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국가, 서유럽, 입헌군주제, 국제기구 회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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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서유럽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로, 독일, 벨기에와 국경을 접하고 북해에 면해 있다. 카리브해의 아루바, 퀴라소, 신트마르턴과 함께 네덜란드 왕국을 구성한다. 언론의 자유, 경제적 자유, 삶의 질, 행복지수, 1인당 GDP, 인간 개발 지수, 평화 지수 등 여러 지표에서 세계 최상위권을 자랑한다. 관용적인 사회 분위기와 이민자 수용 정책이 큰 특징이며, 소프트 드러그 및 적극적 안락사, 관리 성매매 등이 합법화되어 '성 해방구'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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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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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C

[로마인 유입과 지배]

켈트와 게르만인이 살던 네덜란드에 로마인이 들어와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마스트리흐트에는 로마 시대 요새 유적이 남아있다.

켈트족과 게르만족이 거주하던 네덜란드 지역에 로마인이 기원전 50년경부터 유입되어 지배가 시작되었다. 남부 마스트리흐트에는 로마 시대의 요새 유적이 현존한다.

450

[프랑크족 및 색슨-프리스인 정착과 기독교 유입]

로마 지배 말기에 프랑크와 색슨-프리스인들이 네덜란드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 기독교가 전파되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로마의 지배가 끝나갈 무렵(5세기경), 프랑크족과 색슨-프리스인들이 네덜란드 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기독교가 전파되어 네덜란드에 확고히 뿌리내리기 시작한 시기이다.

800

[카롤루스 대제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즉위]

이슬람 세력을 막아낸 카롤루스 대제가 교황 레오 3세로부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관을 받으며, 이 지역의 정치적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800년, 이슬람 세력의 확장을 저지한 카롤루스 대제는 교황 레오 3세로부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관을 수여받았다. 이는 당시 유럽의 정치와 종교 권력 구조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816

[카롤루스 대제 사망]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카롤루스 대제가 사망하며 유럽의 정치적 판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816년, 강력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카롤루스 대제가 사망했다. 그의 사망은 이후 제국이 분할되는 베르됭 조약으로 이어지며 유럽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843

[베르됭 조약으로 인한 저지대 국가 분할]

카롤루스 대제 사망 후 베르됭 조약에 따라 유럽은 서, 중, 동 프랑크로 분할되었으며, 저지대 국가(네덜란드 지역)는 스헬더강을 기준으로 서쪽은 서프랑크, 동쪽은 동프랑크에 속하게 되었다.

843년, 카롤루스 대제의 사망 이후 체결된 베르됭 조약으로 인해 프랑크 왕국이 서, 중, 동 프랑크로 분할되었다. 이로 인해 현재의 네덜란드 지역인 저지대 국가들도 스헬더강을 경계로 서쪽은 서프랑크 왕국에, 동쪽은 동프랑크 왕국에 편입되었다.

1150

[상업 도시 발전과 홀란트 백작의 성장]

10세기부터 13세기까지 네덜란드 지역에서는 상업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들이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홀란트 백작이 북부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중요한 정치적 주체로 부상했다.

10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네덜란드 지역에서는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많은 도시들이 새로이 건설되거나 성장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홀란트 백작이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며 이 지역의 주요 권력자로 자리매김했다.

1350

[부르고뉴 공작의 지배 시작]

14세기에 접어들면서 네덜란드 지역은 강력한 부르고뉴 공작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어, 이 지역의 정치적 종속이 시작되었다.

14세기부터 네덜란드 지역은 부르고뉴 공작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이는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로 이어지는 유럽 강대국들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1450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

15세기에는 네덜란드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이는 이후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었다.

15세기에 들어서 네덜란드 지역은 오스트리아의 강력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 지배는 이후 스페인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이어진다.

1550

[스페인 지배와 독립의 열망]

16세기에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된 네덜란드는 근대 자본주의에 눈을 뜨고, 개신교도들의 우상파괴 폭동과 종교개혁 등 끈질긴 저항으로 독립의 기틀을 마련했다.

16세기,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근대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개신교도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에 맞서 우상파괴 폭동과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등 스페인 지배에 대한 끈질긴 저항을 이어갔고, 이는 80년 전쟁으로 불리는 독립 전쟁의 서막이 되었다.

1588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 독립 선언]

에스파냐 세력을 몰아내고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으로 독립을 쟁취했다. 이는 80년 전쟁의 중요한 성과로, 이후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여는 기반이 되었다.

1588년, 네덜란드는 오랜 독립 전쟁 끝에 에스파냐 세력을 몰아내고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이 독립은 네덜란드가 세계 무역 강국으로 성장하는 '황금시대'의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1650

[네덜란드 황금시대 개막]

17세기, 네덜란드는 연합 동인도 회사(VOC)를 설립하여 세계 제일의 무역국으로 성장했다. 남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뉴암스테르담(뉴욕)을 세웠으며, 뉴질랜드를 발견하는 등 해외 진출의 황금기를 맞았다. 또한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등의 화가와 에라스무스, 스피노자와 같은 철학자를 배출하며 문화적으로도 번성했다. 일본에는 '난학'을 전파하여 근대 문명 수용에 기여했다.

17세기는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로 기록된다.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연합 동인도 회사(VOC)를 설립하여 세계 최대의 무역국으로 부상했다. 이 시기 남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 북미(뉴암스테르담, 현 뉴욕) 등지에 광대한 식민지를 건설했으며,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를 발견하는 등 활발한 해외 진출을 이뤘다. 일본과는 나가사키 데지마를 통해 무역하며 '난학'이라는 형태로 유럽 문물을 전파했다. 또한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같은 위대한 화가들과 에라스무스, 스피노자 같은 철학자들이 활동하며 예술과 학문에서도 전례 없는 번영을 누렸다.

1793

[프랑스의 네덜란드 선전포고]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프랑스는 네덜란드에 선전포고하며, 네덜란드는 강대해진 프랑스와의 전쟁에 휘말리게 되고 이는 국가적 쇠퇴기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되었다.

1793년 2월 1일, 프랑스 혁명 정부는 유럽의 현존하는 정부들을 전복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네덜란드에 선전포고했다. 이는 네덜란드가 프랑스와의 전쟁에 돌입하고 쇠퇴의 길을 걷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네덜란드는 영국, 오스트리아와 함께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을 맺고 대항했다.

1795

[바타비아 공화국 수립과 프랑스 지배]

겨울철 하천 결빙을 틈타 프랑스군이 대규모 공세를 펼쳐 네덜란드를 침공했고, 총독 빌렘 5세가 도망간 후 프랑스 주도로 바타비아 공화국이 세워졌다.

1795년 1월 19일, 프랑스군은 하천이 얼어붙어 네덜란드의 요새 방어력이 약해진 겨울을 이용해 대규모 침공을 감행했다. 도시는 차례로 함락되었고, 총독 빌렘 5세는 영국으로 도망쳤다. 프랑스 혁명에 동조하는 세력이 많았던 네덜란드에 프랑스 주도로 '바타비아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브라반트 공국과 마스트리히트는 프랑스에 할양되었다.

1806

[루이 보나파르트, 네덜란드 국왕 즉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자신의 동생 루이를 네덜란드 국왕(로데베이크 1세)으로 즉위시키며 네덜란드는 프랑스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1806년,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는 자신의 동생 루이를 네덜란드 국왕(로데베이크 1세)으로 즉위시켰다. 이로써 네덜란드는 프랑스 제1제정의 위성국이 되었다.

1810

[프랑스 제1제국에 편입]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네덜란드는 결국 프랑스 영토로 직접 편입되었으며, 국왕 루이 2세가 즉위한 후 곧바로 프랑스에 합병되었다.

1810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정책에 따라 네덜란드는 프랑스 제1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는 루이 보나파르트가 왕위에서 물러난 직후 이뤄진 조치로, 네덜란드는 독립적인 지위를 상실하고 프랑스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게 되었다.

1815

[네덜란드 왕국 재탄생과 입헌군주제 도입]

빈 회의 결과 네덜란드 왕국이 새로이 탄생하며, 공화국 체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되었다. 이는 네덜란드의 현대 국가 형성의 중요한 기점이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 후 유럽 질서를 재편한 빈 회의의 결과로 '네덜란드 왕국'이 새롭게 탄생했다. 기존의 공화국 체제는 폐지되고 입헌군주제가 도입되었으며, 이 왕국은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와 가톨릭 국가인 벨기에를 통합한 형태였다.

1831

[벨기에의 네덜란드로부터 독립]

로마 가톨릭 국가인 벨기에와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가 합병된 왕국이었던 네덜란드 왕국에서 벨기에가 독립하여 벨기에 왕국을 건국했다.

1815년 빈 회의로 통합된 네덜란드 왕국에서, 종교적, 문화적 차이로 인해 로마 가톨릭 국가인 벨기에가 1831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여 별도의 '벨기에 왕국'을 건국했다.

1948

[빌헬미나 여왕 퇴위 및 율리아나 여왕 즉위]

오랜 기간 네덜란드를 통치했던 빌헬미나 여왕이 퇴위하고, 율리아나 여왕이 즉위하며 왕위 계승이 이루어졌다.

1948년, 빌헬미나 여왕이 퇴위하고 그녀의 딸인 율리아나 여왕이 네덜란드 왕위를 계승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네덜란드의 재건과 함께 왕실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1949

[대한민국 정부 승인]

네덜란드는 1949년 7월 25일,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공식 승인하며 한국과의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중요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1949년 7월 25일, 네덜란드는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 내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이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독립 국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데 기여했으며, 양국 간 외교 관계의 시작점이 되었다.

1971

[맥도날드 네덜란드 상륙]

미국의 대표적인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날드가 네덜란드 잔담에 첫 매장을 열며 네덜란드 사회에 새로운 식문화의 변화를 가져왔다.

1971년,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인 맥도날드가 네덜란드 잔담에 상륙하여 첫 매장을 열었다. 이는 네덜란드 사회에 미국의 대중문화와 식문화가 확산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1976

[연성 마약 합법화 정책 시행]

네덜란드 정부는 중독성이 낮은 대마, 환각 버섯 등을 연성 마약으로 규정하고 5g 이하의 소지 및 커피숍을 통한 판매를 허용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는 중독성 높은 마약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1976년, 네덜란드 정부는 마약 중독성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판단되는 대마와 환각 버섯 등을 '연성 마약'으로 분류하고, 5g 이하의 소지를 허용하고 '커피숍'이라는 지정된 장소에서 500g 이하의 판매를 규제 하에 허용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 정책은 헤로인, 코카인 등 중독성 강한 경성 마약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1980

[율리아나 여왕 퇴위 및 베아트릭스 여왕 즉위]

율리아나 여왕이 퇴위하고, 그녀의 딸인 베아트릭스 여왕이 즉위하며 네덜란드 왕실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1980년, 율리아나 여왕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그녀의 장녀인 베아트릭스 공주가 왕위를 이어받아 여왕으로 즉위했다. 베아트릭스 여왕은 이후 33년간 네덜란드를 통치했다.

1981

[심각한 경기 침체와 실업 문제 심화]

1981년부터 1983년까지 네덜란드는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으며 3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실업자가 80만 명까지 증가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1981년부터 1983년까지 네덜란드는 유난히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경험했다. 제조업 부문에서만 3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실업자는 매달 1만 명씩 증가하여 1984년에는 80만 명에 달하는 등 고용 시장에 큰 위기가 닥쳤다. 이는 이후 '바세나르 협약'을 통한 경제 개혁의 필요성을 촉발했다.

1982

[바세나르 협약 체결로 경제 회복의 기틀 마련]

심각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 노동조합, 경영자 단체 간 '바세나르 협약'이 체결되어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경제 적응력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82년 11월 24일, 네덜란드는 심각한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바세나르에서 정부, 노동조합, 경영자단체연합이 참여하는 '바세나르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임금 인상 억제 정책을 핵심으로 하여 네덜란드 경제가 국제 경쟁에 적응하고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6

[고용 실패에 대한 사회학자의 지적]

스웨덴 사회학자 예란 테르보른이 저서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실업상태를 더 오래 지속하는가?》를 통해 네덜란드의 높은 실업률과 고용 실패 문제를 심도 있게 지적했다.

1986년, 스웨덴의 사회학자 예란 테르보른은 그의 저서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실업상태를 더 오래 지속하는가?》를 통해 네덜란드의 고용 실패 문제를 명확히 지적했다. 이는 네덜란드 사회가 직면한 실업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 미쳤다.

1991

[형법 개정을 통한 성매매 합법화의 기틀 마련]

형법이 개정되어 16세 이상은 포르노 출연 및 성행위가 적법해졌으며, 이는 국가의 허가를 받은 관리 성매매 합법화의 기반이 되어 위생 향상과 성병 감염률 저하에 기여했다.

1991년, 네덜란드 형법이 개정되어 16세 이상부터 포르노 출연 및 성행위가 법적으로 적법해졌다. 이를 토대로 국가의 허가를 받은 관리 성매매가 합법화되었고, 위생 상태 향상 및 성병 감염률 저하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평가된다. 또한 세수 증가와 성매매 종사자의 보호 강화에도 기여했다.

[사회보장체제 전반적인 재정비]

1990년대 초 네덜란드는 사회보장체제의 전반적인 재정비를 단행하며, 경제 성장과 고용 안정을 위한 새로운 사회 모델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네덜란드 정부는 사회보장체제에 대한 전반적인 재정비를 실시했다. 이는 1980년대의 경제 위기와 높은 실업률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복지 국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1993

[유럽 최초 동성 결혼 합법화 인정]

네덜란드는 유럽 국가 중 최초로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며, 성 소수자의 권리 보호와 사회적 포용을 선도하는 진보적인 국가임을 보여주었다.

1993년, 네덜란드는 유럽 국가 중 최초로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합법으로 인정했다. 이는 이후 2001년 동성애자 커플의 결혼 및 이혼을 허용하는 법 시행으로 이어지며, 성 소수자의 권리 신장에 있어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997

[성공적인 실업률 감소와 경제 회복]

1990년대 들어 일관적인 임금인상 억제 정책과 개혁을 통해 1983년 14%였던 실업률을 1997년에는 6% 수준으로 성공적으로 반감시켰다.

1990년대에 네덜란드는 1980년대의 일관적인 임금 인상 억제 정책, 사회 안정화, 그리고 개혁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실업률을 반감시켰다. 1983년 14%에 달했던 실업률은 1997년에 6% 수준으로 떨어져 유럽 연합 평균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2001

[동성애자 커플 결혼 및 이혼 허용 법 시행]

1993년 동성 결혼을 인정한 데 이어, 2001년 4월 1일부터 동성애자 커플의 결혼과 이혼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법이 시행되었다.

2001년 4월 1일, 네덜란드에서 동성애자 커플의 결혼과 이혼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법이 시행되었다. 이는 1993년 유럽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으로 인정한 이후 더욱 구체적인 법적 틀을 마련한 것으로, 성 소수자의 권리 신장에 있어 중요한 진전을 의미한다.

2008

[대마중독자 증가 문제 대두]

마약 중독자가 줄어든 반면, 대마 합법화 정책의 부작용으로 인해 대마가 주는 편안함 때문에 복용을 끊지 못하는 대마중독자가 늘어나는 문제가 발생했다.

2008년, 네덜란드에서는 연성 마약 합법화 정책으로 인해 전체 마약 중독자는 줄어들었지만, 대마가 주는 편안함 때문에 복용을 중단하지 못하는 '대마중독자'가 오히려 늘어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는 정책의 의도치 않은 부작용으로 지적되었다.

2009

[유럽 최단 근로시간 국가 발표]

유로스타트가 네덜란드가 유럽에서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라고 발표하며, 네덜란드의 유연한 노동 시장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2009년 5월 10일, 유럽연합 통계청 유로스타트는 네덜란드가 유럽 국가들 중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네덜란드의 높은 삶의 질과 유연한 노동 시장 정책을 반영하는 결과로 평가된다.

2010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해체 및 새로운 구성]

네덜란드령 안틸레스가 해체되고 퀴라소와 신트마르턴은 네덜란드 왕국의 구성국이 되었으며, 나머지 영토는 카리브 네덜란드 직할령으로 재편되었다.

2010년, 네덜란드령 안틸레스가 해체되면서 카리브 해 지역의 통치 구조에 큰 변화가 있었다. 퀴라소와 신트마르턴은 네덜란드 왕국의 구성국으로 승격되었고, 보네르섬, 신트외스타티위스섬, 사바섬은 카리브 네덜란드라는 네덜란드 정부 직할 특별자치령이 되었다.

2013

[베아트릭스 여왕 퇴위 및 빌럼알렉산더르 국왕 즉위]

베아트릭스 여왕이 퇴위하고 그녀의 아들인 빌럼알렉산더르가 국왕으로 즉위하며 네덜란드 왕실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2013년, 베아트릭스 여왕이 퇴위하고 그녀의 장남인 빌럼알렉산더르 왕세자가 국왕으로 즉위했다. 이는 1890년 이후 처음으로 남성 군주가 즉위하는 것이며, 네덜란드 왕실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2020

[국명 '홀란트' 사용 중단 및 공식 명칭 권고]

네덜란드 정부는 2020년 1월 1일부로 국명으로 '홀란트'를 사용하지 않고 공식 명칭인 '네덜란드'를 사용하도록 변경을 호소했다.

2020년 1월 1일, 네덜란드 정부는 국명으로 '홀란트'라는 통칭 사용을 중단하고 공식 명칭인 '네덜란드'를 사용하도록 전 세계에 호소했다. 이는 특정 지역 명칭이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데 적절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정책 변화이다. 단, 일본의 '오란다'라는 호칭은 정착된 일본어 단어이므로 변경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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