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조
군인, 공작원, 목회자, 북한이탈주민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51:08
194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평안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북한 124군부대 최정예 특수부대원으로서 1968년 1·21 사태 당시 청와대 습격 주범 31명 중 유일한 생포자이자 투항자이다. 대한민국 귀순 후 건설회사 재직, 신학 전공 후 개신교 목사가 되었다. 자녀 교육을 위해 '김재현'으로 개명하며 새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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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
1942년 6월 2일 함경북도 청진에서 출생하였고 평안남도 순천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만 5세 시절 평안남도 평양에 이주하여 성장했다.
1968
[대한민국 귀순 결심]
청와대 습격 임무와 박정희 대통령 암살 계획을 기자회견에서 밝혔으나, 북한이 남파 사실을 부인하자 실망감을 느끼고 대한민국 귀순을 결정했다.
김신조는 유일한 투항자이자 생포자로서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 청와대 습격 임무와 박정희 대통령 암살 계획을 밝히고 임무를 받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후 북한 측이 특수부대 남파 사실을 부인하고 김신조조차 모른다고 하자, 이를 전해 들은 김신조는 귀순을 결정했다.
[1·21 사태 침투 개시]
김신조가 속한 북한 124군부대 최정예 31명이 청와대 습격 및 대통령 암살 임무를 띠고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한으로 침투를 시작했다.
김신조와 124군부대원들은 청와대 습격 및 대통령 암살을 위한 대한민국 침투 직전, 혈서로 '수령 동지의 명령대로 임무를 수행할 것을 맹세함'을 작성한 뒤 1월 17일 밤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한으로 침투를 시작했다. 이들은 철저한 은엄폐를 위해 밤에는 이동하고 낮에는 무덤을 파고 들어가 휴식을 취하며 이동했다.
[1·21 사태 작전 발각]
혹한기 파주에서 휴식 중 나무꾼 우씨 4형제와 마주쳤다. 상부의 암호 해독 실패로 이들을 살려주기로 결정했고, 우씨 형제 신고로 대한민국 전역에 경계태세가 발령되었다.
1월 19일 임진강과 남방한계선을 넘은 김신조와 그 일당은 혹한기로 인해 땅이 얼어붙어 잘 파지지 않자, 볕이 잘 드는 곳에서 휴식하기로 결정하고 파주 법원리 초리골 삼봉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무꾼 우씨 4형제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민간인 사살 원칙에도 불구하고 상부의 '작전 전면 취소' 무전을 해독하지 못하고 투표를 통해 이들을 살려주기로 결정했다. 이들이 살려준 나무꾼 우씨 4형제는 파출소에 신고하여 대한민국에는 경계태세가 발령되었다.
[청와대 인근 교전 및 도주]
삼엄한 경계태세 속에서도 북악산에 도착하여 서울로 입성했다. 청와대를 약 300m 남겨두고 최규식 종로경찰서장과 마주쳐 교전이 발생했으나, 김신조는 박정희 대통령 암살이 주 임무라 판단하고 사격하지 않고 도주했다.
김신조 일당은 30kg에 달하는 군장을 매고도 산악을 10km/h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이동했기에 삼엄한 경계태세 속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1월 21일 북악산에 도착한 김신조와 그 일당은 코트로 옷을 갈아입고 서울로 입성했다. 그러나, 청와대를 약 300m 남겨두고 최규식 당시 종로경찰서장과 마주쳤고, 최규식이 김신조 일당을 포박하려던 중 교전이 발생했다. 김신조는 본인의 임무는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이지 민간인과 군병력 사살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격하지 않았다. 이후 124군부대는 뿔뿔이 흩어져 도주했고, 김신조 또한 산속에 은신했다.
[김신조 국군에 투항]
인왕산을 넘어 도주 중 세검정에서 국군에 포위되자 자폭을 고민했으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살고 싶다는 생각에 국군에 투항했다.
22일 새벽 01시 30분경, 김신조는 인왕산을 넘어 도주하던 중 종로구 부암동 세검정에서 국군에게 포위되어 바위 뒤에 숨었다. 국군의 위협사격에 휴대한 유일한 무기인 자폭용 수류탄을 손에 쥔 채 자결을 고민했다. 이 때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떠올랐고, 동시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국군에게 두 손을 들고 투항했다.
1978
[목사로서 새 삶 시작]
대한민국 귀순 후 건설회사에 12년 재직 후 퇴사, 서울침례회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학사 학위를 취득하며 목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대한민국 귀순 후 중앙정보부 주선으로 건설회사에 취직했고 12년 다니다 퇴사했다. 이후 서울침례회신학교(現 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에서 침례교 신학을 전공하고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에는 목사가 되었다.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된 건 배우자의 권유였으며, 교회에 가보니 마음이 편해져서 계속 다니게 됐고 목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1985
나중에는 개명도 했는데, 80년대의 반공교육 탓에 초등학생이던 자녀들이 ‘아빠 이름이 교과서에 나온다’며 싫어했기에 지금의 이름인 김재현(金在現)으로 개명하게되었다고 한다.
1994
김신조의 저서 《나의 슬픈 역사를 말한다》(김신조 저, 동아출판사, 1994.10.01)가 출간되었다.
2015
2015년 채널A의 시사 프로그램 《시사병법》에 출연했다.
2020
2020년 SBS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 1》에 출연했다.
2021
2021년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