강자임을 재확인했습니다. 1970년대 초반에만 세 개의 메이저 트로피를 수집하며 꾸준한 성공 가도를 달렸습니다. 빌 니콜슨 감독이 구단에 안겨준 마지막 메이저 트로피이기도 합니다.
결승전에서 노리치 시티를 상대로 랄프 코츠의 천금 같은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960년대 초반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빌 니콜슨 감독은 이듬해인 1974년 건강 문제로 감독직에서 물러나며 전설적인 커리어를 마감했습니다.

1981

[극적인 FA컵 우승]

창설 100주년을 맞이한 FA컵 결승전 재경기에서 극적인 명승부 끝에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승리는 1970년대 후반 2부 리그 강등이라는 잠시 동안의 암흑기를 완전히 극복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새로운 전성기의 서막을 여는 감격스러운 트로피였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와의 재경기에서 아르헨티나 출신 미드필더 리키 비야가 수비수 4명을 제치고 넣은 환상적인 솔로 결승골로 3-2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골은 웸블리 스타디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득점 중 하나로 꼽히며 지금도 팬들에게 널리 회자됩니다.

1982

[창단 100주년과 FA컵 2연패]

구단 창단 100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해에 다시 한번 FA컵 결승에 올라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에이스 글렌 호들의 눈부신 활약을 앞세워 최고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구단의 역사적인 기념일을 우승 트로피로 장식하며 팬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안겼습니다.
결승전 재경기에서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를 상대로 글렌 호들이 페널티킥 결승골을 성공시켜 1-0으로 승리했습니다. 이 시즌 토트넘은 리그와 컵대회를 아울러 화려한 공격 축구를 구사하며 1980년대 잉글랜드 최고의 매력적인 팀으로 평가받았습니다.

1984

[두 번째 UEFA컵 우승]

유럽 대항전 결승 무대에서 극적인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머쥐며 다시 한번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구단 역사상 두 번째이자, 현재까지 가장 최근에 달성한 영광스러운 유로파리그 우승 기록입니다. 이로써 유럽 전역에 클럽의 굳건한 저력을 다시 각인시켰습니다.
안데를레흐트와의 결승전에서 1, 2차전 합계 2-2 무승부를 기록한 뒤 승부차기에서 백업 골키퍼 토니 파크스의 눈부신 선방에 힘입어 4-3으로 승리했습니다. 당시 UEFA컵은 현재의 UEFA 유로파리그(Europa League)의 전신으로, 이 우승은 구단 역사상 가장 극적인 유럽 대항전 승리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991

[최초의 FA컵 8회 우승]

잉글랜드 축구 클럽 최초로 FA컵 8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렸습니다. 폴 개스코인, 게리 리네커 등 당대 최고의 스타 선수들이 활약하며 만들어낸 값진 결과물입니다. 컵대회 최강자의 위용을 다시 한번 과시하며 구단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결승전에서 상대의 자책골을 유도하며 연장 접전 끝에 2-1로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준결승전에서 라이벌 아스널을 상대로 폴 개스코인이 터뜨린 환상적인 30야드 장거리 프리킥 득점은 토트넘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힙니다.

1992

[프리미어리그 원년 멤버]

잉글랜드 축구 1부 리그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인 프리미어리그(Premier League)로 출범하며 원년 멤버로 합류했습니다. 영국 축구 역사상 가장 거대한 변화의 시발점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후 프리미어리그에서 단 한 번도 강등되지 않은 소수의 명문 구단 중 하나로 남게 됩니다.
상업성과 중계권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1부 리그 구단들이 독립하여 설립한 프리미어리그의 창립을 주도적으로 이끈 구단 중 하나입니다. 출범 이후 꾸준히 상위권 진입을 노렸으나, 1990년대 중반 내내 다소 불안정한 성적을 거두며 과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1999

[세 번째 리그컵 우승]

경기 종료 직전 터진 극적인 헤더 결승골로 리그컵 통산 3번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1990년대 리그에서의 다소 아쉬운 성적을 컵대회 우승으로 만회하며 팬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이듬해 UEFA컵 진출권까지 극적으로 확보했습니다.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레스터 시티와의 결승전에서 알란 닐슨이 후반 45분 극적인 다이빙 헤더 골을 성공시키며 1-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당시 조지 그레이엄 감독의 지휘 아래 수비 지향적인 실리 축구를 바탕으로 결과를 챙겼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01

[ENIC 그룹의 구단 인수]

영국의 투자 회사인 ENIC 그룹이 구단의 지배 지분을 인수하며 경영권을 확보했습니다. 대니얼 레비가 새로운 회장으로 취임하며 클럽의 현대적인 재편이 시작되었습니다. 재정적인 안정과 인프라 확충을 바탕으로 구단의 체질이 완전히 뒤바뀌는 역사적인 전환점입니다.
ENIC 그룹은 이전 구단주였던 알란 슈가로부터 지분을 매입하며 경영권을 장악했습니다. 레비 회장 체제에서 토트넘은 엄격한 주급 체계와 철저한 재정 관리를 바탕으로 훈련장 건립과 신축 경기장 건설 등 장기적인 구단 인프라 발전에 집중하게 됩니다.

2008

[신축 웸블리에서의 우승]

런던 라이벌 첼시를 연장 혈투 끝에 꺾고 통산 4번째 리그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신축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 최초의 구단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뛰어난 조직력과 투지로 만들어낸 이 트로피는 21세기 구단의 중요한 성과로 남아 있습니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동점 페널티킥과 연장전 조나단 우드게이트의 얼굴에 맞고 들어간 행운의 헤더 결승골로 2-1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후안데 라모스 감독 부임 후 불과 몇 달 만에 거둔 우승이었으나, 이듬해 리그에서의 심각한 부진으로 라모스 감독은 곧 경질되었습니다.

2010

[꿈의 무대, 챔피언스리그]

치열한 4위 경쟁 끝에 강력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구단 역사상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습니다. 유러피언컵 시절 이후 수십 년 만에 유럽 축구 최정상 무대에 복귀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빅클럽으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해리 레드냅 감독의 지휘 아래 시즌 막판 맨체스터 시티와의 물러설 수 없는 단두대 매치에서 피터 크라우치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리그 4위를 확정 지었습니다. 이후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가레스 베일의 전설적인 활약을 바탕으로 8강까지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2015

[손흥민, 스퍼스 합류]

독일 레버쿠젠에서 활약하던 대한민국 국가대표 공격수 손흥민을 전격 영입했습니다. 당시 아시아 선수 역대 최고 이적료를 경신하며 구단의 높은 기대치를 증명했습니다.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설 중 한 명의 여정이 시작되는 운명적인 날입니다.
등번호 7번을 부여받은 손흥민은 약 2,200만 파운드(추정치)의 이적료로 5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적극적인 원츠로 이루어진 이 영입은 훗날 토트넘 역사상 최고의 영입 중 하나로 평가받게 됩니다.

[손흥민의 화려한 데뷔골]

새로운 에이스 손흥민이 홈에서 열린 유로파리그 경기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화려하게 비상했습니다. 이적 후 불과 몇 경기 만에 터진 데뷔골로 홈팬들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습니다.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아제르바이잔 클럽 카라바흐 FK와의 UEFA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1차전 홈경기에서 팀이 0-1로 지고 있던 전반 28분 동점골, 30분에 역전골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3-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특유의 빠른 침투와 양발을 활용한 마무리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경기였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첫 득점포]

런던 라이벌과의 홈경기에서 환상적인 돌파에 이은 날카로운 슈팅으로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을 장식했습니다. 이 골은 팽팽하던 승부를 가르는 짜릿한 결승골이 되었습니다. 잉글랜드 무대 적응을 완벽히 마쳤음을 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리그 6라운드 홈경기에서 후반 23분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는 시원한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어 1-0 승리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이 득점으로 영국 언론과 팬들의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니엘 레비 회장 사임]

2001년부터 구단의 재정과 운영을 총괄해 온 ENIC 그룹의 다니엘 레비 회장이 25년 만에 구단 회장직에서 전격 사임했다.

다니엘 레비의 통치 기간은 토트넘을 철저히 상업적이고 거대한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시기다. 10억 파운드짜리 신구장을 빚 없이 운영할 수 있는 수익 모델(NFL, 콘서트 개최 등)을 안착시켰으나, 이윤 극대화에 치중한 나머지 선수 영입 적기를 놓쳐 17년 무관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2025년 극적인 유로파리그 우승과 충격적인 리그 17위 추락, 포스테코글루 경질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론과 리더십 쇄신 요구가 빗발쳤고, 결국 그는 9월 4일 회장직을 내려놓았다. 후임으로 피터 차링턴(Peter Charrington)이 임시 비상임 회장으로 부임하며 토트넘은 거대한 권력 구조의 개편기를 맞았다.


2016

[아시아 최초 이달의 선수]

손흥민이 한 달간 리그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활약을 인정받아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아시아 국적 선수로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초로 달성한 위대한 기록입니다. 잉글랜드 무대를 넘어 전 세계에 자신의 가치를 널리 알렸습니다.
2016년 9월 한 달 동안 3경기에서 4골 1도움을 몰아치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9월 이달의 선수로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데뷔 첫 시즌의 부침을 극복하고 완벽하게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음을 상징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2017

[영국 무대 첫 해트트릭]

FA컵 8강전에서 맹활약하며 잉글랜드 진출 이후 자신의 첫 번째 해트트릭을 완성했습니다. 다양한 위치에서 위협적인 슈팅을 구사하며 무결점 공격수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팀의 대승을 이끌며 토트넘의 공격진을 완벽하게 주도했습니다.
밀월 FC와의 FA컵 8강 홈경기에서 홀로 3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6-0 대승을 견인했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득점력뿐만 아니라 이타적인 플레이까지 겸비했음을 증명했으며, 영국 현지 매체로부터 최고 평점을 받았습니다.

[아시아 최다 득점자 등극]

프리미어리그 통산 20호 골을 터뜨리며 박지성이 보유하고 있던 아시아 선수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잉글랜드 무대 진출 세 시즌 만에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아시아 축구의 새 시대를 알리는 상징적인 득점이었습니다.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리그 11라운드 홈경기에서 후반 19분 절묘한 왼발 감아차기 슈팅으로 결승골을 기록하여 1-0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종전 기록이었던 박지성의 19골을 단 72경기 만에 뛰어넘으며 명실상부한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공격수로 우뚝 섰습니다.

[굿바이, 화이트 하트 레인]

118년 동안 구단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홈구장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습니다. 구단 역사상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완벽한 홈 무패 시즌을 달성하며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역사적인 폐장식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빅토르 완야마와 해리 케인의 득점으로 2-1 승리를 거두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습니다. 해당 2016-17 시즌, 포체티노 감독 체제의 토트넘은 구단 역대 최고 승점(86점)을 기록하며 리그 준우승이라는 눈부신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2018

[에이스의 상징, 장기 재계약]

팀의 대체 불가한 핵심 전력으로 인정받은 손흥민이 구단과 장기 재계약을 체결하며 전성기를 토트넘에 헌신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는 구단이 그를 팀의 굳건한 미래로 낙점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팬들의 압도적인 환호를 받으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습니다.
2023년까지 5년간 이어지는 대형 계약으로, 팀 내 최고 수준의 주급을 보장받으며 에이스로서의 대우를 확고히 했습니다. 당시 타 구단들의 이적설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토트넘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이며 잔류를 선택해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2019

[새 경기장의 첫 득점자]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입된 첨단 신축 구장인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의 개장 첫 경기에서 구단 역사상 첫 골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역사적인 순간에 손흥민의 이름이 가장 높은 곳에 새겨졌습니다. 구단의 새로운 100년을 여는 첫 축포였습니다.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리그 경기 후반 10분, 페널티 박스 외곽에서 수비수를 제치고 왼발 슈팅으로 새 경기장 역사상 1호 골을 기록하며 2-0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 골은 향후 토트넘의 역사책 가장 첫 페이지를 장식할 영광스러운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맨시티 격침시킨 기적의 8강]

챔피언스리그 8강 원정 경기에서 극적인 멀티골을 폭발시키며 강력한 우승 후보를 무너뜨렸습니다. 해리 케인이 부상으로 빠진 위기 상황에서 에이스의 품격을 완벽하게 증명했습니다. 구단 역사상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이끈 구세주가 되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와의 8강 2차전 원정 경기에서 전반 7분과 10분에 연달아 득점하며, 1차전 결승골에 이어 시리즈의 지배자로 군림했습니다. 이 경기는 VAR 판독이 승부를 가른 역대급 명승부로 기록되었으며, 손흥민은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팀을 4강에 올려놓는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최초 챔피언스리그 결승]

기적 같은 드라마를 연이어 쓰며 창단 이래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무대를 밟았습니다. 비록 결승전에서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구단의 위상이 유럽 최정상급으로 올라섰음을 증명한 기념비적인 시즌이었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린 리버풀과의 결승전에서 아쉬운 0-2 패배를 기록했습니다. 손흥민은 아시아 선수로는 박지성 이후 두 번째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무대에 선발 출전하며 고군분투했으나 트로피를 눈앞에서 놓치며 눈물을 삼켰습니다.

[아시아 최초 유럽 무대 100골]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유럽 무대 개인 통산 100번째 득점을 달성했습니다. 아시아 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으로,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의 기록을 뛰어넘는 위업이었습니다. 손흥민이 세계적인 공격수 반열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세르비아 원정으로 치러진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후반 12분과 16분에 연속골을 기록하여 팀의 4-0 완승을 이끌었습니다. 이전 경기에서 상대 선수의 심각한 부상에 연루되어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으나, 득점 후 정중한 사과 세리머니를 선보여 전 세계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세계를 놀라게 한 70m 질주]

홈경기에서 자기 진영 페널티 박스 부근부터 무려 70m 이상을 단독으로 질주해 만들어낸 환상적인 원더골을 터뜨렸습니다. 수많은 수비수를 압도적인 스피드로 추돌하며 전 세계 축구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골로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멋진 골에 주어지는 FIFA 푸스카스상을 거머쥐었습니다.
번리와의 리그 경기 전반 32분, 수비수 6명을 따돌리며 폭풍 같은 질주 끝에 깔끔한 마무리로 득점에 성공했습니다. 이 득점은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이 선정한 '시즌 올해의 골'은 물론, 2020년 12월 FIFA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푸스카스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2020

[프리미어리그 통산 50호 골]

원정 경기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프리미어리그 개인 통산 50득점이라는 금자탑을 세웠습니다. 경기 막판 극적인 버저비터 결승골까지 장식하며 팀의 승리를 책임졌습니다. 오른팔 골절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안고도 끝까지 뛰어 만들어낸 투혼의 기록이었습니다.
아스톤 빌라와의 리그 원정 경기에서 전반 추가시간 득점에 이어, 후반 추가시간 극적인 3-2 역전 결승골을 성공시켰습니다. 경기 시작 직후 발생한 충돌로 팔이 부러진 상태였음에도 풀타임을 소화하며 맹활약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팬들의 큰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한 경기 4골의 대폭발]

잉글랜드 무대 진출 이후 최초로 한 경기에서 4골을 몰아치는 괴력을 발휘했습니다. 특히 네 골 모두 단짝 해리 케인의 도움을 받아 완성되며 두 선수의 환상적인 호흡을 만천하에 과시했습니다. 손흥민의 압도적인 결정력이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준 경기입니다.
사우샘프턴과의 리그 2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전반 45분 동점골을 시작으로 후반 2분, 19분, 28분에 연달아 골망을 흔들며 5-2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한 선수가 4골을 넣고 다른 한 선수가 그 4골을 모두 어시스트한 것은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었습니다.

2021

[토트넘 통산 100호 골 달성]

특유의 침투와 깔끔한 마무리로 구단 소속 통산 100번째 득점이라는 대위업을 달성했습니다. 구단 역사상 18번째이자, 영국과 아일랜드 국적을 제외하면 단 세 명만이 보유한 희귀한 기록입니다. 명실상부한 토트넘의 살아있는 전설로 등극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17라운드 홈경기에서 전반 43분 해리 케인의 크로스를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100호 골을 기록했습니다. 2015년 입단 이후 5년 4개월(253경기) 만에 달성한 기록으로, 기복 없이 꾸준하게 득점포를 가동해 온 성실함의 결실이었습니다.

2022

[최다 합작골 신기록 작성]

해리 케인과의 완벽한 연계 플레이로 득점을 만들어내며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다 합작골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첼시의 전설적인 듀오가 보유했던 기록을 뛰어넘으며 리그 역사상 최고의 콤비로 공인받았습니다. 텔레파시가 통하는 듯한 두 선수의 호흡은 타 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리즈 유나이티드 원정 경기에서 해리 케인의 정밀한 롱패스를 손흥민이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두 선수의 37번째 합작골을 기록했습니다. 종전 디디에 드록바와 프랭크 램파드가 보유했던 36골 기록을 경신했으며, 이 기록은 이후에도 계속 갱신되며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게 됩니다.

[아시아 최초 PL 득점왕]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리그 최고 득점자에게 주어지는 영예의 '골든 부트'를 차지했습니다. 아시아 국적 선수로는 잉글랜드 1부 리그 역사상 최초로 달성한 기적 같은 대기록입니다. 페널티킥 득점 없이 순수 필드골로만 이뤄낸 성과라 그 가치가 더욱 빛났습니다.
노리치 시티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전에 연달아 두 골을 넣으며 모하메드 살라와 함께 공동 득점왕(23골)에 올랐습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축구의 위상을 전 세계에 드높인 역사적인 순간으로, 영국 매체는 물론 전 세계 스포츠 주요 언론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13분 만에 완성한 해트트릭]

교체 투입된 후 불과 13분 만에 세 골을 몰아치며 시즌 초반의 득점 가뭄을 완벽하게 씻어냈습니다. 양발을 가리지 않는 중거리 슛과 정교한 마무리로 완벽한 해트트릭을 장식했습니다. 위기 속에서도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벤치 출발의 불리함 속에서 증명해 냈습니다.
레스터 시티와의 리그 8라운드 홈경기에서 후반 14분 교체 투입된 뒤, 후반 28분, 39분, 41분에 연달아 환상적인 득점을 터뜨렸습니다. 구단 역사상 교체 선수가 해트트릭을 기록한 것은 최초의 사례로, 손흥민의 폭발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명장면으로 남았습니다.

2023

[프리미어리그 통산 100호 골]

환상적인 감아차기 슈팅으로 프리미어리그 개인 통산 100번째 득점이라는 대업을 달성했습니다. 아시아 출신 선수로는 리그 출범 이래 최초의 기록이며, 프리미어리그 전체 역사에서도 소수의 전설들만이 밟은 고지입니다. 자신의 시그니처 플레이인 이른바 '손흥민 존'에서 터진 그림 같은 득점이었습니다.
브라이튼과의 리그 홈경기 전반 10분, 페널티 박스 왼쪽 외곽에서 전매특허인 오른발 감아차기 슛으로 100번째 득점을 완성했습니다. 득점 직후 돌아가신 외조부를 기리는 하늘을 향한 세리머니를 펼치며 팬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비유럽인 최초 구단 주장 선임]

오랜 파트너였던 해리 케인이 이적한 후, 구단의 정식 주장(Captain)으로 선임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140년이 넘는 구단 역사상 비유럽 국적 선수가 주장을 맡은 것은 이번이 최초입니다. 새로운 감독 체제에서 선수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진정한 리더로 우뚝 섰습니다.
엔지 포스테코글루 신임 감독은 손흥민의 헌신과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며 그를 새 시즌 주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부주장으로는 크리스티안 로메로와 제임스 매디슨이 선임되었습니다. 부임 직후부터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친화력으로 팀을 완벽하게 하나로 묶으며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캡틴의 자격을 증명한 해트트릭]

주장 완장을 차고 최전방 원톱으로 출전한 경기에서 매서운 결정력을 뽐내며 해트트릭을 작렬시켰습니다. 새로운 전술 아래 득점 기계로서의 본능이 여전히 날카롭게 살아있음을 증명했습니다. 팀의 대승을 이끌며 진정한 캡틴의 품격을 보여주었습니다.
번리와의 리그 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전반 16분 칩슛 동점골, 후반 18분 오른발 슛, 후반 21분 왼발 슛으로 3골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5-2 대승을 견인했습니다. 이 활약으로 프리미어리그 9월 이달의 선수상을 다시 한번 수상하며 통산 4회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구단 역대 득점 탑 10 진입]

리그 경기에서 득점을 추가하며 구단 역대 통산 득점 순위 단독 7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구단의 수많은 레전드들을 차례로 넘어서며 클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습니다. 꾸준함과 충성심이 만들어낸 위대한 발자취입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16라운드 홈경기에서 1골 2도움을 맹활약하며 팀의 4-1 대승을 이끌었고, 토트넘 통산 154번째 골을 기록했습니다. 이로써 1960년대 구단 전설 클리프 존스를 제치고 구단 올타임 득점 랭킹 7위로 올라서며 살아있는 전설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2025

[17년의 한을 끊어낸 유로파리그 우승]

스페인 빌바오에서 열린 UEFA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1-0으로 제압하고 2008년 이후 17년 만의 메이저 트로피이자 41년 만의 유럽 대항전 우승을 차지했다.

후반 21분(66분) 교체 투입되어 그라운드를 누빈 손흥민은, 피 말리는 7분의 추가시간이 끝나는 종료 휘슬과 함께 제임스 매디슨의 어깨에 기대어 오열했다. 10년간 무관의 설움 속에서도 팀을 지킨 그는 구단 주장 자격으로 가장 먼저 유로파리그 트로피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토트넘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이 우승으로 토트넘은 리버풀과 함께 유로파리그 최다 우승(3회) 잉글랜드 클럽 동률을 이루었으며, 2025-26 챔피언스리그 본선 직행권 및 UEFA 슈퍼컵 진출권을 획득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 전격 경질]

유로파리그 우승 불과 보름 뒤, 구단 이사회는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심각한 부진(리그 17위 강등권 턱걸이)을 이유로 포스테코글루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이 경질 사건은 2020년대 현대 축구 비즈니스의 냉혹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포스테코글루 체제의 토트넘은 유로파리그 우승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위업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정규 리그(EPL)에서는 총 22패를 당하며 강등권보다 불과 한 계단 위인 17위로 추락하는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 1914-15 시즌, 1976-77 시즌 이후 구단 최악의 리그 성적표였다. 다니엘 레비 회장과 이사회는 6월 6일 공식 성명을 통해 "유로파리그 우승은 위대한 성과지만 감정에 치우쳐 결정을 내릴 수 없으며, 리그에서의 다중 경쟁력을 위해 전술적 접근의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발표하며 그를 해임했다.

[토마스 프랭크 감독 부임]

포스테코글루의 후임으로 브렌트포드의 감독 토마스 프랭크(Thomas Frank)가 3년 계약으로 부임했다. 구단은 1,000만 파운드의 위약금을 지불했다.

덴마크 출신의 프랭크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체계적인 압박과 실리적인 전술로 브렌트포드를 EPL 중견 구단으로 성장시킨 인물이었다. 이 선임의 이면에는 토트넘의 테크니컬 디렉터인 요한 랑게(Johan Lange)와의 깊은 덴마크 커넥션이 존재했다. 랑게는 2004년 프랭크를 B93 유스 코치로 발탁했던 인물로, 붕괴된 1군 스쿼드의 전술적 밸런스를 잡고 유소년 육성을 병행할 적임자로 그를 강력히 천거했다. 프랭크는 수석 코치인 저스틴 코크란, 크리스 해슬럼 등 브렌트포드의 핵심 사단을 대거 대동하며 북런던에 입성했다.


[레전드 손흥민의 작별과 MLS 이적]

10년간 토트넘에서 활약하며 127골 71도움(PL 기준)을 기록한 손흥민이 8월 초 방한 프리시즌을 끝으로 미국 MLS의 로스앤젤레스 FC(LAFC)로 2,650만 달러에 이적했다.

2025-26 시즌 개막을 앞둔 8월 1일, 토트넘은 서울에서 프리시즌 투어를 진행 중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손흥민은 정들었던 토트넘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공식화했다. 이튿날인 8월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친선전은 그의 고별 무대가 되었다. 후반 22분(67분) 그가 교체되어 나갈 때, 양 팀 선수들은 도열하여 가드 오브 아너(Guard of Honour)를 펼치며 전설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표했다. 8월 6일, 구단과 LAFC는 2,650만 달러의 이적료에 합의하며 이적이 최종 발표되었다. 손흥민의 이적은 단순한 공격수의 이탈이 아니라, 10년간 팀의 전술적 중심이자 글로벌 마케팅의 상징, 그리고 17년 무관을 끊어낸 정신적 지주가 사라짐을 의미했다. 현지 매체들은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야말로 토트넘이 그에게 줄 수 있었던 가장 완벽한 작별 선물"이라고 평가했다.


[UEFA 슈퍼컵 준우승과 로메로의 새 주장 임명]

이탈리아 우디네에서 열린 2025 UEFA 슈퍼컵에서 PSG와 2-2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3-4로 패배했다. 손흥민의 이적으로 크리스티안 로메로가 새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슈퍼컵 경기를 앞두고 토마스 프랭크 감독은 부주장이었던 크리스티안 로메로(Cristian Romero)를 공식 주장으로 임명하며 팀의 쇄신을 알렸다. 8월 13일 이탈리아 블루에너지 스타디움(스타디오 프리울리)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파리 생제르맹(PSG)과의 맞대결에서, 토트넘은 전반 39분 미키 판 더 펜의 선제골과 후반 3분 새 주장 로메로의 추가골로 2-0 완벽한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후반 막판 집중력 저하가 발목을 잡았다. 후반 40분 이강인에게 추격골을 헌납했고, 기세가 오른 PSG에게 후반 추가시간(90+4분) 곤살로 하무스의 극적인 헤더 동점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로드리고 벤탄쿠르 등이 킥을 성공시켰으나 결국 3-4로 석패하며 눈앞에서 창단 첫 슈퍼컵 트로피를 놓치고 말았다. 이 경기는 토마스 프랭크 체제의 가능성과 수비 조직력의 한계를 동시에 노출한 전초전이었다.


2026

[토마스 프랭크 경질과 이고르 투도르 선임]

국내 리그 및 컵대회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물어 토마스 프랭크 감독을 8개월 만에 경질하고, 2월 14일 이고르 투도르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FA컵 3라운드, 카라바오컵 4라운드 조기 탈락과 리그 16위 강등권 위협이라는 냉혹한 현실은 구단 수뇌부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2월 10일 뉴캐슬전 패배 바로 다음 날인 11일, 이사회는 프랭크 감독을 경질했다. 이는 포스테코글루 경질에 이은 구단의 극단적인 성적 지상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위기 극복을 위해 구단은 2월 14일, 유벤투스, 마르세유, 라치오 등을 지휘하며 강한 카리스마와 수비 조직력 재건 능력을 인정받은 크로아티아 출신의 이고르 투도르(Igor Tudor)를 긴급 소방수로 선임했다. 투도르는 쓰리백(3-back)을 기반으로 한 강도 높은 맨마킹 압박을 선호하는 감독으로, 붕괴된 수비 라인을 단기간에 복구하고 다가오는 챔피언스리그 16강 결선 토너먼트를 지휘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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