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수녀
연표
1910
[테레사 수녀의 탄생]
오스만 제국령 스코페에서 아네저 곤제 보야지우라는 본명으로 태어나, 훗날 빈민 구제에 헌신하는 로마 가톨릭 수녀가 되었습니다.
1910년 8월 26일, 오스만 제국령 북마케도니아의 스코페에서 알바니아계 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아네저 곤제 보야지우(Anjezë Gonxhe Bojaxhiu)입니다.
1919
1919년, 그녀의 아버지 니콜 보야지우가 시 의원 자격으로 정치 행사에 참가했다가 의문사하였습니다. 당시 북마케도니아를 새로 지배하게 된 세르비아 정부에 의한 독살설도 있습니다.
1928
[로레토 수녀회 입회와 개명]
아일랜드 라스판햄의 로레토 수녀회에 입회하여 로마 가톨릭 수녀가 되었고, 이때 테레사로 개명한 뒤 인도로 선교 활동을 떠났습니다.
1928년 아일랜드의 라스판햄으로 이주하여 로레토 수녀회에 입회하였습니다. 이때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녀가 되고 테레사로 개명하였습니다. 그 이후 인도로 선교 활동과 빈민 구제를 목적으로 당시 영국의 식민지이던 인도로 이주하였습니다.
1950
[사랑의 선교회 설립]
인도에 귀화한 뒤, 로마 가톨릭 계열의 선교 단체인 사랑의 선교회를 콜카타에 설립하여 빈민 구제에 헌신하는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1947년 인도 자치령이 독립하고 1950년 인도 공화국으로 국호를 결정하자, 인도에 귀화해 로마 가톨릭 계열의 선교 단체인 사랑의 선교회(Missionaries of Charity)를 콜카타에 설립하였습니다.
1952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 개설]
콜카타 시청에서 제공한 건물을 활용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 또는 '순결한 마음의 장소'를 개설, 죽어가는 빈민들을 돌보며 종교와 관계없이 복지 활동을 펼쳤습니다.
1952년 8월 22일, 콜카타 시청에서 제공한 건물을 사용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Home for Sick and Dying Destitutes) 또는 '순결한 마음의 장소'(Nirmal Hriday)라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지었습니다. 힌두교도들의 시위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이 종교에 구애 없이 복지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받아들여졌습니다.
1955
[어린이 보호 시설 '때의 집' 개설]
'때의 집'(시슈 브하반)이라는 어린이 보호 시설을 개설하여 고아와 버려진 어린이들을 먹이고 치료하며 교육시키고 해외로 입양 보내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55년 9월 23일 '때의 집'(시슈 브하반)이라는 어린이 보호 시설을 개설하였고, 1958년에는 여기에 90명의 어린이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경찰과 공무원들이 고아와 버려진 어린이들을 보냈으며, 어린이들의 집에서는 이들을 먹이고 병도 고쳐주었습니다. 어린이들은 교육도 받고 해외로 입양되었습니다.
1962
[국제적 인정의 시작]
남아시아 및 동아시아에서 활동한 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라몬 막사이사이 평화 및 국제이해상과 인도 정부의 파드마 쉬리 훈장을 수상하며 봉사 활동에 대한 국제적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962년에 남아시아 및 동아시아에서 활동한 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라몬 막사이사이 평화 및 국제이해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 사유는 "한 외국 땅에서 가장 비참한 가난한 자들을 자비롭게 돌보고, 그들을 위한 새로운 수도회를 이끈 공로"였습니다. 같은 해 파드마 쉬리 훈장도 수훈했습니다.
1968
[한센병 환자 커뮤니티 '평화의 마을' 개설]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커뮤니티인 '평화의 마을'(Shanti Nagar)을 개설하여 소외된 이들을 위한 거처와 돌봄을 제공했습니다.
1968년에는 한센병 환자들의 커뮤니티인 '평화의 마을'(Shanti Nagar)을 개설하였습니다.
1969
[BBC 다큐멘터리를 통한 명성 확대]
맬컴 머거리지가 제작한 BBC 다큐멘터리 'Something Beautiful for God' 방영과 동명의 저서 출판으로 국제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1970년대 초, 마더 테레사는 국제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맬컴 머거리지가 제작한 BBC 다큐멘터리 'Something Beautiful for God' (1969)와 동명의 저서(1971)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머거리지는 조명이 부족했던 장면에서 새로운 초감도 코닥 필름이 예기치 않게 선명한 영상을 만들어냈고, 이를 '신의 빛'이라고 표현하며 이후 가톨릭으로 개종했습니다.
1969년에 자와할랄 네루 국제이해상(Jawaharlal Nehru Award for International Understanding)을 수상했습니다.
1971
[제1회 요한 23세 평화상 수상]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제1회 요한 23세 평화상을 수여받아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과 평화 증진 노력을 치하받았습니다.
1971년에 교황 바오로 6세는 그녀에게 제1회 요한 23세 평화상을 수여하며,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과 평화 증진 노력을 치하했습니다.
1975
[장기 요양소 '사랑의 선물' 개설]
회복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장기 요양소인 '사랑의 선물'(Prem Dan)을 개설하여 돌봄의 폭을 넓혔습니다.
1975년에는 회복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선물'(Prem Dan)이란 이름의 장기 요양소를 만들었습니다.
1976
1976년에는 파켐 인 테리스 상도 수상했습니다.
[미국 대학 방문 및 수상]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스크랜턴 대학교를 방문하여 인류 봉사 부문 라 스토르타 메달을 받았으며, 4,500명의 청중에게 “가난한 이들을 당신의 집과 이웃에서 알아가라”고 격려했습니다.
1976년 4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위치한 스크랜턴 대학교를 방문하여 인류 봉사 부문 라 스토르타 메달을 받았으며, 이 자리에서 4,500명의 청중에게 “가난한 이들을 당신의 집과 이웃에서 알아가라”고 격려했습니다.
1978
인류애, 평화, 형제애 증진 공로로 1978년에 발잔상을 받았습니다.
1979
[노벨 평화상 수상]
세계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는 인도주의자로 널리 알려져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청빈한 삶을 택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1979년 세계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는 인도주의자로 널리 알려져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고, "배고프고 벌거벗고 집이 없으며 신체에 장애가 있고 눈이 멀고 병에 걸려서, 사회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고 거부당하며 사랑 받지 못하며 사회에 짐이 되고 모든 이들이 외면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 상을 기쁘게 받는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1980
1980년 인도의 가장 높은 시민 훈장인 바라트 라트나(Bharat Ratna)를 받았습니다.
1982
[베이루트 포위전 중 어린이 구출]
분쟁 중인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 군과 팔레스타인 게릴라 사이에 일시적인 휴전을 성사시켜 전선 병원에 갇혀 있던 아이들 37명을 구출하는 용감한 인도주의 활동을 펼쳤습니다.
1982년 베이루트 포위전이 한창일 때, 마더 테레사는 이스라엘 군과 팔레스타인 게릴라 사이에 일시적인 휴전을 성사시켜 전선 병원에 갇혀 있던 아이들 37명을 구출했습니다. 그녀는 적십자 요원들과 함께 전쟁 지역을 통과해 병원으로 이동하여 어린 환자들을 대피시켰습니다.
[호주 훈장 명예 동료 임명]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로부터 ‘호주 훈장 명예 동료’로 임명되어 오스트레일리아와 전 인류를 위한 봉사를 인정받았습니다.
1982년 1월 26일,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로부터 ‘호주 훈장 명예 동료’로 임명되었으며, 이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전 인류를 위한 그녀의 봉사를 인정한 것입니다.
1983
[건강 악화 시작 및 영국 명예 훈장 수훈]
교황 방문 중 로마에서 첫 심장마비를 일으키며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으나, 같은 해 영국 명예 메리트 훈장을 수훈하며 여전히 헌신적인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83년, 테레사 수녀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방문하기 위해 로마에 머무르던 중 심장마비를 일으켰습니다. 같은 해 영국 명예 메리트 훈장(honorary OM)도 수훈했습니다.
1985
[미국 대통령, 평화의 메달을 수여함]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평화의 메달을 수여받으며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985년, 미국의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이 테레사 수녀에게 평화의 메달을 수여하는 모습이 기록되었습니다.
1987
[스크랜턴 대학 명예박사 학위 수여]
스크랜턴 대학에서 사회과학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4,000명 이상의 학생 및 교구민들과 만나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하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1987년 8월, 스크랜턴 대학에서 사회과학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4,000명 이상의 학생 및 교구민들과 만났습니다. 그녀는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하라”고 전했습니다.
1988
[아르메니아 지진 피해 지원]
1988년 지진 이후 아르메니아를 방문하여 피해자들을 돕고, 소련 총리 니콜라이 르이즈코프와 면담하며 구호 활동을 펼쳤습니다.
1988년 지진 이후 아르메니아를 방문했으며, 소련 총리 니콜라이 르이즈코프와 면담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기아, 체르노빌의 방사능 피해자, 아르메니아의 지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여행했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수도회는 그곳에 고아원을 설립했습니다.
1989
[심장 건강 악화와 심박동기 삽입]
두 번째 심장마비를 겪은 후 심박동기를 삽입하며, 건강이 더욱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봉사 활동을 지속하고자 했습니다.
1989년 12월 1일, 두 번째 심장마비 이후에는 심박동기를 삽입했습니다.
1991
1991년에는 처음으로 알바니아를 방문해 티라나에 자선수도회 형제들의 시설을 개소했습니다. 또한, 멕시코에서 폐렴을 앓은 뒤 추가적인 심장 문제를 겪었습니다.
1996
[심각한 건강 악화]
쇄골이 부러지는 사고를 겪은 데 이어, 몇 달 후 말라리아와 심부전증으로 고통받으며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1996년 4월, 테레사 수녀는 넘어져 쇄골이 부러졌고, 그로부터 4개월 후에는 말라리아와 심부전증을 앓았습니다. 심장 수술을 받았지만 그녀의 건강은 분명히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1996년 11월 16일, 미국 명예 시민권이 부여되었습니다.
1997
1997년 3월 13일, 테레사 수녀는 사랑의 선교회 총원장직에서 사임했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선종]
인도 콜카타에서 87세의 나이로 선종하였으며, 일주일간 공개 안치된 후 인도 정부로부터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며 그녀의 삶과 봉사에 대한 깊은 애도를 받았습니다.
1997년 9월 5일, 캘커타에서 87세의 나이로 선종하였습니다. 장례식 전까지 일주일 동안 캘커타의 세인트 토마스 성당에서 공개 관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녀는 인도 정부로부터 국장 예우를 받았으며, 이는 모든 종교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그녀의 봉사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교황의 특사인 국무원장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이 장례 미사에서 강론을 전했습니다.
1999
[20세기 가장 존경받는 인물 1위]
갤럽이 선정한 ‘20세기 가장 존경받는 인물’ 여성 부문에서 18차례 상위 10위 안에 들었으며, 1999년 최종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하며 세기의 인물로 인정받았습니다.
1999년, 그녀는 갤럽이 발표한 ‘20세기 가장 존경받는 인물’ 1위에 오르며, 다른 후보들을 압도적으로 제쳤습니다. 모든 주요 인구 집단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극소수의 젊은 층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존경을 받았습니다. 생전에도 갤럽이 선정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여성 부문 상위 10위 안에 18차례 올랐고, 1980~90년대에는 여러 차례 1위를 차지했습니다.
200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한 시복]
사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어 '캘커타의 복녀 테레사'라는 호칭을 받으며 성인 추대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사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어 '캘커타의 복녀 테레사'라는 호칭을 받았습니다.
2010
[탄생 100주년 기념 동전 발행]
인도 정부가 그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한 5루피 동전을 발행하며, 인도 내에서 그녀의 공로를 다시 한번 기렸습니다.
2010년 8월 28일, 인도 정부는 그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특별한 5루피 동전을 발행했습니다. 당시 대통령 프라티바 파틸은 "푸른 줄이 들어간 흰 사리를 입은 그녀와 자선수도회 수녀들은 노인, 빈곤층, 실직자, 병자, 임종자, 그리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이들에게 희망의 상징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액수는 마더 테레사가 인도에 도착할 당시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이기도 합니다.
2016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한 시성]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성녀 반열에 오르며, '콜카타의 성녀 테레사'로 공식 추대되어 인류애의 상징으로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2016년 9월 4일,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시성되어 성녀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콜카타의 성녀 테레사'라는 공식 호칭을 받았습니다.
2017
[콜카타 대교구 공동 수호성인으로 지명]
시성 1주년 기념 행사에서 테레사 수녀가 콜카타 로마 가톨릭 대교구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공식 지명되어 지역 교구의 정신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2017년 9월 4일, 테레사 수녀 시성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사랑의 선교회 총원장 마리 프레마 피에릭 수녀는 테레사 수녀가 2017년 9월 6일 ‘가장 거룩한 묵주 기도의 성당’에서 열리는 미사 중 캘커타 대교구의 공동 수호성인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9월 6일, 약 500명의 신자들이 대성당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했으며, 그 자리에서 지역 교구 대리인 도미니크 고메스 신부가 테레사 수녀를 대교구의 두 번째 수호성인으로 선포하는 교령을 낭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