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 (1920년)

공학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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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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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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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근 박사는 한국 조선공학의 선구자이자 교육자이다. 서울대학교 조선공학과를 창설하고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며 국내 조선공학의 기반을 다졌다. 미국 유학으로 선진 기술을 도입하여 한국 조선산업 발전에 기여했으며, 대한조선학회와 한국선급협회를 이끌며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말년에는 거북선 등 고대 선박 연구에도 몰두하여 학문적 깊이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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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조선공학자 김재근의 탄생]

조선공학의 선구자 김재근 박사가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났다.

1920년 1월 25일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개성이다. 덕동보통학교와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49

[서울대학교 조선공학과 창설 주도 및 교수 부임]

서울대학교 최초의 조선공학 담당 교수로 부임하여 조선공학과 창설을 주도하고, 독학으로 거의 모든 과목을 익혀 후학들을 양성했다.

국립해양대학(현 한국해양대학교)에서 조선공학 강의를 맡은 후, 1949년 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조선공학과 창설을 주도했다. 그는 서울대 최초의 조선공학 담당 교수로서 거의 모든 과목을 독학으로 익혀 수많은 후학들을 배출하며 국내 조선공학 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

1952

[대한조선학회 창립 주도 및 초대 회장 역임]

대한조선학회 창립을 주도하고 초대 이사 및 회장을 맡아 국내 조선공학의 교육 및 연구 환경을 조성하고 학회지를 창간했다.

1952년 대한조선학회 창립을 주도하며 창립이사와 회장을 맡았다. 회장 재임 시절 대한조선학회지를 창간하는 등 조선공학의 교육과 연구 환경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1960년부터 1970년까지도 회장직을 역임했다.

1954

[미국 MIT에서 현대 조선공학 수학 및 국내 도입]

대한민국 문교부에서 선발한 제1회 관비유학생으로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1년간 현대적인 조선공학 체계를 수학하고 국내에 정착시켰다.

1953년 대한민국 문교부에서 선발한 제1회 관비유학교수단 10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1954년 3월부터 1년간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수학했다. 그는 미국에서 현대적인 조선공학 체계를 수학하고 돌아와 이를 국내에 정착시켰으며, 현대적 조선공학 교육과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고 여러 대학의 조선공학과 설립을 지원했다.

1965

[한국선급협회 회장 취임]

한국선급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여 1979년까지 재임하며, 조선공학 및 조선행정에 있어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지위와 토대를 구축하는 데 힘썼다.

1965년 한국선급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여 1979년까지 재임했으며, 부회장직도 역임했다. 그는 국제 활동이 어려웠던 1950년대부터 다양한 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며 대한민국의 조선공학 기술이 국제사회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선박설계에 실험적 방법을 적용하여 한국 선박을 개선하고 한국선급협회가 세계적인 선급기관으로 성장하는 데 일조했다.

1974

[거북선 등 한국 고대 선박 연구 및 주요 논문 발표]

한국 고대 선박 역사에 관심을 두어 거북선을 비롯한 조선시대 군선에 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진행하며 ‘거북선의 조선학적 고찰’ 등 수많은 논문과 저서를 남겼다.

1970년대부터 퇴임 이후까지 한국 고대 선박의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몰두했다. 특히 거북선을 비롯한 조선시대의 군선에 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진행하여 ‘거북선의 조선학적 고찰’(1974년)을 필두로 ‘이조말기의 군선’(1983년)에 이르기까지 잇따른 실증적 연구를 통해 국내외에서 높은 학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1999

[조선공학자 김재근 박사의 서거 및 후학들의 업적 계승]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후학들은 조선산업 발전에 기여한 인물을 표창하기 위해 그의 호를 딴 '우암상'을 제정하는 등 그의 업적을 기렸다.

1985년 서울대학교를 정년퇴임한 후에도 선박사 연구에 몰두했던 그는 1999년 4월 9일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후학들은 조선산업 발전에 크게 공헌한 자를 표창하기 위해 김 박사의 호를 딴 ‘우암상’을 1998년 12월에 지정하여 그의 학문적 유산을 기렸다. 2006년에는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고, 2017년에는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되는 등 사후에도 그의 공로가 높이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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