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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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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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 해상 무기, 문화재, 대중문화 + 카테고리
거북선(귀선)은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조선 수군의 전설적인 돌격용 군함입니다. 고려 말기의 과선과 여말선초의 검선을 참고하여 태종 대에 최초로 그 개념이 등장했으며, 임진왜란 직전 이순신과 나대용 등의 주도하에 기존 판옥선을 개조하여 실전형 거북선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선체 위에 지붕을 덮고 쇠못을 빼곡히 박아 일본 수군의 핵심 전술이었던 등선육박전(백병전)을 원천 차단하였고, 용머리 충각과 사방에 배치된 포문을 통해 전후좌우 어디서든 막강한 화력을 쏟아낼 수 있는 당대 최고의 해상 요새였습니다. 1592년 사천 해전에서 처음 실전에 투입된 이래,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의 지휘 아래 궤멸되기 전까지 조선 수군의 16전 16승을 이끌며 일본군에게 극도의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대략 125~130명의 인원이 탑승하였으며 전라좌수군 방답진, 본영, 통제영 등에 편제되어 주력 돌격선으로 맹활약했습니다. 이후에도 조선 후기까지 계속해서 연구 및 개량되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공원, 교량 등 대중문화와 국가적 상징물 전반에 걸쳐 호국과 혁신의 아이콘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390

[과선 및 검선의 운용]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 거북선의 모태가 되는 과선과 검선이 개발되어 실전에 운용되었습니다.
과선(戈船)과 검선(劍船)은 배에 뾰족한 칼날을 박아 적의 등선육박전을 막는 방어적 형태를 갖춘 군함이었습니다. 이러한 선박들의 독특한 구조적 특징은 훗날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거북선의 지붕 덮개와 쇠못 장식을 설계하는 데 핵심적인 영감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1413

[조선왕조실록 첫 거북선 기록]

태종실록에 조선 국왕 태종이 거북선이 왜선과 싸우는 모습을 관람했다는 내용이 처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과 세부 구조가 완전히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거북선(龜船)'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인 역사 기록에 최초로 등장한 중요한 순간입니다. 조선 수군이 건국 초기부터 왜구에 대항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신형 함선과 전술을 개발해왔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1415

[좌대언 탁신의 상소]

태종 15년, 좌대언 탁신이 거북선의 군사적 효용성을 극찬하며 이를 더욱 견고히 만들 것을 상소하였습니다.
탁신은 상소를 통해 '거북선의 법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결승의 좋은 계책'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당시의 거북선 역시 적의 공격을 방어해내기 위한 특수한 방호 장비를 갖춘 돌격선 형태였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1555

[거북선의 뼈대, 판옥선 개발]

명종 시기에 조선 수군의 새로운 주력함인 전선(戰船), 즉 판옥선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어 실전에 배치되었습니다.
기존의 맹선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판옥선은 높고 견고한 평저선 구조를 지녀 화포 운용과 방어에 매우 유리했습니다. 훗날 이순신 장군은 이 판옥선의 튼튼한 기본 형태를 바탕으로 덮개를 씌워 임진왜란형 거북선을 완성하게 됩니다.

1556

[거북선 설계자 나대용 출생]

거북선 건조와 병기류 제조에 핵심적인 기여를 한 조선 중기의 무관 체암 나대용이 출생했습니다.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난 그는 훗날 전라좌수영에 합류하여 조선 최고의 선박 기술자로 활약하게 됩니다. 그의 뛰어난 설계 및 건조 능력은 조선 수군이 임진왜란 해전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하는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591

[이순신, 전라좌수사 부임]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어 부임하면서 일본의 침략에 대비한 대대적인 수군 전력 강화에 돌입했습니다.
기존 규정에 없는 새로운 형태의 신형 군함을 만든다는 것은 엄격한 법치주의 국가인 조선에서 지휘관의 엄청난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박한 전쟁을 예견하고 기존 판옥선의 장점을 극대화한 돌격선, 즉 신형 거북선의 개발을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실전형 거북선 건조 착수]

전라좌수영 본영을 중심으로 나대용 등의 건조 책임자들이 참여하여 임진왜란형 거북선 건조에 본격 착수했습니다.
적의 조총과 백병전을 막기 위해 배 위에 나무 지붕을 씌우고 그 위에 쇠못을 빼곡히 박아 상륙을 원천 봉쇄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선체 앞부분에는 심리적 위압감을 주고 직사 화포를 쏠 수 있는 거대한 용머리 충각이 설치되었습니다.

1592

[거북선의 돛 제작 개시]

난중일기 기록에 따르면, 전라좌수영에서 새로 건조 중인 거북선에 장착할 돛의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일기에 거북선의 돛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명확히 기록하며 철저한 전쟁 준비 상황을 남겼습니다. 이는 거북선이 단순히 노를 젓는 인력뿐만 아니라 바람의 힘을 이용하는 기동력까지 갖춘 전함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최초의 거북선 화포 시험]

건조가 막바지에 이른 거북선을 띄워 전라좌수영 앞바다에서 함포를 시험 발사하며 성능을 점검했습니다.
거북선 내부의 사방에 뚫린 포문을 통해 화포가 정상적으로 발사되는지, 발사 시 선체의 충격과 균형은 안전한지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완전 무장 상태에서 승조원을 보호한 채 전후좌우로 집중적인 화력을 뿜어낼 수 있는지 검증한 역사적인 날입니다.

[거북선 돛베 제작 완료]

거북선의 추진력을 담당할 대형 돛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베(옷감) 제작 작업이 최종 완료되었습니다.
이로써 거북선의 기동을 위한 필수적인 항해 부속품들이 모두 준비되었으며, 실전 투입을 위한 최종 점검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조선 수군의 꼼꼼하고 빈틈없는 군수 물자 조달 시스템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자총통 및 현자총통 사격 점검]

임진왜란 발발 하루 전날, 거북선에 장착된 핵심 화기인 지자총통과 현자총통의 실사격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대형 천자총통보다는 실질적인 명중률과 효율성이 뛰어난 지자총통이 주로 거북선에 장비되어 사용되었음이 추측됩니다. 이 마지막 화력 점검을 끝으로,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대위기에 맞설 조선의 결전 병기가 완벽히 준비를 마쳤습니다.

[임진왜란 발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대규모 일본군이 부산진을 침공하며 조선 최대의 전란인 임진왜란이 발발했습니다.
수륙 양면으로 밀고 올라오는 일본군의 압도적인 공세 앞에 조선의 방어선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습니다. 육전에서의 참패와 달리, 이순신 장군이 준비한 거북선과 판옥선 함대는 곧 바다에서 전황을 뒤집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천 해전과 거북선의 첫 출전]

경상도 사천 앞바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거북선이 역사상 최초로 실전에 투입되어 적함 13척을 전멸시키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거북선은 일본 수군의 진형 한가운데로 거침없이 돌진하여 사방으로 화포를 쏘며 적군의 기선을 완벽하게 제압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거북선을 직접 지휘하고 개발에 참여했던 나대용이 적의 총탄에 맞아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당포 해전에서의 맹활약]

당포 앞바다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거북선이 다시 한번 선봉 돌격선으로 투입되어 일본 수군을 격파했습니다.
거북선이 먼저 적의 대장선에 접근하여 용머리로 들이받고 화포를 쏟아부어 지휘 체계를 붕괴시키는 전술이 완벽히 적중했습니다. 빠른 기동성으로 배를 탈취하거나 불태우는 일본 수군의 주특기가 거북선의 덮개와 화력 앞에서는 철저히 무력화되었습니다.

[제1차 당항포 해전]

경남 고성 당항포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 함대를 궁지로 몰아넣고 대승을 거두었으며 거북선이 승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좁은 만으로 적을 유인한 뒤 퇴로를 차단하고, 거북선이 앞장서서 적의 진형을 헤집어 놓는 위력적인 전투가 전개되었습니다. 이 연이은 승리로 인해 거북선은 일본군 병사들 사이에서 공포와 전의 상실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율포 해전 승리]

거제도 율포 앞바다에서 도주하려는 일본 함대를 추격하여 거북선을 앞세워 또 한 번의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조선 수군의 판옥선과 거북선의 유기적인 연계 전술이 빛을 발하며 적선을 끝까지 추적해 격침시켰습니다. 이 전투들을 통해 남해안의 제해권이 서서히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한산도 대첩의 선봉장]

통영 한산도 앞바다에서 유명한 학익진 전술이 펼쳐지는 가운데, 거북선이 적진을 돌파하는 핵심 돌격선으로 참전했습니다.
거북선은 학익진의 포위망 속에서 적장의 기함과 주력 부대를 향해 종횡무진 돌격하며 적의 대열을 산산조각 내었습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이 위대한 승리에서 거북선의 무자비한 방어력과 파괴력은 그 가치를 절정으로 증명했습니다.

[안골포 해전 승리]

한산도 대첩 직후, 진해 안골포에 정박해 있던 일본 수군의 구원 부대를 거북선과 판옥선 함대가 급습하여 궤멸시켰습니다.
수심이 얕아 좁은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거북선의 단단한 선체와 화력 집중력을 활용하여 적의 저항을 무력화했습니다. 이로써 일본 수군의 주력 전력은 완전히 마비되었고, 평양까지 진격했던 일본 육군의 보급로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부산포 해전의 거침없는 진격]

일본군의 본거지이자 적선 400여 척이 정박해 있던 부산포 앞바다에 거북선이 앞장서서 진입하여 적 함대를 파괴했습니다.
압도적인 숫자의 적선이 모인 적의 심장부였음에도 거북선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적의 맹렬한 포화를 뚫고 들어가 적선 수십 척을 박살냈습니다. 이 전투로 인해 일본군은 바다를 통한 진출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고 해안가에 왜성을 쌓고 방어에만 급급하게 되었습니다.

1593

[거북선 3척 체제 편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며 통제영이 창설되었고, 수군 내에 공식적으로 거북선 3척이 편제되어 운영되었습니다.
당시 조선 수군에는 전라좌수군 방답진에 소속된 방답귀선, 전라좌수영 본영의 영귀선, 그리고 통제영 창설 후 새로 건조된 통제영 귀선이 있었습니다. 대략 정 4품 급의 함장 1명과 장령 5~6명, 수군 병력 80명, 노 젓는 격군 40명 등 130명 규모의 인원이 1척의 거북선에 탑승하는 체계가 확립되었습니다.

1597

[정유재란의 발발]

명나라와 일본 간의 기나긴 강화 교섭이 최종 결렬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일본군이 조선을 재침략했습니다.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선봉대가 부산에 상륙하며 두 번째 전쟁의 참혹한 서막이 올랐습니다. 일본군은 이번에는 전라도 지역을 우선적으로 점령하고 조선 수군을 궤멸시키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쳐들어왔습니다.

[이순신 파직과 원균 통제사 부임]

조정의 당쟁과 일본의 반간계에 휘말린 이순신 장군이 파직되어 한양으로 압송되고, 그 자리에 원균이 신임 통제사로 부임했습니다.
거북선과 무적의 판옥선 함대를 완벽하게 지휘하던 명장의 부재는 조선 수군에 치명적인 공백을 가져왔습니다. 원균은 이순신이 육성해 놓은 거북선 3척을 포함한 160여 척의 막강한 함대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지휘봉을 잡게 되었습니다.

[칠천량 해전과 거북선의 궤멸]

거제도 인근 칠천도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에게 참혹한 기습을 당해 대패하였습니다.
지휘부의 오판과 무능으로 인해 조선 수군 2만여 명이 전사하고 판옥선 140여 척이 침몰하는 등 전력이 완전히 궤멸되었습니다. 특히 이순신 장군과 수군들이 피땀 흘려 건조했던 방답귀선, 영귀선, 통제영 귀선 등 거북선 3척이 이때 모조리 침몰하는 뼈아픈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

칠천량의 비극적인 패보를 접한 선조가 다급히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권시켰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남은 것은 배설이 도망치며 수습해 온 고작 12척의 판옥선뿐이었으며, 위용을 자랑하던 거북선은 단 한 척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후 명량 해전 등에서는 거북선 없이 오직 판옥선만으로 기적적인 승리를 일구어내야만 했습니다.

1598

[노량 해전 승리와 임진왜란 종전]

도주하는 일본 함대를 노량 앞바다에서 가로막고 섬멸적인 타격을 입히며 7년간의 임진왜란이 마침내 끝을 맺었습니다.
이 치열한 최후의 결전에서 조선 수군은 대승을 거두었으나, 위대한 영웅 이순신 장군이 적의 흉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거북선의 신화적 위력은 후대 수군들에게 큰 영감을 주어 지속적으로 새로운 거북선 건조가 시도되었습니다.

1610

[후계함 해추선(海鰍船) 고안]

남해현령으로 제수된 나대용이 과거 거북선과 판옥선의 장단점을 분석 및 개량하여 새로운 쾌속선인 해추선을 고안해 냈습니다.
거북선은 방어력이 뛰어나고 돌격에 능했지만 무거워서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는 단점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해추선은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여 칼을 꽂은 검선의 특징과 빠른 기동성을 결합한 진일보한 해상 무기로 설계되었습니다.

1612

[선박 기술자 나대용 타계]

거북선 개발의 주역이자 조선 최고의 선박 기술자였던 나대용 장군이 전쟁 중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전년도에 경기 수군을 관할하는 교동수사로 제수되었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끝내 부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현재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에는 그를 기리는 소충사라는 사당과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그의 업적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1795

[이충무공전서 발간 및 도면 수록]

정조의 명으로 이순신 장군의 기록을 집대성한 문집인 '이충무공전서'가 정식으로 편찬 및 간행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당시 해군이 운용 중이던 '통제영 귀선'과 '전라좌수영 귀선'의 두 가지 거북선 목판화 도면과 상세한 제원이 수록되었습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척도가 장대해지고 총안과 노의 수가 늘어나는 등 거북선의 외형이 꾸준히 변화하고 개량되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입니다.

1883

[영국 해군 보고서의 철갑선 언급]

영국 해군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서양 세계에 '고려(조선)에는 철판을 덮은 전선이 있다'는 내용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신문을 통해 이 소식이 전파되면서 이순신 장군이 창제한 거북선이 역사상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는 타이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철갑을 전면적으로 둘렀는지에 대해서는 현대 학계에 여러 이견이 존재하지만, 선체 상부에 방어용 철제 부품을 활용한 혁신성은 분명히 인정받고 있습니다.

1901

[하야시 다이스케의 철갑선 기술]

일제 식민사학의 대표적 인물인 하야시 다이스케가 저술한 '조선통사'에서 거북선을 철갑선으로 명확히 기술하였습니다.
일본 측의 역사서에서도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을 공포에 떨게 한 거북선의 위압적인 외형과 철제 방어구의 존재를 인정하고 기록으로 남긴 사례입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후대 학자들과 대중들에게 거북선이 완벽한 철갑선이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56

[전통 선박 전시회용 모형 제작]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정부 차원에서 만들어진 거북선 모형이 전통 선박 모형 전시회에 공식 기증되었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흑백 사진 속의 모형이 훗날 인터넷상에서 '서양 선교사가 구한말에 직접 찍은 실제 거북선 사진'으로 잘못 알려지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이는 현대에 들어서 거북선의 형태를 시각적으로 복원하려 한 초창기의 국가적 시도 중 하나였습니다.

1957

[거북선 모티브 무술 '뫄한뭐루' 창시]

거북선의 견고한 구조와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 전술에서 형태적, 철학적 영감을 얻어 창안된 현대 무술 '뫄한뭐루'가 등장했습니다.
하림 김정윤 선생에 의해 창시된 이 무예는 빙글빙글 도는 독특한 보법을 통해 사방의 적을 방어하고 공격하는 거북선의 전투 방식을 신체 동작으로 구현했습니다. 군함을 무술의 원리로 승화시킨 매우 독창적이고 이색적인 문화적 파생 사례입니다.

1979

[SF 애니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 방영]

송정률 감독이 제작하고 MBC에서 방영한 극장판 공상과학 애니메이션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이 개봉하여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환경 오염으로 멸망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출격하는 최첨단 우주 전함의 디자인으로 거북선의 외형을 채택했습니다. 작중 위기의 순간에 전함 내부에 수납되어 있던 태권브이가 등장하여 당시 극장의 수많은 어린이 관객들을 열광하게 만들었습니다.

1980

[실물 크기 거북선 복원 사업]

1980년대를 전후하여 국가적 차원의 고증과 설계를 바탕으로 실물 크기의 거북선 복제품들이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해군사관학교나 주요 전쟁기념관 등에 전시되어 있는 대형 거북선 모형들의 상당수가 이 시기에 복원된 결과물들입니다. 완벽한 원형 설계도가 남아있지 않아 용머리의 크기나 충각의 형태, 대포문의 위치 등 세부적인 구조를 두고 학계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최고급 담배 '거북선' 출시 및 경쟁]

한국담배인삼공사(현 KT&G)에서 거북선의 이름을 딴 200원짜리 최고급 브랜드 담배를 시장에 전격 출시했습니다.
출시 초기에는 세련된 디자인과 애국적인 이름표로 인기를 끌었으나, 1980년에 대중적인 국민 담배 '솔'이 등장하면서 시장 점유율에서 크게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영문 표기인 'GEOBUGSEON'을 본 주한미군 등 외국인들이 발음의 어려움으로 인해 종종 '조벅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1989

[거북선 담배 공식 단종]

한때 고급 담배 시장을 노렸던 '거북선' 담배가 판매량 감소 등의 이유로 1989년을 끝으로 생산이 완전히 중단되었습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흡연자들의 기호가 변하고 대체재가 늘어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추억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품명을 통해 거북선이라는 역사적 상징이 대중의 일상 소비재 깊숙이 스며들었던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됩니다.

1992

[여수 거북선공원 준공]

대한민국 전라남도 여수시 학동에 거북선의 역사적 의의를 기리는 거대한 테마 공원이 공식적으로 조성되었습니다.
면적 48,630 제곱미터의 넓은 부지 중앙에 거북이 등껍질 모양을 본뜬 거대한 인공 호수와 분수대가 설치되었습니다. 실물 형태의 거북선 조형물을 비롯해 야외무대, 고인돌, 체육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어 시민들의 훌륭한 휴식처이자 역사 교육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2007

[후계함 해골선(海鶻船) 도면 발굴]

거북선의 후계함 격으로 개발되었다는 기록만 존재하던 매 형태의 전함 '해골선'의 그림 자료가 학계에 극적으로 발굴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해골선은 실체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전무하여 오랫동안 정체불명의 환상 속 군함으로만 남아있었습니다. 발견된 도면 속 해골선은 맹금류인 매를 형상화한 귀엽고 독특한 외형을 지니고 있어 당시 언론과 대중의 큰 관심을 끌어모았습니다.

2012

[여수 거북선대교 개통]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과 자산터널을 잇는 길이 744m의 웅장한 사장교인 '거북선대교'가 정식 개통되었습니다.
엑스포대로와 국도 제17호선이 지나는 핵심 교통망으로, 여수 세계박람회 개최에 맞춰 인프라 확충의 일환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라좌수영 본영이 있던 여수 앞바다의 상징성을 담아 다리 이름을 명명하여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올랐습니다.

2014

[해외 다큐멘터리 'Ancient Impossible' 조명]

세계적인 역사 채널인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Ancient Impossible'에서 거북선을 고대의 경이로운 무기로 비중 있게 다루었습니다.
방송에서는 거북선의 용머리에서 서양의 전설적인 무기인 '그리스의 불'과 독가스를 내뿜는 무시무시한 결전 병기라고 극찬하며 다소 과장되게 묘사했습니다. 서구권 시청자들에게 아시아의 혁신적인 철갑 해상 요새로서 거북선의 위용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0

[DECK 키보드 거북선 에디션 출시]

글로벌 기계식 키보드 제조사인 덱(DECK)에서 한국 소비자의 니즈를 철저히 반영한 한정판 '거북선' 모델을 정식 출시했습니다.
회사 이름인 DECK이 배의 갑판을 의미하고, 자사의 모든 키보드 라인업이 함선 이름(프랑슘, 헤슘 등)인 점에 착안하여 한국 특별판의 이름을 거북선으로 정했습니다. 키캡에 이순신 장군의 명언인 '필사즉생 필생즉사'를 새겨 넣는 등 거북선이 첨단 IT 기기의 디자인 테마로도 훌륭하게 접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23

[거제 짝퉁 거북선 철거]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 건조되었으나 관리 부실과 목재 부패로 흉물로 전락했던 거제도의 대형 거북선 모형이 결국 철거되었습니다.
당초 20억 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들여 제작되었으나, 값싼 수입 목재를 사용한 것이 적발되는 등 건조 과정부터 수많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결국 경매 시장에서 단돈 154만 원에 낙찰되는 굴욕을 겪은 끝에 해체 폐기되며, 지자체의 무리한 역사 복원 사업에 대한 씁쓸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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