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연표
1882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탄생]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오페라 베이스 가수였습니다.
[세례를 받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니콜스키 대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학교 교육을 싫어하고 외로운 학생이었습니다.
1901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입학]
부모님의 기대에 따라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강의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1902
[림스키-코르사코프와 만나다]
대학교 동료이자 당대 러시아 최고 작곡가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아들 블라디미르를 만났습니다.
이를 계기로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개인 작곡 지도를 받게 됩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스트라빈스키에게 음악원 입학 대신 개인 교습을 계속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아버지 표도르 스트라빈스키 사망]
그의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이 시기에 스트라빈스키는 법률 공부보다 음악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했습니다.
1905
1906
[사촌 카테리나와 결혼]
동방 정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촌 카테리나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그의 첫 번째 아내이자 평생의 동반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음악가로서의 길 선택]
1905년 '피의 일요일'로 대학이 문을 닫아 최종 법률 시험을 치르지 못했고, 결국 법률 대신 음악에 전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07
1908
[《불꽃놀이》로 디아길레프 주목]
관현악곡 《불꽃놀이》를 통해 러시아 발레단의 유명한 기획자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같은 해, 스승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사망했습니다.
1910
[《불새》 초연, 하룻밤 만에 세계적 명성]
디아길레프의 의뢰로 작곡한 발레곡 《불새》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스트라빈스키를 하룻밤 만에 세계적인 작곡가로 만들었습니다.
1911
[《페트루시카》 작곡 및 초연]
디아길레프가 의뢰한 두 번째 발레 작품 《페트루시카》를 파리 시즌을 위해 작곡했습니다.
러시아 민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13
[《봄의 제전》 초연, 역사적 논란과 혁명적 평가]
샹젤리제 극장에서 발레곡 《봄의 제전》이 초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파리 악단에서 전례 없는 찬반 양론의 소동을 일으키며, 스트라빈스키를 당시 전위파 음악의 기수로 주목받게 했습니다.
이는 그의 대표작이자 20세기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혁명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원시적 의식을 표현한 파격적인 음악과 안무는 당시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으나, 현대 음악의 방향을 제시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1914
1915
[지휘자로 데뷔]
적십자를 돕기 위한 콘서트에서 자신의 작품 《불새》를 포함한 두 곡을 지휘하며 지휘자로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1917
[러시아 혁명으로 고국에 발 묶임]
러시아 혁명과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고국 러시아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고, 이후 스위스에 머물게 됩니다.
1920
[발레 《풀치넬라》 초연]
발레 뤼스의 작품 《풀치넬라》가 파리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신고전주의 시대로의 전환을 알리는 중요한 작품이었습니다.
고전 시대와 바로크 시대 음악 정신을 부흥시키려 한 신고전주의는 제1·2차 세계대전 사이 유럽 음악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스트라빈스키는 이 흐름을 선도했습니다.
1921
[베라 드 보셋과의 만남]
파리에서 베라 드 보셋을 만나 관계를 발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그의 두 번째 아내가 될 인물이었습니다.
1934
1939
[첫 번째 아내 카테리나 사망]
오랫동안 함께해 온 첫 번째 아내 예카테리나 스트라빈스(카테리나 노센코)가 사망했습니다.
이 시기는 스트라빈스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1940
[베라 드 보셋과 결혼]
매사추세츠주 베드포드에서 베라 드 보셋과 결혼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 할리우드에 정착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1945
[미국 귀화, 재기]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귀화했습니다.
이 시기 침체기를 겪었으나, 《3악장의 교향곡》을 발표하며 재기에 성공, 제2의 전기를 맞이했습니다.
1948
1951
[오페라 《난봉꾼의 인생역정》 완성]
그의 유일한 전막 오페라로, 신고전주의 양식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난봉꾼의 인생역정》을 완성했습니다.
1961
1962
[케네디 대통령 초청, 백악관 특별 메달 수여]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 만찬에 참석하여 세계적인 음악가로서 특별 메달을 받았습니다.
[52년 만의 고국 방문]
1914년 이후 52년 만에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했습니다.
소련 작곡가 연합의 초청으로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서 6번의 공연을 가졌으며, 흐루쇼프 수상 등과 만났습니다.
이 방문은 냉전 시대에 이루어진 중요한 문화 교류의 상징이었습니다.
1963
[칸타타 《아브라함과 이삭》 발표]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칸타타 《아브라함과 이삭》을 발표하며 종교적 영감을 담은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64
[《케네디를 위한 애가》 완성]
전년도 암살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추모하며 《케네디를 위한 애가》를 단 이틀 만에 작곡했습니다.
1971
[현대 음악의 거장, 뉴욕에서 영면]
폐부종으로 뉴욕에서 88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이탈리아 베니스의 산 미켈레 묘지 섬,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무덤 근처에 안장되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20세기 음악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기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