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
군함, 전투선, 조선시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7- 21:04:08
거북선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전투선으로, 판옥선을 기반으로 독특하게 덮개를 씌운 형태를 가졌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직전 건조하여 사천 해전에서 첫 출전한 이래, 일본 수군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며 조선 수군의 16전 16승에 크게 기여했다. 강력한 화포와 견고한 방어력을 겸비한 돌격선으로, 조선 해전사의 상징이자 세계 해군사에서도 독창적인 군함으로 평가받는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꾸준히 발전하며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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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
[거북선 첫 기록]
태종실록에 따르면,
태종 13년(1413년) "임금이 임진강 나루[臨津渡]를 지나다가 거북선(龜船)과 왜선(倭船)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태종실록》 25권, 태종 13년 2월 5일)
이때 이미 '거북선'이라는 이름의 배가 존재했으며, 왜선과의 모의 전투 훈련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415
[거북선 성능에 대한 기록]
태종실록에 따르면,
태종 15년(1415년) 좌대언(左代言) 탁신(卓愼)이 올린 상소 내용 중에 "‘거북선(龜船)’의 법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가히 결승(決勝)의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戰勝)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라는 구절이 있다. (《태종실록》 30권, 태종 15년 7월 16일)
거북선이 매우 견고하여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돌격선(突擊船)의 개념으로 개발되었음을 보여준다.
1592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따르면, 임진왜란 직전인 1592년(선조 25) 음력 3월 27일(양력 5월 7일)에 전라좌수영 여수 앞바다에서 거북선이 처음 진수되었다. 이는 임진왜란 발발 직전 조선 수군의 핵심 전력으로 거듭날 거북선이 마침내 그 위용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거북선, 실전용 최종 완성]
일본의 침공 단 하루 전, 거북선에 지자포와 현자포 시사를 성공적으로 마쳐 실전 투입 준비를 완료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따르면, 1592년(선조 25) 음력 4월 12일(양력 5월 22일), 일본의 침공 단 하루 전에 거북선에 지자포·현자포 등의 화포를 장치하고 시사를 성공적으로 마쳐 실전용으로 최종 완성되었다. 이는 임진왜란 발발 직전, 조선 수군의 핵심 전력인 거북선이 전장에 투입될 준비를 마쳤음을 의미한다.
[사천 해전, 거북선 첫 출전 및 대승]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거북선이 사천 해전에서 일본 수군을 상대로 첫 전투에 참전하여 맹활약하며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1592년(선조 25) 음력 5월 29일(양력 7월 8일), 거북선은 사천 해전에서 첫 출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거북선은 적진으로 돌격하여 화포를 집중적으로 발사하며 일본 수군에 큰 타격을 입혔고, 이순신 장군은 이 전투에서 일본 수군과의 16전 16승의 서막을 열었다. 거북선의 등장은 일본 수군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1595
[조정, 거북선 제조 독려]
조정의 비변사가 거북선의 뛰어난 전과와 중요성을 인정하고, 해전 승리를 위해 거북선 제조를 더욱 서두를 것을 건의했다.
1595년(선조 28) 비변사는 거북선이 해전에서 승리하는 데 매우 요긴하며, 적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라고 보고하며 경상도와 전라도의 방어를 위해 거북선 제조를 서둘러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는 거북선이 임진왜란 초기부터 그 가치를 충분히 증명했음을 보여준다.
1597
[칠천량 해전, 거북선 모두 침몰]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군에게 대패하면서, 참전했던 모든 거북선이 침몰하고 말았다.
1597년(선조 30) 음력 7월 16일(양력 8월 28일) 새벽에 벌어진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군에 의해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당하면서, 당시 참전했던 거북선들은 모두 침몰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 해전은 임진왜란 중 조선 수군이 겪은 가장 큰 패배로 기록되었다.
1606
[판옥선-거북선 결합한 창선 제작]
임진왜란 이후 거북선의 활약을 바탕으로, 판옥선과 거북선의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전투선 '창선'이 제작되었다.
1606년(선조 39년)에는 임진왜란 이후 수군의 전력 보강을 위해 판옥선과 거북선의 장점을 결합한 '창선'이 만들어졌다. 이 창선은 칼과 창을 빽빽이 꽂아 만들었으며, 격군 42명이 저어 판옥선보다 훨씬 빨랐다. 이는 거북선이 조선 군선 개발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622
1622년(광해군 14년) 조선 광해군이 다시 거북선을 만들어 수군을 재정비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는 임진왜란 이후에도 거북선이 조선 수군의 핵심 전력으로 인식되었으며, 전란으로 약화된 수군을 강화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
1687
[김수항, 거북선 개조 및 크기 유지 건의]
영의정 김수항이 기존 전선을 거북선으로 개조하고, 임진왜란 당시처럼 크게 만들지 않도록 경계할 것을 건의했다.
1687년(숙종 13년) 영의정 김수항은 기존 전선 3~4척을 개조하여 거북선으로 만드는 것과 임진왜란 때와 같이 크기가 커지는 것을 경계하도록 건의했다. 이는 거북선이 시대가 지나면서 형태나 크기가 변형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효율적인 운용을 위한 고민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1735
[윤필은, 거북선 3층 구조 개조 선보여]
별군직 윤필은이 이삼과 함께 거북선을 개조하여 3층 구조와 탈착식 방패, 풍랑에 강한 선수 디자인을 선보였다.
1735년(영조 11년) 별군직 윤필은이 이삼과 더불어 거북선을 개조했다. 이때 거북선은 3층 구조로 가장 위층에 설치된 방패를 탈착식으로 개조하고, 선두에 곡목을 덧붙여 뾰족하게 만들어 풍랑을 뚫고 가기에 용이하게 만들었다. 이 개조된 모형은 내전에 가지고 와 선보였다.
1751
[박문수, 거북선 총구 수 원상복구 주장]
영남 균세사 박문수가 거북선의 전선 개조 시 크기가 커지고 운용이 어려워지는 문제를 지적하며, 좌우 총구를 원래대로 줄일 것을 주장했다.
1751년(영조 27년) 영남 균세사 박문수는 전선이 개조할 때마다 길어지고 커져서 운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순신의 기록에는 거북선 좌우에 각각 6개의 총구가 있으나 그 당시에는 8개가 있어 원래대로 줄일 것을 주장하며 거북선 원형의 효율성을 강조했다.
1808
[순조, 거북선 현황 문의 및 이당 보고]
조선 순조가 전 통제사 이당에게 거북선 현황을 물었고, 이당은 여전히 통영 수군에 거북선이 남아있으며 왜인들이 경탄한다고 보고했다.
1808년(순조 8년) 조선 순조는 전 통제사 이당에게 거북선에 대해 물었다. 이당은 통영의 수군에 아직 거북선이 있으며 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고 노 없이 떠다닐 때는 마치 거북이 떠있는 듯한 모습이며 입과 코에서 연기가 나오는데 아직도 왜인들이 이를 보면 사람 잡는 기계라며 놀란다고 보고하였다. 이는 거북선이 후대에도 그 위용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867
1867년(고종 4년) 의정부에서 거북선의 재배치에 관한 정책을 건의하였다. 이는 조선 말기까지도 거북선이 수군 전력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주며, 국가 방어를 위한 노력이 지속되었음을 시사한다.
1966
[5원 동전에 거북선 도안]
대한민국 5원 동전 앞면에 거북선이 도안으로 새겨져 발행되기 시작하여, 거북선이 한국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1966년 이후로 발행된 대한민국 5원 동전 앞면에는 거북선이 도안으로 새겨졌다. 이는 거북선이 단순한 역사적 유물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호국정신을 기리는 중요한 아이콘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1973
1973년 9월, 대한민국에서는 500원권 지폐의 앞면에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을, 뒷면에는 현충사를 도안으로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이는 거북선이 한국인의 민족정신과 애국심을 상징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활용되었음을 의미한다.
1990
[한강에 거북선 원형 복원 및 배치]
서울특별시가 한강 개조 사업의 일환으로 185톤 규모의 거북선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여 한강 이촌동에 배치했다.
1990년 10월, 서울특별시에서는 한강 개조 사업의 일원과 호국정신 계승 및 소년 교육을 목적으로 185톤 규모의 거북선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여 건조하고, 한강 이촌동 거북선나루터에 배치하였다. 이는 거북선이 역사 교육과 국민의 자긍심 고취를 위한 상징물로 활용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2005
이촌동 거북선나루에 지난 2005년 11월까지 전시되어 있던 복원 거북선이 이명박 서울특별시장 재임 시 통영시에 기증되었다. 이후 한강하구를 통과해 통영으로 운반되어 민물에서 바닷물 전용으로 개조되었고, 현재 통영에서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