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버가

왕가, 귀족 가문, 통치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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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가는 700년대 루카 백작으로 시작하여 브라운슈바이크와 뤼네부르크 공작, 하노버 선제후 및 왕, 그레이트브리튼과 아일랜드의 왕, 인도의 황제를 배출한 유럽의 명문 왕가입니다. 1714년 영국 왕위 계승법으로 인해 영국과 동군연합을 이루었으나, 살리카 법으로 인해 빅토리아 여왕 때 동군연합이 깨졌습니다. 보오전쟁 패배로 하노버 왕국은 프로이센에 합병되었고, 이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지위를 회복하려 했으나 세계 대전 패배로 좌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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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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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하노버가 시조, 루카의 리치볼드 가문 수장 취임]

하노버가의 시조로 알려진 루카의 리치볼드가 가문의 수장이 되며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700년에 루카의 리치볼드가 가문의 수장이 되면서 하노버가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761년까지 가문을 이끌었습니다.

761

[보니파티우스 1세, 루카 백작 작위 승계]

보니파티우스 1세가 루카 백작 작위를 승계하며 하노버 가문의 영지가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리치볼드의 뒤를 이어 761년에 보니파티우스 1세가 루카 백작이 되었고, 785년까지 루카를 통치했습니다.

891

[아달버트 1세, 토스카나 후작 작위 획득]

아달버트 1세가 토스카나 후작 작위를 얻으며 하노버 가문이 토스카나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아달버트 1세가 토스카나 후작이 되어 하노버 가문의 지위와 영향력이 강화되었습니다. 그는 891년까지 후작으로 활동했습니다.

1029

[아달버트 아즈오 1세, 밀라노 후작 작위 획득]

아달버트 아즈오 1세가 밀라노 후작 작위를 얻으며 하노버 가문이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지역까지 진출했습니다.

아달버트 아즈오 1세가 밀라노 후작 작위를 획득하여 가문의 영토 확장과 영향력 증대를 이루었습니다. 그는 1029년까지 후작으로 재임했습니다.

1101

[윌프 1세, 바이에른 공작 작위 획득]

윌프 1세가 바이에른 공작이 되면서 하노버 가문이 독일 지역의 주요 공작 가문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윌프 1세가 바이에른 공작 작위를 얻어 하노버 가문이 독일 내 중요한 정치적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101년까지 공작으로 활동했습니다.

1213

[윈체스터의 윌리암, 뤼네부르크 공작 작위 획득]

윈체스터의 윌리암이 뤼네부르크 공작 작위를 얻어 하노버 가문이 뤼네부르크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윈체스터의 윌리암이 뤼네부르크 공작 작위를 받아 가문의 영지가 뤼네부르크 지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는 1213년까지 공작으로 재임했습니다.

[오토 1세,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취임]

오토 1세가 브라운슈바이크와 뤼네부르크 공작이 되어 두 지역을 통합 통치하며 가문의 세력을 공고히 했습니다.

오토 1세가 1213년에 브라운슈바이크와 뤼네부르크 공작 작위를 승계하여 1252년까지 두 지역을 함께 다스렸습니다.

1636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공작, 하노버로 왕궁 이전]

브라운슈바이크와 뤼네부르크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왕궁을 하노버로 이전하여 하노버 지역의 중요성을 증대시켰습니다.

1636년, 당시 브라운슈바이크와 뤼네부르크의 공작이었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자신의 왕궁을 하노버로 옮기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하노버는 가문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됩니다.

1692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하노버 선제후로 승격]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공작이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로 승격되면서 그의 영지가 하노버 선제후국으로 불리게 되어 가문의 위상이 크게 상승했습니다.

1692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가 되었습니다. 그의 왕궁이 하노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영지는 하노버 선제후국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이는 하노버 가문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701

[영국 왕위계승법 제정]

영국 의회가 왕위계승법(Act of Settlement)을 제정하여 하노버 가문에 영국 왕위 계승권을 부여했습니다.

1701년, 영국의 왕위계승법이 제정되면서 하노버 가문은 스튜어트 왕조의 단절 시 영국 왕위를 계승할 권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훗날 하노버와 영국의 동군연합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법적 기반이 됩니다.

1714

[게오르크 1세, 영국 국왕 조지 1세로 즉위 및 동군연합 수립]

하노버 선제후 게오르크 1세가 영국의 조지 1세로 즉위하며 하노버와 영국이 동군연합을 형성, 역사상 유례없는 양국 간의 긴밀한 관계를 시작했습니다.

1714년, 하노버의 선제후였던 게오르크 1세가 영국의 왕위를 계승하여 조지 1세로 즉위했습니다. 이로써 하노버와 그레이트브리튼은 한 군주를 공유하는 동군연합 관계를 맺게 되었고, 하노버 가문은 영국 왕실의 지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1814

[하노버 선제후국, 하노버 왕국으로 승격]

하노버 선제후국이 하노버 왕국으로 승격되면서 하노버 가문의 영지가 더욱 높은 독립적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1814년, 하노버 선제후국은 왕국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이는 빈 회의의 결과로, 하노버 가문의 지위가 격상되었음을 의미하며, 영국의 국왕이 계속해서 하노버의 국왕을 겸임하게 됩니다.

1837

[영국-하노버 동군연합 해체]

영국의 윌리엄 4세가 사망하고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했으나, 하노버 왕국은 살리카 법을 따랐기 때문에 동군연합이 해체되고 하노버는 별도의 국왕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837년, 윌리엄 4세 국왕의 사망 후, 그의 조카인 빅토리아가 영국 여왕으로 즉위했습니다. 그러나 하노버 왕국은 여성의 왕위 계승을 금지하는 살리카 법을 따랐기 때문에, 빅토리아 여왕은 하노버의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123년간 이어져 온 영국과 하노버의 동군연합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1866

[하노버 왕국, 프로이센에 합병]

하노버 왕국이 보오전쟁에서 오스트리아 편에 서서 참전했다가 패배하여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되면서 독립국으로서의 역사를 마감했습니다.

하노버 왕국은 1866년에 발발한 보오전쟁(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의 편에 서서 참전했으나, 프로이센의 승리로 인해 패전국의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로 하노버 왕국은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되어 독립적인 국가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1913

[하노버 가문 인사,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으로 즉위]

하노버 왕가 출신이 독일 제국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으로 즉위하며, 잃었던 영지를 되찾고 하노버 왕국 재건의 희망을 품었습니다.

1913년, 하노버 왕가의 일원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독일 제국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으로 취임했습니다. 이는 하노버 가문이 한동안 잃었던 통치권을 다시 확보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여겨졌습니다.

1918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지위 상실]

독일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었던 하노버 가문 인사는 공작 지위를 잃고 통치권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제국이 패배하고 군주정이 붕괴되면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었던 하노버 가문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공작 지위를 잃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하노버 가문은 모든 통치권을 상실하고, 독립적인 정치 세력으로서의 역할은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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