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학 오디세이 마지막 편, 16편: 과학 윤리와 교훈 - 영광의 그늘

(유전학 오디세이 1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2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3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4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5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6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7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8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9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10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11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12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13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14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15편은 여기서 보세요)
DNA 이중 나선 구조의 발견은 20세기 과학의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로 기록되었지만, 그 영광의 이면에는 인정받지 못한 공로와 첨예한 윤리적 논쟁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1. 노벨상의 씁쓸한 진실과 잊힌 기여자
1962년,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모리스 윌킨스는 DNA 구조 규명의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데이터를 제공했던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X선 회절 사진(Photo 51)은 프랭클린의 연구 결과였고 윌킨스는 그 결과를 왓슨과 크릭에게 보여준 ‘공로’가 있는 것이었죠.
그녀는 안타깝게도 노벨상 수상 4년 전인 1958년, 37세의 젊은 나이에 난소암으로 사망했습니다.
1974년에 노벨상은 사후 수여를 허용하지 않는 원칙이 공식적으로 정해졌습니다만...
그 이전에도 사후 수여에는 아주 엄격한 제한을 두었지요. 예외적으로 2명만 있었구요.. 그 사람들도 심사도중에 사망한 경우에 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프랭클린이 잊힌 데에는 제도적인 이유 외에도 인간적인 편견이 작용했습니다.
왓슨은 1968년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 《이중 나선》에서 프랭클린을 '로지'라는 멸칭으로 부르며,
그녀를 고집스럽고 비협조적인 인물로 폄하했습니다.
이 성차별적이고 왜곡된 묘사는 그녀의 정당한 과학적 기여를 가리고 대중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었습니다.
다행히 훗날 브렌다 매독스와 같은 전기 작가들의 노력 덕분에 그녀는 'DNA의 다크 레이디'로 재조명되며 과학사에서 정당한 지위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2. 과학적 윤리의 현대적 교훈
DNA 발견의 역사는 오늘날의 과학자들에게 데이터 소유권, 인정, 그리고 성 평등에 대한 중요한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데이터 소유권과 인정: 윌킨스가 프랭클린의 명시적인 허락 없이 사진 51번을 경쟁자였던 왓슨에게 보여준 행위는 현대의 연구 윤리 기준으로는 명백한 위반입니다.
이는 협력과 경쟁 사이의 미묘한 경계, 그리고 동료의 기여에 대한 정당한 인정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무거운 교훈을 남겼습니다.
왓슨과 크릭의 1953년 《네이처》 논문("Molecular structure of nucleic acids; a structure for deoxyribose nucleic acid")에는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저자로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포함되어야 마땅했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다음과 같은 치졸함을 보였습니다.
왓슨과 크릭 논문의 감사 문구를 한번 볼까요?
그 부분만 발췌했어요. 한번 보세요.
왓슨과 크릭은 논문의 마지막 문단에서 모리스 윌킨스 박사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에게 뻔뻔스런 감사만을 다음과 같이 표했습니다.

번역하면...
"저희는 또한 런던 킹스 칼리지의 M.H.F. 윌킨스 박사, R.E. 프랭클린 박사 및 그 동료들의 미발표된 실험 결과와 아이디어의 전반적인 내용을 인지함으로써 자극(영감)을 받았습니다.“
마치 아무런 것도 아닌 실험 결과인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 문구는 바로 그들의 연구가 왓슨과 크릭의 DNA 모델 제시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아닌 '미발표 결과를 제공한 연구자'로서 감사의 말에 포함되었습니다.
현재 우리 연구 윤리 잣대로 판결을 내리자면 저 위대한 논문은 철회되고 다시 저자가 보강되고 바뀌어서 재출간되어야 마땅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구조적 성차별과 편견:
프랭클린이 킹스 칼리지에서 겪었던 구조적 차별과 왓슨의 회고록에 드러난 성차별적 시선은 과학계가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보하고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여전히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과학의 인간적 측면:
이 이야기는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 단순히 천재적인 통찰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연, 치열한 경쟁심, 그리고 타인의 연구에 빚진 통찰들이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진다는 과학의 인간적 측면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왓슨과 크릭의 DNA구조 규명 과정에 관해 상당히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서 혹시 DNA 구조 규명 자체에 대해 씁쓸한 편견을 갖진 말아주길 바래요.
인류 역사상 가장 소중한 발견이고 덕분에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냈으니까요.
특히 제가 쓴 글을 읽으면서 왓슨과 크릭을 동시에 비난하는 느낌을 받으셨다면 오해 역시 풀어주시길 바랍니다.
프랜시스 크릭 박사님은 훌륭하고 존경 받는 생명과학자십니다.
특히 생명체 내에서 유전 정보가 어떻게 흐르는지를 설명하는 분자생물학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인 ‘센트럴 도그마’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한 분이시기도 합니다.
모든 화살은 나머지 한 사람에게 향해야겠죠? 궁금하시다면 아래 연혁을 한번 살펴보세요.
3. 그럼 누가 DNA 구조 규명의 1등 공신일가요?
제 말이 전부 옳다고 말은 못하지만
그래도 평생 생명과학을 연구한 사람으로 판단해 보면
DNA 구조 규명의 1등 공신은 DNA X선 사진 Photo 51을 찍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진이 없었다면 절대로 DNA의 구조가 밝혀지지 않았겠죠.
그 외에 샤가프 박사의 ‘샤가프의 법칙(A=T, G=C)’도 DNA 구조 규명에 큰 기여를 했어요.
그런데 왓슨은 자신의 회고록 《이중 나선》에서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를 왜 그렇게 폄하 했을까요?
그래야만 자기가 좀 더 위대해 보였을까요?
많은 대학교에서 필독서로 왓슨이 쓴 이 《이중 나선》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저는 반드시 이 책을 제외 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책은 독자에게 왜곡된 지식과 성차별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잘못된 서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길다면 길었던 유전학 오디세이 이야기를 마칩니다.
멘델로부터 시작한 이야기.....
정말 순수한 한 인간의 과학적 호기심의 세계로부터 시작했지요...
시작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그러나..
지식이 축적되고
복잡해지고
경쟁...... 피 튀기는 경쟁...
결국
유전학의 끝.... DNA의 구조는 규명되었지만..... 말입니다...
마지막 DNA 이중 나선의 이야기는....
씁쓸하게도
정말 순수하게 가슴 뛰는.... 단지 위대한 발견 역사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여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영광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과학적 윤리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영원한 교훈을 남겨 주었습니다.
(DNA의 발견과 구조 기능 규명의 연대기가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
(왓슨의 만행과 심판이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