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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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포 나이의 추정 근거는 유비(161년생)와의 관계다.
여포가 유비를 만났을 때 '아우'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근거로 여포가 유비보다는 나이가 많았을 것으로 본다면, 161년생인 유비보다 많아야 하므로, 출생년도의 하한선이 어느 정도 정해진다.
2. 여포는 199년 2월 7일에 조조에게 패배하여 처형당했다. 이는 역사서에 명확히 기록된 사실이다.
여러 기록에서 여포가 사망할 당시 '장년(壯年)' 또는 그에 준하는 나이였을 것으로 묘사한다. '장년'은 보통 30~40대를 의미하므로, 만약 199년에 사망했을 때 40대 초반이었다고 가정하고 역산하면, 출생년도는 대략 150년대 중반이 된다.
따라서 실제로는 "150년대 중반 출생"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접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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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시작: 정원 살해]
병주에서 무관으로 활동하던 여포는 병주자사 정원의 주부로 가까이 지냈다.
하지만 동탁의 꾐에 넘어가 자신의 상관이자 양아버지나 다름없었던 정원을 죽이고 동탁의 양자가 되었다.
이로 인해 여포는 동탁의 깊은 신임을 얻게 되지만, 동시에 배신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는 비극적인 운명의 서막을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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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견에게 패배, 장안 입성]
동탁의 횡포에 반동탁 연합군이 궐기한 후, 손견과의 양인 전투에서 동탁의 부하 호진과 함께 요격에 나섰으나 서로 반목하여 크게 패했다.
이 패배로 동탁은 낙양을 버리고 장안으로 천도하게 되며, 여포도 동탁을 따라 장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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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배신: 동탁 암살]
양아버지 동탁의 폭력적인 성품과 사소한 갈등으로 앙금을 품고 있던 여포는 동탁의 계집종과 밀통한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워했다.
이때 사도 왕윤의 설득에 넘어가 동탁 암살 계획에 가담한다.
황제의 병이 나은 것을 축하하는 연회에서 동탁을 유인, 직접 창으로 찔러 죽임으로써 세상에 충격을 안겼다.
동탁이 조복 안에 갑옷을 입고 있어 이숙의 창에 부상만 입자 여포가 직접 '조서를 받들어 역적 동탁을 치노라'고 외치며 동탁을 살해했다. 이에 동탁은 '개 같은 놈, 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절규했다. 주부 전의와 동탁의 창고지기 두전이 통곡하자 이들도 죽였다.
[허무한 정권, 장안 탈출]
동탁을 죽인 후 왕윤과 함께 정권을 잡고 '분위장군', '온후'의 작위를 받으며 삼공에 준하는 대우를 누렸다.
하지만 동탁 잔당 처리 문제와 왕윤의 오만함으로 불화가 생겼다.
이각, 곽사 등이 장안으로 쳐들어오자 왕윤은 잔류를 택하고, 여포는 동탁의 머리를 들고 수백 기만을 이끌고 무관을 거쳐 남양태수 원술에게로 도피했다.
동탁 사망 후 채 40일도 안 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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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를 등지고 방랑길에]
원술에게 환대받았으나 노략질을 일삼아 원술의 근심거리가 되자, 하내태수 장양에게로 향했다.
이후 기주목 원소의 신세를 지며 흑산적 장연과의 전투에서 압도적인 무용을 과시했으나, 무례한 언행과 부하들의 노략질로 원소마저 여포를 우환거리로 여겼다.
원소의 암살 시도를 눈치채고 극적으로 탈출하여 다시 장양에게 의탁하며 방랑 생활을 이어갔다.
상산국에서 흑산적 장연과의 전투에서 적토마를 타고 성렴, 위월 등 수십 기와 더불어 하루에 서너 번 돌진하여 많은 적을 참수하였다. 공을 세웠음에도 증원을 청하고 부하들의 노략질이 심하자 원소가 암살을 시도했다. 여포는 다른 사람에게 쟁을 켜게 해 자신이 켜는 척 위장하고 몰래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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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목 등극과 조조와의 격돌]
조조가 서주목 도겸을 공격하느라 연주를 비운 틈을 타, 진류태수 장막과 진궁의 추대로 연주목이 되었다.
복양현으로 들어가 조조와 100여 일간 치열하게 맞섰으나, 황충이 덮쳐 식량이 고갈되면서 매듭을 짓지 못했다.
결국 조조에게 패배하고 장막과 함께 유비에게 몸을 의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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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저버린 서주 탈취]
유비에게 투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원술의 연합 제의를 받아들여 유비의 본거지인 하비성을 습격했다.
장비의 부하 조표의 도움으로 손쉽게 하비를 점령하고, 유비를 광릉으로 내쫓았다.
이후 유비가 다시 귀의하자 소패에 머물게 해주면서 스스로 서주자사라 칭하며 재기하였다.
그러나 이 행동은 여포의 신뢰도를 더욱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하비는 장비와 하비상 조표가 방비하고 있었는데, 장비가 조표를 죽이려 하자 조표 측에서 여포에게 성문을 열어주어 하비를 쉽게 점령했다. 유비는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여포에게 귀의했고, 여포는 유비를 소패에 발붙이게 해주었다.
[신기에 가까운 활솜씨, 중재자 여포]
원술이 기령을 시켜 유비를 공격하자 유비의 구원 요청을 받아들였다.
부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재에 나선 여포는 기령과 유비에게 활로 극의 날을 맞히면 화해하고 못 맞히면 싸우라고 제안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정확히 극의 날을 맞혀 장수들을 경탄시켰다.
이 사건은 여포의 무예가 신기에 가깝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일화로 남았다.
여포는 자신의 성정은 싸움이 아니라 화해시키는 것을 좋아한다며 영문을 지키는 무관에게 극을 세우게 하고는 자신이 활을 쏴 옆에 달린 날을 정확히 맞혔다. 이후 유비가 소패에서 병력이 늘어나자 위험 요소로 판단해 밀어냈고, 유비는 조조에게 의탁했다.
[학맹 반란 진압과 진궁 의혹]
서주를 장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비에서 부하 학맹이 오밤중에 반란을 일으켜 관아를 엄습했다.
여포는 고순의 도움으로 학맹을 진압하고, 학맹의 부장 조성의 도움으로 학맹을 처형했다.
조성은 원술이 배후에 있으며 진궁도 공모했다고 진술했으나, 진궁의 얼굴이 붉어진 것을 보고도 여포는 중요한 장수라 하여 불문에 부치는 아량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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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과 파혼, 조조와 동맹]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자 사돈을 맺으려던 관계를 청산하고, 딸 일행을 돌려세우고 사신을 붙잡아 조조에게 압송했다.
조조는 여포에게 친필 서신과 함께 '평동장군', '평도후', '좌장군' 등의 벼슬을 내리며 우호를 다졌다.
그러나 여포는 진규의 설득에 넘어가 원술과 결별했지만, 진규의 아들 진등은 조조를 만나 여포를 제거해야 한다고 속내를 밝히는 이중적인 상황이었다.
패국상 진규는 원술과 여포가 동맹하면 국난이 될 것이라 보고 여포에게 조조와 협동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진등은 조조를 만나 여포를 호랑이에 비유하며 조속히 처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원술군 대파: 다시 빛난 용맹]
원술이 노하여 장훈 등 수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여포를 공격하자, 진규의 계책을 받아들여 한섬과 양봉을 회유했다.
여포는 진격하여 장훈군과의 거리가 100보가량 되었을 때, 회유된 한섬과 양봉이 군을 돌려 동시에 장훈군을 타격하게 함으로써 원술군을 대파하고 교유를 사로잡았다.
이후 수춘 방향으로 진격하여 원술을 조롱하며 그의 기세를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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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 전투: 배신당한 최후]
쇠한 원술과 재동맹하여 유비를 공격하던 여포에게 조조가 친정하며 하비 전투가 시작되었다.
조조군에 밀려 성안으로 퇴각한 여포는 진궁의 계책에도 불구하고 부인의 만류로 출성 기동전을 포기한다.
조조가 하비를 물에 잠기게 하는 공성전을 벌이자, 부하 후성, 송헌, 위속 등이 이반하여 진궁과 고순을 포박하고 투항했다.
결국 백문루에 올라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했다.
조조는 10월 팽성국을 함락하고 하비까지 전진했다. 여포는 역격에 나섰으나 격퇴당하고 성렴이 붙잡혔다. 여포는 항복을 고려했으나 진궁은 출성을 통한 기각 전술을 제안했다. 그러나 여포의 부인이 진궁이 조조에게서 귀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귀순했는데, 성을 맡긴 채 처자식을 두고 멀리 나가면 변고가 생길 수 있다며 만류해 결국 출성 계획을 포기했다. 조조는 기수와 사수를 끌어들여 하비를 물에 잠기게 하고 공성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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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대가: 쓸쓸한 죽음]
조조에게 항복한 여포는 자신을 살려두면 조조의 기병이 되어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고 제안했으나, 유비는 정원과 동탁을 배신한 여포의 과거를 상기시키며 죽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포는 유비를 향해 '저 귀 큰 놈이 가장 믿지 못할 놈이다!'라고 외쳤으나, 결국 조조의 명으로 교수형에 처해지고 그 시신은 허도에 효수되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여포가 '장수들을 후대했었음에도 위급해지자 죄다 나를 배반했소'라고 말하자, 조조는 '경은 처를 저버리고 장수들의 여자를 사랑했으면서 어찌 후대했다 하시오?'라 반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