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쟁
- 프리드리히 2세 (프로이센) - 주요 전쟁
- 프로이센 왕국 - 강대국 확립
- 영국 동인도 회사 - 인도 무력 충돌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어린 시절 영향
-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후속 전쟁
- 캐나다 연방 - 영국 지배
- 필라델피아 - 독립 전쟁 배경
- 루이 16세 - 동맹 배경
연표
1750
[오하이오 강 요새 건설]
프랑스가 북미 오하이오 강 유역에 요새를 건설하며 실효 지배를 시도했고, 이는 영국과 원주민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1754
[주먼빌 글렌 전투 발발]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버지니아 민병대가 프랑스 주둔군을 공격, 지휘관 포함 10명을 살해하며 7년 전쟁의 불씨를 당겼습니다.
이는 전쟁의 첫 번째 충돌로 기록됩니다.
[네세시티 요새 전투]
주먼빌 글렌 전투에 대한 프랑스의 보복으로 조지 워싱턴 군이 대패하고 항복하며, 이는 공식적인 선전포고 없이 벌어진 7년 전쟁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1755
[영국 해군 프랑스 선박 나포]
에드워드 보스카웬 제독이 프랑스 선박 2척을 나포하며 영국이 프랑스 해운을 방해하기 시작했고, 이는 유럽 내 선전포고 없는 해상전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보세주르 요새 전투]
영국이 아카디아를 강습하여 보세주르 요새를 점령하고, 이어서 아카디아인들을 대규모로 추방하며 영국-프랑스 식민지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뒤케인 요새 원정 실패]
영국군 브래독 장군이 뒤케인 요새를 탈환하려다 프랑스와 원주민 연합군에 대패, 북미 전선에서 영국의 입지가 흔들렸습니다.
[영국, 프랑스 상선 나포]
영국이 공식적인 선전포고 없이 프랑스 상선을 수백 척 나포하고 선원 수천 명을 포로로 잡으며 해상에서 프랑스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이는 프랑스의 하노버 침공 계획으로 이어졌습니다.
[조지 호수 전투]
영국과 프랑스 양국이 조지 호수에서 교전했지만, 승패를 가리지 못하며 북미 전선의 초기 대치 상황을 보여주었습니다.
1756
[웨스트민스터 조약 체결]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침공을 우려하여 영국과 상호 원조를 약속하는 웨스트민스터 조약을 체결하며 '외교 혁명'의 서막을 열고 유럽 동맹 관계의 재편을 알렸습니다.
[베르사유 조약 체결]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방위 동맹인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하며, 프로이센과 영국의 동맹에 맞서는 새로운 유럽 대륙의 대결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이는 '외교 혁명'의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영국, 프랑스에 선전포고]
오하이오 영토에서의 전투가 시작된 지 약 2년 만에 영국이 프랑스에 공식 선전포고를 하며 7년 전쟁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습니다.
[메노르카섬 프랑스 점령]
영국이 메노르카섬 해전에서 프랑스에 패배한 후, 한 달 뒤 6월 28일 프랑스에 메노르카섬을 빼앗기며 지중해에서 중요한 해군 거점을 상실했습니다.
이 패배로 영국 제독 존 빙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처형당하는 굴욕을 겪었습니다.
[프로이센, 작센 침공]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2세가 오스트리아에 의한 슐레지엔 침공에 대한 예방 전쟁으로 작센을 선제공격하며 유럽 대륙 전쟁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 공격은 전 유럽의 분노를 사 반프로이센 동맹의 결속을 강화시켰습니다.
[작센군 프로이센에 항복]
피르나 공성전 후 작센군이 프로이센에 항복하고 강제 편입되면서, 프로이센은 작센의 군대와 자금을 전쟁에 전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보지츠 전투 발발]
프로이센군이 로보지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의 작센군 합류를 저지하며 작센 점령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프로이센의 전략적 승리였으나, 대규모 희생과 예상보다 큰 오스트리아군의 저항으로 프리드리히 2세는 새로운 위협을 인지하게 됩니다.
1757
[러시아군 메멜 점령]
러시아군이 프로이센의 견고한 요새 메멜을 포위하고 5일간의 포격 끝에 점령하며 동프로이센 침공의 교두보를 마련했지만, 병참 문제로 철수하는 약점을 드러냈습니다.
[프라하 전투 프로이센 승리]
프리드리히 2세가 보헤미아로 진군하여 프라하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에 승리, 프라하를 포위하며 전쟁의 주도권을 다시 잡았습니다.
양군 모두 1만 명 이상의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콜린 전투 프로이센 대패]
콜린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2세가 최초로 대패하며 프라하 포위를 풀고 보헤미아에서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패배는 훨씬 많은 나라들을 전쟁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플라시 전투 영국 승리]
로버트 클라이브가 이끄는 영국군이 플라시 전투에서 프랑스와 동맹한 벵골 태수를 축출하고 캘커타를 재점령하며 인도에서 영국의 지배권 확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대영제국의 기초를 닦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하슈텐베크 전투 패배]
컴벌랜드 공작이 이끄는 하노버군이 하슈텐베크 전투에서 프랑스군에 패배, 하노버가 프랑스에 침공당하고 클로스터-체벤 협정으로 항복하며 프로이센에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러시아군이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을 격파하며 러시아군의 전투력을 입증했지만, 병참 문제로 철수해야 하는 약점을 드러냈습니다.
[하디크 베를린 기습 점령]
오스트리아군 하디크 장군이 후사르 5천 명을 이끌고 프로이센 수도 베를린을 기습, 하룻밤 만에 점령하고 20만 달러를 요구한 후 무사히 퇴각하며 프로이센에 큰 굴욕을 안겼습니다.
이는 오스트리아군의 사기를 크게 올렸습니다.
[로스바흐 전투 프로이센 승리]
프리드리히 2세의 프로이센군이 로스바흐 전투에서 수비즈 공작의 프랑스-신성 로마 제국 연합군에 대승을 거두며 유럽 최고의 명장으로서의 입지를 다시 확립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은 압도적인 전과를 올렸습니다.
[로이텐 전투 프로이센 승리]
로이텐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2세가 병력 우위의 오스트리아군에 또다시 대승을 거두며 프로이센군이 유럽에서 가장 숙달된 병사임을 과시했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이를 자신의 가장 큰 승리라고 자평했습니다.
1758
[영국, 세네갈 식민지 점령]
영국이 프랑스의 서아프리카 식민지 생 루이를 손쉽게 점령하고 많은 전리품을 획득하며 프랑스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러시아군 동프로이센 점령]
러시아군이 동프로이센에 침공하여 거의 저항 없이 이곳을 점령하고 1762년까지 지배했지만, 프리드리히 2세는 이를 당면한 위협으로 보지 않고 오스트리아 격파에 집중했습니다.
[영보 협정 체결 및 지원]
영국이 프로이센에 67만 파운드의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9천 명의 병력을 파견하는 영보 협정을 체결하며 프로이센의 전쟁 수행에 큰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크레펠트 전투 승리]
페르디난트가 이끄는 영국-하노버 연합군이 크레펠트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뒤셀도르프를 일시 점령하며 프로이센 서부의 안전을 확보했습니다.
[조른도르프 전투 발생]
조른도르프 전투에서 프로이센군과 러시아군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나, 러시아군이 후퇴하여 프리드리히 2세가 승리를 선언하며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의 진군을 저지했습니다.
양군 모두 너무 지쳐 더 이상 싸우기 어려웠던 치열한 접전이었습니다.
[토르노프 전투 스웨덴 승리]
토르노프 전투에서 스웨덴군이 프로이센 기병의 맹공을 격퇴했으나, 이틀 후 페르벨린 전투에서도 베를린으로 진격하지 못하며 포메라니아 전선이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호크키르히 전투 프로이센 패배]
호크키르히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이 프로이센군을 기습하여 승리, 프리드리히 2세는 많은 대포를 잃었으나 주위 숲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철수하여 전력 손실을 최소화했습니다.
이 패배는 프로이센에 큰 좌절감을 안겼습니다.
1759
[영국, 과들루프 점령]
영국 해군이 프랑스령 설탕 생산 식민지 과들루프를 점령하며 카리브해에서 프랑스의 경제적 기반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퀘벡 포위전 시작]
영국군이 퀘벡을 포위하며 세인트로렌스강을 건너 올리언스섬에 진을 치고 3개월간 공성전을 벌여 북미 전선의 향방을 결정할 중요한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카이 전투 프로이센 패배]
카이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이 러시아군에 크게 패하며 프로이센에게 절망적인 1759년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몽모랑시 폭포 전투]
영국군이 몽모랑시 폭포에서 프랑스군을 기습했으나, 프랑스군이 높은 고지에 유리하게 진을 치고 있어 영국군이 퇴각하며 퀘벡 공성전의 난항을 보여주었습니다.
[민덴 전투 하노버 승리]
민덴 전투에서 하노버군이 프랑스군 6만 명을 격파하며 프랑스가 오스트리아군에 보내는 증원군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쿠너스도르프 전투 대패]
프리드리히 2세가 이끄는 프로이센군이 쿠너스도르프 전투에서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에 대패하며 국가적 존망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 개인에게도 가장 참혹한 패배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라구스 해전 영국 승리]
라구스 해전에서 에드워드 보스카웬이 이끄는 영국 함대가 프랑스 지중해 함대를 격파하며 프랑스의 영국 본토 침공 계획에 차질을 주었고, 영국의 해상 우위를 공고히 했습니다.
[베를린 포위 연합군 철수]
쿠너스도르프 대패 후 베를린이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에 포위되었으나, 연합군의 막대한 피해와 보급 문제로 기적적으로 철수하며 프로이센은 멸망 위기를 넘겼습니다.
이는 '브란덴부르크 가의 기적'이라 불립니다.
[아브라함 평원 전투 영국 승리]
제임스 울프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이 아브라함 평원 전투에서 프랑스군에 대승을 거두고 퀘벡을 점령, 북미에서 프랑스 세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습니다.
양측 지휘관인 울프와 몽칼름 후작 모두 이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키브롱만 해전 영국 대승]
키브롱만 해전에서 에드워드 호크가 이끄는 영국 전열함이 프랑스 브레스트 함대에 대승을 거두며 프랑스의 영국 본토 침공 계획을 완전히 좌절시키고, 영국 해군이 세계 해상 패권을 확고히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막센 전투 프로이센 대패]
막센 전투에서 프로이센군 14,000명이 오스트리아군 다운 장군에게 대패하여 11,741명이 포로로 잡히는 등 큰 손실을 입으며 프로이센의 전황이 다시 악화되었습니다.
1760
[반디와시 전투 영국 승리]
반디와시 전투에서 영국군이 프랑스군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인도 남부에서 프랑스 세력을 거의 소멸시키고 영국의 지배권을 확고히 했습니다.
[생트푸아 전투 프랑스 승리]
프랑스계 민병대가 생트푸아 전투에서 승리하며 퀘벡 재탈환을 시도했으나, 영국 해군이 제해권을 장악하며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로쿼이 연맹, 카나와케 조약]
프랑스의 패배를 목격한 이로쿼이 연맹 7개국이 전쟁에서 철수하고 영국과 카나와케 조약을 협상하며 캐나다-뉴욕 간 자유로운 이동을 확보했습니다.
[란트슈트 전투 프로이센 패배]
란트슈트 전투에서 푸케 장군이 이끄는 프로이센군이 오스트리아군에 패배, 프랑스는 마르부르크를 점령하고 스웨덴은 포메라니아 일부를 점령하며 프로이센의 전황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바르부르크 전투 하노버 승리]
바르부르크 전투에서 하노버군이 프랑스군에 승리, 프랑스가 오스트리아군에 보내는 증원군을 저지하며 유럽 전선의 균형 유지에 기여했습니다.
[리그니츠 전투 프로이센 승리]
프리드리히 2세가 리그니츠 전투에서 3배에 달하는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을 상대로 훌륭한 승리를 거두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프로이센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러시아-오스트리아 베를린 점령]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이 프로이센 수도 베를린을 점령했으나 즉시 철수, 프리드리히 2세의 권위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 결정적인 패배는 피했습니다.
이는 베를린이 두 번째로 점령된 사건입니다.
[토르가우 전투 프로이센 승리]
프리드리히 2세가 토르가우 전투에서 다시 승리했으나, 프로이센군도 큰 피해를 입고 오스트리아군이 질서정연하게 퇴각하며 결정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했습니다.
1761
[폰디체리 등 프랑스 식민지 항복]
프랑스의 인도 본거지 폰디체리가 영국군에 항복하고 다른 식민지들도 차례로 항복하며 인도 내 프랑스의 세력이 완전히 소멸, 영국이 인도 대륙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콜베르크, 슈바이트니츠 함락]
러시아군이 발트해 연안의 주요 항구 콜베르크를 점령하고 오스트리아군이 슈바이트니츠를 점령하며 프로이센은 총체적 붕괴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로써 러시아는 중부 유럽에 대한 해상 보급로를 확보하며 전력 균형이 크게 기울었습니다.
[랑엔잘짜 전투 프로이센 승리]
랑엔잘짜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이 프랑스군에 기습 승리하며 카셀 포위전을 펼쳤으나, 프랑스군의 반격으로 포위를 풀 수밖에 없었습니다.
[벨링하우젠 전투 연합군 승리]
벨링하우젠 전투에서 프로이센-하노버-영국 연합군이 프랑스군 92,000명을 격파하며 서부 전선에서 연합군의 주도권을 유지했습니다.
[폴란드 탄약고 기습]
프로이센군이 러시아군의 폴란드 탄약고를 성공적으로 기습하여 2천 명 사상자와 5천 대의 마차를 파괴, 러시아군의 보급선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1762
[스페인, 포르투갈 알메이다 함락]
스페인이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포르투갈을 침공, 알메이다를 함락시켰으나 영국 증원군 도착으로 스페인의 진군은 둔화되었습니다.
[발렌시아 드 알칸타라 전투]
발렌시아 드 알칸타라 전투에서 영국-포르투갈 연합군이 스페인의 보급 거점을 점령하며 스페인의 포르투갈 침공을 저지했습니다.
[영국, 마르티니크 점령]
영국 해군이 카리브해의 마르티니크 섬을 점령하며 서인도 제도에서 프랑스의 주요 거점을 추가로 확보했습니다.
[영국, 하바나 및 마닐라 점령]
영국이 스페인 식민지였던 쿠바의 하바나와 필리핀의 마닐라를 점령하며 대서양과 태평양에서 스페인에 큰 압력을 가했지만, 내륙 진격에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시그널힐 전투 프랑스 패배]
뉴펀들랜드의 세인트존스를 공격했던 프랑스군이 시그널힐 전투에서 영국군에 패배, 북미에서 마지막 전투였으며 프랑스 국민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영국, 스페인에 선전포고]
영국이 스페인에 선전포고하고 18일 스페인도 영국에 선전포고하며 포르투갈이 영국 측에 참전, 전쟁의 범위가 확대되었습니다.
[옐리자베타 여제 사망, 기적 발생]
러시아 옐리자베타 여제 사망 후 친(親)프로이센 성향 표트르 3세가 황제로 즉위, 러시아가 점령지를 반환하고 스웨덴과 정전 중재하며 프로이센은 멸망 위기에서 기적적으로 벗어났습니다.
이는 '제2차 브란덴부르크 가의 기적'이라 불립니다.
[부르케르스도르프 전투 승리]
부르케르스도르프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2세가 오스트리아 다운 장군에게 가까스로 승리하며 슐레지엔의 거의 전부를 탈환, 유럽 중부 전선에서 프로이센의 우위를 확고히 했습니다.
[스페인, 콜로니아 델 새크라멘토 정복]
스페인이 포르투갈령 콜로니아 델 새크라멘토와 히우그란지두술을 정복하며 남미 식민지 전쟁에서 스페인의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이 영토는 이후 파리 조약으로 반환되었습니다.
[프라이베르크 전투 승리]
프라이베르크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2세의 동생 하인리히가 승리하며 작센 대부분의 영토를 확보, 프로이센의 협상력을 높였습니다.
1763
[포르투갈, 네그루 강 탈취]
포르투갈이 스페인으로부터 남미 네그루 강 유역의 대부분을 탈취하며 남미 식민지에서도 영토 변화가 있었습니다.
[파리 조약 체결]
7년 전쟁의 최종 평화 조약인 파리 조약이 체결되어 프랑스는 루이지애나를 스페인에, 누벨 프랑스를 영국에 할양하며 북미와 인도에서 영국이 압도적인 지배권을 확보했습니다.
이는 대영제국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후베르투스부르크 조약 체결]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작센 간 후베르투스부르크 조약이 체결되어 슐레지엔은 프로이센에, 작센은 아우구스트 2세에 반환되며 유럽 중부 전쟁이 종결되었습니다.
이로써 프로이센은 도전받지 않는 유럽 열강으로 공고히 자리매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