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콘트라 사건
연표
1983
[쿠웨이트 인질극 발생]
이라크의 무장 조직 알다와가 헤즈볼라와 연계하여 쿠웨이트에서 미국인을 포함한 30여 명의 외국인을 인질로 납치합니다.
이 사건은 훗날 이란-콘트라 사건의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1985
[콘트라 반군, 비밀 자금 지원 받기 시작]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올리버 노스 중령이 이란에 판매한 무기 수익금의 일부를 의회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니카라과의 반공 콘트라 반군에게 비밀리에 전용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이란-콘트라 스캔들의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니카라과 좌파 산디니스타 정권에 대항하는 우파 콘트라 반군을 강하게 지지했으나, 미국 의회는 볼란드 개정을 통해 콘트라 반군 지원을 금지했습니다. 이에 행정부 내 일부 관료들이 비밀리에 자금 지원 방안을 모색하게 됩니다.
1986
[CIA 요원, 니카라과에서 붙잡히다]
미국의 CIA 공작원이었던 유진 하센퍼스가 니카라과 상공에서 콘트라 반군에게 무기를 투하하는 작전 중에 니카라과 정부에 의해 체포됩니다.
이 사건으로 미국이 콘트라 반군을 은밀히 지원한 구체적인 증거가 드러나게 됩니다.
[비밀 무기 거래, 언론에 최초 폭로!]
레바논의 신문사 아쉬시라(Ash-Shiraa)가 인질 교환을 조건으로 한 이란 무기 판매를 '세계 최초'로 폭로하며, 미국 역사상 손꼽히는 거대한 정치 스캔들의 서막을 알립니다.
[레이건 대통령, 결국 입을 열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에 대한 무기 판매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합니다.
그는 이를 '전략의 일환일 뿐'이라고 해명하며 파장을 수습하려 합니다.
[스캔들 주역, 올리버 노스의 충격 고백]
이란-콘트라 스캔들의 핵심 인물인 올리버 노스 중령이 사건의 전모를 시인하면서, 스캔들은 레이건 대통령이 탄핵 위기까지 몰릴 정도의 거대한 정치 파문으로 확산됩니다.
1987
[레이건 대통령, 대국민 사과 및 책임 인정]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전국에 방송된 연설을 통해 이란-콘트라 사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인정합니다.
그는 '이란에 대한 전략적 개방이 인질과 무기를 교환하는 것으로 악화되었다'고 고백하며 사태 수습에 나섭니다.
1988
[특별검사 수사, 핵심 인물들 법정에 서다]
미 의회는 로런스 월시를 특별검사로 임명하여 이란-콘트라 사건을 수사하였고, 결국 존 포인덱스터와 올리버 노스 등 핵심 관련자들을 기소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피고인들의 묵비권 행사와 미 행정부의 조직적인 정보 공개 거부 및 문서 파기 시도 등으로 사건의 본질을 완벽하게 파헤치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92
[부시 대통령, 관련자 대규모 사면 논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H.
W.
부시(레이건 정부의 부통령)가 이란-콘트라 사건 관련자 모두를 전격 사면합니다.
이 결정은 부시 대통령이 사건에 깊이 관여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는 거센 비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993
[특별검사, 최종 보고서 제출하며 스캔들 조사 종결]
이란-콘트라 사건의 특별검사였던 로런스 월시가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며 길고 길었던 스캔들 조사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그는 이후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방화벽: 이란-콘트라 음모와 은폐'를 저술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