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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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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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왕, 군사 전략가, 정복자, 군주 + 카테고리

고대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20세에 왕위를 계승함.

그리스부터 이집트,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 북서부까지 이르는 전례 없는 대제국을 건설함.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없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사 지도자 중 하나로 평가받음.

그의 정복 활동은 동서양 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 시대의 개막을 이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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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BC 4C

[마케도니아 펠라에서 출생]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에서 필리포스 2세와 올림피아스 왕비 사이에서 태어남.

그의 탄생일에는 아버지의 군대가 승리하고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이 불타는 등 여러 전설이 전해짐.

정확한 날짜에 논쟁이 있으나, 기원전 356년 7월 20일경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에서 태어났다고 추정됨. 아버지는 필리포스 2세, 어머니는 에피로스의 공주 올림피아스임. 알렉산드로스가 태어난 날, 필리포스 2세는 파르메니온 장군의 승전보와 자신의 말이 올림픽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었음. 또한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이 불탔는데, 이는 알렉산드로스의 출생을 목격하기 위해 여신이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생겨남.

[말 '부케팔라스'를 길들이다]

열 살 되던 해, 테살리아 상인이 데려온 난폭한 말을 길들임.

말이 자신의 그림자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간파한 것임.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마케도니아는 네게 너무 좁다"고 감탄함.

열 살 때, 테살리아 상인이 13달란트짜리 말을 가져왔으나 아무도 길들이지 못했음. 알렉산드로스는 말이 자신의 그림자를 무서워하는 것을 알아채고, 말의 방향을 돌려 진정시킨 뒤 올라타는 데 성공함. 이를 본 필리포스 2세는 "아들아! 너의 그릇에 맞는 왕국을 만들어라. 마케도니아는 네게 너무 좁다!"라고 말하며 기뻐함. 이 말은 '부케팔라스'라는 이름을 얻었고, 인도 원정까지 그와 함께함.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가 되다]

13살이 되자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스승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초빙함.

미에자의 님프 신전에서 프톨레마이오스, 헤파이스티온 등과 함께 학문을 배움.

특히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깊은 관심을 가짐.

필리포스 2세는 13살이 된 알렉산드로스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를 교사로 선택함. 미에자에 있는 님프의 신전을 교실로 제공받아, 프톨레마이오스, 헤파이스티온, 카산드로스 등 마케도니아 귀족 친구들과 함께 기숙학교처럼 교육받음.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여러 학문을 가르쳤으며, 이 시기 알렉산드로스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큰 관심을 갖게 됨.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에게 주석이 달린 사본을 주었고, 그는 전쟁터까지 이를 지니고 다님.

[첫 섭정 및 알렉산드로폴리스 건설]

16세가 되자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비잔티온 원정을 떠난 사이 섭정으로 임명됨.

트라키아의 반란을 신속하게 진압함.

반란을 진압한 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로폴리스'를 건설함.

알렉산드로스가 16세가 되었을 때, 필리포스 2세는 비잔티온 제국과의 전쟁을 위해 떠나며 그를 섭정으로 남김. 왕의 부재 중 트라키아가 반란을 일으키자, 알렉산드로스는 이를 빠르게 대응해 진압하고 그들을 고향에서 쫓아냄. 그는 이 지역을 그리스인과 함께 식민지화하고 도시의 이름을 '알렉산드로폴리스'라고 명명함.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활약]

아테네와 테바이 연합군에 맞선 전투에서 좌익을 지휘함.

처음으로 테바이군의 대열을 돌파하며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함.

이 전투로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함.

필리포스 2세가 그리스 남쪽으로 진격하자, 아테네와 테바이 연합군이 카이로네이아에서 그를 막아섬. 이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좌익을, 필리포스는 우익을 지휘함. 알렉산드로스가 처음으로 테바이군의 대열을 부수고, 마케도니아군은 연합군을 격파하며 결정적인 승리를 거둠. 이 승리로 스파르타를 제외한 대부분의 그리스 도시가 참여하는 '헬레네 동맹(코린토스 동맹)'이 창설됨.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추방]

필리포스 2세가 클레오파트라 에우리디케와 재혼하며 갈등이 빚어짐.

결혼식 연회에서 왕위 계승 문제로 다툰 후, 어머니 올림피아스와 함께 마케도니아를 떠남.

어머니를 에피로스에 맡기고 자신은 일리리아로 망명함.

필리포스 2세가 마케도니아 귀족 아탈루스의 조카인 클레오파트라 에우리디케와 결혼하자, '순수 마케도니아인' 후계자 문제가 대두되며 알렉산드로스의 입지가 불안해짐. 결혼 연회에서 아탈루스가 '적법한 후계자'를 언급하자 알렉산드로스가 분노했고, 필리포스 2세가 아탈루스의 편을 들며 칼을 뽑아 알렉산드로스를 위협함. 이에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와 함께 마케도니아를 떠나, 어머니를 에피로스에 맡기고 일리리아로 망명함. 6개월 뒤 가문 친구의 중재로 복귀함.

[부왕이 암살당함 왕위 계승]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암살된 후, 20세의 나이로 마케도니아의 왕이 됨.

아버지의 부강한 왕국과 숙련된 군대를 물려받음.

즉위 직후, 반란을 일으킨 그리스 도시들을 진압하며 왕권을 강화함.

기원전 336년, 부왕 필리포스 2세가 암살된 뒤 20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함. 그는 부강한 왕국과 숙련된 군대를 물려받았으며, 아버지에 이어 코린토스 동맹의 패자(헤게몬)로 추대됨. 즉위 직후 테바이 등 그리스 도시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알렉산드로스는 이를 신속하게 진압하며 그리스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함.

[테바이의 반란 진압과 파괴]

알렉산드로스가 북방 원정 중 사망했다는 소문에 테바이가 반란을 일으킴.

그는 즉시 남하하여 테바이를 함락시키고 도시를 완전히 파괴함.

이 사건으로 그리스 전역은 공포에 질려 마케도니아에 굴복함.

왕위 계승 직후, 알렉산드로스가 일리리아 원정 중 사망했다는 거짓 소문이 퍼지자 테바이가 반란을 일으킴. 알렉산드로스는 14일 만에 테바이에 도착하여 도시를 함락시킴. 그는 반란의 본보기로 도시를 철저히 파괴하고 수천 명을 학살, 수만 명을 노예로 팔아넘김. 이 충격적인 조치로 다른 그리스 폴리스들은 감히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함.

[페르시아 원정 시작]

아버지 필리포스 2세의 유업을 이어 페르시아 원정을 시작함.

코린토스 동맹의 맹주로서 헬레스폰토스 해협(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아시아로 진격함.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첫 승리를 거둠.

기원전 334년, 코린토스 동맹의 패자로서 팽창 정책을 시작함. 그는 소아시아에서 군림하던 아케메네스 제국(페르시아)을 침공하여 10년에 걸친 원정을 시작함.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지방 총독(사트라프) 군대를 격파하고 소아시아 서부를 장악함.

[고르디온의 매듭을 자르다]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온에서 '아시아의 왕이 될 자'만이 풀 수 있다는 전설의 매듭을 만남.

그는 매듭을 풀려다 칼로 매듭을 잘라버림.

이는 '획기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상징적 사건이 됨.

소아시아를 행군하던 중 고르디온에 도착함. 이곳에는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왕이 된다'는 전설이 깃든 복잡한 매듭이 있었음. 알렉산드로스는 매듭을 풀기 위해 고심하는 대신, 칼을 뽑아 매듭을 단번에 잘라버림. 이 일화는 그의 대담하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을 보여줌.

[이수스 전투에서 대승]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가 직접 이끈 대군과 맞붙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둠.

이 전투로 다리우스 3세는 도주함.

다리우스 3세의 가족(어머니, 아내, 딸들)을 사로잡았으나, 그들을 정중하게 대우함.

다리우스 3세가 직접 지휘한 페르시아 대군과 이수스에서 격돌함. 알렉산드로스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군의 중앙을 돌파하여 다리우스 3세를 직접 노림. 다리우스 3세가 전장을 이탈해 도주하자 페르시아군은 와해됨. 알렉산드로스는 포로가 된 페르시아 왕족을 왕족으로 예우함.

[티레 공방전]

페니키아의 섬 도시 티레가 항복을 거부하자, 7개월간의 공방전을 벌임.

바다를 메워 둑길을 건설하는 집요함 끝에 도시를 함락시킴.

이 승리로 페르시아의 해군력을 무력화하고 지중해를 장악함.

지중해 연안의 강력한 해상 도시 티레는 알렉산드로스에게 항복을 거부함. 알렉산드로스는 섬이었던 티레를 정복하기 위해 본토에서 섬까지 약 800m에 달하는 둑길을 건설하라는 명령을 내림. 7개월간의 처절한 공방전 끝에 함락되었고, 주민들은 학살당하거나 노예로 팔려감. 이로써 페르시아의 해상 거점이 사라짐.

[이집트의 파라오로 즉위]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던 이집트에 입성하여 해방자로 환영받음.

이집트의 파라오로 즉위함.

시와 오아시스의 아몬 신전에서 '제우스(아몬)의 아들'이라는 신탁을 받음.

티레와 가자를 함락시킨 후 이집트로 향함. 페르시아의 압제에 시달리던 이집트인들은 그를 해방자로 환영함. 그는 이집트의 전통을 존중하여 파라오로 즉위함. 이후 리비아 사막의 시와 오아시스에 있는 아몬 신전을 방문하여, 자신이 제우스(이집트의 아몬 신과 동일시됨)의 아들이라는 신탁을 받음.

[알렉산드리아 건설]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함.

이 도시는 훗날 헬레니즘 세계 최대의 도시이자 학문과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함.

세계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 건설 중 하나임.

이집트를 통치하던 시기, 나일강 하구 지중해 연안에 새로운 도시 건설을 계획함. 그는 직접 도시의 구획을 설계했으며, 이 도시는 '알렉산드리아'로 명명됨. 알렉산드리아는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수도가 되었으며, 대도서관과 파로스 등대로 유명한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가 됨.

[가우가멜라 전투 페르시아 멸망]

다리우스 3세가 총동원한 페르시아의 마지막 대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둠.

이 전투의 패배로 다리우스 3세는 도주함.

사실상 페르시아 제국이 멸망한 결정적 전투임.

기원전 331년, 알렉산드로스는 '아시아의 군주'로 칭해짐. 다리우스 3세는 제국 전역에서 군대를 긁어모아 가우가멜라 평원에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함. 알렉산드로스는 불리한 지형과 압도적인 병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헤타이로이 기병대를 이끌고 적진의 틈을 돌파해 승리함. 이 전투로 페르시아 제국은 사실상 멸망함.

[페르세폴리스 파괴]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페르세폴리스에 입성하여 막대한 보물을 획득함.

그러나 페르시아 전쟁 당시 아테네 파괴에 대한 보복으로 궁전을 불태움.

이는 그의 정복이 상징적으로 마무리되었음을 보여줌.

가우가멜라 전투 후 바빌론, 수사를 거쳐 페르세폴리스에 입성함. 그는 크세르크세스 1세가 그리스를 침공했을 때 아크로폴리스를 불태운 것에 대한 보복으로, 페르세폴리스의 궁전을 의도적으로 불태워 파괴함.

[다리우스 3세의 죽음과 페르시아의 왕 등극]

도주하던 다리우스 3세가 부하인 베수스에게 암살당함.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 3세의 장례를 성대히 치러주고 베수스를 처형함.

스스로 '페르시아의 샤한샤(왕중왕)'로 즉위함.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패배한 다리우스 3세는 도주했으나, 결국 박트리아 총독 베수스에게 살해당함.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 3세의 시신을 수습해 왕의 장례를 치러주고, 자신을 '다리우스의 복수자'로 칭하며 베수스를 추격해 처형함. 이후 그는 '페르시아 국왕' (재위 기원전 330년 ~ 기원전 323년)을 겸임하게 됨.

[클레이토스 살해]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자신의 생명을 구했던 클레이토스와 술자리에서 격렬한 언쟁을 벌임.

페르시아 관습을 채택한 자신을 비난하는 클레이토스에게 격분하여 그를 창으로 찔러 죽임.

이후 크게 후회함.

페르시아 정복 이후,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의 궁중 의례(엎드려 절하기 등)를 도입하려 했고 이는 마케도니아 장군들의 불만을 삼.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연회에서, 술에 취한 클레이토스가 필리포스 2세를 찬양하며 알렉산드로스의 업적을 깎아내리자, 격분한 알렉산드로스가 그를 창으로 찔러 살해함. 술이 깬 뒤 그는 자신의 행동에 크게 절망하고 슬퍼함.

[박트리아의 록사나와 결혼]

중앙아시아(박트리아) 원정 중, 소그디아나의 귀족 옥시아르테스의 딸 록사나와 결혼함.

이는 마케도니아인과 페르시아인(이란계)의 융합을 꾀하는 동서 융합 정책의 일환이었음.

소그디아나의 바위를 점령한 후, 포로로 잡힌 록사나의 미모에 반해 결혼을 결정함. 이는 정복지의 유력가와 동맹을 맺어 저항을 잠재우고, 마케도니아인과 페르시아인의 통합을 도모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결혼이었음. 이 결혼은 마케도니아인들의 불만을 사기도 함.

[인도 원정 시작]

'세계의 끝'을 보겠다는 열망으로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인더스강 유역을 침공함.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인도 북서부로 영토를 확장함.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는 "세계의 끝"을 보겠다는 열망으로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인도를 침공함. 그는 인더스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마지막 원정을 시작함.

[히다스페스 전투와 군사들의 반발]

인도 원정 중 가장 격렬했던 히다스페스 전투에서 포로스 왕의 코끼리 부대를 격파함.

그러나 더 이상의 동진을 거부하는 군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회군을 결정함.

이 전투에서 애마 부케팔라스가 죽음.

기원전 326년, 히다스페스 강(현재 젤룸 강)에서 포로스 왕의 군대와 격돌함. 코끼리 부대 때문에 고전했으나, 격전 끝에 승리함. 알렉산드로스는 갠지스 강까지 진격하려 했으나, 오랜 원정에 지친 병사들이 폭동 직전까지 반발하자 결국 회군을 결정함. 애마 부케팔라스가 이 전투 후 죽자, 그를 기려 '부케팔리아' 도시를 세움.

[바빌론에서 사망]

아라비아 반도 원정을 계획하던 중 바빌론에서 33세의 나이로 사망함.

사망 원인은 고열, 말라리아, 독살 등 여러 가설이 있음.

그의 죽음으로 대제국은 분열의 길로 들어섬.

바빌론을 제국의 수도로 삼기 위해 개발하던 중이었으며, 아라비아 반도 원정을 계획함. 그러나 원정을 시작하지 못한 채 기원전 323년 6월 10일(또는 11일) 바빌론에서 사망함.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독살설(플루타르코스 등), 장티푸스, 말라리아, 하얀 헬레보레 중독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됨.

[대제국의 분열 (디아도코이 전쟁)]

알렉산드로스가 명확한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자 제국은 내전에 휩싸임.

부하 장군들과 참모들(디아도코이)이 후계자를 자처하며 제국을 분할 통치하기 시작함.

이는 헬레니즘 세계의 시작을 알림.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은 그가 죽자마자 일련의 내전으로 산산이 조각남. 조각난 각각의 지역은 알렉산드로스의 부하 장군들과 참모들이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를 자칭하면서 각각 왕을 칭하고 할거함. 이들을 '디아도코이'라고 부르며, 이들의 전쟁으로 제국은 여러 왕국으로 분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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