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브 마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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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 이집트인 + 카테고리

이집트 출신 소설가 나기브 마푸즈는 아랍어권 최초이자 유일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입니다. 신과 종교를 다룬 작품들로 큰 명성을 얻었지만, 이로 인해 종교적 검열과 정치적 논란, 심지어 암살 시도까지 겪으며 격동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중동 전역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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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11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나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 가말리야에서 태어났다. 아랍어로는 '나지브'이지만 이집트식으로 '나기브'라고 불렸고, 출산을 도왔던 의사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나기브 마푸즈는 1911년 12월 11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 가말리야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 '나기브'는 출산을 도왔던 의사 나깁 바퍄 마푸즈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3

[카이로 알압바시야로 이사하다]

가족과 함께 카이로 알압바시야 지역으로 이사했다.

1913년, 나기브 마푸즈의 가족은 카이로 알압바시야 지역으로 이사했다.

1930

[카이로 대학 철학과에 입학하다]

푸아드 1세 대학(현 카이로 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학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30년, 나기브 마푸즈는 카이로 대학의 전신인 푸아드 1세 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지적 탐구의 첫 발을 내디뎠다.

1934

[대학 졸업 및 대학원 진학]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이슬람 철학에서의 미의 개념"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34년, 대학을 졸업한 나기브 마푸즈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이슬람 철학에서의 미의 개념"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38

[단편소설집 《광기의 속삭임》으로 문학계 데뷔]

단편소설집 《광기의 속삭임》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학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38년, 나기브 마푸즈는 단편소설집 《광기의 속삭임》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공식적인 첫걸음을 내디뎠다.

1939

[종교부 공무원 생활 시작]

종교부 대출과 직원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으며, 훗날 예술 관련 부처의 검열관, 영화제작 지원 업무, 문화부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1939년, 나기브 마푸즈는 종교부 대출과 직원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부동산부, 예술 관련 부처 검열관, 영화제작 지원 업무, 문화부 자문위원 등 다양한 공직을 거쳤다.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자신이 종교적 검열로 고통받게 된다.

1954

[아티야 알라와 결혼 및 두 딸 출산]

아티야 알라와 결혼하여 움무 쿨숨과 파티마 두 딸을 두며 가정을 이루었다.

1954년, 나기브 마푸즈는 아티야 알라와 결혼하여 움무 쿨숨과 파티마라는 두 딸을 낳으며 개인적인 삶의 중요한 변화를 맞았다.

1959

[논란의 걸작 《게벨라위의 아이들》 연재 시작]

'아브라함 종교'의 세계관을 다룬 상징적 철학 소설 《게벨라위의 아이들》을 알아흐람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종교적 비난으로 이집트 내 출판 및 판매가 사실상 금지되었다.

1959년, 나기브 마푸즈는 그의 문학세계를 대표하는 상징적 철학 소설 《게벨라위의 아이들》(Children of Gebelawi)을 알아흐람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등 세 유일신교의 세계관을 다루며, 이집트 종교 세력으로부터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받아 사실상 출판 및 판매가 금지되는 수난을 겪었다.

1966

['나일 강변 한담' 출판 및 금지 처분]

나세르 정권 시절 이집트 사회의 데카당스한 모습을 묘사한 소설 《나일 강변 한담》을 발표했으나, 사다트 정권에 의해 출판과 영화 상영이 금지되는 수난을 겪었다.

1966년, 나기브 마푸즈는 나세르 정권 시절 이집트 사회의 데카당스한 모습을 묘사한 소설 《나일 강변 한담》(Chitchat on the Nile)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훗날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시절 정권 비판으로 여겨져 출판 및 영화 상영이 금지되었고 1990년대 말이 되어서야 이집트에서 출판될 수 있었다.

1971

[공직 은퇴 후 작품 활동에 전념]

오랫동안 몸담았던 공직에서 물러나 알아흐람 비상근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1971년 11월, 나기브 마푸즈는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알아흐람 비상근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이후 《거울들》(1972), 《빗속의 사랑》(1973), 《알하라피시의 학살》(1977)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1988

[아랍어권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

아랍어권 작가로서는 유일하게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세계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88년, 나기브 마푸즈는 아랍어권 작가로서는 유일하게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는 그의 문학적 성과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아랍 문학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1994

[이슬람 근본주의자에게 암살 시도 당함]

자택 앞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에게 칼에 찔려 암살 시도를 당했으나 목숨을 건졌다. 이 사건으로 오른손 신경이 끊어져 작품 활동에 큰 지장을 받게 되었다.

1994년, 82세의 나이였던 나기브 마푸즈는 자택 앞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 그룹에게 칼에 찔리는 암살 시도를 당했다. 이는 1989년 살만 루시디 파트와 이후 이집트 신학자의 발언이 왜곡되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공식 파트와'로 해석된 결과였다. 그는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손 신경이 끊어져 평생 불구가 되었고, 사망할 때까지 경호원의 보호 속에 살아야 했다.

2006

[《게벨라위의 아이들》 이집트 공식 출간]

출판이 금지되었던 그의 대표작 《게벨라위의 아이들》이 마침내 이집트에서 공식적으로 단행본 출간되었다.

2006년 초, 수십 년간 이집트 내에서 출판이 금지되었던 나기브 마푸즈의 논란의 걸작 《게벨라위의 아이들》이 마침내 공식적으로 단행본 출간되었다. 이는 잡지 연재 외에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정식 출판이었다.

[노환으로 타계하다]

카이로 시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으며, 다음날 국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졌다.

2006년 8월 30일, 나기브 마푸즈는 고령과 심장 질환 및 신장병으로 인해 카이로 시내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그의 장례식은 다음날 국장으로 엄숙하게 치러졌으나, 생전 그가 바라던 '민중들의 애도'는 정권의 통제로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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