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한민국
대한민국대한민국 1963 ~
타임 2025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39
타임 2025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타임 2025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 2025
무궁화대훈장무궁화대훈장 2025
제25회 백봉신사상제25회 백봉신사상 2023 신사의원 베스트 10
소비자권익증진상소비자권익증진상 2021 지자체장 부문
제27회 한신상제27회 한신상 2021
전국 시·도지사 공약이행 및 정보공개 평가전국 시·도지사 공약이행 및 정보공개 평가 2020 SA등급
우수행정 및 정책사례 선발대회우수행정 및 정책사례 선발대회 2020 광역지방정부부문 최우수상
전국 지방자치단체 평가전국 지방자치단체 평가 2019 광역도 부문 1위
전국 시·도지사 공약실천계획서 평가전국 시·도지사 공약실천계획서 평가 2019 SA등급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전국 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 2017 도시재생 부문 최우수
올해의 브랜드 대상올해의 브랜드 대상 2017 소통참여도시 부문
올해의 브랜드 대상올해의 브랜드 대상 2017 정책 부문
세계자유민주연맹 자유장세계자유민주연맹 자유장 2016
대한민국 CEO경영 대상대한민국 CEO경영 대상 2016 일자리 창출 경영 부문 대상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전국 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 2016 청년문제해소 부문 최우수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전국 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 2016 소식지 부문 최우수
한국의 영향력 있는 CEO한국의 영향력 있는 CEO 2015 사회책임경영 부문
대한민국 소비자대상대한민국 소비자대상 2015 소비자행정 부문
대한민국 미래경영대상대한민국 미래경영대상 2015 의정행정 부문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전국 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2015 사회적경제 부문 최우수
대한민국 경영대상대한민국 경영대상 2015 사회공헌경영 부문
포브스 최고경영자 대상포브스 최고경영자 대상 2014 시민중심경영 부문
대한민국 경영대상대한민국 경영대상 2014 윤리경영부문
경영대상 지역혁신 경영대상경영대상 지역혁신 경영대상 2014
대한민국 미래창조 경영대상대한민국 미래창조 경영대상 2014 투명경영부문
대한민국 경제리더 대상대한민국 경제리더 대상 2014 사회책임경영 부문
매니페스토 약속대상매니페스토 약속대상 2014 우수상
대한민국 경제리더 대상대한민국 경제리더 대상 2014 사회책임경영부문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리더 100인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리더 100인 2014
제3회 대한민국 실천 대상제3회 대한민국 실천 대상 2014 지역발전 부문
한국의 최고경영인상한국의 최고경영인상 2014 리더십경영 부문
대한민국 CEO 리더십 대상대한민국 CEO 리더십 대상 2014 공유가치경영 부문
대한민국 경영대상대한민국 경영대상 2013 윤리경영부문
대한민국 소통경영대한민국 소통경영 2013
대한민국 창조경제 리더대한민국 창조경제 리더 2013
한국을 빛낸 창조경영대상한국을 빛낸 창조경영대상 2013
한국의 영향력 있는 CEO한국의 영향력 있는 CEO 2013
포브스 글로벌 CEO 대상포브스 글로벌 CEO 대상 2012 글로벌 도시 브랜드 부문
성남NCC 인권위원회 인권상성남NCC 인권위원회 인권상
경원대학교 행정대학원
경원대학교 행정대학원 ~ 2005 졸업
중앙대학교 1982 ~ 1986 졸업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 ~ 1981 합격
중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 ~ 1978 합격
월곡초등학교 삼계분교 ~ 1977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2013 ~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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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이재명
연혁 피인용 수 56
대통령 ★ 국가원수/대통령

소년공 시절의 역경을 딛고 인권 변호사로 성장 시민 운동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재임 중 파격적인 정책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주목받았으며 특히 전국 최초의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주도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습니다. 제20대 대선에서 아쉽게 낙선했으나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선출되며 핵심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다양한 사법 리스크와 논란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며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63

[이재명 출생]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실제 출생일은 음력 10월 22일 또는 23일로 추정되지만, 현재의 생년월일은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늦게 하며 임의로 기재한 날짜입니다.

1977

[소년공 생활 시작]

초등학교 졸업 후 경기도 성남시로 이주하여 수공업 공장을 전전하는 소년공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두 차례의 심각한 산업 재해를 겪으며 법적으로 노동 가능한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여러 가명으로 일해야 했습니다.

1978

[고입 검정고시 합격]

공장에서 만난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며 공부의 꿈을 키웠고, 학원 선생님의 배려로 무료 수강하며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중졸 자격을 얻었습니다.

1980

[대입 검정고시 합격]

어려운 환경과 팔의 통증 속에서 두 차례의 자살 시도 끝에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매진,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고졸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1982

[중앙대 법학과 입학]

1981년 대입 제도 개편으로 학력고사만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되자,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는 장학생으로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1986

[사법시험 합격]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1989

[변호사 개업]

사법연수원 18기를 수료한 후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했습니다.

연수원 재학 중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에 감명받아 판·검사 대신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1991

[김혜경과 결혼]

1990년부터 연애를 시작한 김혜경 씨와 결혼했습니다.

1995

[성남시민운동 시작]

성남시민모임 창립 구성원으로 시민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분당 백궁·정자 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과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을 파헤치며 부조리에 맞섰습니다.

2002

[검사 사칭 구속]

성남시의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 관련 인터뷰 중 KBS PD가 검사를 사칭해 녹음한 파일을 제공받아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혐의(공무원자격사칭 공모)로 구속되었습니다.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은 6월 30일 이재명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7월 2일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2003

[검사 사칭 벌금형]

무고 및 공무원자격사칭 혐의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검사 사칭 사실을 인정했으나, 공범에 비해 가담 정도가 낮고 공공의 이익이 있다고 판단하여 감형했습니다.

2004

[성남시의회 난입]

성남시의회 제114차 임시회 2차 본회의가 열린 날, 주민발의로 제출된 성남시립병원 설립 조례안이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고 심의가 보류되자 이에 항의했습니다.

2004년 8월 26일. 성남시립병원 설립 조례 부결 항의 과정에서 공용물 손괴 및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성남시의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소속 김상현 의장이 '성남의료원 설립 및 운영 조례안'을 상정하지 않고 개회 47초 만에 산회를 선포하자 이재명 당시 '성남시립병원 설립을 위한 범시민추진위원회' 공동대표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

[수배령]

2004년 성남시의회에서 주민 발의로 상정된 시립병원 설립 조례안이 날치기로 부결되자, 항의하는 시민들과 함께 시의회 본회의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죄 등의 혐의로 수배령이 떨어졌습니다.  

수배 기간 동안 1평 남짓한 작은 공간(기도실)에서 도피 생활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이재명 씨는 자진 출두하여 재판을 받았고, 2004년 8월 26일에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으며 이 사건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음주운전 적발]

혈중 알코올 농도 0.158%의 면허 취소 수준으로 승용차를 운전하여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벌금 150만원 약식명령을 선고받았습니다.

[시의회 방해 벌금]

성남시립병원 설립 조례가 시의회에서 날치기 부결되자, 항의 과정에서 마이크를 던지고 책상을 발로 차는 등 공용물 손괴 및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그가 사회운동을 넘어 정치에 입문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5

[성남시장 출마 선언]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성남시장 출마 의사를 밝히고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06

[조카 살인 사건 변호]

조카 김대용(이재명 누나의 아들)이 2006년 여자친구의 모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에서 조카를 심신미약 상태라고 변호했습니다.

[첫 성남시장 낙선]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23.75%의 득표율로 낙선했습니다.

2008

[18대 총선 낙선]

제18대 총선에서 성남시 분당구 갑 국회의원 후보로 전략 공천되었으나 33.23%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또 다시 낙선했습니다.

2010

[제19대 성남시장 당선]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51.2%의 득표율로 성남시장에 당선되며 첫 단체장직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시민이 주인 되는 성남, 시민이 행복한 시정, 기회가 균등한 성남을 만들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성남시장 취임 및 모라토리엄 선언]

제19대 성남시장으로 취임 후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며 재정난 문제를 공론화했습니다.

전임 시장의 호화 집무실을 북카페로 내놓고 좁은 시장실로 옮기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으며, 무상교복 정책 추진 및 성남시립의료원 강화 등 복지정책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2013

[석사 논문 표절 의혹]

가천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논문이 50% 이상 표절로 의심된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재명은 '표절은 아니나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고 싶지 않다'며 논문 자진 반납 의사를 밝혔습니다.

가천대는 학칙상 5년이 지나 심사 근거가 없었으나 외부 의혹 제기에 조사에 착수했고, 이재명 측의 자진 반납 의사 통보 후 행정대학원에 학위 취소를 통보했으나 학칙상 근거 불분명으로 논문은 유효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2014

[제20대 성남시장 재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55.1%의 득표율로 성남시장에 재선되었습니다.

강세 지역 외 분당구에서도 지지율이 크게 상승하며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세월호 국정원 의혹 제기]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정원이 세월호의 실소유자라고 확신한다'는 주장을 펼쳐 '괴담 유포'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이후 시민단체로부터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당했습니다.

2016

['사이다 발언' 전국적 주목]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과감한 발언으로 전국민적 관심을 모으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후보 2위로 급부상했습니다.

이는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경선 극적 반전 드라마에 비견되기도 했습니다.

2017

[19대 대선 경선 3위 마감]

제19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3위로 마감하며 첫 대선 도전의 막을 내렸습니다.

2018

[성남시장직 사임]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로 등록하기 위해 8년간 재임했던 성남시장직을 사임했습니다.

성남시장 재임 기간 동안 94.1%의 높은 공약이행률을 기록했습니다.

[제35대 경기도지사 당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56.40%의 득표율로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었습니다.

임창열 전 지사 이후 20년 만에 민주당계 정당 출신 경기도지사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당선 인터뷰 태도 논란]

경기도지사 당선 확정 직후 JTBC 및 MBC와의 생방송 인터뷰에서 앵커의 질문 방식에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인터뷰를 일방적으로 중단하여 논란이 일었습니다.

공인으로서 언론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친형 강제 입원 직권남용 기소]

친형 이재선 씨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 한 의혹과 관련하여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이는 이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이어졌습니다.

2019년 5월 1심에서 무죄 선고되었으나, 9월 항소심에서는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당선 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2019

[닥터헬기 이착륙장소 확대]

'닥터헬기'가 경기도 내 공공청사, 학교운동장, 공원 등에서 자유롭게 이착륙할 수 있도록 하는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기존 588곳 외에 1,832곳을 추가하여 총 2,420곳으로 세계최초로 이착륙 장소를 대폭 늘렸으며, 이국종 교수가 환영했습니다.

2020

[신천지 신도 명단 확보]

코로나19 유행 초기, 신천지 총회본부를 직접 방문하여 신천지 측이 거부하던 신도 명단 3만 3천여 명을 확보했습니다.

이는 수도권 확산을 막기 위한 선제적 대응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재난기본소득 전국 최초 지급]

코로나19 장기화 속에 경기도 전 도민에게 1인당 10만 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전국 최초로 지급하며 전국 확산의 물꼬를 텄습니다.

2021년 2월에도 1인당 20만 원씩 추가 지급했습니다.

2021

[제20대 대선 출마 선언]

'국민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아닌 주권자를 대리하는 일꾼'을 자처하며 제20대 대통령 선거 도전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공정성 확보와 불평등 완화, 경제적 기본권 보장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강행]

정부의 5차 재난지원금 상위 88% 지급안에 반대하며, 경기도에 한해 전 도민에게 1인당 25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모든 국민이 고루 보상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문기 처장 사망]

대장동 개발 비리 수사를 받던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 1처장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이재명은 김문기를 '모른다'고 발언했으나, 유족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2022

[제20대 대선 0.73%p 차 석패]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47.83%를 득표, 윤석열 후보에게 0.73%p라는 역대 최소 득표율 차이로 아쉽게 패배했습니다.

[계양구 을 국회의원 당선]

송영길 의원 사퇴로 공석이 된 인천 계양구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전략 공천되어 당선되며 제21대 국회의원에 입성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출]

득표율 77.77%라는 역대 최고 득표율로 제6대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2023

[제1야당 대표 첫 구속영장]

위례·대장동 개발 특혜 및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으로 제1야당 대표로는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습니다.

[체포동의안 부결]

국회에서 본인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었습니다.

(찬성 139표, 반대 138표로 가결정족수 149표에 미달했습니다.).

[전 비서실장 사망]

이재명 경기도지사 비서실장을 지낸 전형수가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유서에는 '이재명 대표는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십시오.

함께 일한 사람들의 희생이 더 이상 없어야지요'라는 내용이 담겨 논란이 일었습니다.

[대장동 개발사업 기소]

성남시장 재직 시절 민간업자들에게 유리한 대장동 개발 사업 구조를 승인하여 성남도시개발공사에 4895억원의 손해를 끼치고, 측근들을 통해 직무상 비밀을 흘려 7886억원을 챙기게 한 혐의(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되었습니다.

[체포동의안 가결 및 영장 기각]

대북송금,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위증교사 혐의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었으나,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며 구속을 면했습니다.

체포동의안은 찬성 149표, 반대 136표로 가결되었습니다.

[백현동 개발사업 기소]

성남시장 시절 백현동 개발사업 과정에서 민간업자에게 특혜를 몰아줘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최소 20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불구속 기소되었습니다.

김인섭 전 선거대책위원장 등 측근의 청탁을 받고 용도변경 등 특혜를 제공한 혐의를 받습니다.

2024

[부산 피습 사건]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방문 중 신원 미상의 남성에게 목 부위를 흉기로 습격당했습니다.

이후 서울대학교병원으로 헬기 이송되어 혈관 재건술을 받았으며, 이송 과정의 특혜 논란이 제기되었습니다.

[제22대 국회의원 재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인천 계양구 을에서 재선에 성공하며 2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제7대 민주당 대표 선출]

사임 후 다시 치러진 당대표 선거에서 제7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비상계엄 항거 국회 담을 넘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맞서, 국회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했다.

군경의 봉쇄를 뚫기 위해 국회 담을 넘는 모습이 포착되며,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이끌어내는 상징적 장면을 만들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반국가 세력 처단'을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재명 대표는 즉시 국회로 향했으나, 계엄군과 경찰 병력이 국회 본청을 봉쇄했다. 그는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시키기 위해, 다른 의원들과 함께 봉쇄를 뚫고 본회의장으로 가던 중 담을 넘어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 모습은 전국에 생중계되며 계엄 항거의 상징이 되었고, 결국 6시간 만의 계엄 해제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주도]

비상계엄 사태의 책임을 물어, 야당 대표로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및 가결을 주도했다.

국회는 재적 의원 204명의 찬성으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비상계엄 사태를 '헌정 유린'이자 '내란'으로 규정하고,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 즉각적인 대통령 탄핵 절차에 돌입했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며, 계엄 선포 11일 만인 12월 14일, 두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찬성 204표로 가결을 이끌어냈다. 이로써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었고, 조기 대선 정국이 본격화되었다.

2025

[헌정 사상 최초 '국회 취임식']

당선 다음 날,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 취임식'을 갖고 제21대 대통령 임기를 즉시 시작했다.

조기 대선으로 인한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취임했다.

조기 대선으로 치러진 선거 특성상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구성 없이, 당선 다음 날인 6월 4일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제21대 대통령 임기를 즉시 시작했다. 이로써 '이재명 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대통령 탄핵 인용에 대한 입장 발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인용(파면)에 대해 "다시는 없어야 할 대한민국 헌정사의 비극"이라면서도 "진짜 대한민국의 시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인용하자, 이재명 당대표는 "헌정사의 비극"이라고 논평하면서도 "진짜 대한민국의 시작"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로써 그는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주목받게 되었다.

[대선 출마 위해 당대표직 사퇴]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직을 사퇴했다.

당대표 권한대행은 당헌당규에 따라 박찬대 원내대표가 맡았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당대표직 사퇴 다음 날,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제21대 조기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 (득표율 89.77%)]

더불어민주당 제21대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 누적 득표율 89.77%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당의 제21대 대통령 선거 최종 후보로 선출, 확정되었다.

[범야권 '진짜 대한민국 선대위' 출범]

친명계, 비명계, 중도·보수 성향 인사까지 망라한 '진짜 대한민국 선거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또한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4당과 공동 선대위를 구성하며 통합과 포용을 내세웠다.

'진짜 대한민국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을 열었다. 선대위원장만 22명에 달하는 매머드급 조직으로, 친명계와 비명계를 아우르고 중도·보수 인사까지 영입했다. 또한 조국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당·기본소득당 등 4당과 공동 선대위를 구성하며 '국민 통합'과 '실용주의'를 강조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당선]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인해 치러진 제21대 조기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최종 당선되었다.

[첫 내각 인선 발표]

제21대 대통령 취임 직후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와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을 발표했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정부의 공백을 줄이기 위한 첫 인사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등 핵심 참모진 인선도 함께 진행했다.

이 인선은 이재명 정부의 초기 국정 운영 방향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정치권 인사와 외교·안보 전문가를 함께 배치하며 조기 대선 이후의 안정적 정부 출범에 방점을 찍었다.

[첫 국무회의 주재]

취임 다음 날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공식 국정 운영에 들어갔다.

조기 대선 이후 별도 준비 기간 없이 바로 대통령 직무를 수행했다.

새 정부의 민생·안보 대응 체계를 즉시 가동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첫 국무회의는 이재명 정부가 ‘즉시 집무’ 체제로 출범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인수위원회가 없던 만큼 기존 정부 조직을 활용해 정책 집행의 연속성을 확보하려 했다.

[3대 특검법 통과]

국회에서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 채상병 특검 등 이른바 3대 특검법이 통과됐다.

비상계엄과 전임 정부 관련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법적 절차가 본격화됐다.

이재명 정부 초기 정국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검 정국은 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여야 대치를 격화시켰다. 동시에 비상계엄 사태 이후 책임 규명과 사법 처리 방향을 가르는 분기점이 되었다.

[트럼프와 첫 통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첫 전화 통화를 했다.

취임 직후 한미동맹과 통상 현안을 조율하기 위한 외교 행보였다.

이후 한미 정상회담과 관세 협상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

조기 출범한 정부로서는 미국과의 외교 채널을 빠르게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통상, 안보, 대북정책이 모두 한미 관계와 맞물려 있어 첫 통화의 상징성이 컸다.

[이시바와 첫 통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첫 전화 통화를 했다.

한일 관계 정상화와 실용 외교 기조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후 첫 한일 정상회담의 사전 단계가 되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초부터 한미일 협력과 한일 관계 관리를 병행해야 했다. 과거사와 안보 협력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가 주요 평가 지점이 되었다.

[시진핑과 첫 통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첫 전화 통화를 했다.

미국·일본에 이어 중국과도 정상 간 소통 채널을 열었다.

한반도 정세와 경제 협력 문제를 다룰 기반을 마련했다.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과의 관계 설정은 이재명 정부 외교의 핵심 과제였다. 실용적 국익 외교를 내세운 만큼 균형 외교의 시험대가 되었다.

[첫 G7 참석]

주요 7개국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캐나다로 향했다.

취임 후 첫 다자 정상외교 무대에 오른 사건이었다.

새 정부의 외교 방향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G7 참석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외교 네트워크를 보여주는 일정이었다. 이재명 정부는 경제안보, 공급망, AI, 기후 대응 등 글로벌 의제를 중심으로 존재감을 확보하려 했다.

[첫 한일 정상회담]

정부 출범 후 첫 한일 정상회담을 열었다.

양국 정상은 안보와 경제 협력 필요성을 확인했다.

한일 관계 관리가 새 정부 외교의 주요 축으로 부상했다.

한일 정상회담은 과거사 문제와 현실 협력 사이의 균형이 관건이었다. 이후 2025년 8월 도쿄 회담, 2026년 1월 나라현 회담으로 이어졌다.

[장관 후보 발표]

12개 부처 장관 후보자 인선을 발표했다.

조기 출범한 정부의 1기 내각 구성을 본격화했다.

국정 운영의 실무 체계를 갖추기 위한 후속 인사였다.

장관 후보자 인선은 정책 추진력과 인사 검증 문제가 함께 주목받은 사건이었다. 이후 일부 후보자의 논란과 낙마가 이어지며 인사 리스크도 부각되었다.

[첫 부동산 대책]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6억 원 제한 등을 담은 첫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집값 안정과 가계부채 관리를 동시에 겨냥한 조치였다.

부동산 시장 안정이 정부 초반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대출 규제는 실수요자 보호와 투기 억제 사이에서 논란을 낳았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가늠하게 하는 첫 신호로 평가되었다.

[민생회복 추경 통과]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원 등을 위한 1차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경기 회복과 소비 진작을 위한 재정 투입이 본격화됐다.

새 정부의 민생 우선 기조를 보여주는 정책이었다.

추경은 취임 초기 경기 대응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재정 확대의 효과와 재정 건전성 문제를 두고 정치권과 시장의 평가가 갈렸다.

[한미 관세협상 합의]

한미 관세협상에서 정상 간 잠정 합의가 이뤄졌다.

통상 갈등을 관리하기 위한 새 정부의 핵심 경제외교 성과로 제시됐다.

이후 한미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이어졌다.

관세 문제는 수출 기업과 국내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었다. 잠정 합의는 불확실성을 줄였다는 평가와 함께 세부 이행 조건을 둘러싼 검증 과제를 남겼다.

[광복절 특별사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을 대상으로 한 광복절 특별사면을 발표했다.

정치적 화해와 통합을 내세운 결정이었다.

동시에 사면 대상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도 불거졌다.

특별사면은 대통령의 통치 철학과 정치적 메시지가 강하게 반영되는 제도다. 이 사면은 지지층 결집과 중도층 반응이 엇갈린 사건으로 평가되었다.

[김건희 여사 구속]

김건희 여사가 주가조작 의혹 등으로 구속 수감됐다.

전임 대통령 배우자를 둘러싼 수사가 중대한 국면에 들어섰다.

3대 특검 정국의 파급력이 커졌다.

이 사건은 전임 정부 책임론과 정치 보복 논란이 충돌한 대표적 사건이었다. 사법 절차의 독립성과 정치적 파장 모두가 함께 주목받았다.

[국민임명식 개최]

광복절에 광화문에서 ‘국민임명식’을 열었다.

조기 취임식과 별도로 국민 앞에서 정부 출범의 의미를 재확인했다.

대통령 임명의 주체가 국민이라는 상징을 강조했다.

이 행사는 헌정 사상 최초의 국회 취임식 이후 열린 대중적 정치 이벤트였다. 지지층에는 통합의 장면으로, 비판층에는 정치적 연출로 받아들여졌다.

[도쿄 한일회담]

도쿄에서 이시바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열었다.

출범 초기 전화 통화와 첫 회담 이후 양국 대화를 이어갔다.

경제안보와 지역 안보 협력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한일 관계는 이재명 정부 외교의 안정성을 평가하는 지표가 되었다. 과거사 문제를 관리하면서 실용 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노란봉투법 통과]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노동조합 활동과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둘러싼 제도 변화가 이뤄졌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렸다.

노동계는 과도한 손배소 남용을 막는 법이라고 평가했다. 경영계는 불법 파업 책임 약화와 산업 현장 혼란을 우려했다.

[첫 한미 정상회담]

백악관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첫 한미 정상회담을 했다.

안보, 통상, 산업 협력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이재명 정부의 대미 외교가 본격적인 정상외교 단계로 들어섰다.

한미 정상회담은 관세 협상과 안보 협력의 후속 조율 성격을 가졌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 설정이 한국 경제와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내외 관심이 집중됐다.

[취임 100일 회견]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열고 초기 국정 운영 성과를 설명했다.

민생 회복과 실용 정부 기조를 강조했다.

조기 대선 이후 안정적 정부 운영을 이어가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취임 100일은 새 정부의 초반 평가가 집중되는 시점이었다. 인사 논란, 특검 정국, 외교 성과가 함께 평가 대상이 되었다.

[유엔총회 연설]

미국 뉴욕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국제사회에 새 정부의 외교·안보 구상을 제시했다.

글로벌 책임 국가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유엔총회 연설은 다자외교 무대에서 한국의 방향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한반도 평화, 경제안보, 디지털 전환 등이 주요 메시지로 부각되었다.

[검찰청 폐지 통과]

검찰청 폐지 등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수사·기소 체계 개편이 제도적으로 추진됐다.

이재명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이 핵심 국정 과제로 떠올랐다.

검찰 개혁은 오랫동안 한국 정치의 중심 쟁점이었다. 지지층은 권력기관 정상화로 평가했고, 반대 측은 사법 시스템의 정치화 가능성을 우려했다.

[경주 한미회담]

경주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두 번째 한미 정상회담을 열었다.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간 핵심 현안을 다시 조율했다.

통상과 안보 협력의 후속 합의가 주목받았다.

같은 해 8월 백악관 회담에 이은 두 번째 회담이었다. 한국이 APEC 의장국으로 주요 정상외교를 주도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경주 APEC 개최]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본회의가 열렸다.

한국은 주요 정상들을 맞이하며 다자외교 무대를 주관했다.

이재명 정부의 외교 역량을 보여주는 대형 국제행사였다.

APEC은 미중 정상회담과 한미·한일 정상회담이 함께 열린 외교 무대가 되었다. 국내적으로는 경주와 한국의 국제적 이미지 제고 효과도 강조되었다.

[한중 정상회담]

경주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열었다.

한미일 협력 강화 속에서도 중국과의 대화 채널을 유지했다.

경제와 한반도 정세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한중 정상회담은 이재명 정부의 균형 외교를 시험하는 사건이었다.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공급망과 안보 문제를 동시에 관리해야 했다.

[한미 팩트시트 발표]

한국 핵추진잠수함 추진 등을 담은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가 발표됐다.

한미 안보 협력의 새로운 방향이 구체화됐다.

자주국방과 동맹 강화를 동시에 내세운 사건이었다.

핵추진잠수함 문제는 군사·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었다. 국내에서는 국방력 강화 기대와 주변국 반응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었다.

[청와대 집무실 이전]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로 이전하고 첫 출근을 했다.

윤석열 정부의 용산 대통령실 체제에서 다시 청와대 중심 체제로 돌아갔다.

대통령실 운영 방식과 상징 공간이 바뀌었다.

청와대 복귀는 행정 효율성과 상징성 회복을 내세운 조치였다. 반면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비용과 정치적 메시지를 둘러싼 논쟁도 이어졌다.

2026

[중국 국빈방문]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열었다.

한중 관계 관리와 경제 협력이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새해 첫 대형 외교 일정으로 주목받았다.

중국 국빈방문은 한미동맹 강화와 대중 관계 안정 사이의 균형을 보여주는 일정이었다. 반도체, 공급망, 한반도 정세가 복합적으로 얽힌 외교 과제였다.

[신년 기자회견]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2026년 국정 운영 방향을 밝혔다.

경제, 외교안보, 사회개혁 과제를 설명했다.

집권 2년 차 국정 드라이브를 예고했다.

신년 회견은 정부 출범 이후의 성과와 과제를 정리하는 자리였다. 특히 개혁 입법과 민생경제 관리가 향후 정국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윤석열 무기징역 선고]

서울중앙지법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내란우두머리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비상계엄 사태의 사법적 책임이 중대한 1심 판단으로 이어졌다.

이재명 정부 출범의 배경이 된 정치적 위기가 다시 부각됐다.

이 판결은 한국 헌정사에서 전직 대통령의 내란 혐의 판단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졌다. 지지층과 반대층의 정치적 해석이 갈리며 사회적 파장도 컸다.

[중동상황 비상점검]

중동상황 비상경제 점검회의를 가동했다.

에너지 가격과 물가, 수출입 영향을 점검하기 위한 대응이었다.

외부 안보 위기가 국내 민생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

중동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긴장은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했다. 정부는 물가, 에너지 수급, 해운 안전을 함께 관리해야 했다.

[공소청법 통과]

공소청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검찰청 폐지 이후 수사와 기소 체계를 재편하는 후속 입법이었다.

이재명 정부 권력기관 개편의 핵심 단계가 되었다.

공소청 설치는 검찰 개혁의 제도적 완성을 향한 조치로 평가됐다. 반면 수사 역량 저하와 정치적 중립성 논란은 계속 남았다.

[대북 무인기 유감 표명]

대북 무인기 논란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했다.

한반도 긴장 고조를 막기 위한 신중한 대응을 강조했다.

안보 현안에서 평화 관리 기조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무인기 문제는 남북관계와 군사적 긴장을 동시에 자극하는 사안이었다. 정부는 안보 태세를 유지하면서도 확전 방지를 우선하는 메시지를 냈다.

[개헌안 처리 무산]

개헌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국민의힘 불참으로 처리는 무산됐다.

권력구조와 헌정질서 개편 논의가 다시 정치 쟁점화됐다.

개헌 추진은 이재명 정부 중반기의 대형 정치 과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여야 합의 없는 개헌 논의는 정국 갈등을 키우는 요인이 되었다.

[지방선거 여당 승리]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6개 광역단체장 중 12곳을 차지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만에 치른 첫 전국 단위 선거였다.

여당은 지방권력 교체에 성공했지만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패배했다.

민주당은 입법·행정 권력에 이어 지방권력까지 상당 부분 확보했다. 다만 서울 패배와 일부 재보궐선거 결과로 인해 ‘미완의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투표용지 부족 유감 표명]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큰 유감을 표명했다.

선거 관리의 허점을 지적하며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을 지시했다.

국민의 참정권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혼란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선거관리위원회 개혁과 선거 관리 신뢰성 문제로 이어졌다.

[한성숙 총리 후보 지명]

김민석 국무총리 후임으로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명했다.

네이버 CEO 출신의 IT 전문가를 총리 후보자로 발탁한 파격 인사였다.

AI 대전환과 민간 혁신 경험을 인선 배경으로 설명했다.

한 후보자가 임명되면 한명숙 전 총리 이후 약 20년 만의 여성 국무총리가 된다. 다주택 문제 등 인사청문회 쟁점도 함께 제기되었다.

[취임 1주년 회견]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열고 4대 국정목표를 제시했다.

‘대체 불가 대한민국’과 ‘K-이니셔티브’라는 비전을 내세웠다.

초격차 산업, 외교안보, 정상사회, 사회안전망을 핵심 방향으로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 1년을 민주주의 위기, 통상·안보 위기, 중동전쟁에 따른 민생 위기의 파고를 넘은 시기로 평가했다. 향후에는 혁신적 실용 정부와 국민 삶 중심의 국정 운영을 강조했다.

[유럽 순방 시작]

벨기에와 EU, 이탈리아, 교황청 방문 및 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유럽 순방을 시작했다.

브뤼셀 동포 간담회를 시작으로 정상회담 일정을 이어갔다.

순방은 6월 18일까지 진행되는 일정으로 발표됐다.

이번 순방에는 벨기에 정상회담, EU 정상회담, 이탈리아 국빈 일정, 교황 면담, 프랑스 에비앙 G7 정상회의 참석이 포함됐다. 개발 협력, 글로벌 경제 불균형, AI와 디지털 문제 등이 주요 의제로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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