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LG 세이커스

num_of_likes 138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프로농구단, 스포츠 구단, KBL 팀 + 카테고리

창원 LG 세이커스는 1994년 금성사 농구단으로 시작하여 경남 창원을 연고로 하는 대한민국 프로 농구단입니다. KBL에서 연고지 이전과 팀명 변경이 없는 유일한 구단으로, 팬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왔습니다. 2013-14 시즌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나, 오랫동안 챔피언 결정전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여러 감독 교체와 선수단 리빌딩을 거치며 도전과 시련을 겪었지만, 2024-25 시즌 마침내 창단 28년 만에 대망의 챔피언 자리에 오르며 숙원을 풀었습니다. 꾸준한 팬 사랑 속에 대한민국 농구의 메카로 불리는 창원을 대표하는 명문 구단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94

[금성사 농구단 창단 승인]

한국실업농구연맹은 프로농구 승격을 염두에 두고 럭키금성그룹 계열의 금성사 신생팀 창단을 승인했습니다. 이것이 가칭 '금성사 농구단'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1994년, 한국실업농구연맹은 프로농구 승격을 염두에 두고 럭키금성그룹 계열의 금성사와 주류회사 진로의 신생팀 창단을 승인했습니다. 이것이 가칭 '금성사 농구단'이 세이커스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1995

[LG반도체로의 구단 이관]

LG전자에서 LG반도체로 구단이 이관되었습니다. 이후 1998년 6월 다시 LG전자로 환원됩니다.

1995년 8월 LG전자에서 LG반도체로 구단이 이관되었습니다.

1997

[창단 첫 시즌 정규리그 2위 달성]

경남 LG 세이커스라는 이름으로 1997-98 시즌에 참가하여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직행했으나, 큰 경기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에게 패하며 아쉽게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1997년, 경남 LG 세이커스라는 이름으로 1997-98 시즌에 참가하여, 주포 양희승의 부상과 주전선수들의 백업 멤버 경력에도 불구하고 블런트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의 맨투맨 수비와 세트 플레이로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해 플레이오프에 직행합니다. 하지만 큰 경기에 대한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에게 플레이오프에서 1승 3패로 패퇴하면서 아쉽게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이충희 초대 감독 취임]

'슛도사'로 유명한 이충희 감독이 창원 LG 세이커스의 초대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이 시기에 고려대와 홍익대 졸업반 선수 12명을 영입하고 외국인 선수 버나드 블런트와 로버트 보이킨스를 스카우트했습니다.

1997년 6월 1일, '슛도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이충희가 감독으로, 고려대학교, 홍익대학교 졸업반인 12명을 영입해 창단한 뒤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버나드 블런트와 로버트 보이킨스를 스카우트해 1997-98 시즌에 참가했습니다.

1998

[구단 LG전자로 환원 및 창원 LG 세이커스 팀명 변경]

LG반도체에서 LG전자로 다시 구단이 환원되었으며, 팀명은 '창원 LG 세이커스'로 변경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연고지 이전과 팀명 변경이 없는 유일한 구단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8년 6월 LG반도체에서 LG전자로 구단이 환원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팀명은 '창원 LG 세이커스'로 변경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1999

[주포 버나드 블런트 야반도주 사건]

팀의 주포였던 외국인 선수 버나드 블런트가 야반도주하는 청천벽력 같은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팀 전력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대체 용병의 약점으로 인해 1999-2000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1999년 10월 31일 밤, 팀의 주포였던 버나드 블런트가 야반도주를 했습니다. 대체 용병으로 마일로 브룩스를 영입했으나 그는 짧은 슛 거리와 불안정한 볼핸들링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1게임 차로 3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00

[김태환 감독 취임]

팀 개혁을 위해 중앙대학교 농구부의 명장인 김태환 감독을 영입했습니다. 김 감독은 조성원과 에릭 이버츠를 영입하며 블런트의 개인기에 의존하던 공격 패턴을 속공 위주로 변화시켰습니다.

2000년 4월 1일, LG는 팀의 개혁을 위해 중앙대학교 농구부의 명장인 김태환 감독을 영입했습니다. 김태환 감독은 현대 걸리버스에서 조성원을 영입하고, 용병으로는 나산 플라망스에서 뛰었던 에릭 이버츠를 영입하는 등 블런트의 개인기와 세트 플레이에 의존했던 공격 패턴을 속공으로 바꿉니다.

[이충희 감독 사퇴]

1999-2000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충희 감독이 사퇴를 발표했습니다.

1999-2000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이충희 감독이 사퇴를 발표했습니다. 이충희 감독은 1997년 6월 1일부터 2000년 5월 31일까지 팀을 이끌었습니다.

2001

[창단 첫 KBL 챔피언 결정전 진출 및 준우승]

김태환 감독 체제에서 속공 농구가 즉각 효능을 발휘하며 2000-01 시즌 3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직행하고, 창단 처음으로 KBL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2000-01 시즌, 김태환 감독의 지휘 아래 팀은 3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직행하고, 창단 처음으로 KBL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2003

[2002-03 시즌 정규리그 준우승]

강동희, 김영만, 송영진 등의 영입으로 높이와 속공을 조화시킨 농구를 선보이며 2002-03 시즌 정규리그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서 강동희, 김영만을 영입하고 중앙대학교 포워드 송영진을 신인 드래프트로 영입하는 등 높이와 속공을 조화시킨 농구로 2002-03 시즌 정규리그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04

[김태환 감독 사퇴]

매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우승에 도달하지 못한 김태환 감독이 2003-04 시즌 종료 후 물러났습니다.

매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끝내 우승에 도달하는 데는 실패했고, 김태환 감독은 2003-04 시즌 종료 후 물러났습니다. 김태환 감독은 2000년 4월 1일부터 2004년 5월 31일까지 팀을 이끌었습니다.

[박종천 수석코치 감독 승진]

김태환 감독의 후임으로 박종천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승진했습니다. 팀을 잘 이끌어 나가는 듯했으나 곧 연패에 빠지며 고전했습니다.

2004년 6월 1일, 김태환 감독의 후임으로 박종천 수석코치가 승진하여 감독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박종천 감독 체제 11연패 시작]

박종천 감독 체제에서 11연패를 시작하며 팀이 심각한 부진에 빠졌습니다. 이후 다시 연패를 겪는 등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박종천 감독은 초반 4연패 후 5연승을 하는 등 팀을 잘 이끌어 나가는 듯싶었으나, 2004년 12월 5일부터 시작된 11연패 후, 2연승으로 다시 상승하는 것 같았으나, 다시 1월 16일부터 2월 6일까지 7연패를 하는 등 고전했습니다.

2005

[시즌 9위 마감 및 박종천 감독 사퇴]

막판까지 고전하다가 17승 37패, 9위로 시즌을 끝마쳤습니다.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박종천 감독이 물러났습니다.

이 시즌에서 LG는 결국 막판까지 고전하다가 2005년 3월 11일에 안양 SBS 스타즈를 이겨서 17승 37패, 9위로 시즌을 끝마쳤습니다. 박종천 감독은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습니다. 박종천 감독은 2004년 6월 1일부터 2005년 4월 30일까지 팀을 이끌었습니다.

[신선우 감독 취임]

신선우 감독이 취임하며 팀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습니다. 초반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이전 시즌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005년 5월 1일, 신선우 감독이 취임했습니다. 초반에 시행착오를 겪었으나 11월 20일부터 12월 3일까지의 5연승 등 지난 2004-05 시즌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2007

[2006-07 시즌 정규리그 준우승 및 플레이오프 좌절]

2006-07 시즌 초반 우승까지 생각했던 전력으로 정규리그 2위를 기록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용병 퍼비스 파스코의 폭행 사건이 터지며 챔피언 결정전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06-07 시즌에서는 초반에는 우승까지 생각했던 전력이었으며, 부산 KTF 매직윙스에 득실차에서 앞서서 2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그 유명한 퍼비스 파스코의 폭행사건이 터지게 되면서 챔피언 결정전에는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퍼비스 파스코 폭행 및 영구제명 사건]

퍼비스 파스코가 부산 KTF 매직윙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 경기 중 상대 선수 장영재와 심판 최한철을 폭행하여 팀에서 퇴출되고 KBL 최초로 영구제명되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이는 팀의 플레이오프 탈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2007년 4월 12일, 부산 KTF 매직윙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퍼비스 파스코가 상대선수 장영재의 강수비에 화가 나서 손으로 그를 가격했고, 잇따라 최한철 심판까지 폭행하여 퇴장을 당했습니다. 다음날 파스코는 팀에서 퇴출되고, KBL 첫 영구제명을 당하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2008

[신선우 감독 사퇴]

2007-08 시즌 초반 1위에서 6위로 추락하며 플레이오프 4강 진출에 실패한 신선우 감독이 물러났습니다.

2007-08 시즌 역시 초반에 1위하다가 결국 추락해서 6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서울 삼성 썬더스에 패하여 4강 진출에 실패하였습니다. 이에 2008년 4월 10일 신선우 감독은 LG 감독에서 물러났습니다. 신선우 감독은 2005년 5월 1일부터 2008년 4월 10일까지 팀을 이끌었습니다.

[강을준 감독 취임]

신선우 감독의 후임으로 강을준 감독이 취임했습니다. 2008-09 시즌에 6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4강 진출은 실패했습니다.

2008년 5월 2일, 신선우 감독의 후임으로 강을준 감독이 취임했습니다. 2008-09 시즌에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다가 가까스로 6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가 있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정규리그 상대전적이 앞선 서울 삼성 썬더스를 만났음에도 1승 3패로 4강 진출은 실패했습니다.

2009

[KBL 역대 최다 트레이드 신기록 수립]

2008-09 시즌이 끝난 후, 팀 개편을 위해 강을준 감독 주도로 KBL 역대 팀 중 최다 트레이드 횟수를 기록하는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2008-09 시즌이 끝난 후, 강을준 감독은 팀에 개편을 둬야한다고 말하였고, 이로 인해 LG는 트레이드 횟수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역대 KBL 팀 중 최다 트레이드 1위라는 진기록을 남겼습니다.

2011

[강을준 감독 사퇴]

2009-10 시즌 4위를 기록했으나 4강 진출에 실패하고, 2010-11 시즌을 끝으로 강을준 감독이 팀을 떠났습니다.

2009-10 시즌에서는 4위를 기록했지만, 역시 상대전적이 앞선 원주 동부 프로미에게 0승 3패를 당하여 4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이에 강을준 감독이 2010-11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났습니다. 강을준 감독은 2008년 5월 2일부터 2011년 4월 6일까지 팀을 이끌었습니다.

[김진 감독 영입]

강을준 감독이 팀을 떠나고 김진 감독이 새로운 감독으로 영입되었습니다. 부상과 선수 교체 등으로 2011-12, 2012-13 시즌 모두 6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11년 4월 7일, 강을준 감독이 팀을 떠나고 LG는 새 감독으로 김진 감독을 영입했습니다. 이전보다 더 실력있는 시즌이 기대됐으나, 주전 선수들의 잇다른 부상 등으로 인해 LG는 6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12-13 시즌에서도 김영환, 양우섭 이적 등으로 주전 선수의 일부가 바뀌었지만, 6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13

[김시래, 문태종, 김종규 영입 등 대규모 리빌딩]

2013-14 시즌을 앞두고 김시래, 문태종, 김종규를 영입하는 등 주전 선수 대부분을 젊은 선수 위주로 재편하는 대규모 리빌딩을 단행했습니다. 이는 팀의 색깔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3-14 시즌에서는 모비스의 우승주역이었던 김시래가 챔피언결정전 직후 트레이드 되었고, 전자랜드로부터 FA로 풀린 문태종이 6억 8천만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영입되었고, 2013-14 신인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명된 김종규까지 영입에 성공해, 주전 선수의 대부분이 완전 젊은 선수 위주로 바뀌었습니다.

2014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 달성]

2013-14 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며 창단 17년 만에 첫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팀 단일 시즌 최다 연승인 13연승을 기록하며 이룬 쾌거였으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울산 모비스에게 패배하여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2013-14 시즌 정규시즌 마지막 날에는 팀 내 단일 시즌 최다 연승인 13연승을 기록하며 극적으로 창단 17년 만에 처음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정규리그 1위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부산 KT를 3:0으로 가볍게 이겼으나, 챔피언 결정전에선 울산 모비스에게 2:4로 패해, 또 다시 준우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5

[데이본 제퍼슨 퇴출 사건]

2014-15 시즌 플레이오프 4강에서 용병 데이본 제퍼슨이 애국가 연주 중 몸풀기와 개인 SNS 문제로 팀에서 퇴출되고 리그에서 영구제명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에도 불구하고 팀은 5차전까지 가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2014-15 시즌, 6강 PO에서 고양 오리온스를 상대로 접전을 오가는 끝에 3:2로 이기면서 4강에 진출하였고, 4강에서는 전 시즌 결승 상대였던 울산 모비스를 만났습니다. 이 와중에 데이본 제퍼슨이 애국가 연주 중 몸풀기와 개인 SNS 문제로 인해 팀에서 퇴출되었고 리그에서도 영구제명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제퍼슨 없이도 5차전까지 가는 저력을 보여줬지만, 체력의 한계로 4강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2017

[김시래 선수 제대 복귀]

김시래 선수가 군 복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하여 전력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2017년 1월 25일, 김시래가 제대하여 팀에 복귀했습니다.

[조성민 선수 영입]

부산 kt 소닉붐에서 뛰던 조성민 선수를 영입하여 팀 전력 보강에 나섰습니다. 동시에 김영환 선수는 이적했습니다.

2017년 1월 31일, 부산 kt 소닉붐에서 뛰던 조성민을 영입한 후에 김영환을 이적시켰습니다.

[김종규 선수 부상]

주요 선수인 김종규가 부상을 당하면서 팀 운영에 어려움이 가중되었습니다. 이는 시즌 성적 부진의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2017년 2월 5일, 김종규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김진 감독 사퇴]

2016-17 시즌을 끝으로 김진 감독이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 시기는 부상과 외국인 선수 문제 등으로 잃은 것이 많은 시즌으로 평가되었습니다.

2016-17시즌은 잃은 게 많은 시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김진 감독은 2016-17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김진 감독은 2011년 4월 7일부터 2017년 4월 13일까지 팀을 이끌었습니다.

[현주엽 감독 신임]

MBC SPORTS+ 해설위원이었던 현주엽이 새로운 감독으로 신임되었습니다. 김영만, 박재헌, 강혁을 코치진으로 선임하며 팀을 새롭게 이끌 준비를 했습니다.

2017년 4월 21일, MBC SPORTS+ 해설위원인 현주엽이 새로운 감독으로 신임되었습니다. 현주엽 감독을 보좌할 코치진으로 원주 DB 프로미 전 감독이었던 김영만을 수석코치로 선임했고, 이어 박재헌과 삼일상고에서 코치로 활동하던 강혁이 코칭스태프로 합류하였습니다.

2019

[4시즌 만의 플레이오프 진출 및 4강 실패]

2018-19 시즌 정규리그에서 3위까지 기록하며 4시즌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6강에서는 KT를 이겼으나, 4강에서 전자랜드의 높이 싸움에 밀려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2018-19 시즌 초반에는 주춤했지만, 중후반 때부터는 선수들의 고른 득점과 활약으로 정규리그에서 3위까지 기록해, 4시즌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6강에선 KT를 힘겹게 이겼으나, 4강에선 전자랜드의 높이 싸움에 열세를 보여, 결승 진출에 실패하였습니다.

[김종규 FA 협상 파동 및 이적]

2019-20 시즌 전 김종규와의 FA 협상 과정에서 구단의 불법 무단 녹취가 드러나 큰 파동을 겪었습니다. 이로 인해 팀의 핵심 전력이었던 김종규를 원주 DB로 이적시키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2019-20 시즌 전 김종규와의 협상 과정에서 구단이 김종규의 통화 도중 불법으로 무단 녹취한 게 드러나, 이 과정에서 잡음이 일었습니다. 결국, KBL 재정위원회에 템퍼링 의혹을 제기하여, 무단 녹취 파일을 증거 자료로 제출하였으나, 팀 내 핵심 전력이었던 김종규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FA 시장에서 전주 KCC와 원주 DB가 영입전을 했는데 결국 원주 DB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2020

[현주엽 감독 불명예 퇴진]

김종규 FA 파동과 2019-20 시즌 9위로 재추락하는 등 성적 부진으로 인해 현주엽 감독이 불명예 퇴진했습니다. 재임 중 두 번의 9위를 기록하며 구단 창단 역대 최악의 감독이라는 불명예를 남겼습니다.

2019-20시즌에 2년만에 9위로 재추락했습니다. 예능에서 얻은 인기와는 별개로 강압적인 선수단 장악에 따른 과도한 훈련으로 인해 부상자들이 터졌고 김종규 사태를 보듯이 선수단의 신뢰도 최밑바닥이었습니다. 결국 현주엽 감독은 팀의 성적 부진과 계약 만료로 인해 감독직을 내려 놓으며 불명예 퇴진을 당했습니다. 현주엽 감독은 2017년 4월 21일부터 2020년 4월 9일까지 팀을 이끌었습니다.

[조성원 감독 신임]

구단 역대 최대 암흑기였던 현주엽 감독 퇴진 후, 명지대학교 농구부 감독이었던 조성원 감독이 새로운 사령탑으로 신임되었습니다. 팬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갈렸습니다.

2020년 4월 23일, 명지대학교 농구부 감독이었던 조성원 감독이 새로운 감독으로 신임되었습니다. 조성원 감독은 과거 KB 국민은행 스타즈의 코치와 감독대행 및 감독으로 성적을 내지 못했고, 명지대학교 농구부 또한 대학농구의 변방으로 인해 성적을 내지 못했기에 팬들의 반응마저 호불호였습니다.

2021

[창단 첫 최하위 기록 및 김시래 트레이드]

2020-21 시즌 중 김시래를 트레이드하고 이관희를 영입하는 등 선수단에 큰 변화를 주었으나, 부상과 선수층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창단 이래 첫 최하위를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2020-21 시즌, 2 라운드까지 최하위 후보로 선전했으나 부상과 선수층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3 라운드부터 최하위로 추락하게 됩니다. 그 사이 김시래를 트레이드를 하게 되면서 팬들의 충격도 배가 됩니다. 반대로 서울 삼성 썬더스에서 간판이었으나 팀 성적 부진으로 빛을 보지 못했던 이관희 선수를 영입하게 됩니다. 구단 창단 이후 첫 최하위였습니다.

2022

[조성원 감독 결별 및 조상현 감독 선임]

계속되는 성적 부진으로 조성원 감독과 결별하고, 국가대표팀 코치와 감독을 맡았던 조상현 감독이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년 계약으로 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성적부진으로 인해 구단은 또 한번의 사령탑 변화를 주게 됩니다. 조성원 감독과 결별하고 팀내 스타 출신으로 대한민국농구대표팀 코치와 감독을 맡았던 조상현 감독을 새로 선임되었습니다. 2년 계약이었습니다. 조성원 감독은 2020년 4월 23일부터 2022년 4월 30일까지 팀을 이끌었습니다.

2025

[창단 28년 만의 첫 챔피언 결정전 우승]

조상현 감독 체제에서 2024-25 시즌 정규리그 2위를 기록한 후, 4강 플레이오프에서 모비스를 꺾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습니다. 이후 SK와의 7차전 혈투 끝에 승리하며 창단 28년 만에 감격적인 첫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2024-25 시즌 정규리그 2위를 하였고, 4강 플레이오프에서 모비스에게 3승 무패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해 SK와 3연승 뒤 3연패 이후 7차전에서 승리를 거둬 창단 28년만에 첫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창원 LG 세이커스
+ 사건추가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