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삼국)
- 관구검 - 소속 국가
- 두기 (공량) - 소속 국가
- 두기 (백후) - 소속 국가
- 등애 - 소속 국가
- 만총 - 소속 국가
- 문빙 - 소속 국가
- 서서 - 소속 국가
- 양추 (조위) - 소속 국가
- 왕경 (조위) - 소속 국가
- 왕랑 - 활동 국가
- 장기 (조위) - 소속 국가
- 장특 - 소속 국가
- 장합 - 소속 국가
- 전예 - 소속 국가
- 정충 - 소속 국가
- 조비 - 건국 국가
- 조조 - 건국 기반
- 하후화 - 소속 국가
- 환계 - 소속 국가
- 곽회 - 소속 국가
- 당자 - 소속 국가
- 동소 - 소속 국가
- 문흠 - 소속 국가
- 서황 - 소속 국가
- 손례 - 소속 국가
- 유엽 (위) - 소속 국가
- 이풍 (조위) - 소속 국가
- 조인 - 소속 국가
- 조표 (조위) - 소속 국가
- 하후상 - 소속 국가
- 하후패 - 소속 국가
- 고평릉의 변 - 정권 교체 국가
- 맹달 - 귀순 국가
- 사마부 - 소속 국가
- 제갈량의 북벌 - 대립 국가
- 조홍 (삼국지) - 소속 국가
- 허저 - 소속 국가
- 삼국지 - 정통 국가
- 석포 - 소속 국가
- 가규 - 소속 국가
- 유선 (촉한) - 항복 국가
- 장료 - 소속 국가
- 조예 - 통치 국가
- 진랑 - 소속 국가
- 후한 - 후신 국가
- 사마소 - 소속 국가
- 조진 - 소속 국가
- 왕숙 - 소속 국가
- 제갈량 - 북벌 대상
- 유봉 - 맹달 귀순
- 가충 - 소속 국가
- 가후 - 소속 국가
- 공손공 - 종속 국가
- 사마의 - 소속 국가
- 사마주 - 이전 소속
- 삼국지연의 - 주요 세력
- 우금 - 소속 국가
- 읍참마속 - 대전 상대
- 종회 - 소속 국가
- 촉한 - 주요 라이벌
- 강유 - 적대 국가
- 조앙 (자수) - 추존 국가
- 관평 - 적대 국가
- 나헌 - 촉한 침략국
- 조식 (조위) - 소속 국가
- 진군 - 소속 국가
- 서성 (동오) - 적대 세력
- 공손강 - 추증 국가
- 두예 - 초기 소속
- 비의 - 적대 국가
- 장무 (촉한) - 경쟁 국가
- 사마염 - 멸망 국가
- 정봉 - 적대 세력
- 옥저 - 침략 국가
- 육손 - 대립 국가
- 공손연 - 적대 국가
- 전종 - 적대 국가
- 반장 (동오) - 대치 국가
- 사마사 - 소속 왕조
- 제갈첨 - 적국
- 진수 (서진) - 정통 기술 대상
- 손권 - 대립 국가
- 장흠 - 아들 전투
- 허정 (촉한) - 교류 인물 소속
- 방덕 - 소속 세력
- 손교 - 대립 국가
- 마대 (삼국지) - 적대 국가
- 유훈 (자대) - 위공 책명
연표
155
189
이때부터 조인, 하후돈, 하후연 등 조조의 핵심 일족들이 그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192
196
[헌제 옹립 및 둔전제]
조조는 명분 없는 싸움이 아닌,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는 '협천자 영제후'의 전략으로 후한 헌제를 허창으로 모셔 대의명분을 확보했습니다.
또한 '전농부 둔전제'를 시행해 전쟁 중 식량 문제를 해결하며 강대국으로 발돋움할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조조는 "천하를 통일하는 일은 강력한 군대와 충분한 식량에 달려 있다"며 농업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빈농에게 토지와 농기구, 종자까지 대여해 계획적으로 식량을 생산·저장했고, 이는 삼국시대 위나라가 최대 강국으로 발전하는 핵심 동력이 되었습니다.
200
이 승리로 조조는 북방을 통일하고 위나라 건국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207
210
[구현령 공포]
조조가 신분, 출신, 옛 원한에 관계없이 재능만 있으면 인재로 등용하는 '구현령(求賢令)'을 공포하며 수많은 기라성 같은 인재를 끌어모았습니다.
이는 조조의 뛰어난 리더십과 통찰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장료, 장합, 가후 등 투항한 장수들도 그의 '재능제일' 방침에 감복하여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213
215
216
219
이 사건은 오나라의 손권이 형주를 공격하면서 발생했고, 조조는 관우를 견제하기 위해 손권과의 연합을 택했습니다. 관우는 이 사건으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220
[위나라 건국]
조조 서거 9개월 후, 그의 아들 조비가 후한 헌제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아 마침내 '위나라'를 건국하고 낙양으로 천도하며 삼국시대의 막을 본격적으로 열었습니다.
이로써 400년 역사의 후한 왕조는 막을 내리고, 위나라는 삼국 중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조비는 중국 삼국 시대 중 규모·인구 면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낙양으로 천도하고, 기존 허를 허창(許昌)으로 고쳐 불렀습니다.
226
234
이 대결은 제갈량의 사망으로 종결되었고, 사마의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37
238
239
249
조상은 사마의를 정무에서 소외시키려 했으나, 사마의의 노회한 전술에 말려들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위나라의 실권은 완전히 사마씨에게 넘어갔습니다.
251
[사마의 사망 및 사마사 승계]
사마의를 타도하려는 왕릉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권력의 정점에 선 사마의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사마사가 권력을 승계하며 사마씨의 권력 기반이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254
255
257
[제갈탄의 난]
제갈탄이 오나라와 결탁하여 사마씨에 대항하는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으나, 이듬해 진압되며 사마씨에 반대하는 마지막 세력마저 일소되었습니다.
260
이는 사마씨의 권력이 황제조차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었음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263
264
265
[위나라 멸망 및 진 건국]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이 위나라 마지막 황제 조환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진(晉) 왕조'를 건국하며 45년간의 위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사마소가 진왕이 된 직후 사망했으나, 그의 뜻은 아들 사마염에게 이어져 마침내 천하가 진나라로 통일되는 초석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