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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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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제조사, 모터사이클 제조사, 다국적 기업 + 카테고리
혼다는 전후의 폐허 속에서 자전거에 보조 엔진을 달아 팔던 작은 동네 공장에서 출발하여, 끝없는 혁신과 도전을 통해 전 세계 모빌리티의 역사를 새로 쓴 입지전적인 기업입니다. 1959년 이래 굳건히 지켜온 '세계 최대의 모터사이클 제조사'라는 타이틀을 넘어,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거대한 자동차 산업에 성공적으로 진입했습니다. 혁신적인 저공해 CVCC 엔진 개발, 영원한 베스트셀링 카 시빅(Civic)의 탄생, 그리고 프리미엄 브랜드 어큐라(Acura)의 세계 최초 론칭 등 자동차 역사의 결정적 변곡점들을 주도했습니다. 오늘날 이륜과 사륜을 아우르며 인류에게 '이동의 기쁨(Power of Dreams)'을 선사하는 글로벌 거대 기업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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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46

[혼다 기술연구소 창립]

창업자가 자신의 이름을 딴 작은 동네 공장을 세우며 모빌리티의 꿈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자전거에 보조 엔진을 장착하여 전후의 열악한 교통 환경을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훗날 거대한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위대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혼다 소이치로(Soichiro Honda)가 일본 하마마쓰에 '혼다 기술연구소(Honda Technical Research Institute)'를 최초로 설립했습니다. 초기에는 자전거에 소형 보조 엔진을 부착해 특유의 엔진 소리 때문에 '바타 바타(Bata Bata)'라는 별명으로 불린 혼다 A형을 개발하며 사업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1948

[본다기연공업 주식회사 법인화]

기존의 연구소를 청산하고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정식 주식회사를 새롭게 출범시켰습니다. 뜻을 함께하는 소수의 동료들과 적은 자본금으로 시작하여 본격적인 기업의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이로써 연구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대량 생산과 상업화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기존 혼다 기술연구소를 100만 엔에 청산하고, 이 자금을 바탕으로 '본다기연공업(Honda Motor Co., Ltd.)'을 공식 주식회사로 설립했습니다.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와 후지사와 타케오(Takeo Fujisawa)를 필두로 34명의 직원과 함께 기업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1949

[최초의 완성형 모터사이클]

프레임부터 엔진까지 모든 핵심 부품을 자체 기술로 제작한 완전한 형태의 모터사이클을 최초로 완성했습니다. 창업자의 원대한 비전을 담은 상징적인 이름이 부여되며 시장의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는 부품 조립 단계를 넘어 독자적인 제조 역량을 완벽히 입증한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혼다가 자체 제작한 프레임과 엔진을 결합한 최초의 완전형 모터사이클 'D형(D-Type)'이 시장에 정식 출시되었습니다. 이 모델은 혼다의 원대한 포부를 담아 처음으로 '드림(Dream)'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기념비적인 제품이 되었습니다.

1952

[커브 F형(Cub F-Type) 출시]

파격적인 색상과 혁신적인 디자인을 적용한 자전거용 보조 엔진을 출시하여 전국적인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창의적인 직접 우편 마케팅 전략을 통해 기존의 좁은 판매망을 폭발적으로 넓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전후 재건 시기에 서민들의 필수 교통수단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하얀색 연료 탱크와 빨간색 엔진이라는 파격적인 디자인을 적용한 '커브 F형(Cub F-Type)'이 일본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국의 자전거 매장을 대상으로 한 혁신적인 다이렉트 메일 마케팅 전략이 적중하여, 혼다의 판매망은 단숨에 400개에서 13,000개로 급격히 팽창했습니다.

1953

[농업용 경운기 시장 진출]

고령자와 여성이 대부분인 농촌의 고된 노동을 덜어주기 위해 독자 기술을 활용한 소형 농기계를 선보였습니다. 당시 산업용 제품에서는 보기 드문 강렬한 색상과 사용자 중심의 설계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모빌리티 영역을 넘어 농업 분야에서도 기계화의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엔진을 거꾸로 배치하여 무게 중심을 낮추고 조작을 중앙에 집중시킨 브랜드 최초의 경운기 'F150'을 성공적으로 개발했습니다. 산업용 기계로는 이례적으로 빨간색 도색을 적용해 출시 직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들판을 붉게 물들인 혼다 돌풍"이라는 유행어를 탄생시켰습니다.

1959

[세계 1위 모터사이클 제조사]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폭발적인 판매망 확장에 힘입어 창업 10여 년 만에 세계 시장의 정점에 올랐습니다. 글로벌 무대에서 가장 많은 이륜차를 생산하는 압도적인 기업으로 등극하며 브랜드의 위상을 확고히 다졌습니다. 이는 훗날 자동차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강력한 재정적, 기술적 교두보가 되었습니다.
혼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생산량과 글로벌 판매망을 구축하여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모터사이클 제조사로 우뚝 섰습니다. 이 거대한 타이틀은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으며, 이륜차 시장의 절대 강자로서의 입지를 확립한 결정적 사건입니다.

1961

[모터스포츠 첫 그랑프리 제패]

세계적인 모터사이클 경주 대회에 참가하여 두 개의 배기량 부문에서 동시에 첫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가혹한 레이싱 무대에서 성능을 완벽히 입증하며 한계를 단숨에 돌파했습니다. 이 놀라운 우승은 브랜드의 우수한 엔지니어링 역량을 전 세계에 확실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터사이클 최고 권위의 경주 대회인 월드 그랑프리(Grand Prix) 무대의 125cc 및 250cc 카테고리에서 혼다가 역사적인 첫 우승과 월드 챔피언십을 동시에 달성했습니다. 이는 일본의 신생 브랜드가 글로벌 모터스포츠의 강자로 떠오르는 화려한 신호탄이었습니다.

1963

[자동차 시장으로의 첫 진출]

모터사이클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브랜드 최초의 사륜 자동차를 출시하며 새로운 시대의 막을 올렸습니다. 상용 목적의 소형 트럭을 먼저 선보이며 경제 호황기의 실용적인 운송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이륜차의 제왕이 드디어 거대한 자동차 산업에 치열한 도전장을 내민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혼다의 첫 양산형 자동차인 경형 픽업트럭 'T360'이 시장에 정식으로 출시되었습니다. 356cc의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여 일본 내수 시장의 저렴한 경차(Kei car) 세금 혜택을 정조준한 실용적인 상용 모델이었습니다.

[최초의 양산형 스포츠카]

소형 트럭 출시에 이어 곧바로 브랜드 최초의 승용 모델이자 스포티한 오픈카를 연이어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이륜차에서 유래한 독특한 구동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여 차별화된 고회전의 경쾌한 주행 성능을 뽐냈습니다. 승용차 시장에서도 충분한 엔지니어링 경쟁력을 갖추었음을 화려하게 입증했습니다.
T360 출시 직후인 10월, 2도어 로드스터 형태의 날렵한 스포츠카 'S500'을 출시했습니다. 특히 뒷바퀴를 체인으로 구동하는 극히 독특한 방식을 채택하여 모터사이클 제조사로서 혼다의 태생적 정체성과 스포티한 유전자를 고스란히 차량에 반영했습니다.

1966

[N360 등 승용 라인업 확대]

내수 시장을 겨냥한 실용적인 경차 모델과 고성능 스포츠카 라인업을 새롭게 추가하며 승용차 부문의 볼륨을 적극적으로 키웠습니다. 다양한 소비자층의 요구를 폭넓게 충족시키는 다채로운 차량들이 시장에 투입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해외 수출용 개조 모델까지 선제적으로 기획하며 글로벌 도약을 준비했습니다.
일본 경차 규격에 맞춘 2도어 해치백 'N360'과 스포츠카 라인업의 고성능 모델인 'S800' 등을 성공적으로 선보였습니다. 특히 N360은 훗날 배기량을 키워 'N600'이라는 이름으로 해외 시장에 수출되며 국제적인 인기를 얻는 교두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1969

[최초의 4도어 세단 출시]

2도어 형태 위주였던 라인업을 확장하여 브랜드 역사상 최초로 4개의 문을 가진 정통 세단을 대중에게 공개했습니다. 독자적인 냉각 방식을 고집스럽게 적용한 엔진을 탑재하여 남다른 기술적 고집을 끝까지 고수했습니다. 가족 단위 소비자를 겨냥한 가장 범용적인 승용차 시장에 마침내 본격 진입했습니다.
혼다의 첫 번째 4도어 세단 모델인 '혼다 1300'이 정식으로 출시되었습니다. 당시 소형차의 주류가 되어가던 수랭식이 아닌, 창업자의 철학이 매우 짙게 배어 있는 공랭식 4기통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점이 돋보였습니다.

1972

[전설의 시작, 시빅(Civic) 탄생]

기존의 구형 모델을 완전히 대체하는 혁신적인 해치백 승용차를 글로벌 시장에 전격 출시했습니다. 뛰어난 경제성과 실용성으로 전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며 자동차 제조사로서의 입지를 단숨에 세계 최정상 수준으로 격상시켰습니다. 훗날 회사를 상징하는 영원한 베스트셀링 카로 굳건히 자리 잡는 기념비적인 첫 출발이었습니다.
기존 N600 모델을 대체하며, 새롭게 수랭식 엔진을 장착한 실용적인 소형 해치백 '시빅(Civic)' 1세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경제적이고 잔고장이 없는 차량으로 엄청난 입소문을 타며 일본은 물론 깐깐한 미국 등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73

[친환경 CVCC 엔진 상용화]

세계적으로 배기가스 규제가 극도로 엄격해지는 가운데, 후처리 장치 없이도 혹독한 규제를 통과하는 혁신적인 저공해 엔진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습니다. 이 엔진을 품은 주력 차종이 오일쇼크 시대의 가장 완벽한 대안으로 떠오르며 거대한 북미 시장을 완벽히 장악했습니다. 기술의 혼다라는 명성을 전 세계 자동차 업계에 뼛속 깊이 각인시킨 역사적 쾌거였습니다.
당시 통과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미국의 '머스키법(대기정화법)' 규제 수치를 완벽히 충족시킨 혁신적인 연소 기술인 CVCC 엔진을 개발하여 시빅 라인업에 탑재했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배기가스 규제라는 이중고를 오히려 엄청난 성장의 기회로 반전시키며 일본을 넘어 거대한 미국 시장에서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창업자의 명예로운 은퇴]

회사를 설립하고 세계적인 반열에 당당히 올려놓은 위대한 창업자와 그의 든든한 동업자가 나란히 경영 일선에서 아름답게 물러났습니다. 창업 세대의 카리스마적인 리더십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전문 경영인 체제로 매끄럽게 전환되었습니다. 이는 기업이 개인의 뛰어난 역량을 넘어 체계적이고 거대한 조직 확장의 단계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중대한 이정표였습니다.
회사 설립부터 모든 것을 총괄해 온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와 부사장 후지사와 타케오가 나란히 현직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했습니다. 그들의 뒤를 이어 가와시마 키요시(Kiyoshi Kawashima)가 새로운 전문 CEO로 취임하며, 회사는 창업기를 훌륭하게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글로벌 확장기로 돌입하게 됩니다.

1978

[1세대 프렐류드(Prelude) 출시]

실용적이고 대중적인 기존 모델 라인업에 이어 스포티한 디자인과 운전의 재미를 강조한 새로운 2도어 쿠페 모델을 전격 추가했습니다. 세련되고 낮은 스타일링으로 젊은 세대와 자동차 애호가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으며 스포티지한 브랜드 이미지를 한층 짙게 강화했습니다. 이는 급변하는 시장의 다변화된 수요를 완벽히 충족시키는 훌륭한 라인업 확장 전략이 되었습니다.
SN형으로 명명된 1세대 스포티 쿠페 '혼다 프렐류드(Prelude)'가 새롭게 시장에 출시되었습니다. 시빅과 어코드의 연이은 대성공 이후, 보다 날렵하고 매력적인 쿠페형 틈새시장을 치밀하게 개척하기 위해 투입된 모델로 두터운 글로벌 마니아층을 형성했습니다.

1982

[2세대 프렐류드 출시]

기존 쿠페 모델의 디자인 정체성을 유지한 채 공기역학적 성능을 대폭 개선한 완전 변경 모델을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더욱 낮고 넓은 파격적인 스포티 외관으로 전 세계적인 큰 인기를 끌며 브랜드의 뛰어난 디자인 역량을 한 단계 높였습니다. 이 혁신적인 모델을 통해 스포츠 쿠페 시장에서의 확고한 우위 지위를 다지는 데 성공했습니다.
리트랙터블 헤드라이트(팝업식 전조등) 등 더욱 매끄럽고 유려한 첨단 디자인을 전면적으로 적용한 AB/BA1형 2세대 프렐류드가 출시되었습니다. 당시 전 세계 젊은 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1980년대 스포티 쿠페의 대명사 중 하나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1983

[구메 타다시 CEO 취임]

첫 번째 전문 경영인의 성공적인 임기가 끝나고 뛰어난 엔지니어 출신의 새로운 리더가 거대 회사의 수장으로 올라섰습니다. 기술 중심의 굳건한 기업 문화를 바탕으로 모터스포츠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가혹한 F1 무대에서 압도적인 황금기를 구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적인 글로벌 리딩 브랜드로서의 폭발적인 외형 성장을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했습니다.
전임 가와시마 키요시의 뒤를 이어 엔진 설계의 최고 전문가였던 구메 타다시(Tadashi Kume)가 새로운 CEO로 공식 취임했습니다. 그의 열정적인 재임 기간 동안 회사는 모터스포츠 F1 무대에 엔진 공급사로 참여하여 수많은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어내며 세계 최고의 엔진 기술력을 만천하에 입증했습니다.

1986

[프리미엄 브랜드 어큐라 론칭]

기존의 실용적인 대중차 이미지를 과감히 뛰어넘어 고부가가치의 럭셔리 승용차 시장을 정면으로 공략하기 위해 별도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북미에 세계 최초로 설립했습니다. 철저한 고급화 전략과 타협 없는 품질로 성공적인 안착을 이루며 다른 일본의 경쟁사들에게도 큰 자극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는 브랜드 가치의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을 완벽히 돌파한 가장 선구적인 대도약이었습니다.
일본 자동차 제조사 역사상 최초로 북미 시장에 럭셔리 독립 브랜드인 '어큐라(Acura)'를 공식 론칭했습니다. 레전드(Legend) 등 최고급화된 차량 라인업을 앞세워 깐깐한 미국 소비자들에게 품질과 성능을 인정받았고, 이후 렉서스(토요타)와 인피니티(닛산) 등 강력한 경쟁사들의 프리미엄 브랜드 연쇄 출범을 촉발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7

[3세대 프렐류드 출시]

공기역학적인 쐐기형의 날렵한 디자인을 극대화한 쿠페 라인업의 세 번째 진화 모델을 대중에게 자신 있게 공개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네 바퀴를 모두 조향하는 혁신적인 기계식 시스템을 양산차에 적용하여 진정한 스포츠카 수준의 민첩한 코너링 성능을 자랑했습니다. 당대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최첨단 신기술 경쟁을 가장 선두에서 이끄는 상징적인 모델이 되었습니다.
극단적으로 얇게 낮춘 보닛(로우 엔진 후드)과 완벽하게 매끄러운 바디 라인을 뽐내는 BA4/5/7형 3세대 프렐류드가 출시되었습니다. 특히 양산차 역사상 최초로 네 바퀴를 모두 조향할 수 있는 기계식 4WS(Four Wheel Steering) 기술을 상용화하여 전 세계 엔지니어들에게 엄청난 기술적 찬사를 받았습니다.

1990

[가와모토 노부히코 CEO 취임]

전 세계 경제 거품이 붕괴하는 혼란스럽고 험난한 시기에 거대 조직을 안정적으로 재정비할 새로운 수장이 경영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불필요하게 낭비되던 방만한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다목적 패밀리카 개발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뼈를 깎는 위기 속에서 완벽한 체질 개선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며 회사의 명운을 든든하게 구원했습니다.
가와모토 노부히코(Nobuhiko Kawamoto)가 새로운 수장으로 취임하여 1998년까지 기업의 전반적인 경영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회사의 F1 전격 철수를 결단하는 등 재정건전성을 공격적으로 확보하고, 오디세이(Odyssey), CR-V 등 수익성이 매우 뛰어난 레저용 다목적 차량 개발에 박차를 가해 심각한 경영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습니다.

1991

[4세대 프렐류드 출시]

스포츠 쿠페 시장의 더욱 치열해진 경쟁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차체를 더욱 넓고 우람하게 키운 풀체인지 모델을 내놓았습니다. 가변 밸브 타이밍이라는 독보적인 기술을 본격적으로 심어 폭발적인 고속 주행의 짜릿함을 완벽히 구현해 냈습니다. 기존 세대의 섬세한 디자인 노선에서 완전히 벗어나 압도적이고 강력한 남성적인 이미지를 뽐냈습니다.
차폭을 넓혀 본격적인 3넘버 와이드 바디 차량으로 대폭 전환된 BA8/9/BB1/2/3/4형 4세대 프렐류드가 출시되었습니다. 혁신적인 고회전형 VTEC 엔진과 발전된 전동식 4WS 시스템 등을 적극 채택하여 코너링과 직선 가속력 면에서 당대 최고 수준의 놀라운 운동 성능을 달성했습니다.

1996

[5세대 프렐류드 출시]

이전 세대의 과감한 근육질 디자인을 버리고 초창기의 세련된 직선형 디자인으로 우아하게 회귀한 마지막 쿠페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다루기 즐거운 뛰어난 주행 성능을 자랑했으나, 전 세계적인 스포츠카 시장의 구조적인 침체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이 모델을 끝으로 오랜 세월 브랜드의 스포티함을 담당했던 유서 깊은 쿠페 시리즈는 깊고 긴 휴식기에 들어가게 됩니다.
출시된 BB5/6/7/8형 5세대 프렐류드는 과거 3세대의 디자인 큐를 이어받아 단정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복귀했습니다. 완벽에 가까운 핸들링과 우수한 주행 질감을 두루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인 실용적인 쿠페 수요 감소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하고 2001년 아쉬운 단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998

[요시노 히로유키 CEO 취임]

세기가 새롭게 바뀌는 역사의 전환점에, 친환경 기술과 차세대 파워트레인 개발을 강력히 진두지휘할 새로운 리더가 전격 선임되었습니다. 선도적인 가솔린 하이브리드 차량을 전 세계에 연이어 출시하며 새로운 친환경 에너지 시대의 강력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잰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심각해지는 환경 문제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는 지속 가능한 친환경 모빌리티 전략의 초석을 단단히 다졌습니다.
요시노 히로유키(Hiroyuki Yoshino)가 새로운 글로벌 CEO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회사는 인사이트(Insight)와 같은 혁신적인 양산형 하이브리드 차량을 세계 시장에 속속 선보이며 경쟁사와 함께 친환경 자동차 경쟁의 거대한 서막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2001

[일본 제2의 자동차 제조사 등극]

치밀한 다목적 차량 라인업 확장과 해외 시장에서의 엄청난 판매 호조에 힘입어 자국 내 강력한 경쟁사를 제치고 확고한 업계 2위 자리를 꿰찼습니다. 후발 주자로 겸손하게 시작해 불과 수십 년 만에 이뤄낸 참으로 경이로운 외형적 대성장이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 무대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신뢰받는 톱클래스 기업으로 우뚝 섰음을 공식적인 숫자로 증명해 냈습니다.
혼다는 오랜 기간 다퉈온 라이벌이었던 닛산을 마침내 앞지르고 토요타에 이어 일본 내 자동차 전체 생산 및 판매 규모 2위의 제조사로 당당히 등극했습니다. 가장 험난한 북미 시장에서의 폭발적인 베스트셀링 카 판매, 그리고 탄탄한 다목적 차량(RV) 라인업의 눈부신 성공이 이룩해 낸 기념비적인 성과였습니다.

2003

[후쿠이 타케오 CEO 취임]

글로벌 경제의 역동적인 확장기에 척진 해외 현지 생산 능력을 대폭 끌어올리고 신흥 시장을 더욱 공격적으로 개척할 새로운 경영진이 출범을 알렸습니다. 잠시 떠나있던 모터스포츠 복귀를 천명하며 기업 고유의 도전적인 엔지니어링 DNA를 다시 한번 전 세계에 과시했습니다. 풍부하고 안정적인 흑자 기조를 자양분 삼아 과감한 첨단 기술 투자를 쉴 새 없이 단행하던 찬란한 도약의 시기였습니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후쿠이 타케오(Takeo Fukui)가 CEO로서 거대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인간형 로봇 산업(아시모) 고도화와 소형 비즈니스 항공기(혼다제트) 사업 추진 등 미래 모빌리티 전반에 걸친 핵심 산업의 토대를 다졌으며, 글로벌 연간 자동차 생산 규모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2009

[이토 다카노부 CEO 취임]

유례없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가장 험난하고 암울한 시기에, 침체된 조직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수익성을 방어할 무거운 임무를 띤 수장이 새롭게 취임했습니다. 작고 효율적인 친환경 소형차를 중심으로 라인업을 민첩하게 재편성하고 전 세계적인 하이브리드 대중화에 적극적으로 앞장섰습니다. 대규모 자연재해 등 수많은 치명적 대외 악재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회사의 중심을 굳건히 지켜냈습니다.
이토 다카노부(Takanobu Ito)가 위기의 신임 CEO로 부임했습니다. 살인적인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국가적 차원의 엄청난 악재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새로운 하이브리드 모델을 연이어 출시했으며, 모터스포츠 엔진 공급사 재참여를 뚝심 있게 선언하며 강인한 위기 극복의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2011

[세계 8대 자동차 제조사 랭크]

지속적인 모델의 현지화 전략과 결함 없는 높은 품질을 바탕으로 글로벌 누적 생산량과 시장 점유율에서 명실공히 세계 최상위권의 위치를 공고히 다졌습니다. 오직 사륜 자동차 단일 분야뿐만 아니라 이륜차와 동력 장치를 모두 아우르는 방대하고 거대한 종합 모빌리티 제국을 기어코 완성했습니다. 서구권의 주요 역사 깊은 경쟁사들과 대등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온 세계에 뽐냈습니다.
글로벌 통계 기준, 혼다는 수많은 경쟁사들의 치열한 각축전 속에서도 세계에서 8번째로 덩치가 큰 거대 자동차 제조사 그룹으로 당당히 기록되었습니다. 더불어 연간 1,400만 대 이상의 내연기관 엔진을 전 세계로 뿜어내는 세계 최대의 엔진 생산 기업 타이틀도 함께 보유하며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2015

[하치고 다카히로 CEO 취임]

급변하는 전기차와 미래차 경쟁의 격랑에 철저히 대비하여 글로벌 생산 체계를 대대적으로 최적화하고 타사와의 과감한 기술 제휴를 이끌 리더가 등장했습니다. 맹목적이고 지나친 양적 성장을 강하게 경계하고 제품의 질적 완벽함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내실 다지기에 돌입했습니다. 전동화 및 완전 자율주행이라는 거대한 모빌리티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단단한 초석을 놓았습니다.
하치고 다카히로(Takahiro Hachigo)가 새 시대를 이끌 CEO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전임자 시대의 과도한 양적 확장 정책을 과감히 수정하여 글로벌 생산 공장의 매서운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경쟁사와의 차세대 배터리 및 전기차 기술 동맹을 강화하며 다가오는 전동화 시대에 대비하는 효율적인 체질 개선을 전면에서 주도했습니다.

2021

[시빅 누적 판매 2천7백만 대]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꾸준히 시대에 맞춰 진화를 거듭해 온 회사의 가장 상징적인 간판 해치백 모델이 11세대를 맞이함과 동시에 전무후무한 누적 판매 대수를 기록했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대륙의 도로 위를 누비는 가장 성공적이고 위대한 단일 모델 중 하나로서의 역사를 새롭게 썼습니다. 이는 대중의 다양한 요구를 끊임없이 분석하고 선도적인 기술로 반영한 가장 완벽한 결과물입니다.
1972년 처음 세상에 출시된 장수 모델 시빅이 2021년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11세대 모델 라인업을 새롭게 선보임과 동시에, 역사상 단일 모델 누적 판매 대수 2,700만 대를 가뿐히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세대와 국경을 완벽히 초월하여 전 세계 자동차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링 자동차 중 하나로 남게 된 찬란한 금자탑입니다.

2025

[이륜차 누적 생산 5억 대 달성]

자전거에 작은 보조 엔진을 달아 팔던 이름 없는 동네 공장이 수십 년 만에 이륜차 생산의 전무후무한 역사적 누적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동의 기쁨과 자유를 전 인류에게 널리 선사하겠다는 창업 초기부터의 오랜 간절한 꿈이 완벽한 수치로 증명된 찬란한 순간입니다. 앞으로 거세게 펼쳐질 모빌리티 혁명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이륜차 시장의 가장 강력한 지배력을 온 세상에 입증했습니다.
1949년 브랜드 최초의 자체 제작 이륜차인 드림 D형을 처음 세상에 내놓은 지 76년 만인 2025년 5월, 회사는 전 세계 누적 모터사이클 생산량 5억 대라는 압도적이고 경이로운 글로벌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반세기 넘게 단 한 번도 뺏기지 않은 세계 최대 모터사이클 제조사의 위용과 굳건한 위상을 완벽히 보여주는 역사적인 성과입니다.

[6세대 프렐류드 화려한 부활]

과거 뼈아픈 단종의 아픔을 겪었던 전설적인 스포티 쿠페가 오랜 침묵을 깨고 최첨단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품은 채 시장에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브랜드 고유의 역동적인 운전의 즐거움을 미래 지향적인 압도적 기술력으로 고스란히 계승해 냈습니다. 이는 단순한 복고의 열풍이 아닌, 차세대 전동화 승용 라인업의 스포티한 벤치마크 방향성을 확실하게 제시하는 강력한 출사표입니다.
2001년 5세대를 끝으로 길고 긴 단종의 역사로 사라졌던 프렐류드가 무려 24년 만에 최신 하이브리드 기술을 품은 6세대 모델로 완전히 부활하여 자동차 시장에 재등장했습니다. 기존의 스포티하고 유려한 전통적인 쿠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완벽하게 재해석하고 운전의 즐거움을 극대화하여 자동차 마니아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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