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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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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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 정치인, 전략가, 발명가 + 카테고리

삼국시대 촉한의 재상이자 지략과 충의의 상징 제갈량! 유비를 도와 촉한 건국에 기여했으며 유비 사후에는 어린 후주를 보좌하며 내정과 군사를 총괄했습니다. 위나라를 상대로 수차례 북벌을 감행했으나 대업을 이루지 못하고 54세에 오장원에서 병사했습니다. 뛰어난 행정가이자 부대 운용의 달인으로 평가받으며 그의 출사표는 불멸의 명문으로 남아있습니다. 지략과 충의를 겸비한 군사 전략가이자 정치가로 중국 역사상 가장 추앙받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주요사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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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81

[삼국지의 별, 제갈량 탄생]

서주 낭야국 양도현에서 후일 촉한의 재상이자 불멸의 지략가로 기억될 제갈량이 태어났습니다.

자는 공명, 별호는 와룡(臥龍) 또는 복룡(伏龍)으로, 그의 등장은 훗날 난세의 흐름을 바꿀 대사건의 서막이었습니다.

194

[조조의 학살, 제갈량의 피난]

15세 이전에 부모님을 여읜 제갈량은 숙부에게 의지하다 조조의 서주대학살을 피해 일족을 이끌고 형주로 피난했습니다.

이 피난은 그에게 조조에 대한 강한 적개심과 손권에 대한 우호적 성향을 심어주며, 훗날 삼국 정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207

[유비, 와룡을 세 번 찾다]

당시 기반을 잃고 유랑하던 유비는 융중에 은거하던 제갈량의 명성을 듣고 직접 세 번이나 찾아가 그를 자신의 모사로 영입합니다.

이 '삼고초려' 고사는 오늘날까지 회자되며, 제갈량의 비범함과 유비의 인재를 향한 열망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남아있습니다.

208

[손유 연합, 조조를 격파하다]

화북을 석권한 조조가 형주를 공격해오자, 제갈량은 손권에게 사신으로 가 반 조조 동맹을 성사시킵니다.

이후 손유 연합군은 적벽에서 조조군을 대파하며 삼국 정립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연의와 달리 제갈량의 직접적인 전투 기록은 없으나, 외교적 수완으로 승리의 기반을 마련한 핵심 인물입니다.

209

[내치 역량 입증]

적벽대전 승리 후 유비가 형남 4군을 정벌할 때, 제갈량은 군사중랑장으로서 행정과 병참을 총괄하며 그의 뛰어난 내치 역량을 유비에게 완벽하게 입증했습니다.

이는 그가 단순한 책략가를 넘어 국가 운영의 전문가임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211

[촉한 건국 초석 마련]

유비가 서촉으로 출병하여 유장과의 전쟁이 발발하자, 제갈량은 형주 병력을 이끌고 서촉으로 진군하여 유비의 입촉을 도왔습니다.

이로써 훗날 촉한이 건국될 서천 지역의 기반이 다져지기 시작합니다.

214

[익주 안정, 법률 제정]

유장이 항복하자 제갈량은 군사장군에 임명되어 새로운 법률인 '촉과(蜀科)'를 제정하고 익주의 국가적 구조조정에 참여했습니다.

이는 촉한의 체계를 확립하고 내정을 안정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19

[승리의 숨은 조력자]

유비와 조조 간의 운명을 가른 한중공방전에서, 제갈량은 성도에 머물며 전선에 필수적인 병참과 보급을 완벽하게 총괄했습니다.

그의 치밀한 준비는 유비의 승리에 숨은 조력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221

[촉한 승상 취임]

유비가 황제에 오르며 촉한을 건국하자, 제갈량은 조정의 최고 책임자인 승상에 취임했습니다.

이는 그가 유비 정권의 핵심 브레인을 넘어 실질적인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위직에 올랐음을 의미합니다.

222

[위기 속 내정 수호]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위해 동오를 공격하는 이릉대전 시기, 제갈량은 성도에 남아 불안정한 전황 속에서도 내정과 병참을 관장하며 촉한의 근간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223

[유비의 마지막 부탁]

이릉대전 패배 후 유비가 백제성에서 병사하자, 그는 이엄과 함께 황태자 유선을 보좌할 '고명대신'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유비의 마지막 부탁은 제갈량이 촉한의 모든 권력을 위임받아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225

[남중 평정, 칠종칠금 고사]

불안정한 익주 남부에서 호족들의 반란이 일어나자, 제갈량은 직접 남정에 나서 '칠종칠금(七縱七擒)'이라는 전설적인 고사를 남기며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했습니다.

이로써 촉한의 남방을 안정시키고 풍부한 자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합니다.

227

[대업의 시작, 불멸의 출사표]

유비의 유언을 명분으로 제갈량은 위나라 정벌을 위한 북벌군을 일으킵니다.

출진에 앞서 후주에게 올린 350자의 명문 '출사표'는 그의 충정과 결연한 의지를 담아 현재까지 회자되며, 그의 위대한 대업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228

[통한의 실패, 읍참마속]

사곡과 기곡으로 동시 진격하며 북벌을 개시합니다.

옹주 호족들의 호응과 강유의 귀순이라는 성과도 있었으나, 가정 전투에서 마속의 치명적인 실책으로 보급로가 끊기며 대패하고 맙니다.

제갈량은 눈물을 머금고 마속을 처형하는 '읍참마속'의 고사를 남기며 비정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진창의 난공불락]

제1차 북벌 실패 직후 같은 해 가을, 제갈량은 진창으로 진격했지만, 1천 명의 병력으로 20일간 버텨낸 학소의 견고한 수비에 막혀 끝내 함락시키지 못했습니다.

결국 식량 부족으로 한중으로 귀환하며 북벌은 다시 한번 좌절되었습니다.

229

[무도·음평 점령, 승상 복직]

진식에게 무도와 음평을 기습 점령하게 합니다.

이 전략적 요충지 확보는 익주의 방어를 용이하게 하고 중원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 공로로 제갈량은 강등되었던 승상직에 복직하게 됩니다.

230

[위군 대공세 저지]

위나라 조진이 3로군으로 촉한을 대규모 반격하려 했으나, 제갈량의 치밀한 방어와 계속된 여름 장마로 인한 보급난에 부딪혀 결국 위군은 퇴각했습니다.

이 시기 위연은 곽회군을 대파하는 전과를 올려 촉한의 방어 역량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231

[사마의를 압도하다, 이엄의 태업]

제갈량은 '목우유마'를 활용하며 기산으로 진격, 위군을 격파하는 등 우세를 점했습니다.

위나라의 사마의조차 수비에만 치중할 정도였으나, 병참 담당 이엄의 태업으로 군량 부족에 직면하며 아쉽게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퇴각 중 위나라의 맹장 장합을 매복으로 전사시키는 빛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234

[별이 지다, 오장원 최후]

제갈량은 생애 최대 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오장원에 주둔하며 위군과 대치했습니다.

사마의의 끈질긴 수비 전략에 맞서 4개월간의 긴 대치 끝에, 54세의 나이로 진중에서 병사하며 북벌의 대업을 완수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습니다.

[위연의 반란과 진압]

제갈량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촉한 내부의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양의와 사이가 좋지 않던 위연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왕평과 마대의 활약으로 곧바로 진압되며 촉한은 큰 혼란 없이 군사를 철수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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