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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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연혁 피인용 수 7
화가, 조각가, 시인, 사회운동가 + 카테고리

파블로 피카소는 20세기 서양 미술의 혁명가이자 거장이었습니다. * 입체주의를 창시하며 미술사의 흐름을 바꿨습니다. * 1만 3 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 등 총 3만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을 남긴 인류 역사상 가장 다작한 예술가 중 한 명입니다. * 끊임없이 새로운 양식을 탐구하며 청색 시대 장밋빛 시대 신고전주의 등 다양한 시대를 거쳤습니다. *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주요사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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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881

[스페인 말라가에서 출생]

스페인 항구 도시 말라가에서 태어난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는 20세기 미술사를 바꾼 혁명적인 예술가입니다.

아버지는 화가이자 미술 학교 교사였으며, 그는 어머니의 성을 따랐습니다.

1895

[바르셀로나 이주 및 입학]

가족과 함께 바르셀로나로 이주하여, 아버지가 교편을 잡고 있던 미술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이른 나이에 이미 수르바란과 벨라스케스 등 스페인 거장들의 사실주의 화풍에 깊이 눈을 떴습니다.

1896

[왕립미술아카데미 입학]

마드리드의 명문 산 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에 입학했지만, 형식적인 수업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프라도 미술관을 매일 찾아 엘 그레코의 명작들을 탐독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1901

[파리 첫 방문과 '청색 시대']

로트레크와 스텐렌의 작품에 이끌려 파리에 첫발을 내디딘 후, '청색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사회의 패잔자, 노인, 고독한 사람들의 상을 깊은 공감으로 포착했으며, 짙은 파랑을 주조로 한 어둡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애정>, <늙은 유대인>, <다림질하는 여인> 등이 있습니다.

1904

['장밋빛 시대' 개막]

파리 몽마르트르의 아파트 '바토 라보아르'에 거처를 정하고 연인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만나며 '장밋빛 시대'를 시작했습니다.

붉은색과 분홍색을 주로 사용하여 이전과는 달리 밝고 간소한 형체의 작품들을 선보였으며, 서커스단 등 유랑하는 연예인들을 주제로 <공을 타는 소녀>, <아를퀴앵의 가족> 등을 그렸습니다.

1913

[동판화 <살탐방크> 출판]

'장밋빛 시대'에 제작된 유명한 동판화 16점 <살탐방크>가 출판되었습니다.

섬세한 선으로 그려진 이 작품들은 금방이라도 형체를 잃을 듯한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작품의 실제 제작은 1904년에서 1906년 사이 '장밋빛 시대'에 이루어졌습니다.

1917

[로마 방문, 고전 미술 탐구]

장 콕토의 권유로 디아길레프의 러시아 발레단 무대 장식 작업을 위해 로마로 떠났습니다.

이후 나폴리, 폼페이, 피렌체 등지를 여행하며 고대와 르네상스 미술에 깊이 몰두하는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1920

['신 고전주의' 화풍 시작]

고대 미술 행각 이후 앵그르를 연상시키는 '신 고전주의' 화풍을 택하며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했습니다.

아내 올가와 장남 폴을 모델로 한 '모자' 시리즈가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1925

[쉬르레알리즘 운동 참여]

환상과 기괴한 표현으로 당시 예술계를 뒤흔들었던 쉬르레알리즘(초현실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예술적 스펙트럼을 넓혔습니다.

1930

[고전 작품 동판화 삽화 제작]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보>와 발자크의 <알려지지 않는 걸작>에 고전주의적 수법의 정교한 동판화 삽화를 제작했습니다.

1934

[모국 스페인 체류 및 투우도]

오랜만에 모국 스페인에 장기간 머물며 투우를 주제로 한 수많은 작품을 그렸습니다.

이 묘화들은 이후 그리스 신화의 미노타우로스 전설에서 영감을 받은 환상적인 동판화 제작으로 이어졌습니다.

1937

[대작 <게르니카> 발표]

스페인 내전 중 나치 독일 공군이 바스크 지방의 무방비 도시 게르니카를 폭격하자, 그는 즉시 붓을 들어 이에 항의하는 역사적인 대작 <게르니카>를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해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 관을 장식하며 평화와 자유를 위협하는 침략자를 강력히 규탄했습니다.

위키백과 원문에서는 '게르니카 학살사건'을 1938년에 발생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1945

[전후 남프랑스 활동 시작]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남프랑스에 머물며 석판화와 도기 제작에 몰두했습니다.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에서도 끊임없이 탐구하고 창조하며 현대 미술에 큰 성과를 남겼습니다.

1950

[명작 모작 시리즈 시작]

1950년대부터 벨라스케스, 들라크루아, 마네 등 서양 미술 거장들의 명작들을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재해석한 모작 시리즈를 선보이며 예술적 진로를 확장했습니다.

1951

['한국의 학살' 발표]

프랑스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한국 전쟁에서 미군의 잔학행위를 비판하며 '한국의 학살'(Massacre in Korea)을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유엔과 미국의 한국 전쟁 개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가 비판한 미군의 잔학행위에는 충청북도 영동군 노근리에서 한국인들이 전투기와 기관총으로 학살당한 노근리 학살 사건이 포함됩니다.

1973

[92세의 나이로 사망]

92세의 나이로 프랑스 무쟁에서 많은 그림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평생 동안 1만 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 등 총 3만여 점의 작품을 창작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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