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정치인)
연표
1958
1958년 1월 7일 대한민국 경상북도 대구시 중구 대봉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제학자로 활동하다 정치에 입문하여 4선 국회의원을 지내게 된다.
1982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유승민은 1982년부터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1987
1987년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다시 한국개발연구원으로 돌아왔다. 그의 전공은 기업결합과 독과점 방지, 경쟁정책을 다루는 산업조직론이었다.
2000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경제 교사로 정계 입문]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경제 교사'로 정치권에 입문했으며,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을 역임하며 '정책 브레인'으로 평가받았다.
2000년, 유력 대권 주자였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경제 교사'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원외 인물임에도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아 이회창 총재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역대 최장기 여의도연구소장으로 꼽혔다.
2004
2004년 5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제17대 국회의원(비례대표, 한나라당)으로 활동하며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과 한나라당 제3정조위원장을 지냈다.
2005
2005년 1월부터 10월까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최고위원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2007년 제17대 대선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대립했을 때,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 캠프의 정책 및 메시지를 담당하는 핵심 측근이었다.
[대구 동구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선]
10·26 재보궐선거에서 대구 동구 을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지역구 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10월 26일 10·26 재보궐선거에서 대구 동구 을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2008년, 2012년, 2016년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며 4선 국회의원이 된다.
2011
2011년 7월 한나라당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홍준표 후보가 대표최고위원으로 당선되었고, 유승민 후보는 친박계의 지원을 받아 2위에 올랐다. 유 의원은 나경원, 원희룡, 남경필 후보와 함께 선출직 최고위원이 되었다.
2012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 취임]
제19대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국정감사에서 여러 차례 최상위권 평가를 받는 등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2012년 7월부터 2014년 5월까지 제19대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국방위원회 활동 중 머니투데이 국회 출입기자들의 평가에서 여러 번 최상위권에 올랐으며, 2015년 국정감사 총결산에서는 '북한 핵미사일 방어체계부터 KF-X 등 무기개발 사업 문제, 방산비리, 공정한 장병 보상문제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은 촌철살인의 질의'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5
2015년 2월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당선되었다. 재벌 개혁,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등의 발언을 통해 증세론과 경제 정책 전반에 대해 진보적인 경제관을 드러냈다. 특히 2015년 4월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양극화 해소 통찰을 높이 평가하며 야당으로부터 "보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 놀라운 명연설"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갈등 끝에 새누리당 원내대표직 사퇴]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박근혜 대통령과의 심각한 갈등 끝에 원내대표직을 사퇴하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1조 1항의 가치를 지키려 했다고 밝혔다.
정부 시행령을 국회가 수정·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으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다. 박 대통령은 이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유승민 원내대표를 "배신의 정치"라고 비판했다. 결국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사퇴 권고가 결정되자, 2015년 7월 8일 유승민은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6
[20대 총선 무소속 당선 및 새누리당 복당]
친박계 공천 배제로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대구 동구 을에서 당선되었으며, 이후 새누리당에 복당했다.
20대 총선에서 친박계에 의해 공천이 배제되자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대구 동구 을에 출마했다. '옥새 파동'으로 새누리당 후보가 출마하지 못한 상황에서 75.7%의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같은 해 6월 16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결정에 따라 복당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비박계 주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새누리당 내 비박 세력을 이끌었으며, 여야 합의 결렬 시 탄핵 표결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찬성 입장을 밝혔다.
2016년 말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새누리당 내 비박 세력을 이끌었다. 초기에는 하야 입장을 보였으나, 11월 말에는 국회에서 여야 간 합의가 결렬될 시 탄핵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비주류 의원 모임 '비상시국위원회'는 유 의원의 입장대로 탄핵 표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고, 그는 탄핵 표결 하루 전 공식적으로 탄핵 찬성 입장을 발표했다.
2017
[바른정당 창당 주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친박계와의 갈등으로 새누리당을 집단 탈당하여 '개혁보수신당'(가칭)을 창당하고, 이후 바른정당으로 정식 출범시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친박계와의 갈등이 심화되자, 2016년 12월 27일 김무성 등 타 비박계 의원들과 함께 새누리당을 집단 탈당하며 '개혁보수신당'(가칭) 창당을 선언했다. 이 신당은 2017년 1월 24일 바른정당으로 공식 출범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바른정당 후보로 출마]
바른정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남경필 후보를 꺾고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으며, 대선 토론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며 호평을 받았다.
박근혜 탄핵 인용 후 조기 대선이 결정되자, 당내 경선에서 남경필 후보와 치열한 '스탠딩 토론'을 펼쳐 주목받았다. 모병제, 사교육 폐지, 증세 등 다양한 정책을 놓고 토론한 결과 62.9%의 득표율로 바른정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다. 대선 토론에서 경제와 국방 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드러내 호평받았으나, 지지율 상승에는 한계가 있었다.
[바른정당 당대표 당선]
이혜훈 대표 사퇴 후 치러진 바른정당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56.6%의 득표율로 당대표에 당선되었다.
이혜훈 대표의 금품 수수 의혹으로 인한 사퇴 이후, 바른정당은 자강파와 통합파로 분열되었다. 유승민은 자강파의 중심에 서서 '유승민 비대위 체제'를 주장했고, 2017년 11월 13일 전당대회에서 56.6%의 득표율로 바른정당 대표가 되었다. 그는 수락연설에서 "바른정당을 지키겠다. 개혁보수의 창당정신, 그 뜻과 가치를 지키겠다"고 밝혔다.
2018
바른정당 대표 취임 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통합을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와 자유한국당 양당을 비판하며 대안정치를 강조했고, 2018년 2월 13일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이 합당하여 원내 3당인 바른미래당이 출범했다. 유승민은 박주선과 함께 바른미래당의 초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지방선거 참패 책임지고 바른미래당 대표직 사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이 참패하자, 책임을 지고 공동대표직에서 사퇴하며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2018년 6월 14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이 참패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그는 "개혁 보수의 길이 국민 기대에 못 미쳤다", "국민의 선택을 무겁게 받아들여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2020
[새로운보수당 창당]
바른미래당 내 당권 다툼 끝에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을 조직하고 신당 창당을 결의, 2020년 1월 새로운보수당을 공식적으로 창당했다.
바른미래당 내 당권 다툼이 지속되자, 유승민과 그를 따르는 의원들은 2019년 9월 30일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을 조직했다. 이후 2019년 12월 신당 창당을 결의하고 '새로운보수당'으로 당명을 확정했으며, 2020년 1월 공식적으로 창당했다.
[미래통합당 합류 및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
21대 총선을 앞두고 보수통합을 위해 새로운보수당이 자유한국당 등과 합당하여 미래통합당이 되면서 유승민도 합류했으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020년 4월에 치러지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새로운보수당이 보수통합을 위해 자유한국당 등과 합당하여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되었다. 유승민은 이에 따라 미래통합당에 합류했으며, 합당 이후 제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021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국민의힘 경선)]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로 출마를 선언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3위로 탈락했다.
2021년 7월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로 출마를 선언했다. 1, 2차 경선을 통과하여 최종 경선에 진출했으나 3위로 탈락하며 대선 후보가 되지 못했다.
2022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예비후보 출마]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김은혜 후보에게 밀려 공천에서 탈락했다.
2022년 3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김은혜 후보와 경쟁을 펼쳤으나 김은혜에게 밀려 공천에서 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