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트가

왕가, 왕조, 귀족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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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1-12- 10: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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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왕가는 14세기부터 스코틀랜드, 17세기부터 영국을 통치한 왕실이다. 1603년 스코틀랜드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며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전제주의와 가톨릭 보호 정책으로 청교도 혁명과 명예 혁명 등 내분을 겪었으며, 결국 앤 여왕을 끝으로 후사가 단절되었다. 이후 자코바이트 운동이 전개되었으나 왕위 복원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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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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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1

[스코틀랜드 로버트 2세 즉위]

스튜어트 왕가의 첫 번째 스코틀랜드 군주인 로버트 2세가 즉위하여 스코틀랜드 왕가의 명맥을 시작했다.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1세의 손자인 로버트 2세가 스튜어트 왕가 출신으로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올랐다. 그는 1390년까지 재위했다.

1390

[스코틀랜드 로버트 3세 즉위]

로버트 2세의 아들인 로버트 3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계승했다.

로버트 2세의 아들 로버트 3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올라 1406년까지 통치했다.

1406

[스코틀랜드 제임스 1세 즉위]

로버트 3세의 아들인 제임스 1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즉위했다.

로버트 3세의 아들 제임스 1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올라 1437년까지 통치했다.

1437

[스코틀랜드 제임스 2세 즉위]

제임스 1세의 아들인 제임스 2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계승했다.

제임스 1세의 아들 제임스 2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올라 1460년까지 통치했다.

1460

[스코틀랜드 제임스 3세 즉위]

제임스 2세의 아들인 제임스 3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즉위했다.

제임스 2세의 아들 제임스 3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올라 1488년까지 통치했다.

1488

[스코틀랜드 제임스 4세 즉위]

제임스 3세의 아들인 제임스 4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계승했다.

제임스 3세의 아들 제임스 4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올라 1513년까지 통치했다.

1513

[스코틀랜드 제임스 5세 즉위]

제임스 4세의 아들인 제임스 5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즉위했다.

제임스 4세의 아들 제임스 5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올라 1542년까지 통치했다.

1542

[스코틀랜드 메리 1세 즉위]

제임스 5세의 딸인 메리 1세가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즉위했다.

제임스 5세의 딸 메리 1세가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즉위하여 1567년까지 재위했다.

1567

[스코틀랜드 제임스 6세 즉위]

메리 1세의 아들인 제임스 6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계승했다.

메리 1세의 아들 제임스 6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올라 1625년까지 통치했다.

1603

[제임스 1세의 영국 통치 시작]

튜더 왕가의 엘리자베스 1세 사망 후,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헨리 7세의 후예 자격으로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며 스튜어트 왕가의 영국 통치를 시작했다.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메리 1세의 아들)가 잉글랜드의 헨리 7세의 고손으로서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하여 제임스 1세로 즉위했다. 이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한 군주 아래 결합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대브리튼 왕국의 기초를 확립했다.

1625

[찰스 1세 즉위]

제임스 1세의 아들인 찰스 1세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왕위를 계승했다.

제임스 1세의 장남인 찰스 1세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군주로 즉위하여 1649년까지 통치했다. 그의 전제주의적 통치는 민권과의 대립을 심화시켰다.

1649

[청교도 혁명과 왕정 중단]

찰스 1세의 전제주의에 대한 민권의 요구가 청교도 혁명으로 폭발하며 왕정이 일시 중단되었다. 올리버 크롬웰의 공화정이 시작되었다.

찰스 1세와 의회 간의 대립이 격화되어 청교도 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1649년 1월부터 1660년 5월까지 스튜어트 왕조의 통치는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으며, 올리버 크롬웰이 통치하는 공화정이 수립되었다.

1660

[찰스 2세 즉위와 왕정복고]

청교도 혁명으로 중단되었던 왕정이 복고되고, 찰스 1세의 장남인 찰스 2세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왕으로 즉위했다.

1649년 이후 중단되었던 왕정이 1660년 복고되면서, 찰스 1세의 장남 찰스 2세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군주로 즉위했다. 그는 1685년까지 재위했다.

1685

[제임스 2세 즉위]

찰스 1세의 차남이자 가톨릭 보호자였던 제임스 2세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왕으로 즉위했다.

찰스 1세의 차남인 제임스 2세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군주로 즉위하여 1689년까지 통치했다. 그의 가톨릭 보호 정책은 또 다른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1689

[명예혁명과 공동 통치 시작]

가톨릭 보호자였던 제임스 2세가 명예혁명으로 폐위되고, 그의 딸 메리 2세와 남편 윌리엄 3세가 공동 통치하는 형태로 왕위가 계승되었다.

제임스 2세의 가톨릭 보호 정책에 대한 반발로 명예혁명이 발생하여 그가 내쫓겼다. 대신 네덜란드 총독 윌리엄과 제임스 2세의 딸 메리가 영국을 공동 통치하게 되면서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1701

[제임스 2세의 망명 중 사망]

명예혁명으로 쫓겨난 제임스 2세가 왕위 복원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프랑스에서 사망했다.

명예혁명으로 왕위를 잃고 프랑스로 망명했던 제임스 2세는 루이 14세의 도움을 받아 아일랜드를 침략하여 왕위를 되찾으려 했으나 패배했다. 그는 1701년 프랑스에서 사망했다.

1702

[앤 여왕 즉위]

제임스 2세의 차녀인 앤 여왕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왕위에 올랐다.

제임스 2세의 차녀인 앤 여왕이 1702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군주로 즉위했다. 그녀의 재위 중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탄생했다.

1707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 탄생]

연합법에 따라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이 통합되어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탄생했다. 이는 스튜어트 왕가 재위 중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다.

1707년 연합법이 통과되면서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이 공식적으로 합쳐져 단일 주권 국가인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수립되었다. 이로써 스튜어트 왕가는 그레이트 브리튼의 군주가 되었다.

1714

[앤 여왕 사망과 스튜어트 왕조 단절]

후사 없이 앤 여왕이 사망하면서, 가톨릭 신자인 제임스 에드워드의 후손들이 상속권을 박탈당해 스튜어트 왕조는 공식적으로 단절되고 하노버 왕가가 왕위를 계승했다.

1714년 앤 여왕이 후사 없이 사망했다. 영국의회는 제임스 에드워드의 후손들이 로마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상속권을 박탈했고, 이로 인해 스튜어트 왕조는 단절되었다. 이후 영국의 왕위는 하노버 왕가가 계승하게 되었다.

[자코바이트 운동 시작]

스튜어트 왕조 단절 후, 제임스 2세의 아들 제임스 에드워드가 '늙은 왕위 요구자'로서 영국 왕위를 주장하며 자코바이트 운동을 이끌었다.

앤 여왕의 사망으로 스튜어트 왕조가 단절된 후, 제임스 2세의 아들인 제임스 에드워드(제임스 3세)가 스스로 영국 왕위 요구자임을 선언하며 스튜어트 왕가의 복원을 목표로 하는 자코바이트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1766년까지 왕위를 주장했다.

1766

[찰스 에드워드의 왕위 요구 시작]

제임스 3세의 장남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가 '젊은 왕위 요구자'로서 영국 왕위 계승을 주장했다.

늙은 왕위 요구자 제임스 3세의 사망 후, 그의 장남인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찰스 3세)가 왕위 요구를 계승하며 1788년까지 활동했다.

1788

[스튜어트 남자 직계 혈손 단절]

젊은 왕위 요구자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찰스 3세)가 아들 없이 사망함으로써 스튜어트 왕가의 남자 직계 혈손이 단절되었다. 이는 자코바이트 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788년, 마지막 주요 왕위 요구자였던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찰스 3세)가 아들이 없이 사망하면서 스튜어트 왕가의 남자 직계 혈손이 단절되었다. 이로 인해 스튜어트 왕가의 복원을 목표로 했던 자코바이트 운동은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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