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학 오디세이 6편: 튀빙겐 성의 부엌 - 고름 묻은 붕대에서 찾은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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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춥고 어두운 실험실의 청년






 

멘델이 자기 연구를 발표 하고 실의에 빠져 조아시아와 씨름하고 있을 무렵...



 

유전 물질의 물리적 실체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어요.


 

1869년, 독일 튀빙겐 대학의 펠릭스 호페-자일러 (Felix Hoppe-Seyler)연구실에는 약관 25세의 스위스 청년 프리드리히 미셔(Friedrich Miescher)가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호페-자일러는 헤모글로빈에 이름을 붙이고 최초의 생화학 저널을 창립한 인물입니다.


 

그의 연구실은 말이 연구실이지, 사실은 튀빙겐 성의 옛 부엌과 세탁실을 개조한 곳이었습니다.

 

냉장 시설이요..? 그때 냉장 시설이 있을 리 만무했겠죠?


미셔는 가져온 생체 시료가 썩는 것을 막기 위해 한겨울에도 창문을 활짝 열어두어야 했습니다.

 

뼛속까지 시린 추위와 어둠 속에서 그가 찾아내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지도교수인 호페-자일러의 권유(?)로 세포핵의 화학적 특성을 연구하게 된 거죠.

 

 

 

2. 붕대 더미에서 건져 올린 '뉴클레인’


 

호페-자일러 교수가 미셔에게 던져 준 과제는 백혈구에 있는 핵의 화학적 성분을 분석하는 것이었죠.

 

백혈구를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은 병원이었습니다.

 

당시는 아직 소독법이 발달하지 않아, 수술 환자의 상처가 감염되어 고름이 생기는 일이 흔했습니다. 미셔는 매일 매일 병원에서 고름이 잔뜩 묻어 버려진 붕대를 수거해 왔습니다.

 

뭐 지도교수가 까라면 까야죠 뭐 별 수 있겠어요?

 

그는 겨울의 그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면서....

 

역한 냄새를 참아가며....

 

고름에서 백혈구를 씻어내고.......

 

단백질 가수분해효소인 펩신을 처리해 단백질을 모두 녹여버리자,

 

세포핵 속에 끈적끈적한 물질 하나가 남았어요.

 

단백질 분해 효소에도 사라지지 않고, 특이하게 인의 함량이 높은 미지의 물질이었습니다.

 

 


 

3. 시대를 너무 앞서간 직관



 

미셔는 이 물질이 세포핵에 존재한다고 하여

 

‘뉴클레인’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생명의 설계도라 부르는 DNA의 최초 발견입니다!!!!!



 

미셔는 이 물질이 단순한 찌꺼기가 아님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삼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물질이 생명의 수정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는 놀라운 선견지명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학계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생명처럼 복잡한 현상은 당연히 구조가 복잡한 단백질이 담당해야지, 이런 단순한 물질일 리가 없다.“

 

이 거대한 편견 탓에,

 

미셔의 발견은 그저 '세포 안에 인을 저장하는 물질' 정도로 폄하되었고, DNA가 화려하게 부활하기까지는 무려 70년이라는 긴 세월이 더 필요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편견,,,, 이 철옹성 같은 편견,,,, 더욱 더 강화되는 편견,,, 그리고 이 편견을 깨 부셔버리는 숭고한 노력들을 다음 편부터 하나 하나씩 알려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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