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연표
1918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탄생]
러시아의 소설가, 역사가이자 반체제 인사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키슬로보츠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이후 소련의 강제 노동 수용소 실상을 폭로하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1918년 12월 11일 소련 키슬로보츠크에서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후에 소련 육군 대위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고, 스탈린을 비판하는 편지로 인해 투옥되어 10년간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됩니다.
1941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로스토프 대학교에서 물리·수학을 전공하며 모스크바에서 통신 과정을 이수하던 중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소련군에 자원 입대하여 포병 장교로 참전했습니다.
로스토프 대학교에서 물리·수학을 전공하고 모스크바의 역사·철학·문학 전문 학교의 통신 과정을 이수하던 중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소련군에 자원 입대하여 포병 장교로 참전하였습니다.
1945
[스탈린 비판으로 투옥, 수용소 생활 시작]
소련 육군 소령으로 진급하여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포병 장교로 근무하던 중, 이오시프 스탈린의 분별력을 의심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가 체포되어 10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소련 육군 대위 시절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고, 1945년 6월 소련 육군 소령으로 진급했습니다. 같은 해 8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도 소련군 포병 장교로 근무하던 중 이오시프 스탈린의 분별력을 의심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가 1945년 11월에 투옥되어 10년 동안 강제 노동 수용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62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연재 및 명성 획득]
소련 문학 잡지 <노비 미르>를 통해 스탈린 시대 강제 노동 수용소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한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연재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1962년 소련 문학 잡지인 <노비 미르> 편집장이었던 알렉산드르 트바르돕스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스탈린 시대 강제 노동 수용소의 비참한 현실을 다룬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연재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1968
[<암병동> 및 <연옥 1번지> 해외 출판]
소련의 관료주의를 비판하고 스탈린 시대를 주제로 한 <암병동>과 <연옥 1번지>가 국내 출판이 금지되자 해외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정부와 소련 작가 동맹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소련의 관료주의를 비판한 <유익한 사업을 위하여>를 발표하여 논란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보수파 평론가들의 비판 속에서도 스탈린 시대를 주제로 한 <암병동>과 <연옥 1번지>를 완성했으나, 두 작품 모두 국내 출판이 금지되어 외국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위의 작품들이 서방에서 출판되자 정부와 소련 작가 동맹은 그에 대해 집중적인 공격을 퍼부었고, 그 역시 이에 맞서는 공개 서한을 두 번에 걸쳐 작가 동맹에 보냈습니다.
1969
[작가 동맹에서 추방]
반소 작가라는 낙인이 찍혀 소련 작가 동맹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이는 그의 작품들이 서방에서 출판되며 소련 정부와 작가 동맹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은 결과였습니다.
1969년 11월에 반소 작가라는 낙인이 찍혀 작가 동맹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이는 스탈린 시대를 다룬 작품들이 해외에서 출판되면서 정부와 소련 작가 동맹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970
[노벨 문학상 수상]
러시아 문학의 훌륭한 전통을 추구해 온 윤리적인 노력을 높이 평가받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흐루쇼프 정권에서 명예 회복 조치로도 해석되었습니다.
1969년 11월에 반소 작가라는 낙인이 찍혀 작가 동맹에서 추방되었으나, 1970년 12월 러시아 문학의 훌륭한 전통을 추구해 온 윤리적인 노력을 높이 평가받아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니키타 흐루쇼프 정권에서 조치하는 사실상 명예 회복 조치도 받았습니다.
1971
[역사 소설 <1914년 8월> 파리 출판]
제1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한 역사 소설 <1914년 8월>을 파리에서 출판하여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계속해서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1971년 제1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한 역사 소설 <1914년 8월>을 파리에서 출판하여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습니다.
1973
[<수용소 군도> 발표와 서독 추방]
유형지에서의 잔학상을 폭로한 <수용소 군도>가 해외에서 발표되자, 소련 정부에 의해 서독으로 추방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반체제 활동의 정점을 찍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973년 12월 28일, 유형지에서의 잔학상을 폭로한 <수용소 군도>가 해외에서 발표되자 서독으로 추방되었습니다.
1991
[소련 해체]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강력히 비판하고 저항했던 소련 체제가 붕괴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가 20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반체제 활동을 하고 추방당했던 소비에트 연방이 1991년 12월 26일에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다시 러시아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4
[20년 만의 러시아 귀국]
소련 붕괴 후 20년 만에 러시아로 다시 돌아왔으며, 같은 해 시베리아 과학 예술 아카데미의 언어, 문학 분과 회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1994년에 러시아로 다시 돌아왔고, 같은 해 시베리아 과학 예술 아카데미의 언어, 문학 분과 회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998
[옐친 행정부 훈장 수여 거부]
보리스 옐친 행정부의 경제 개혁을 강력히 비판하며, 옐친이 수여하려던 성 안드레이 페르보잔노보 훈장을 "러시아를 실패한 국가로 전락시켰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1994년 러시아로 돌아온 후 그는 계획 경제체제에서 급격히 혼합경제체제로 경제 개혁을 단행한 보리스 옐친 행정부를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1998년에는 옐친 행정부가 그에게 성 안드레이 페르보잔노보 훈장을 서훈하기로 하였음에도 그는 "몇몇 권력자들 때문에 러시아는 실패한 국가로 전락해버렸다. 나는 이 상은 수여받을 수 없다"며 수상을 거절했습니다.
2008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타계]
러시아 문학과 반체제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90세의 나이로 지병으로 별세했습니다. 러시아 언론은 그를 러시아를 대표하는 양심적인 지식인으로 애도했습니다.
2008년 8월 3일 새벽, 90세의 나이로 지병으로 별세하였습니다. 러시아 언론들은 솔제니친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양심적인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조국 러시아를 향한 긴 발걸음이 이제 멈추게 됐다며 애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