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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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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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기술, 산업, 통신 + 카테고리

노키아는 1865년 핀란드의 작은 제지 공장에서 시작해 고무 장화와 전선을 만드는 기간산업체로 변모했고, 1990년대에는 인류의 소통 방식을 바꾼 모바일 제국으로 등극했습니다. 그러나 스마트폰 혁명이라는 거대한 해일 앞에서 '불타는 플랫폼'에 직면하며 휴대전화 사업을 매각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네트워크 장비 분야의 거인으로 재도약하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기업의 생존 본능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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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865

[프레드리크 이데스탐, 첫 번째 목재 펄프 공장 설립]

광산 엔지니어였던 프레드리크 이데스탐이 핀란드 탐페레 지역의 탐메르코스키 급류 근처에 첫 번째 목재 펄프 공장을 설립했습니다. 핀란드의 풍부한 침엽수림과 수력을 이용한 제지 산업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핀란드는 러시아 제국의 자치령이었으며, 이데스탐은 독일 여행 중 목재를 갈아 종이를 만드는 신기술을 목격하고 사업을 구상했습니다.

1868

[노키안비르타 강변으로 제2공장 확장]

더 풍부한 수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근 노키아 마을의 노키안비르타 강변에 두 번째 공장을 세웠습니다. 회사명 '노키아'는 바로 이 지명에서 유래했습니다.

'노키아'는 고대 핀란드어로 검은 담비를 뜻하며, 회사의 뿌리가 핀란드의 자연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합니다.

1871

[노키아 주식회사(Nokia Ab) 전환]

이데스탐은 친구이자 정치가인 레오 메켈린의 도움을 받아 회사를 주식회사로 전환했습니다. 그러나 1차 대전 직후 제지 사업 수익성 악화로 파산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데스탐의 보수적인 경영 방식과 메켈린의 혁신적인 비전 사이의 갈등이 있었으나, 결국 회사는 근대적인 기업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1898

[핀란드 고무 회사 설립]

에두아르드 폴론이 헬싱키에 핀란드 고무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 회사는 갈로슈(덧신), 타이어, 고무 부츠 등을 생산하며 성장했습니다.

훗날 노키아의 일부가 되는 이 회사는 당시 노키아 제지 공장의 수력 발전 시설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1912

[핀란드 전선 회사 설립]

전신 및 전화 케이블, 전력 케이블을 생산하는 핀란드 전선 회사가 설립되었습니다. 이 회사는 훗날 노키아 전자 및 통신 사업의 모태가 됩니다.

급격한 산업화와 전기 보급으로 전선 수요가 폭발하면서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1918

[핀란드 고무 회사의 노키아 인수]

파산 위기에 처한 노키아 제지 회사의 전력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핀란드 고무 회사가 노키아의 주식을 대량 매입하여 대주주가 되었습니다.

이는 서로 다른 산업(제지, 고무)이 자원(전력)을 매개로 결합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1922

[세 회사의 실질적 통합 운영 시작]

핀란드 고무 회사가 핀란드 전선 회사까지 인수하면서, 제지-고무-전선 세 회사가 하나의 경영진 아래 운영되는 복합기업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법적인 합병은 나중에 이루어지지만, 사실상의 노키아 그룹이 탄생한 시점입니다.

1960

[전자 부서 신설 (비외른 베스터룬드의 결단)]

핀란드 전선 회사의 사장 비외른 베스터룬드가 케이블 사업부 내에 전자 부서를 신설했습니다. 그는 케이블 사업의 성장이 한계에 다다를 것을 예견하고 전자 통신을 미래 먹거리로 지목했습니다.

케이블 사업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현금을 적자 투성이인 전자 R&D에 투자하는 '양손잡이 경영'의 시초였습니다.

1961

[M61 방독면 생산 시작]

냉전 시대의 국방 수요에 맞춰 핀란드 군을 위한 M61 방독면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측면에 노키아 로고가 찍힌 이 방독면은 1971년까지 생산되었습니다.

고무 가공 기술을 방위산업에 적용한 사례로, 훗날 휴대전화의 내구성을 확보하는 제조 품질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1967

[노키아 코퍼레이션 공식 출범]

별도 법인으로 운영되던 노키아(제지), 핀란드 고무 회사, 핀란드 전선 회사가 법적으로 완전히 합병하여 '노키아 코퍼레이션'이 공식 출범했습니다.

이때의 노키아는 휴지부터 타이어, 케이블, 전자기기까지 생산하는 핀란드의 국민 기업이었습니다.

1979

[모비라(Mobira) 설립]

TV 제조사 살로라와 합작하여 무선 통신 전문 회사 '모비라'를 설립했습니다. 이는 노키아가 이동통신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모비라는 훗날 노키아 모바일 폰 사업부의 전신이 됩니다.

1981

[NMT(Nordic Mobile Telephone) 서비스 개시]

북유럽 국가들이 세계 최초의 다국적 자동 로밍 네트워크인 NMT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노키아는 이 표준 설계에 깊이 관여하며 기술력을 축적했습니다.

이전까지 파편화되어 있던 이동통신 규격을 통합하여, 국경을 넘나드는 통신을 가능하게 만든 혁명적인 인프라였습니다.

1982

[최초의 차량용 전화기 '모비라 세나토' 출시]

NMT 네트워크용 차량용 전화기 '모비라 세나토'를 출시했습니다. 무게가 9.8kg에 달하는 거대한 장비였지만, 이동 중 통화라는 개념을 실현했습니다.

사실상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는 무전기에 가까웠으나, 노키아 모바일 역사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1987

[핸드헬드 혁명, '모비라 시티맨 900' 출시]

차량에서 분리하여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벽돌 크기의 전화기 '모비라 시티맨 900'을 출시했습니다. 무게를 800g대로 획기적으로 줄이며 진정한 휴대폰 시대를 열었습니다.

성공한 전문직 종사자를 타겟으로 한 초고가 사치품이었으며, 부와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1989

[고르바초프의 통화와 '고르바' 별명 탄생]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헬싱키 방문 중 모비라 시티맨으로 모스크바와 통화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보도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 전화기는 '고르바'라는 애칭을 얻었습니다.

냉전 종식을 상징하는 정치적 퍼포먼스이자, 노키아의 기술력을 전 세계에 알린 최고의 마케팅 순간이었습니다.

1992

[요르마 올릴라 CEO 취임 및 집중 전략]

신임 CEO 요르마 올릴라는 통신을 제외한 제지, 고무, 가전 등 모든 사업을 매각하고 모바일과 네트워크에 올인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이 선택과 집중 전략은 GSM 표준 확산과 맞물려 노키아를 세계 1위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1994

['노키아 튠' 최초 탑재 (노키아 2110)]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왈츠 곡 '그란 발스'의 일부를 차용한 벨소리가 노키아 2110 모델에 처음 탑재되었습니다. 훗날 '노키아 튠'으로 불리며 전 세계에서 하루 18억 번 울리는 소리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Type 7'이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었으나,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노키아 브랜드의 청각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1998

[세계 1위 휴대전화 제조사 등극]

노키아는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휴대전화 제조사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후 14년 동안 왕좌를 지키며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핀란드 GDP의 4%를 차지하고 전체 수출의 20%를 담당할 정도로 국가 경제를 견인하는 거대 기업이 되었습니다.

2000

[노키아, 기술 R&D의 대장정 시작]

노키아가 2000년 이후 연구개발(R&D)에만 누적 1,400억 유로(약 200조 원) 이상을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하드웨어 제조사를 넘어 통신 기술의 원천을 확보하려는 장기적인 투자의 서막이었습니다.

2003

[게임폰 N-Gage 출시와 실패]

닌텐도가 장악한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야심 차게 출시한 N-Gage가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통화 시 '타코'처럼 보이는 우스꽝스러운 디자인과 배터리를 빼야 게임을 교체할 수 있는 불편함이 원인이었습니다.

기술적 우위에만 집착하고 사용자 경험(UX)을 무시한 공학 중심 사고의 폐해를 보여준 사건으로, 닌텐도 게임보이 어드밴스에 완패했습니다.

2007

[아이폰 출시와 시장의 변화]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며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을 알렸습니다. 노키아 경영진은 초기에는 아이폰을 폄하했으나, 시장은 빠르게 소프트웨어 중심의 생태계로 재편되었습니다.

노키아의 심비안 OS는 터치 인터페이스에 대응하지 못했고, 안드로이드와 iOS 진영에 주도권을 뺏기기 시작했습니다.

2011

[스티븐 엘롭의 '불타는 플랫폼' 메모]

CEO 스티븐 엘롭이 전 직원에게 노키아의 위기 상황을 알리는 '불타는 플랫폼' 메모를 발송했습니다. 그는 노키아가 불타는 석유 시추선 위에 서 있다며, 윈도우 폰으로의 전환을 선언했습니다.

이 메모 유출은 '오즈본 효과'를 일으켜 심비안 폰의 판매를 급감시켰고, 윈도우 폰 생태계의 실패와 맞물려 노키아의 몰락을 가속화했습니다.

2013

[지멘스 지분 전량 인수 발표]

노키아 지멘스 네트웍스(NSN)의 지멘스 보유 지분 50%를 17억 유로에 전량 인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네트워크 사업 부문이 노키아의 100% 자회사가 되었습니다.

합작 회사였던 NSN은 이후 '노키아 솔루션스 앤 네트웍스'로 사명을 변경하며 독자 생존의 길을 열었습니다.

[휴대전화 사업부 매각 발표]

노키아는 휴대전화 사업부를 마이크로소프트에 54억 4천만 유로에 매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핀란드의 모바일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후 노키아는 네트워크 장비 사업에 집중하여 통신 인프라 기업으로 재도약했으며, 브랜드 라이선스를 통해 스마트폰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 사업부 마이크로소프트 매각 발표]

노키아의 상징이었던 디바이스 및 서비스(D&S) 사업부를 마이크로소프트에 54억 4천만 유로에 매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핀란드 모바일 신화의 종언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매각 발표와 함께 스티븐 엘롭 CEO는 사임하고 마이크로소프트로 복귀했습니다.

2014

[휴대전화 사업부 매각 완료]

마이크로소프트로의 사업부 매각 절차가 최종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노키아에는 네트워크 장비, 지도 서비스(HERE), 기술 특허 부문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노키아는 B2C(소비자 대상) 기업에서 B2B(기업 대상) 네트워크 전문 기업으로 체질 개선을 본격화했습니다.

[라지브 수리 CEO 취임]

NSN의 회생을 이끌었던 라지브 수리가 노키아의 새로운 CEO로 선임되었습니다. 그는 '네트워크, 지도, 기술'이라는 3대 핵심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태블릿 N1 출시 및 브랜드 라이선스 시작]

폭스콘과 제휴하여 안드로이드 태블릿 '노키아 N1'을 깜짝 공개했습니다. 이는 노키아가 직접 제조하지 않고 브랜드와 디자인만 빌려주는 라이선스 사업의 시작이었습니다.

2015

[알카텔-루슨트 인수 발표]

프랑스의 통신 장비 경쟁사인 알카텔-루슨트를 156억 유로에 인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에릭슨, 화웨이와 경쟁하기 위한 몸집 불리기 전략이었습니다.

이 인수로 노키아는 유선과 무선을 아우르는 거대 통신 장비 포트폴리오와 벨 연구소라는 강력한 R&D 조직을 확보했습니다.

[HERE 지도 사업부 매각]

지도 및 위치 정보 서비스인 HERE를 독일 자동차 3사(아우디, BMW, 다임러) 컨소시엄에 28억 유로를 받고 매각했습니다.

이 매각 자금은 알카텔-루슨트 인수 자금 및 네트워크 사업 집중 투자에 활용되었습니다.

2016

[알카텔-루슨트 통합 완료]

알카텔-루슨트와의 합병 절차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며 통합 법인으로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노키아는 세계 2위권의 통신 장비 업체로 도약했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위딩스 인수]

프랑스의 스마트 헬스케어 기기 제조사 위딩스를 1억 7천만 유로에 인수하며 디지털 헬스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이후 '노키아 헬스'로 브랜드를 변경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2018년에 창업자에게 되팔게 됩니다.

[HMD Global 출범 및 노키아 폰의 귀환]

핀란드의 신생 기업 HMD Global이 노키아 브랜드의 휴대전화 및 태블릿 독점 사용권을 획득했습니다. 노키아는 브랜드와 특허를 제공하고 로열티를 받는 구조로 시장에 복귀했습니다.

폭스콘의 자회사 FIH Mobile이 제조를 맡고, HMD Global이 기획 및 마케팅을 담당하는 3각 협력 체제가 구축되었습니다.

2017

[전설의 귀환, 노키아 3310 재출시]

HMD Global이 MWC 2017에서 전설적인 피처폰 노키아 3310의 현대적 리메이크 버전을 공개하여 전 세계적인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2018

[디지털 헬스 사업 철수 (위딩스 매각)]

수익성 악화로 인해 디지털 헬스 사업부(구 위딩스)를 원 창업자인 에릭 카릴에게 다시 매각하며 헬스케어 시장에서 철수했습니다.

B2B 네트워크 사업에 더욱 집중하기 위한 포트폴리오 재조정의 일환이었습니다.

2020

[페카 룬트마크 CEO 취임]

에너지 기업 포툼의 CEO였던 페카 룬트마크가 새로운 CEO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취임 직후 조직 구조를 단순화하고 5G 경쟁력 회복을 위한 3단계 전략(Reset, Accelerate, Scale)을 발표했습니다.

과거 노키아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그는 기술 리더십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NASA 달 표면 4G 통신망 구축 사업자 선정]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추진하는 달 표면 4G LTE 통신망 구축 프로젝트의 파트너로 선정되었습니다. 계약 규모는 1,410만 달러입니다.

노키아 벨 연구소는 달의 극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초소형 저전력 통신 장비를 개발하여 아르테미스 미션에 기여하게 됩니다.

2021

[대규모 인력 감축 및 5G 투자 확대 발표]

비용 절감을 위해 향후 2년간 전 세계적으로 5,000~10,000명의 인력을 감축하고, 절감된 비용을 5G R&D에 재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2022

[러시아 시장 완전 철수 선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제재 조치로 러시아 시장에서의 모든 사업을 중단하고 철수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러시아 내 통신 장비 공급 및 R&D 센터 운영을 중단했습니다.

2023

[삼성전자와의 5G 라이선스 계약]

노키아가 삼성전자와 5G 통신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을 팔 때마다 노키아에 로열티를 지불하는 구조로, 노키아의 특허가 시장에서 '표준필수특허(SEP)'로서 갖는 위상을 증명했습니다.

당시 노키아는 약 2만 개의 특허 패밀리를 구축하고 있었으며, 그중 5G SEP로 지정된 것만 5,500건이 넘었습니다.

[60년 만의 브랜드 로고 변경]

MWC 2023에서 기존의 '예일 블루' 색상과 서체를 버리고, 디지털과 현대적인 이미지를 강조한 새로운 로고를 공개했습니다. 이는 휴대전화 회사가 아닌 B2B 기술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기존 로고는 브랜드 라이선스를 가진 HMD Global의 휴대전화 제품에만 한정적으로 사용됩니다.

[레드햇과의 클라우드 파트너십 체결]

오픈소스 솔루션 기업 레드햇과 파트너십을 맺고, 노키아의 핵심 네트워크 애플리케이션을 레드햇 오픈시프트 등 클라우드 플랫폼에 통합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클라우드 네이티브 네트워크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제휴입니다.

2024

[오포와 5G 특허 크로스 라이선스 체결]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오포와 5G 표준 필수 특허에 대한 글로벌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며 장기간 이어진 특허 소송을 종결했습니다.

이어 2월에는 비보와도 유사한 합의를 이끌어내며 특허 수익 기반을 공고히 했습니다.

[인피네라 인수 발표]

미국의 광통신 장비 및 반도체 기업 인피네라를 23억 달러(약 3조 2천억 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광네트워크 시장, 특히 북미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번 인수로 노키아는 광통신 네트워크 부문에서 세계 2위 규모로 도약할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HMD Global 피처폰 라이선스 연장]

HMD Global과의 브랜드 라이선스 계약 중 피처폰(일반폰) 부문을 2026년 이후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단, 스마트폰 라이선스는 예정대로 종료될 가능성이 높아 HMD는 자체 브랜드 폰 출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노키아 브랜드가 저가형 시장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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