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동인도 회사
기업, 역사, 제국주의, 무역, 전쟁
최근 수정 시각 : 2025-12-27- 22:05:23
1600년 엘리자베스 1세의 칙허로 설립된 영국의 무역 회사는 단순한 상인 집단을 넘어 거대한 군대와 행정 조직을 갖춘 '국가 속의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인도를 식민지화하고 아편 전쟁을 일으키는 등 대영제국 확장의 선봉장 역할을 했으나, 방만한 경영과 가혹한 수탈, 그리고 1857년 세포이 항쟁을 계기로 모든 권한을 영국 왕실에 넘겨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1600
[회사 설립 및 왕실 칙허]
엘리자베스 1세 여왕으로부터 희망봉 동쪽의 모든 국가와 무역할 수 있는 독점권을 부여받아 설립되었습니다.
초기 자본금은 7만 2천 파운드였으며, 주된 목표는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이 장악하고 있던 향신료(후추, 정향 등) 무역에 참여하는 것이었음.
1612
[수알리 해전 승리 (인도 진출 교두보)]
인도 수랏(Surat) 앞바다에서 포르투갈 해군을 격파했습니다. 이 승리로 무굴 제국의 신임을 얻어 인도 내 첫 번째 무역 거점(Factory)을 수랏에 설치했습니다.
1623
[암보이나 학살 사건]
인도네시아 암보이나 섬에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영국 상관원들을 고문하고 처형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영국은 향신료 제도(동남아)에서 밀려나 인도 본토 공략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 사건 덕분에 영국은 인도를 차지하는 전화위복을 맞이함.
1668
[봄베이(뭄바이) 인수]
찰스 2세가 포르투갈 공주 캐서린과 결혼하며 지참금으로 받은 봄베이를 동인도 회사에 연간 10파운드의 임대료로 넘겼습니다.
이후 봄베이는 서인도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함.
1690
[캘커타(콜카타) 건설]
욥 차녹(Job Charnock)이 벵골 지역의 3개 마을을 통합하여 무역 기지를 건설했는데, 이것이 훗날 영국의 인도 통치 중심지인 캘커타가 되었습니다.
1757
[플라시 전투 승리]
로버트 클라이브가 이끄는 동인도 회사 군대가 프랑스와 연합한 벵골 태수(Nawab) 시라즈 우드 다울라의 군대를 격파했습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동인도 회사는 벵골 지방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확보하며, 단순한 무역 기업에서 '영토를 가진 지배자'로 변모함.
1765
[알라하바드 조약 (징세권 획득)]
무굴 제국 황제로부터 벵골, 비하르, 오리사 지역의 '디와니(Diwani, 조세 징수권)'를 공식적으로 양도받았습니다.
회사가 국가의 세금을 걷는 기형적인 구조가 완성되었으며, 이는 인도 수탈의 공식화를 의미함.
1770
[벵골 대기근]
동인도 회사의 가혹한 세금 수탈과 흉년이 겹쳐 벵골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000만 명이 굶어 죽는 대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회사의 재정이 악화되고 영국 본토에서 회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함.
1773
[규제법(Regulating Act) 제정]
영국 의회가 동인도 회사의 방만 경영을 통제하기 위해 제정한 법으로, 벵골 지사를 '영국령 인도 총독'으로 격상시키고 본국의 감독을 강화했습니다.
초대 총독으로 워런 헤이스팅스가 임명됨.
1813
산업혁명으로 성장한 본국의 자본가들이 자유 무역을 요구했기 때문임.
1833
[상업 활동 전면 중단]
차(Tea) 무역을 포함한 중국과의 무역 독점권마저 폐지되었습니다. 회사는 상업적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오직 인도를 통치하는 행정 기구로만 존속하게 되었습니다.
1840
승리 후 난징 조약을 통해 홍콩을 할양받음.
1857
[세포이 항쟁 (인도 대반란)]
동인도 회사 소속 용병인 세포이들이 처우 불만과 종교적 모욕(엔필드 강선총 탄약통에 소/돼지 기름을 발랐다는 소문)을 계기로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반란은 인도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나 결국 진압됨. 이 사건은 동인도 회사의 통치 능력에 사망 선고를 내림.
1858
[인도 통치권 박탈 및 영국령 인도 제국 수립]
영국 의회는 '인도 정부법'을 통과시켜 동인도 회사의 모든 통치권을 박탈하고, 인도 통치를 영국 왕실(Crown) 직할로 전환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의 통치자가 되며 '브리티시 라지(British Raj)' 시대가 열림.
1874
27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