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커 이상혁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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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3- 14:3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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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혁의 삶은 압도적인 재능으로 시대를 연 신동이 수많은 좌절과 성찰을 통해 내면의 성장을 이루고, 마침내 승패를 초월한 상징적 존재로 거듭난 위대한 서사다.

그는 단순히 트로피의 숫자로만 평가될 수 없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프로 의식으로 e스포츠의 격을 높인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 그가 써 내려갈 역사는 게임계를 넘어 다음 세대에게 깊은 영감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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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이상혁, 서울 강서구에서 출생]

이상혁은 1996년 5월 7일 서울특별시 강서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으며, 유년 시절은 비교적 평범하고 조용한 성격의 아이였다.

그의 유년기 환경은 훗날 그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상혁은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서 태어나 등원초등학교와 등원중학교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한때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으로 분류되기도 했으며, 이는 그의 검소한 생활 습관의 뿌리가 되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그는 주로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2000

[유년 시절, 게임의 재미에 빠지다]

2000년대 초반,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은 콘솔 게임을 접하며 처음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이후 PC 온라인 게임이 유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게임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게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그의 프로게이머 경력의 근간이 되었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동키콩', '메이플스토리'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즐겼다. 용돈을 아끼기 위해 버스비를 모아 PC방에 가고 대신 걸어서 등교할 정도로 게임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이러한 환경은 물질적 보상보다 게임 자체의 즐거움과 도전을 중시하는 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훗날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어서도 한 달 용돈 20만 원을 넘기지 않는 그의 유명한 검소함은 바로 이 시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2012

['고전파', LoL 랭킹 1위 등극]

'리그 오브 레전드(LoL)' 한국 서버가 열린 지 약 1년 만에 '고전파'라는 아이디로 랭킹 1위를 달성했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아마추어 고수들 사이에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으며, 이는 프로 세계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부터 다수의 프로게임단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기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까지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던 그는 마포고등학교 진학 후 LoL에 몰두하며 성적이 떨어졌다. 2012년, 그는 '고전파'라는 닉네임으로 솔로 랭크 1위를 달성하며 "이 정도면 프로게이머를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여러 팀이 그에게 접촉하며 프로 데뷔의 길이 열렸다.

2013

[프로게이머의 길을 위한 결단]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재학 중이던 마포고등학교를 중퇴했다.

당시 사회적 편견 속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나,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

이는 그가 오롯이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중요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2010년대 초반 한국 사회에서 고등학교 중퇴 후 프로게이머라는 불확실한 길을 선택하는 것은 극단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며 아들의 선택을 존중했고, 담임 선생님마저 지지 의사를 표했다. 이러한 가족의 무조건적인 신뢰는 어린 이상혁이 겪었을 심리적 압박과 외부의 편견을 막아주는 방패가 되었고, 오직 실력 향상에만 매진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다.  

[SK텔레콤 T1 2팀 공식 입단]

여러 팀의 제안 끝에 SK텔레콤 T1(현 T1)의 2팀(훗날 SKT T1 K)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고전파'라는 아이디 대신 '페이커(Faker)'라는 소환사명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는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 공식적인 첫걸음이었다.

그는 '임팩트' 정언영, '벵기' 배성웅, '피글렛' 채광진, '푸만두' 이정현과 함께 팀을 이루었다. 해외 송출 규정에 따라 영어 닉네임이 필요했고, 이때부터 'Faker'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앰비션' 솔로킬, 충격의 데뷔]

LCK(당시 롤챔스) 스프링 시즌 CJ 엔투스 블레이즈와의 경기에서 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국내 최고 미드 라이너였던 '앰비션' 강찬용을 상대로 솔로킬을 기록하며 e스포츠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이 경기는 한 명의 신인이 기존의 판도를 뒤흔드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데뷔전 상대는 당대 최강팀이었고, 상대 미드 라이너 '앰비션'은 명실상부한 1인자였다. 경기 시작 6분 28초, 이상혁은 니달리로 앰비션의 카직스를 타워 앞에서 홀로 잡아내는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이는 단순한 킬이 아니라, 신구 권력의 교체를 상징하는 완벽한 서사였다. 이 단 한 번의 플레이로 그는 '불사대마왕'이라는 별명의 서막을 열었고, 데뷔와 동시에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류'와의 제드 미러전 명장면]

LCK 서머 결승전 KT 롤스터 불리츠와의 5세트 블라인드 픽에서 '류' 유상욱과 제드 미러전을 펼쳤다.

체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상대의 모든 공격을 피하고 역으로 솔로킬을 만들어내는, LoL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이 플레이로 팀의 첫 LCK 우승을 확정 지으며 자신의 시대를 선포했다.

세트 스코어 2-2로 팽팽하던 5세트, 양 팀 미드 라이너는 모두 제드를 선택했다. 경기 후반, 이상혁은 거의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 완벽한 스킬 활용과 수은 장식띠 사용으로 풀피에 가까웠던 류의 제드를 잡아냈다. 이 장면은 전 세계 해설진과 팬들의 경탄을 자아냈으며, 그의 천재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데뷔 첫해 롤드컵 우승(V1)]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시즌 3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에서 중국의 로얄 클럽을 3-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데뷔 첫해에 국내 리그와 세계 대회를 모두 제패하는 '로열로더'의 길을 걸었다.

이 우승으로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로 공인받았다.

SKT T1은 조별 리그부터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결승에 진출했고, 결승에서도 완벽한 경기력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당시 만 17세였던 이상혁은 데뷔와 동시에 세계 정상에 오르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데뷔 초 월급 200만 원이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회상했다.   


2014

[LCK 윈터, 15전 전승 우승]

'PANDORA.TV 챔피언스 윈터 2013-2014' 시즌에서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전승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두 시즌 연속 LCK MVP를 수상하며 개인 기량의 정점을 과시했다.

이 시기 SKT T1 K와 페이커는 '무적'으로 평가받았다.

조별리그부터 결승까지 모든 경기를 승리하며 총 18연승을 기록, LCK 역사상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겼다. 이상혁 개인의 캐리력은 절정에 달했으며,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마왕'의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삼성 왕조에 막혀 롤드컵 좌절]

2014 시즌, 삼성 갤럭시의 두 형제팀(블루, 화이트)이 새로운 메타를 주도하며 LCK를 지배했다.

이상혁은 고군분투했으나 팀의 부진을 막지 못했고, 결국 한국에서 열린 롤드컵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이는 그의 커리어 첫 번째 중대한 실패였다.

2014년은 개인의 기량보다 팀 단위의 전략과 운영이 중요해지는 메타의 변혁기였다. 삼성 팀들은 이러한 변화를 완벽하게 선도했고, SKT는 이에 적응하지 못하며 무너졌다. 이상혁의 개인 기량은 여전히 최고 수준이었으나 , 팀 게임의 한계를 절감해야 했다. 이 실패는 그가 단순히 개인 기량에 의존하는 선수를 넘어, 팀과 함께 호흡하는 선수로 성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015

[왕좌를 되찾다 (V2)]

대대적인 팀 리빌딩 이후 '이지훈'과의 주전 경쟁을 거치며 한층 더 성장했다.

2015 LCK 스프링, 서머를 모두 우승하며 국내 무대를 평정했고, 롤드컵 결승에서 KOO 타이거즈를 꺾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후 공약이었던 브로콜리 먹방 세리머니를 선보여 화제가 되었다.

2015년, SKT는 단일팀으로 재편되며 '마린', '뱅', '울프' 등이 주전으로 합류했고, 이상혁은 안정적인 플레이 스타일의 '이지훈'과 로테이션으로 출전했다. 이 내부 경쟁은 그를 자극하는 동시에 팀플레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넓은 챔피언 폭을 과시하며 팀을 LCK 2연속 우승으로 이끌었고 , 롤드컵에서도 압도적인 기량으로 팀의 우승에 기여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2016

[롤드컵 3회 우승(V3), 최초 2연패]

2016년, SKT 왕조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LCK 스프링 우승으로 LCK 3연패를 달성했고, MSI 우승으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그리고 롤드컵 결승에서 삼성 갤럭시를 3-2로 꺾고 롤드컵 3회 우승 및 역사상 최초의 2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 해 이상혁과 SKT는 참가하는 모든 대회를 지배했다. LCK 3연패, MSI 우승, 롤드컵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쌓았다. 특히 롤드컵에서는 대회 내내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MVP로 선정되었고, '신'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이 시점 그는 e스포츠 역사상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2017

[롤드컵 결승 패배와 눈물]

롤드컵 3연패라는 대기록에 도전했으나, 결승전에서 삼성 갤럭시에 0-3으로 완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경기 종료 후,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오열했고, 이 모습은 전 세계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기계처럼 완벽해 보였던 '대마왕'의 인간적인 모습이 처음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2017년 롤드컵에서 그는 팀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홀로 경기를 뒤집는 '원맨 캐리'를 선보이며 팀을 결승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결승에서의 완패 후, 그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 눈물은 그의 '불사대마왕' 이미지를 깨고, 승리를 향한 그의 순수한 열정과 인간적인 고뇌를 보여주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팬들은 그에게 경외감을 넘어 깊은 공감과 애정을 느끼게 되었고, 이는 그의 팬덤을 더욱 공고히 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2018

[최악의 부진, 주전 경쟁과 심리 상담]

2018년은 그의 커리어 최악의 해였다.

팀은 극심한 부진에 빠졌고, 그 자신도 폼 저하로 인해 데뷔 후 처음으로 후보 선수로 밀려나는 경험을 했다.

이 시기 그는 스포츠 심리 상담을 받으며 "다음에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든다"고 토로할 만큼 깊은 슬럼프를 겪었다.

팀 성적은 LCK 서머 7위까지 추락했고, 이상혁은 신인 '피레안' 최준식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그는 반복되는 실수와 자신감 하락으로 고통받았고, 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심리 상담, 독서, 명상 등을 시작했다. 이 고통스러운 내적 성찰의 시간은, 훗날 그가 패배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철학자'의 면모를 갖추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19

['드림팀' 재편, LCK V8 달성]

T1은 이상혁을 중심으로 '칸', '클리드', '테디', '마타' 등 스타 선수들을 영입하며 '드림팀'을 재구성했다.

그는 팀의 주장으로서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하며 LCK 스프링과 서머 시즌을 모두 우승, 통산 8회 우승을 달성했다.

1년 만에 화려하게 왕좌에 복귀하며 부활을 알렸다.

2018년의 실패 이후 T1은 이상혁을 제외한 모든 멤버를 교체하는 강수를 두었다. 그는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 2019 LCK 스프링, 서머를 연달아 제패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특히 스프링 우승 후 인터뷰에서는 2018년 동료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보여, 그의 책임감과 동료애를 엿볼 수 있었다.   


2020

[T1의 파트 오너가 되다]

T1과 3년 재계약을 체결하며 팀의 '파트 오너(Part Owner)'가 되었다.

이는 선수를 넘어 구단의 미래를 함께하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계약을 통해 그는 은퇴 후에도 T1의 리더 그룹으로서 활동할 발판을 마련했다.

이 계약은 그가 단순한 선수를 넘어 T1이라는 구단 그 자체임을 공인하는 사건이었다. 그는 "T1의 일원이 된 느낌"이라며 팀에 대한 깊은 유대감을 표현했다. 이 해 LCK 스프링 우승으로 통산 9번째 우승을 달성했으나 , 서머 시즌에는 신예 '클로저' 이주현과의 주전 경쟁을 겪으며 다시 한번 시련의 시간을 보냈다.

2022

[LCK 전승 우승, 그리고 3연속 준우승]

'제우스-오너-구마유시-케리아'로 구성된 젊은 팀원들과 함께 2022 LCK 스프링 시즌을 18전 전승으로 우승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는 그의 통산 10번째 LCK 우승이었다.

하지만 이후 MSI, LCK 서머, 롤드컵에서 연달아 결승에 진출하고도 모두 준우승에 머무는 아픔을 겪었다.

LCK 역사상 최초의 정규 시즌 전승 및 최종 전승 우승은 T1의 압도적인 기량을 증명했다. 그러나 세 번 연속 국제 및 국내 대회 결승에서 패배하며 팀은 큰 좌절을 겪었다. 특히 롤드컵 결승에서는 고교 동창인 '데프트' 김혁규의 드라마틱한 우승의 조연이 되어야 했다. 이 반복된 실패의 경험은 그러나 젊은 팀원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이상혁은 과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하며 팀의 붕괴를 막았다.   


2023

[손목 부상으로 인한 한 달간의 공백]

2023 LCK 서머 시즌 도중 손목 부상으로 인해 약 한 달간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의 공백 기간 동안 T1은 1승 7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추락했다.

하지만 그가 복귀하자마자 팀은 연승을 거두며 귀신같이 부활, 그의 존재가 팀에 미치는 영향이 단순한 기량을 넘어선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의 부재는 T1의 경기력 급락으로 이어졌고, 팀의 오더와 운영이 완전히 마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그의 게임 내 지휘 능력과 리더십이 팀의 핵심임을 명백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의 복귀 후 팀 경기력이 극적으로 회복되면서, 팬과 전문가들은 그의 가치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7년 만의 왕위 탈환(V4)]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LoL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 병역 특례 혜택을 받았다.

이어 11월 19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롤드컵 결승에서 중국의 웨이보 게이밍을 3-0으로 꺾고 7년 만에 통산 4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기나긴 암흑기를 끝내고 다시 세계 정상에 오르는 감동적인 서사를 완성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국가대표로서의 영예를 안았다. 이어진 롤드컵에서는 부상 복귀 이후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며 팀을 이끌었다. 7년 만의 우승 후 그는 "승패보다 과정에 집중하며 배우고자 했고, 그런 자세가 우승으로 이어진 것 같다"며 한층 성숙해진 소감을 밝혔다.   


2024

[5번째 롤드컵 우승, 불멸의 GOAT]

전설적인 스승 김정균 감독과 재회한 T1은 LCK 4번 시드로 롤드컵에 진출했으나, 또다시 '롤드컵의 T1'은 달랐다.

4강에서 천적인 젠지를 꺾고, 결승에서 중국의 BLG와 풀세트 접전 끝에 3-2로 승리하며 통산 5번째 우승과 2연패를 달성했다.

그는 결승전 MVP에 선정되며 e스포츠 역사상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GOAT'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2024 시즌 T1은 LCK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MSI에서도 3위에 그치는 등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사우디에서 열린 초대 EWC에서 우승하며 저력을 보였고 , 롤드컵 무대에서 다시 한번 각성했다. 특히 결승전에서 그는 위기의 순간마다 팀을 구해내는 신들린 플레이를 선보이며 8년 만에 결승 MVP를 수상, 나이가 아닌 클래스로 자신을 증명했다.

[외교부 주최 '미래대화' 기조연설]

외교부가 주최한 '글로벌 혁신을 위한 미래대화' 포럼에 기조연설자로 나서 청년 세대에게 도전과 성장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다.

승리와 패배를 넘어 개인의 성장, 선한 영향력, 타인에 대한 존중을 이야기했다.

이는 그가 단순한 프로게이머를 넘어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인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는 연설에서 "실패 역시 작은 성공"이라며 겸손을 강조하고, "짧은 청년의 시간, 좋아하는 것에 열정을 가지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최근 인터뷰에서는 "돈이나 명예보다 팬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하며 , 내면의 성숙을 이룬 '철학자'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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