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패스트푸드 체인, 햄버거, 다국적 기업, 주식회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11-16- 03:35:30
세계적인 햄버거 패스트푸드 체인점 맥도날드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1940년 맥도날드 형제가 식당을 창업했으며, 1955년 레이 크로크가 이를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현재 전 세계 약 37,000개 매장에서 햄버거, 감자튀김 등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며 고객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관련 영상 쇼츠 참고 (맥도날드 창업 영화)
1940
[맥도날드 형제, '맥도날드의 바베큐'로 개명]
맥도날드 형제는 본래 있던 식당 자리에서 동쪽으로 40마일 떨어진 캘리포니아주 서부 샌버너디노 1398 노스 E 거리로 식당을 이전하고 '맥도날드의 바베큐'로 이름을 바꾸어 본격적인 패스트푸드 시스템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1940년, 맥도날드 형제는 본래 있던 식당 자리에서 동쪽으로 40마일 떨어진 캘리포니아주 서부 샌버너디노 1398 노스 E 거리로 식당을 이전하며 이름을 '맥도날드의 바베큐'로 개명했습니다. 이는 맥도날드 형제가 간소화된 조리 시스템과 빠른 서비스를 도입하며 현대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의 원형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이 시기부터 햄버거 판매에 주력하며 대량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맥도날드의 시작, '에어드롬' 식당 창업]
리처드 맥도날드와 모리스 맥도날드 형제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에 '비행장'이라는 뜻의 '에어드롬'이라는 식당을 처음으로 창업했습니다. 당시 햄버거는 10센트, 오렌지 주스는 5센트였습니다.
1940년 5월 15일, 리처드 맥도날드와 모리스 맥도날드 형제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의 몬로비아 공항 근처 헌팅턴 드라이브에서 '에어드롬'이라는 상호의 식당을 창업했습니다. 이 식당은 햄버거를 10센트, 오렌지 주스를 5센트에 판매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같은 해에 식당을 샌버너디노 1398 노스 E 거리로 이전하며 '맥도날드의 바베큐'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패스트푸드 시스템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1954
[경영인 레이 크로크, 맥도날드의 프랜차이즈 가능성 발견]
사업가 레이 크로크는 샌버너디노의 맥도날드 식당을 방문하여 간소화된 조리 시스템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맥도날드 형제와 협상하여 맥도날드의 프랜차이즈권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954년, 경영인 레이 크로크는 샌버너디노의 맥도날드 식당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당시 획기적이었던 맥도날드의 간소화된 조리 시스템과 빠른 서비스에 큰 관심을 가졌고, 맥도날드 형제와 협상하여 맥도날드 프랜차이즈권을 획득하기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맥도날드가 지역 식당에서 전국적인, 나아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55
[레이 크로크의 맥도날드, 프랜차이즈 시대 개막]
레이 크로크는 52세의 나이로 맥도날드 회사를 설립하고, 캘리포니아 외 지역인 일리노이주 데스플레인스에 첫 프랜차이즈 매장을 개점했습니다. 이는 맥도날드가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통해 본격적인 확장에 나서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1955년 3월, 52세 나이에 레이 크로크는 맥도날드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같은 해 4월, 그는 일리노이주 데스플레인스에 맥도날드의 첫 프랜차이즈 매장을 출점하며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맥도날드가 단일 식당을 넘어 전국적인 체인점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고, 현대 패스트푸드 산업의 모델을 제시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1961
[레이 크로크, 맥도날드의 완전한 주인이 되다]
레이 크로크는 맥도널드 형제로부터 상권을 270만 달러에 완전히 인수하며 맥도날드 경영의 전권을 확보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맥도날드를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박차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1961년, 레이 크로크는 맥도널드 형제로부터 270만 달러에 맥도날드 상권을 완전히 인수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맥도날드 사업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확보하게 되었고, 자신이 구상하던 대규모 프랜차이즈 확장 계획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맥도날드가 단순한 식당을 넘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67
[미국을 넘어 세계로, 캐나다 첫 해외 매장 개점]
미국 밖에 세워진 최초의 맥도날드 매장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리치먼드에 개점하며 맥도날드의 세계 시장 진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맥도날드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1967년, 미국 밖에 세워진 최초의 맥도날드 매장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리치먼드에 문을 열었습니다. 이어서 1971년에는 유럽 최초로 네덜란드 잔담에, 아시아 최초로 일본 도쿄 긴자에 매장이 개점하며 맥도날드는 빠르게 전 세계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해외 진출은 맥도날드가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88
[한국 맥도날드, 압구정동에 1호점 개점]
대한민국 최초의 맥도날드 점포가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에 개점하며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습니다. 이 매장은 압구정로데오거리에서 약 19년간 운영되었습니다.
1988년, 대한민국 최초의 맥도날드 점포가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에 문을 열었습니다. 한국맥도날드유한회사가 설립된 해이기도 합니다. 이 점포는 당시 서울 압구정로데오거리에서 19년간 운영되었으며, 매장 옥상에 대한민국 태극기와 맥도날드 로고기가 함께 게양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2007년 7월 20일 폐점하기 전까지 한국 맥도날드의 상징적인 매장이었습니다.
1990
[냉전 종식 후 러시아 상징, 모스크바 1호점 개점]
러시아 최초의 맥도날드 매장이 모스크바 푸시킨 광장에 개점했습니다. 이는 냉전 시대 이후 서방 문화의 유입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졌습니다.
1990년, 러시아 최초의 맥도날드 매장이 모스크바 푸시킨 광장에 개점했습니다. 당시 이는 서방 자본주의 문화의 러시아 유입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맥도날드 햄버거를 맛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매장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맥도날드가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기 전까지 운영되었습니다.
2003
[매출 부진과 비만 소송, 맥도날드의 위기]
맥도날드는 2003년 무렵 재정 상황이 악화되고 매출이 감소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사상 최초로 분기 손실을 기록했으며, 일부 부모들이 아이들의 비만을 이유로 맥도날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잭 그린버그 CEO가 물러나고 짐 캔털루포가 회장이자 CEO로 복귀하며 위기 극복에 나섰습니다.
2003년 무렵, 맥도날드는 서비스 수준 비판과 함께 재정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매출이 떨어지고 회사는 최초로 분기 손실 적자를 기록하는 등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심지어 아이들을 비만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일부 부모들이 맥도날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최고경영자 잭 그린버그가 투자자들의 압력으로 물러나고, 짐 캔털루포가 회장이자 최고경영자로 복귀하여 회생 계획을 실행에 옮기며 위기 타개에 나섰습니다.
2004
[맥도날드 CEO 짐 캔털루포 사망, 찰리 벨 승계]
맥도날드의 CEO 짐 캔털루포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했습니다. 이사회는 신속하게 최고운영책임자(COO) 찰리 벨을 신임 CEO로 선임하며 경영권 공백을 최소화했습니다. 찰리 벨 역시 7개월 후에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2004년 4월, 맥도날드의 CEO 짐 캔털루포가 새벽에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맥도날드는 평상시 승계 계획을 수립하고 관리해 온 덕분에, 그날 오전 7시에 이사회를 열어 당시 최고운영책임자(COO) 찰리 벨을 신임 CEO로 즉시 선임하여 경영권 공백 없이 위기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찰리 벨 또한 7개월 후에 암으로 사망하는 비극이 이어졌습니다.
2007
[한국 맥도날드의 상징, 압구정 1호점 폐점]
한국 맥도날드의 첫 번째 매장이었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점포가 개점 19년 만에 폐점했습니다. 이 점포는 한국 맥도날드의 역사적 상징성을 가졌던 곳입니다.
2007년 7월 20일, 1988년에 한국 최초로 문을 열었던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맥도날드 점포가 19년 간의 운영을 마치고 폐점했습니다. 이 점포는 압구정로데오거리에서 운영되었으며, 매장 옥상에 태극기와 맥도날드 로고기가 함께 게양되어 한국 맥도날드의 역사를 상징하는 곳이었습니다. 폐점 후 두 깃발은 경기도 포천시 소재 포천DT점에서 이어받아 게양하고 있습니다.
2014
[나만의 버거, '시그니쳐 버거' 출시]
맥도날드는 'Create Your Taste'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고객이 직접 버거를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시그니쳐 버거'를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2014년, 맥도날드는 'Create Your Taste'라는 슬로건과 함께 '시그니쳐 버거'를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서비스는 골든 에그 치즈버거, 핫 올 오버 버거 등 네 가지 추천 버거와 함께 고객이 직접 재료를 선택하여 '나만의 버거'를 만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2017년 4월에는 거의 대부분의 매장에서 정식 런칭하여 판매되었으나, 2020년 3월 26일에 단종되었습니다.
2015
[인종차별과 성희롱, 맥도날드 노동자 소송]
버지니아주 맥도날드 3개 점에서 근무하던 흑인 및 라티노 직원 10명이 연방 법원에 인종차별, 성희롱, 불법 해고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점포 책임자들이 인종차별적 발언과 성희롱을 일삼고 백인 직원 채용을 위해 자신들을 해고했다고 주장했습니다.
2015년 1월 22일, 버지니아주에 있는 맥도날드 3개 점에서 일했던 흑인 및 라티노 직원 10명이 연방 버지니아 서부지법에 인권법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점포 책임자들이 평소 흑인과 라티노 직원에게 '더러운 멕시칸'이라 부르는 등 인종차별을 하고, 오럴섹스 강요 및 성기 사진 전송 등의 성희롱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2014년 3월 백인 직원들을 대거 채용하며 '점포에 흑인들이 많아 너무 어둡다'는 이유로 흑인과 라티노 직원들을 부당하게 해고했다고 밝혔습니다. 맥도날드 본사는 '가치와 동떨어지는 일'이라며 조사를 약속했지만, 전 직원들은 본사가 이러한 사실을 무시했다고 비판했습니다.
2016
[맥도날드 '햄버거병' 논란, 4세 여아 피소]
경기도 평택에 거주하는 4세 여아가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은 후 용혈성 요독증후군(HUS), 이른바 '햄버거병'에 걸렸다고 주장하며 맥도날드를 고소했습니다. 이 사건은 식품 안전에 대한 심각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16년 9월 25일, 경기도 평택시에 사는 4세 여아가 맥도날드 해피밀세트 햄버거를 먹은 후 복통, 구토, 설사 증상을 보이다 용혈성 요독증후군(HUS) 진단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2017년 7월 5일 맥도날드를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으며, 아이는 신장 기능의 90%를 잃어 신장장애 2급 판정을 받고 복막 투석에 의지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맥도날드 측은 위생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명했으나, 이 사건은 식품 안전과 관련하여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2017
[독일 만하임 맥도날드, 인종차별 표지판 논란]
독일 만하임의 맥도날드 매장 유리창에 독일어와 터키어 표지판이 다른 방향을 가리키도록 내걸려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습니다. 독일어는 부유한 동네 매장을, 터키어는 누추한 동네 매장을 안내해 SNS에서 비난 여론이 확산되었습니다.
2017년 독일 남서부 만하임 시에 있는 맥도날드 매장 앞 유리창에 독일어와 터키어 표지판이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내걸려 인종차별 논란이 발생했습니다. 독일어 표지판은 안전하고 부유한 동네의 매장을, 터키어 표지판은 누추한 동네의 매장을 안내하여 '터키인은 빈민가로, 독일인은 부유층 동네로 가라'는 인종 격리와 다름없다는 비난이 SNS를 통해 확산되었습니다. 해당 점장은 즉시 표지판을 제거하고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으나, 맥도날드 본사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점장을 옹호하는 입장을 보여 비판을 받았습니다.
2020
[맥도날드, 흑인 가맹점주 인종차별 혐의로 피소]
월스트리트저널은 맥도날드가 흑인 가맹점주 52명에게 일정 수준 이하의 매장을 주고 지원을 제공하지 않는 등 부당한 대우를 했다는 소송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이로 인해 흑인 가맹점주 수는 크게 감소했습니다.
2020년 9월 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맥도날드 가맹점 200개를 운영했던 흑인 사업자 52명이 일리노이주 북부 연방지원에 소장을 접수한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이들은 맥도날드가 흑인 가맹점주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매장을 배정하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지 않는 등 차별적인 대우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차별 행위 때문에 지난 4년간 흑인 가맹점주들이 운영을 포기했으며, 흑인 가맹점주 수가 1998년 377명에서 2020년 186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가맹점 1곳당 47억~60억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했습니다. 맥도날드 본사는 '다양성과 공평한 기회 제공에 중요한 가치를 둔다'고 해명했으나,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이어지면서 인종적 다양성을 높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022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 여파, 맥도날드 러시아 철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맥도날드가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1990년 모스크바 진출 이후 32년 만의 철수로, 국제 정세가 글로벌 기업의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여파로 맥도날드는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 모스크바 푸시킨 광장에 첫 매장을 열며 냉전 종식 후 서방 문화의 러시아 유입을 상징했던 맥도날드는 32년 만에 러시아 사업을 중단했습니다. 이후 현지 업체에서 '바냐 아저씨'라는 상표로 일시 운영되다가, 2022년 6월 12일 알렉산드르 고보르에게 인수되어 '프쿠스노 이 토치카'라는 자체 브랜드로 재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국제 정세가 글로벌 기업의 경영 전략과 시장 진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