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학 오디세이 4편: 비극적인 외면과 안타까운 엇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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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65년의 외면, 그리고 조아시아의 비극

 

1865년, 멘델은 드디어 학회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하지만 반응은 차가웠어요!!

 

여러분!!! 8년 동안 그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결과물을 듣는 둥 마는 둥 외면해 버리는 청중들의 모습을 지켜봤을 멘델의 심정을 우리가 어찌 헤아릴 수나 있을까요.

 

그 자리에 있던 생물학자들은 멘델의 혁신적인 ‘수학적 분석’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구요... 그들은 이 위대한 발견을 그저 농업 데이터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더 큰 비극은.... 그 이후에 찾아왔습니다.

 

당대의 저명한 식물학자 카를 네겔리의 조언으로 시작한 '조아시아(Hawkweed)' 실험이 문제였습니다.

 

멘델은 완두콩의 법칙을 이 식물에도 적용해 보려 했지만, 결과는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멘델은 몰랐습니다. 뭐 멘델만 몰랐을까요? 카를 네겔리도 몰랐겠죠.

 

조아시아가 무수정생식(Apomixis), 즉 수분 없이 모체의 유전자를 그대로 복제하는 식물이라는 사실을요.

 

그러니..... 분리의 법칙이 통할 리 없었죠.

 

보세요.. 저 노랜 꽃.. 멘델은 저 작은 꽃의 수술을 제거하느라 시력마저 잃어갔죠.

 

"내 법칙이 틀렸나?" 자기 의심 속에 괴로워해야 했습니다.

 

결국 멘델은 연구를 접었습니다.

 

행정직인 수도원장이 되었습니다. 답답한 세월을 살아가는 천재 멘델의 모습이 그려지죠?

 

1884년 눈을 감을 때까지 자신의 발견이 세상에 어떤 혁명을 일으킬지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조언’이란 것, 정말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2.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엇갈림: 다윈과 멘델

   




“만약 다윈이 멘델의 논문을 읽었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멘델과 다윈이 동시대 사람이란 걸 잘 모르더라구요.

 

1859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발표하며 세상을 뒤흔들었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전의 메커니즘’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당시 사람들은 부모의 피가 섞이듯 형질도 섞인다는 ‘혼합 유전설’을 믿었어요. 정말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이요.

 

이는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과 모순되었답니다.

 

왜냐면요 잘 생각해 보세요. 생존에 유리한 변이가 나오잖아요? 그럼 그 변이를 나타내는 유전적 요소도 세대를 거치면서 다른 요소들과 혼합되어 사라질 테니까요.

 

다윈은 이를 설명하려 ‘판게네시스’라는 억지스러운 가설까지 내놓아야 했어요.

 

바로 그 시각, 오스트리아의 멘델은 콩을 세며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고 있었죠. 형질은 섞이지 않고 ‘입자’로 보존된다는 것을요.

 

과학사에는 다윈의 서재에 멘델의 논문이 ‘페이지가 뜯기지 않은 채(uncut)’ 꽂혀 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당시엔 논문을 읽으려면 페이지를 뜯어야 했다는군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는 신화에 가깝지만, 진실은 여전히 비극적입니다.

 

설령 다윈이 그 논문을 봤다 한들, 생물학자였던 그가 멘델의 수식을 이해했을까요?

 

두 거장의 엇갈림 속에 유전학은 35년이나 늦게 태동하게 됩니다.

 

(그레고어 멘델의 일생이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

(찰스 다윈의 일생이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


(유전학 오디세이 5편은 여기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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