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 (프로레슬링 선수)

프로레슬러, 씨름 선수, 스포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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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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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프로레슬링의 전설적인 1세대 선수입니다. '박치기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국민적 영웅으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스승 역도산의 뒤를 이어 WWA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세계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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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김일,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다]

대한민국 프로레슬링의 전설적인 인물인 김일 선수가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김태식입니다.

1929년 2월 24일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에서 출생했으며, 본명은 김태식이다.

1948

[씨름 선수로 활동 시작]

김일은 1948년부터 1957년까지 씨름 선수로 활약하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1948년부터 1957년까지 씨름 선수로 활동하며 운동 경력을 시작했다.

1957

[역도산 체육관에 입문하여 레슬링 시작]

씨름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당대 최고의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제자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레슬링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1957년 역도산 체육관 문하생으로 입문하면서 프로레슬링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59

[프로레슬러로 공식 데뷔]

스승 역도산의 가르침 아래 프로레슬러로 정식 데뷔하며 링네임 '오키 긴타로'로 일본 무대에서 활약했습니다.

1959년 프로레슬러로 공식 데뷔하여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일본식 이름은 오키 긴타로였다.

1963

[스승 역도산 사망]

김일의 스승이자 일본 프로레슬링의 대부였던 역도산이 사망했습니다. 이는 김일 선수의 커리어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김일의 스승인 역도산이 사망하여, 김일은 스승의 그림자를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게 되었다.

[WWA 세계태그챔피언 등극]

김일은 WWA 세계태그챔피언에 오르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의 첫 세계 타이틀입니다.

1963년 WWA 세계태그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했다.

1964

[북아메리카 태그챔피언 획득]

북아메리카 태그챔피언십을 획득하며 강력한 태그팀 선수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1964년 북아메리카 태그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1965

[서울 극동헤비급챔피언 등극]

서울에서 극동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며 아시아 무대에서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1965년 서울 극동헤비급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1966

[도쿄 올아시아태그 챔피언 획득]

도쿄에서 올아시아태그 챔피언십을 획득하며 아시아 최고의 태그팀 선수 중 한 명임을 증명했습니다.

1966년 도쿄 올아시아태그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1967

['박치기왕' 김일, WWA 세계헤비급 챔피언 등극]

김일은 23대 WWA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프로레슬러로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전매특허인 '박치기' 기술로 전 세계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1967년 제23대 WWA 세계헤비급챔피언에 등극하며 세계적인 '박치기왕'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는 김일 선수 커리어의 정점이었다.

1972

[도쿄 인터내셔널 세계헤비급 태그챔피언 획득]

도쿄에서 인터내셔널 세계 헤비급 태그 챔피언십을 획득하며 그의 꾸준한 기량을 입증했습니다.

1972년 도쿄 인터내셔널 세계헤비급 태그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1987

[해외 사업 실패와 질병으로 투병 시작]

일본에서 여러 사업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선수 생활의 후유증과 배우자 사망의 아픔을 겪으며 각종 질병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 사업 실패를 겪고, 선수 생활의 후유증과 배우자 사망 등의 개인적인 아픔으로 인해 1987년부터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1994

[국민훈장 석류장 수훈]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습니다.

1994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훈했다.

[고국으로 귀국하여 치료에 전념]

오랜 해외 생활과 투병 끝에 건강 악화로 고국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서울 을지병원에 입원하여 치료에 전념했습니다.

1994년 1월 귀국하여 서울 을지병원에 입원, 투병 생활을 이어갔다.

1995

[프로레슬러 현역에서 은퇴]

한국 프로레슬링 1세대 선두주자로서 화려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1995년 현역 프로레슬러 생활에서 은퇴하며 오랜 선수 경력을 마무리했다.

2000

[체육훈장 맹호장 수훈]

대한민국 체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에 이어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습니다.

2000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훈했다.

2001

[자유민주연합 스포츠문화행정특보위원 위촉]

은퇴 후 정치계와 인연을 맺어 자유민주연합의 스포츠문화행정특보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2001년 자유민주연합 스포츠문화행정특보위원으로 활동했다.

2006

['영원한 박치기왕' 김일, 향년 78세로 별세]

만성신부전증과 심혈관질환 합병증으로 투병 끝에 서울 을지병원에서 향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대한민국 프로레슬링의 한 시대를 마감했습니다.

2006년 10월 26일 서울 을지병원에서 만성신부전증 및 심장혈관 이상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향년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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