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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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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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학, 종합대학, 고등교육기관 + 카테고리

대한민국 최고의 국립종합대학. 1946년 경성제국대학 등 통합으로 설립 2011년 국립대학법인 전환. 관악 연건 평창 시흥 4개 캠퍼스 운영 15개 단과대학 및 12개 전문대학원 보유. 국내외 대학 평가 최상위권 대한민국 학계·정재계 등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수많은 인재 배출. 4·19 혁명 6월 항쟁 등 주요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 역할.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895

[근대 법학 교육의 시작, 법관양성소 설립]

조선 최초의 근대 법학 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가 설립되어 근대적 고등 교육의 역사를 열었습니다.

고종 광무 태황제의 자력 근대화 교육 사업의 일환으로 칙령을 통해 법관양성소가 설립되었으며, 이는 조선 최초의 근대 법학 교육 기관이었습니다. 법관양성소는 이후 법학교, 경성전수학교, 경성법학전문학교를 거쳐 국립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이 되었으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과정은 2018년 2월까지 존속하였습니다.

[근대 교사 양성 기관, 한성사범학교 설립]

소학교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인 한성사범학교가 설립되어 근대 교육 확산에 기여했습니다.

소학교 설립 준비의 일환으로 소학교 교사 양성기관인 한성사범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일곱 차례에 걸쳐 195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한성사범학교는 이후 관립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거쳐 국립서울대학교 사범대학으로 이어져 현재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이 되었습니다.

1899

[전문 의료인 양성, 의학교관제 반포]

고종이 전문 의료인 양성을 위해 의학교관제를 반포하며 의학교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고종은 “우리나라에 각종 학교를 대략 설치했으나 의학교는 아직 만들지 않았다”며 의학교관제를 반포하고 전문 의료인을 양성했습니다. 의학교는 이후 대한의원 교육부, 경성의학전문학교를 거쳐 국립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되었으며 현재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으로 계승되었습니다.

1901

[간호 교육의 시초, 산파 및 간호부양성과 신설]

대한의원 교육부 산하에 산파 및 간호부양성과가 신설되어 서울대학교 간호대학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대한의원은 1901년 최초로 교육부 산하에 산파 및 간호부양성과를 신설했는데, 이는 서울대학교 간호대학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1904

[근대 산업 교육의 시작, 농상공학교 개교]

농업과 상업을 가르치는 농상공학교가 개교하여 근대 산업 교육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1904년 농업과 상업을 가르치는 농상공학교가 개교했습니다. 이 학교는 이후 분화와 재편을 거듭하면서 국립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거쳐 현재의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으로 이어졌습니다.

1946

[서울대학교 설립안 공식 발표]

미 군정청 문화교육부가 '국립서울종합대학안'을 공식 발표하며 서울대학교 설립 계획을 알렸습니다.

미 군정청 문화교육부가 '국립서울종합대학안'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서울대학교에 따르면, 조선교육심의회에서 현대적 국립대학을 건립할 때 경성대학을 중심으로 여러 관·공립 및 사립의 전문학교를 통합하자는 구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공식 설립 법령 공포]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이 공포되어 서울대학교의 공식적인 설립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1946년 8월 22일에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이 공포됨으로써 서울대학교는 공식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이 법령은 경성대학을 중심으로 여러 관·공·사립 전문학교를 통합하여 종합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국립서울대학교 개교 및 초대 총장 취임]

9개 단과대학과 1개 대학원으로 구성된 '국립서울대학교'가 개교했으며, 초대 총장으로 해리 엔스테드 미국 해군 대위가 취임했습니다.

경성제국대학을 포함한 여러 관·공·사립 전문학교가 통합되면서 9개 단과대학(문리과대학, 공과대학, 농과대학, 법과대학, 사범대학, 상과대학, 의과대학, 예술대학, 치과대학)과 1개 대학원으로 구성된 ‘국립서울대학교’가 1946년 10월에 개교하였습니다. 초대 총장으로는 해리 엔스테드 미국 해군 대위가 취임했습니다. 그러나 설립 과정에서 기존 대학 교수, 직원, 학생들의 강렬한 반대 운동인 '국대안 파동'이 있었습니다.

1948

['서울대학교'로 명칭 변경]

국립서울대학교의 명칭이 '서울대학교'로 변경되었습니다.

1946년 설립된 국립서울대학교는 1948년에 ‘서울대학교’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1951

[한국 전쟁 중 부산으로 임시 이전]

한국 전쟁 발발로 부산으로 옮겨가 '전시연합대학'의 형태로 수업을 진행하는 어려운 시기를 겪었습니다.

한국 전쟁의 발발로 1951년부터 서울대학교는 부산으로 옮겨가 전시연합대학의 형태로 수업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이듬해 5월에 전시 연합대학은 해체되었습니다.

1952

[전시 연합대학 해체]

부산에서 운영되던 전시 연합대학이 해체되며 서울로의 복귀를 준비했습니다.

한국 전쟁 중 부산으로 옮겨가 운영되던 전시 연합대학은 1952년 5월에 해체되었습니다.

[《대학신문》 창간]

한국 전쟁 피난 중에도 학생 언론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주간지 《대학신문》이 창간되었습니다.

주간지 《대학신문》은 1952년 2월 4일 한국 전쟁 피난 중에 창간되었고, 1953년 서울 동숭동으로 이전하였으며 1958년부터 고교판을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1960년 재정난으로 한때 발간이 중지되기도 하였지만 19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여 오늘날까지 발행해오고 있습니다.

1953

[서울 본부 및 문리과 대학 서울 복귀]

한국 전쟁으로 부산에 피난 가 있던 서울대학교 본부와 문리과 대학이 서울로 돌아오며 정상화의 첫걸음을 뗐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인 1953년 9월 18일이 되어서야 본부와 문리과 대학이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1960

[4·19 혁명 참여 및 민족통일연맹 결성]

독재 정권에 항거한 4·19 혁명으로 서울대학교 재학생 7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있었고, 이후 민족통일연맹이 결성되는 등 학생운동의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1960년 독재 정권에 항거한 4·19 혁명으로 서울대학교 재학생 7명이 사망했으며, 그 해 11월 민족통일연맹이 결성되었습니다. 4·19 혁명 이후 대학에는 학생회 조직과 같은 자율적인 분위기가 잠시 조성되었으나 이듬해 5·16 군사 정변으로 탄압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1961

[사범대 학과 폐지 및 학제 개편]

정부의 '국립대학 정비절차'에 따라 사범대 학과들이 대거 폐지되고 문리대로 합쳐지는 학제 개편이 있었습니다.

1961년에는 정부의 ‘국립대학 정비절차’에 따라 많은 사범대 학과가 폐지되고 문리대로 합쳐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사범대 교수와 학생들은 이에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1962

[규장각 도서위원회 설치]

서울대학교 부속중앙도서관 안에 한국학 연구의 기초 자료가 될 '규장각 도서위원회'가 설치되었습니다.

1962년 5월에 서울대학교 부속중앙도서관 안에 ‘규장각 도서위원회’가 설치되었습니다. 이는 2006년 2월 1일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통합 설립됩니다.

[학생지도연구소 설립]

학생들의 심리검사 및 상담 등 생활 지원을 위한 '학생지도연구소'가 설립되었습니다.

학생들의 심리검사 및 상담을 비롯한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생지도연구소'가 1962년 2월 ‘학생지도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2001년 '대학생활문화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사범대 학과 부활]

1961년 폐지되었던 사범대 학과들이 학생 및 교수의 거센 항의로 인해 정부에 의해 다시 부활했습니다.

1961년 정부의 ‘국립대학 정비절차’에 따라 폐지되었던 사범대 학과들을 학생들의 거센 항의로 인해 이듬해 정부는 없어진 학과들을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1963

[어학연구소 발족]

서울대학교 구성원의 외국어 교육 및 외국인의 한국어 교육을 위한 '어학연구소'가 동숭동 캠퍼스에서 발족했습니다.

언어교육원은 1963년 서울대학교 동숭동 캠퍼스에서 어학연구소로 발족하여 2001년 언어교육원으로 승격하였습니다. 언어교육원은 서울대학교 구성원에게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교육을 실시하며, 외국인에게 한국어 및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975

[관악사 기숙사 개사]

서울대학교 설치령에 의거하여 관악사 5개동과 후생동 1개동이 개사되었으며, 당시 남학생 970명을 수용했습니다.

1975년 8월 서울대학교 설치령 제 14조에 의거, 관악사 5개동과 후생동 1개동을 개사하였으며, 당시 수용인원은 남학생 970명이었다. 여학생 거주동은 1983년 3월에 개사되었고, 수용인원은 288명이었습니다.

[도서관 명칭 변경 및 관악캠퍼스 이전]

본관의 관악캠퍼스 이전과 함께 도서관 명칭이 '서울대학교도서관'으로 변경되었습니다.

1946년 개교와 함께 경성대학의 건물과 서적을 이어받아 개관한 도서관은 1949년 ‘국립서울대학교중앙도서관’에서 ‘서울대학교 부속도서관’으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1975년 1월 본관을 관악캠퍼스로 옮기면서 도서관 명칭을 ‘서울대학교도서관’으로 변경하였고, 1992년 다시 ‘서울대학교중앙도서관’으로 변경하였습니다.

[관악캠퍼스 시대 개막, 단과대학 이전]

서울대학교의 종합화 계획에 따라 공과대학, 농과대학, 의과대학 본과를 제외한 단과대학들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서울대학교 단과대학들은 서울특별시 동숭동, 연건동, 을지로, 공릉동, 종암동과 경기도 수원시 등 곳곳에 나뉘어 있었습니다. 이에 서울대학교는 종합화 계획을 세우고 1975년에 공과대학, 농과대학(현재 농업생명과학대학, 수의과대학)과 의과대학 본과만을 제외하고 단과대학들을 모두 새로 세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

[공과대학 관악캠퍼스 이전]

노원구 공릉동에 있던 공과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며 캠퍼스 종합화가 진척되었습니다.

1975년 단과대학 이전이 시작된 이후 1980년에는 노원구 공릉동의 공과대학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였습니다. 현재 공릉동 캠퍼스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1983

[관악사 여학생 기숙사 개사]

관악사에 여학생을 위한 거주동이 개사되어 288명의 여학생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75년 8월 남학생 위주로 개사된 관악사에 1983년 3월 여학생 거주동이 개사되었고, 수용인원은 288명이었다.

1987

[6월 항쟁으로 민주화 분위기 조성 및 발전 계획 수립]

10월 유신 이후 억눌려 있던 대학에 6월 항쟁으로 민주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며, '서울대학교 발전장기계획-캠퍼스부문계획'이 수립되어 시설 확장을 추진했습니다.

10월 유신 이후 계속 억눌려 있던 대학에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 분위기가 조성됐으며, 이와 함께 1987년 ‘서울대학교 발전장기계획-캠퍼스부문계획’이 수립돼 시설 면적이 기존에 비해 2배가량 늘어나는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1990

[규장각 전용 건물 준공]

한국학 연구의 중요한 기관인 규장각의 전용 건물이 준공되어 독립적인 연구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1962년 5월에 서울대학교 부속중앙도서관 안에 ‘규장각 도서위원회’가 설치된 이후 1990년 6월에 규장각 전용 건물이 준공돼 교내 G1 게이트 우측편, 현재의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규장각은 17만 5천여 책의 고도서, 5만 여점의 고문서, 1만 8천여 점의 책판 등 총 30만 여점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1991

[총장 직선제 도입]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분위기 속에서 서울대학교 총장 선출 방식이 직선제로 변경되었고, 김종운 교수가 첫 직선제 총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 분위기가 조성된 후 1991년에 서울대학교 총장 선출 방식도 직선제로 변경되었습니다. 첫 직선제 총장인 김종운 교수를 시작으로 이수성, 선우중호, 이기준, 정운찬, 이장무, 오연천 등이 총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992

[도서관 명칭 '서울대학교중앙도서관'으로 재변경]

'서울대학교도서관'이 '서울대학교중앙도서관'으로 명칭이 다시 변경되었습니다.

1975년 1월 본관을 관악캠퍼스로 옮기면서 ‘서울대학교도서관’으로 변경했던 도서관 명칭을 1992년 다시 ‘서울대학교중앙도서관’으로 변경하였습니다.

1993

[박물관 신축 건물로 이전]

서울대학교 박물관이 동원관 옆에 있는 현재의 신축 건물로 이전하여 전시 및 보존 시설을 개선했습니다.

1946년 대학 설립과 함께 ‘서울대학교부속박물관’이란 이름으로 개관하고 1975년 중앙도서관 6층으로 옮겨졌던 서울대학교 박물관은 1993년 동원관 옆에 있는 현재의 신축 건물로 이전되었습니다.

1995

[미술관 건립 건의 및 《우리세대》 창간]

미술대학 이종상 교수가 미술관 건립을 건의했으며, 총학생회에서는 학생 언론인 월간지 《우리세대》를 창간했습니다.

1995년 미술대학 동양화과 이종상 교수가 미술관의 건립 건의안을 냈으며, 같은 해 총학생회에서 《우리세대》란 이름으로 월간지가 창간되었습니다. 《우리세대》는 1997년 총학생회에서 벗어났으며, 2001년 《서울대저널》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1996

[가족생활관 개사]

기혼 대학원생들을 위한 가족생활관이 개사되어 200세대를 수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6년 8월에는 기혼 대학원생들을 위한 가족생활관을 개사하였고, 수용세대는 200세대였습니다. 학부생활관, 대학원생활관과 함께 서울대학교 관악사를 구성합니다.

1997

[대학 사료실 설치]

서울대학교 기록 및 역사 보존을 위해 '대학 사료실'이 설치되었으며, 이는 2001년 '기록관'으로 개칭됩니다.

1997년 7월 서울대학교 기록 및 역사 보존을 위해 설치된 대학 사료실에서 출발하였으며, 2001년 9월에 현재의 명칭인 기록관으로 개칭되었습니다.

1999

[대학원생활관 개사]

918동 1인실 대학원생활관이 개사되어 304명의 대학원생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9년 9월에는 918동 1인실 대학원생활관을 개사하였고, 수용인원은 304명이었다. 이는 학부생활관, 가족생활관과 함께 서울대학교 관악사를 구성합니다.

[스누라이프 개설]

학내 소식 및 교수와의 대화 등 학생들의 의사소통을 위한 비공식 인터넷 사이트 '스누라이프(SNULife)'가 개설되었습니다.

1999년에 개설된 스누라이프(SNULife)는 학내 뉴스, 선거 소식과 역사, 교수들과의 대화 등의 내용을 제공하는 등 언론으로서의 기능도 일부 담당하고 있습니다. 스누라이프는 비공식적인 사이트이고, 일부 학생들의 의사소통을 담당하는 사이트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2001

[《우리세대》의 《서울대저널》로 이름 변경]

1995년 총학생회에서 창간된 월간지 《우리세대》가 《서울대저널》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1995년 총학생회에서 《우리세대》란 이름으로 창간되었던 월간지는 2001년 《서울대저널》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어학연구소의 언어교육원 승격]

1963년에 발족한 '어학연구소'가 '언어교육원'으로 승격하여 교육 및 연구 활동을 확대했습니다.

1963년 서울대학교 동숭동 캠퍼스에서 어학연구소로 발족한 언어교육원은 2001년 현재의 명칭인 언어교육원으로 승격하였습니다.

[대학 사료실의 기록관 개칭]

1997년 설치된 '대학 사료실'이 '기록관'으로 개칭되어 서울대학교의 역사 기록 보존 전문 기관으로 발전했습니다.

1997년 7월 서울대학교 기록 및 역사 보존을 위해 설치된 대학 사료실에서 출발하였으며, 2001년 9월에 현재의 명칭인 기록관으로 개칭되었습니다. 기록관은 서울대학교와 관련된 역사 기록 및 행정 문서들을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습니다.

[학생지도연구소의 대학생활문화원 변경]

1962년 설립된 '학생지도연구소'가 '대학생활문화원'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학생 지원 기능을 강화했습니다.

1962년 2월 ‘학생지도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기관은 2001년에 현재의 명칭인 '대학생활문화원'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대학생활문화원은 학생들의 심리검사 및 상담을 비롯한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2

[치의예/치의학과 학부 신입생 모집 중단]

치의예과 및 치의학과는 2002년 학번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학부 신입생을 받지 않고 '치의학전문대학원' 제도로 대학원에 통합되었습니다.

치의예과 및 치의학과는 2002년 학번 50명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학부 신입생을 받지 않다가 ‘치의학전문대학원’ 제도로서 대학원에 통합되었습니다. 이후 2014년부터는 치의학과 학석사 통합과정 모집단위를 운영하며 신입생을 다시 선발하고 있습니다.

[기초교육원 설치]

대학생들의 기본 소양과 전공 기초 지식 함양을 목적으로 '기초교육원'이 설치되었습니다.

기초교육원은 2002년 대학생들의 기본 소양과 각 전공의 기초 지식을 함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치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합격자를 대상으로 하는 영어(TEPS 평가), 수학, 물리 성취도 평가를 담당하고 있으며 성적에 따라 수준에 맞는 기초교육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성주의 자치언론 《쥬이쌍스》 창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학생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자치언론 《쥬이쌍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여성주의 자치언론 《쥬이쌍스》는 2002년 시작하여 꾸준히 발행되고 있습니다.

2003

[서울대학교 미술관 착공]

1995년 건의되었던 미술관이 관악 캠퍼스 정문 옆에 착공되었습니다.

1995년 미술대학 동양화과 이종상 교수가 미술관의 건립 건의안을 냈으며 삼성문화재단의 기증으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설계는 네덜란드의 건축가 렘 콜하스가 맡았으며, 2003년 관악 캠퍼스 정문 옆에 착공하는 것을 시작으로 2005년에 완공, 2006년 6월 8일에 개관하였습니다.

[수원캠퍼스 단과대학 관악 이전 완료]

과거 수원캠퍼스에 남아있던 농업생명과학대학 및 수의과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며 캠퍼스 종합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수원에 남아 있던 단과대학(농업생명과학대학, 수의과대학)도 2003년에 관악으로 이전하게 됨에 따라 현재와 같이 관악과 연건캠퍼스만 남게 됐습니다. 현재 수원캠퍼스 부지는 경기상상캠퍼스가 되었습니다.

2004

[아파트형 기숙사 개사]

919동 아파트형 기숙사가 개사되어 990명의 학생을 추가로 수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4년 3월에는 919동 아파트형 기숙사를 개사하였고, 수용인원은 990명이었다. 이로써 서울대학교 관악사의 총 수용 규모는 확대되었습니다.

[야구부 창단 첫 승리]

1977년 창단한 서울대 야구부가 199패 1무라는 긴 패배 기록 끝에 창단 28년 만에 역사적인 첫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서울대학교에는 체육 특기생이 없지만 야구를 비롯한 축구, 농구부 등이 존재합니다. 1977년 창단한 야구부는 199패 1무 뒤에 2004년 첫 승을 거두었습니다.

[축구부 18년 만에 승리]

서울대 축구부가 18년 만에 승리를 맛보며 긴 무승 기록을 깼습니다.

서울대학교 축구부도 역시 2004년에야 18년 만에 승리를 맛보았습니다. 1986년 이후 1무가 최고 기록이었다고 합니다.  이날 서울대 축구부는 경남 남해에서 열린 2004 추계 전국대학축구연맹전 예선 3차전에서 진주국제대학교를 4-2로 꺾고 승리했습니다. 이는 1986년 봄철연맹전에서 단국대를 이긴 이후 18년 만의 전국대회 승리였습니다.

2005

[서울대학교 미술관 완공]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가 설계한 서울대학교 미술관이 완공되어 독특한 건축미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 관악 캠퍼스 정문 옆에 착공된 서울대학교 미술관은 2005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지상 3층, 지하 3층, 연면적 1357평의 규모이며, 건물의 절반이 지면에서 떨어져 떠있는 독특한 구조가 특징입니다.

[농학도서관 관악캠퍼스 이전]

농업생명과학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함에 따라 농학도서관도 수원캠퍼스에서 관악캠퍼스로 이전했습니다.

수원캠퍼스에 있던 농업생명과학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함에 따라 2005년 농학도서관도 수원캠퍼스에서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였다.

2006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설립]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한국문화연구소가 통합되어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설립되었으며, 한국학 연구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62년 5월에 설치된 '규장각 도서위원회'를 기반으로, 2006년 2월 1일에는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가 통합되면서 현재의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습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한국학 연구에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 다양한 학술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 개관]

렘 콜하스가 설계하고 2005년 완공된 서울대학교 미술관이 공식 개관하며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했습니다.

2005년에 완공된 서울대학교 미술관은 2006년 6월 8일에 개관하였습니다. 건물의 절반이 지면에서 떨어져 떠있는 독특한 구조와 나선형 계단으로 각 층이 연결된 모습이 국내 미술계와 건축계의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2008

[법학부 신입생 모집 중단 및 법학전문대학원 전환]

'법학전문대학원' 개원으로 법학부의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고 전문대학원 체제로 전환되었습니다.

2008학년도부터는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개원으로 법학부의 신입생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법학전문대학원은 매년 정원의 1/3 이상을 타대학 출신으로 선발해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설립]

경기도 수원시 광교신도시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을 세워 융합과학기술 연구의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2008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광교신도시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을 세웠습니다.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은 본부는 관악에 있지만 수업과 연구는 광교의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건물에서 이뤄집니다.

2010

[BTL생활관 개사]

BTL 방식으로 건설된 새로운 생활관이 개사되어 7개동에 2,500명의 학생을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 9월에 BTL생활관이 개사되었고, 7개동으로 수용인원은 2,500명입니다. 이는 학부생활관, 대학원생활관, 가족생활관과 함께 서울대학교 관악사를 구성합니다.

[평생교육원 개원]

온/오프라인 평생교육을 통해 지식 나눔을 실천하는 '평생교육원'이 개원했습니다.

평생교육원은 온/오프라인 평생교육을 통해 동반자 사회의 지식나눔을 실천하는 기관으로 2010년 5월 개원하였습니다. 다양한 시민교양교육 프로그램과 원격교육을 활용한 전문자격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2011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로 전환]

새로 시행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65년 동안 유지해왔던 국립대학교 체제로부터 독립법인 체제로 전환되었습니다.

2011년 12월 28일에는 새로 시행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1946년 이래 65년 동안 유지해왔던 국립대학교 체제로부터 독립법인 체제로 전환하였습니다. 법인의 명칭은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입니다.

2012

[제2 중앙도서관 '관정관' 신설 계획]

기존 중앙도서관의 노후화와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2의 중앙도서관인 관정관의 신설이 계획되었습니다.

기존 중앙도서관의 시설 노후와 학업 공간의 수요를 충당하지 못함에 따라 2012년부터 별관 신설이 계획되어 공모전을 통한 디자인이 입안되었으며, 12년 3월부터 신축 기금 1000억 원 모금행사를 펼쳤습니다.

2013

[관정관 기공식]

제2 중앙도서관인 관정관의 기공식을 열고 건설을 시작하였습니다.

관정관은 크게 기부한 이종환 명예이사장의 아호 관정(冠庭)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2014

[치의학과 학석사 통합과정 모집 재개]

2002년 중단되었던 치의학과 학석사 통합과정 모집단위 운영이 재개되어 학부 신입생을 다시 선발하게 되었습니다.

치의예과 및 치의학과는 2002년 학번 50명을 마지막으로 학부 신입생을 받지 않다가 ‘치의학전문대학원’ 제도로 대학원에 통합된 후에 2014년 입시에서부터 다시 치의학과 학석사 통합과정 모집단위를 운영하며 이 단위로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습니다.

[평창캠퍼스 정식 준공]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에 조성된 평창캠퍼스의 정식 준공식이 열렸으며, 국제농업기술대학원이 유일한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대화면 신리에 위치하며, 2014년 6월 12일 정식으로 준공식이 열렸습니다. 국제농업기술대학원이 평창캠퍼스 내의 유일한 교육기관이며 현재 약 100명 이상의 석사 박사과정생들이 수업 및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2015

[관정관 준공식]

대학 도서관 시설인 관정관의 준공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이종환 명예이사장의 아호 관정(冠庭)을 따서 명명된 이 도서관은 2월 23일 개관했습니다.

[관정관 개관]

국내 대학교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제2 중앙도서관, 관정관이 개관하여 학생들에게 첨단 학습 공간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2월 5일 준공식을 마친 관정관은 2월 23일 개관했습니다. 지하 1층, 지상 7층으로 구성되어 총넓이 약 2만 7천320m²이며 열람실 4천석, 공동학습실, 멀티미디어실, 스터디가든, 콘퍼런스룸, 실내정원 등이 시설되어 있습니다. 통로로 연결된 기존 중앙도서관(3만 500m²)과 합하여 국내 대학교 중 명실상부 최대 규모의 도서관을 갖추었습니다.

2016

[공학전문대학원 개원]

전문화된 공학 교육을 위한 공학전문대학원이 개원했습니다.

2016년에는 공학전문대학원이 개원하였습니다. 이는 서울대학교에 속한 12곳의 전문대학원 중 하나입니다.

2017

[사회과학대학 신입생 모집 방식 변경]

2017학년도 신입생부터 사회과학대학의 모집 방식이 광역 모집에서 학부별 모집으로 변경되었습니다.

2017학년도 신입생부터 광역으로 모집하던 사회과학대학을 학부 별로 모집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학부 과정 학과 개편의 일환입니다.

2018

[법과대학 학사과정 존속 종료]

법학전문대학원 체제 전환에 따라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학사과정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조선 최초의 근대 법학 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에서 시작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과정은 2018년 2월까지 존속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2018년 3월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과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법과대학 석사과정과 박사과정만이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2020

[데이터사이언스전문대학원 개원]

빠르게 발전하는 데이터 과학 분야의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데이터사이언스전문대학원'이 개원했습니다.

2020년에는 데이터사이언스전문대학원이 개원하였습니다. 이는 서울대학교에 속한 12곳의 전문대학원 중 하나입니다.

2022

[정문 광장 환경 개선 사업 착공]

서울대학교 정문 앞 광장의 환경 개선 사업이 착공되어 새로운 랜드마크 조성에 나섰습니다.

2006년 개교 60주년을 맞아 도색되었던 정문 광장의 환경 개선 사업이 실시되어 정문 광장이 마련되었습니다. 조형물 바로 아래를 지났던 기존의 4차선 도로는 관악산 계곡 방향으로 옮겨졌고, 정문 광장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서현 교수의 설계 아래 4월 25일 착공되었습니다.

[정문 광장 환경 개선 사업 완공]

서울대학교 정문 앞 광장 환경 개선 사업이 완공되어 '지식의 계단', '지식인의 의자' 등 새로운 시설을 갖춘 랜드마크로 재탄생했습니다.

2022년 4월 25일 착공된 정문 광장 환경 개선 사업은 동년 8월 24일에 완공되었습니다. 광장 바닥에는 서울대학교의 정장이 새겨졌고, 그 위에는 '지식의 계단'이라는 이름의 삼각형 모양의 수경 시설이 설치되었습니다. 'ㅅㄱㄷ' 조형물 앞에는 '지식인의 의자'가 설치되어 재학생 및 졸업생, 방문객 등이 기념 사진을 남기기에 용이하게 되었습니다.

2024

[QS 세계 대학 순위 31위 달성]

QS 세계 대학 순위에서 31위에 오르며 도쿄대, 존스홉킨스대, 컬럼비아대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하는 등 세계적인 위상을 재확인했습니다.

2024년에 저명한 정재계 인사를 다시 여럿 배출하며 QS가 발표한 세계 대학 순위 31위에 올랐습니다. 이는 도쿄대학교, 존스홉킨스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보다 높은 순위로, 서울대학교가 국내 대학 가운데 최고에 위치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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