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학 오디세이 13편: 라이너스 폴링의 '찬란한 실수'와 '순진한 아들' 피터의 또 다른 실수

(유전학 오디세이 1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2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3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4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5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6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7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8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9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10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11편은 여기서 보세요)
(유전학 오디세이 12편은 여기서 보세요)
DNA 이중 나선 구조를 둘러싼 세기의 경쟁이 절정에 달했을 때.................
이미 단백질의 alpha 나선 구조를 성공적으로 예측한 당대 최고의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이 이 경쟁에 뛰어 들었어요.
뭐 당연히 폴링 박사가 구조를 풀 것으로 모두 예측하였지요.
그러나
그가 1953년 초에 발표한 DNA 구조 모델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경력에서 가장 '찬란한 실수'로 기록됩니다.
음.. 위대한 과학자의 실수... 우리 같은 보통 과학자들에게는 정말 많은 위로가 되지요.
1. 세계 최고의 화학자도 놓친 치명적인 오류

폴링 박사는 동료 로버트 코리와 함께 삼중 나선 모델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이 구조는 화학적으로 중대한 결함을 안고 있었습니다.
첫째, 화학적 불가능성:
폴링의 모델은 음전하를 띠는 인산 뼈대가 나선 구조의 안쪽에 밀집하고 염기가 바깥쪽을 향하는 형태였습니다.
생체 내 pH 환경에서 인산기는 수소 이온을 잃고 강한 음전하를 띠게 됩니다.
즉, 수 많은 인산기 하나하나 마다 음전하 (-) 전기를 가지고 몰려 있으면 어떻겠어요?
예를 들면 자석의 음극이 한 곳에 몰려 있다면 강한 반발력 때문에 서로 밀쳐 내겠죠?
그러니까 당연히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지 못하겠죠?
이 강력한 반발력 때문에 분자는 곧바로 붕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DNA는 안정적인 구조를 형성할 수 없는 거죠.
이 정도는 요즘 똑똑한 초등학생 정도도 예측할 수 있었을텐데.....
둘째, 기초 지식의 간과:
폴링은 인산기가 수소와 결합해 중화되었다고 가정했으나,
DNA는 산성 물질이므로 생체 내에서는 이온화되어 음전하를 띠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위대한 화학자께서도 당시의 경쟁에서 조금 조급한 마음 때문에 가장 기초적인 것을 무시하신 실수를 범하셨나봐요.
2. 순진한 아들 피터를 통한 결정적 정보 누설
왓슨과 크릭에게 가장 큰 위협이었던 폴링의 이 치명적인 오류는 아들인 피터 폴링을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이걸 보면 말입니다... 항상 적은 내부에 있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아요.
라이너스 폴링의 아들은 순진해도 정말 너무 순진했어요. 음... 늑대에게 맛있는 고기를 갖다가 바친 셈이니까요.
당시 캠브리지에서 왓슨, 크릭과 같은 사무실을 쓰던 피터는 아버지의 미완성 원고를 그들에게 보여주었고, 왓슨은 즉시 이 구조의 화학적 불가능성을 간파했습니다.
하여튼 왓슨과 크릭은 운이 좋아도 참 좋아요.
공개되지 않은 photo 51 결과 사진을 슬쩍 보질 않나
라이너스 폴링의 미완성 원고도 보질 않나...
어윈 샤가프 박사도 만나서 염기 A와T, G와C가 짝을 이룬다는 정보도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직접 듣지 않나...
이렇게 글을 쓰니까 왓슨과 크릭 이 두 사람이 싸잡아 다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느끼시겠지만 운이 좋은 거죠.
이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한 건 아니니까요.
특히 왓슨 박사 말고 크릭 박사님은 아주 훌륭하신 분입니다.
이 순간은 왓슨과 크릭에게 양날의 검과 같았습니다.
안도감: "세계 최고의 화학자도 틀렸다"는 안도감으로 경쟁에 대한 압박이 일시적으로 해소되었습니다.
절박함: 폴링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구조를 수정하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는 절박한 동기 부여를 얻었습니다.
3. 천재의 실패 원인과 인간적인 오해
라이너스 폴링 박사의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사건에는 정치적인 배경이라는 인간적인 요소가 숨어 있습니다.
당시 폴링은 활발한 반핵 연설 활동으로 인해 FBI의 조사를 받았고, 미국 정부로부터 여권 발급을 거절당하는 등 자유로운 국제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미국은 우리나라 독재 정권 시절과 뭐 다를 바 없었던 듯해요. 그렇죠?
만약 폴링이 유럽으로 건너가
자신이 직접 프랭클린의 연구소를 방문하여 그 유명한 DNA의 X선 회절 사진(Photo 51)을 직접 확인했다면,
그는 3중 나선 모델의 오류를 피하고 DNA 구조를 제대로 규명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경우 그는 역사상 최초로 세 개의 노벨상(화학상과 평화상을 나중에 받았구요.. 만약에 DNA구조까지 풀었다면 세 개를 받을 수도 있었겠다란 말입니다)을 받는 위업을 달성했을 수도 있습니다.
폴링의 '찬란한 실수'는 그의 과학적 판단 착오 이전에, 외부적인 제약으로 인해 필수적인 정보에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더욱 인간적이고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너스 폴링 박사는 과학계의 위대한 천재이자 인류 평화에 기여한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라이너스 폴링의 일생이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
(유전학 오디세이 14편은 여기서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