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

경제학자, 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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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세 교수는 대한민국 경제학계에 '게임이론'을 정착시킨 선구적 학자이자, 명문 사학의 행정가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UCLA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을 사사하며 국제적 감각을 익혔고, 귀국 후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 30년간 후학을 양성하며 상경대학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학문적 성취 이면에는 영종도 토지 투기 의혹, 제자 운영 대부업체 투자, 자녀 입시 및 논문 공저 의혹 등 공정성 가치와 충돌하는 숱한 논란이 공존합니다. 특히 2024년 발생한 '로또 청약' 가점 조작 의혹은 그가 평생 연구해 온 전략적 의사결정 이론이 사적 이익 극대화를 위해 어떻게 현실에 투영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역설적인 사례로 평가받으며, 학자적 권위와 도덕적 해이 사이의 깊은 과제를 사회에 던지고 있습니다.

연관 연혁
주요사건만
최신순

1962

[울산에서의 탄생]

경상남도 울산시에서 부친 김태호 씨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본관은 고령 김씨이며 유년 시절을 보낸 후 교육을 위해 서울로 이주합니다. 김태호씨는 4선국회의원이며 내무부장관을 지냈습니다.

김영세 교수는 1962년 10월 23일 경상남도 울산시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유년 시절을 울산에서 보냈으나 학령기에 접어들며 대한민국 교육의 중심지인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여 성장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훗날 한국 사회의 주류 엘리트 궤도에 진입하는 기초적인 배경이 되었습니다.

1980

[중동고등학교 졸업]

명문 사학인 서울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하며 고교 생활을 마칩니다. 수많은 정재계 인사를 배출한 교정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합니다.

중동고등학교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명문 사학으로 꼽힙니다. 김 교수는 1980년대 초반 한국 사회가 고도 성장을 구가하던 시기에 대학 입시를 준비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엄격한 학업 훈련은 그가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이라는 국내 최고의 학부로 진학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1981

[연세대 경제학과 입학]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하여 경제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당시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은 한국 경제를 이끄는 인재들의 산실이었습니다.

1980년대 초, 김영세 교수는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하였습니다. 당시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은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 속에서 정책 관료와 학자들을 대거 양성하던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경제학의 기초를 닦으며 학문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1984

[학문적 정체성 확립]

학부 재학 시절 경제학의 논리적 엄밀성에 깊은 매력을 느낍니다. 졸업 후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동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며 연구자의 길을 굳힙니다.

1984년 가을, 김 교수는 학부 재학 시절부터 경제학의 논리적 구조에 크게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학부 졸업 후 곧바로 연세대학교 동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문적 깊이를 더하는 과정을 선택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결정은 훗날 그가 미시경제학의 대가로 성장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87

[경제학 석사 학위 취득]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거시경제학적 주제로 석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필립스 곡선에 미치는 개인의 기대 행태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합니다.

1987년 2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개인기대행태가 필립스곡선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필립스 곡선은 거시경제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입니다. 초기 연구 단계에서는 훗날 전공할 미시경제학보다는 거시적 현상과 기대 심리에 집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88

[미국 UCLA 유학 시작]

석사 취득 후 더 넓은 학문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 대학원 경제학과에 입학합니다.

1980년대 후반 UCLA 경제학과는 이론 경제학과 미시경제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자랑하던 시기였습니다. 김 교수는 이곳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최신 경제 이론을 섭렵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형성된 글로벌 수준의 연구 역량은 그의 학문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9

[이혜훈 전 의원과 결혼]

UCLA 유학 시절 동료 학자였던 이혜훈 전 의원과 인연을 맺고 결혼합니다. 유학 부부로서 학업과 결혼 생활을 병행하며 치열한 유학 시절을 보냅니다.

배우자 이혜훈 전 의원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승수 전 국무총리의 권유로 UCLA 박사 과정에 진학하여 김 교수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이국땅에서 같은 경제학을 연구하며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였습니다. 장남의 출생 연도를 고려할 때 이 시기 결혼하여 안정적인 가정을 꾸린 것으로 보입니다.

1990

[로이드 섀플리 사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이드 섀플리 교수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습니다. 스승으로부터 학문적 깊이뿐만 아니라 소탈한 인품에 대해서도 큰 영향을 받습니다.

로이드 섀플리(Lloyd S. Shapley) 교수는 게임이론의 거두로 김영세 교수의 박사 과정 중 핵심적인 스승이었습니다. 김 교수는 그를 온화하고 소탈한 인품을 지닌 위대한 학자로 회고하며 존경심을 표해왔습니다. 이 학문적 계보는 김 교수가 한국 학계에 게임이론을 정착시키는 결정적인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1991

[장남 김성환 출생]

미국 유학 생활 중 부부의 첫 아이인 장남 김성환이 태어납니다. 치열한 박사 과정 중에 부모가 되는 책임감을 느끼며 학업에 매진합니다.

장남 김성환은 1991년경 미국에서 출생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당시 김 교수 부부는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며 결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는 치열한 삶을 살았습니다. 장남은 훗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고 경제학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92

[로버트 아우만의 영향]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아우만 교수로부터 학술적 영감을 얻습니다. 반복 게임(Repeated Games) 이론을 통해 전략적 상호작용의 심오함을 탐구합니다.

로버트 아우만(Robert J. Aumann) 교수는 반복 게임 이론의 권위자로 김 교수의 연구 세계에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김 교수는 UCLA 유학 시절 다양한 노벨상급 석학들과 교류하며 학술적 시야를 넓혔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그가 훗날 한국 학계에 선진 이론을 도입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1993

[차남 출생과 유학 투혼]

유학 생활 중 둘째 아들을 얻으며 다복한 가정을 꾸려갑니다. 배우자 이혜훈 전 의원은 출산 직전까지 연구에 매진하는 투혼을 보여줍니다.

차남은 1993년경 출생한 것으로 파악되며 당시 부부는 박사 과정의 막바지 고비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이혜훈 전 의원이 둘째 임신 당시 산부인과 병실에서도 논문을 썼다는 일화는 당시의 치열함을 방증합니다. 김 교수는 아내를 조력하며 연구와 육아를 병행하는 성실한 가장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1994

[케임브리지 대학 부임]

박사 학위 취득 후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 대학교 연구전임교수로 재직합니다. 경제학의 역사적 성지에서 연구하며 학문적 시야를 확장합니다.

1994년 겨울, 김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에서 연구전임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케임브리지는 케인즈학파의 본산으로 경제학의 성지로 불리는 곳입니다. 박사 취득 후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유럽 학계에서 경력을 시작한 것은 당시 한국 경제학계에서 흔치 않은 사례였습니다.

1995

[런던 대학교 조교수 역임]

영국 런던 대학교 조교수로 임용되어 본격적인 강단 활동을 수행합니다. 글로벌 수준의 연구 및 교육 역량을 국제 무대에서 다시 한번 입증합니다.

케임브리지를 거쳐 런던 대학교 조교수로 임용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런던 대학교에서의 조교수 경력은 그가 글로벌 수준의 연구 및 교육 능력을 갖추었음을 보여주는 이정표입니다. 이러한 해외 경력은 훗날 모교인 연세대학교로 금의환향하는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습니다.

1996

[연세대학교 교수 임용]

유학 생활과 해외 경력을 마치고 모교인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부임합니다. 한국 학계에 게임이론과 정보경제학 방법론을 본격 전파합니다.

1996년경 김영세 교수는 모교인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부 교수로 부임하며 한국으로 귀환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약 30년 가까이 연세대학교를 지키며 미시경제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는 학생들이 인정하는 난이도 높은 수업과 엄격한 학사 관리로 유명해졌습니다.

1997

[삼남 출생과 가정의 완성]

한국 정착 후 셋째 아들을 얻으며 슬하에 세 아들을 둔 다복한 아버지가 됩니다. 바쁜 연구와 교육 일정 속에서도 자녀 양육에 깊은 관심을 쏟습니다.

삼남은 1997년경 출생한 것으로 파악되며 김 교수는 세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정치에 입문한 아내를 대신해 가정의 중심을 잡으며 아이들을 직접 챙기는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세 아들은 훗날 병역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며 각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98

[제1회 연세학술상 수상]

부임 후 보여준 탁월한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아 연세학술상을 수상합니다. 신진 교수로서 학계와 학교 내부의 높은 신뢰를 구축합니다.

1998년, 김 교수는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세학술상을 수상하며 학술적 능력을 입증하였습니다. 이 상은 연구 역량이 뛰어난 교수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김 교수가 연세대학교를 대표하는 경제학자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그는 학계 중진으로서 다양한 저술 활동을 이어가게 됩니다.

2000

[영종도 토지 대거 매입]

인천공항 개항 직전 영종도 중산동 일대의 땅 2,000평을 본인 명의로 매입합니다. 당시 공시지가 약 13억 8,800만 원 규모의 거래를 진행합니다.

2000년 1월 18일, 김 교수는 인천 중구 중산동 일대의 잡종지 6,612㎡를 매입하였습니다. 매입 시점은 인천국제공항 공식 개항일을 불과 1년 2개월 앞둔 시기였습니다. 당시 배우자 이혜훈 씨가 국책연구기관에서 관련 도로망 조사를 담당하고 있었다는 점 때문에 정보 이용 투기 의혹이 일었습니다.

2001

[전략과 정보 저서 출간]

비대칭 정보 하에서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다룬 전문 서적을 출간합니다. 복잡한 경제적 상호작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학문적 권위를 높입니다.

김 교수는 『전략과 정보』라는 저서를 통해 게임이론과 정보경제학의 정수를 독자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그는 난해한 수식보다는 직관적인 설명을 통해 경제 주체들의 행동 원리를 분석하려 노력했습니다. 이 책은 훗날 그의 '전략적' 삶의 궤적과 비교되며 묘한 시사점을 던지게 됩니다.

2003

[매경이코노미스트상 수상]

경제학 분야의 권위 있는 상인 매경이코노미스트상을 수상하며 명성을 쌓습니다. 이론뿐만 아니라 현실 경제 분석 역량을 높게 평가받습니다.

2003년 매경이코노미스트상을 수상하며 대외적인 연구 역량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이론적 연구에 머물지 않고 산업조직 및 공정거래와 관련된 정부 정책 보고서를 다수 작성하며 현실 정책 수립에도 기여하였습니다. 이러한 성취는 그가 상아탑을 넘어 현실 경제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진 학자로 성장했음을 의미합니다.

2004

[배우자의 정계 입문]

아내 이혜훈 전 의원이 제17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정치인의 남편이라는 지위를 갖게 됩니다. 조용한 외조를 지향하며 학교 연구에 집중합니다.

2004년 총선 승리 이후 김 교수는 정치인의 남편으로서 새로운 삶의 장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아내의 정치적 활동을 존중하며 자신은 학교 업무에 매진하는 '그림자 내조'를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의 공적 지위는 훗날 그가 행한 각종 사적 거래들이 검증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2005

[연상동창회상 수상]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동창회로부터 모교 발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받습니다. 동문 사회와 학교를 잇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신망을 쌓습니다.

2005년 연상동창회상 수상은 그가 학교와 동문들 사이에서 중심적인 인물임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그는 동문 사회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며 상경대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신뢰는 훗날 그가 대학 본부의 주요 보직을 맡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정적인 남편의 면모]

조선일보 인터뷰를 통해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삶이 대중에 소개됩니다. 바쁜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을 챙기는 소탈한 일상을 공개합니다.

언론에 소개된 김 교수는 아내 이혜훈 의원의 건강을 위해 비타민과 물잔을 들고 따라다니는 자상한 남편이었습니다. 그는 아내를 대신해 세 아들의 양육에 깊이 관여하며 가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었습니다. 당시 대중은 명문대 교수와 국회의원 부부의 완벽해 보이는 가정생활에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2006

[영종도 땅 25억 차익 실현]

매입했던 영종도 토지가 공공기관에 수용되면서 막대한 보상금을 받습니다. 6년 만에 매입가 대비 약 25억 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거둡니다.

2006년 12월 28일, 해당 토지는 한국토지공사 등에 수용되었으며 보상가는 약 39억 2,100만 원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김 교수는 단기간에 막대한 수익을 실현하였으나 이는 훗날 아내의 정치적 검증 과정에서 '정보 이용 투기'라는 꼬리표로 남게 되었습니다. 경제학자로서의 안목인지 내부 정보의 결과인지에 대한 논란이 이때 시작되었습니다.

2008

[게임이론 전문 서적 발간]

자신의 핵심 전공 분야를 집대성한 『게임이론』 저서를 출간합니다. 국내 게임이론 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저서는 김 교수가 평생 연구해온 게임이론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경제 주체들이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의사결정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이 책은 훗날 그의 사적 행동들이 게임이론적 관점에서 분석되는 흥미로운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2010

[교무부처장 보직 임명]

연세대학교 대학 본부의 핵심 보직인 교무부처장에 임명됩니다. 입학 전형과 학사 운영 실무를 총괄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됩니다.

2010년경 그가 맡은 교무부처장은 대학 내 학사 행정과 입시 업무에 깊이 관여하는 요직입니다. 대학의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했으나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아들의 입시가 겹치며 구설에 올랐습니다. 입학 책임자의 자녀가 아버지가 속한 학과에 합격했다는 사실은 공정성 논란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장남 연세대 입학 논란]

장남이 아버지가 교무부처장으로 재직 중이던 연세대 경제학과에 입학합니다. '사회기여자 전형'을 통한 합격으로 '아빠 찬스' 의혹을 받습니다.

장남 김성환은 다자녀 등이 포함된 '사회기여자 전형'으로 경제학과에 합격하였습니다. 당시 입학 실무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전형을 유리하게 조정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역린인 입시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의심을 낳았습니다.

2012

[미시경제학 교과서 출간]

경제학의 기초 과목인 미시경제학 교과서를 출간합니다. 개별 경제 주체의 합리적 선택과 시장 작동 원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합니다.

김 교수는 교육 현장에서 느낀 필요성을 바탕으로 이 교과서를 집필하였습니다. 학생들에게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심어주기 위한 체계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복잡한 시장 구조와 인센티브 체계를 학술적으로 정교하게 설명하였습니다.

2013

[정부 정책 자문 참여]

산업조직론과 공정거래에 관한 다수의 정부 정책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학술적 지식을 현실 정책 수립에 접목하며 전문가로 활동합니다.

김 교수는 상아탑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기업 간 담합이나 인수합병 등 민감한 경제적 이슈들에 대해 전문적인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연구 실적은 한국 경제의 구조 개선에 기여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2015

[가혹한 강의로 유명세]

학습량이 방대하고 난이도가 높은 수업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습니다. 학문적 기준을 절대 타협하지 않는 엄격한 스승으로 통합니다.

강의 평가에 따르면 김 교수의 수업은 매우 고된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타협 없는 학업적 성과를 요구하며 지적 성장을 독려했습니다. 사생활의 논란과는 별개로 강의실 내에서는 학문에 대해 매우 엄격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7

[대부업체 3억 투자 논란]

김 교수와 세 아들이 제자가 운영하는 대부업체에 거액을 투자한 사실이 공개됩니다. '전주' 역할을 하며 고수익을 챙겼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 사건은 아내 이혜훈 의원의 당 대표 출마 과정에서 밝혀졌습니다. 김 교수 일가가 한 대부업체에 약 3억 원을 투자하여 높은 이자를 챙긴 구조였습니다. 특히 해당 업체 대표가 김 교수의 제자였다는 사실은 사제 간의 윤리마저 저버린 행위라는 질타를 받았습니다.

2018

[정치공공경제학 연구 확장]

선거, 투표, 로비 활동 등에 경제학적 분석 틀을 적용하는 연구를 지속합니다. 자신의 전공 분야를 정치 경제 현상으로 더욱 확장합니다.

그는 정치적 환경에서의 전략적 상호작용을 수학적으로 규명하는 데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학문적 가치가 있었으나 훗날 아들과 공저한 논문의 주제와 일치하면서 다시금 주목받았습니다. 자신의 연구 분야가 가족의 정치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2019

[상경대 리모델링 주도]

연세대학교 대우관의 리모델링 사업에 깊이 관여하며 시설 개선을 추진합니다. 노후 시설을 현대화하여 연구 환경을 개선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는 상경대학 내의 연구 공간을 재배치하고 교수진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이러한 행정적 리더십은 학내 구성원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건물 리모델링 완공은 그가 훗날 보직을 맡았을 때 주요 성과로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2020

[아들과의 논문 공저 의혹]

미국 유학 중인 장남과 함께 전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연구 실적을 만들어줬다는 연구 부정 의혹이 일어납니다.

논문의 주제인 '선거 캠페인'은 김 교수의 주 전공과는 일치하지만 당시 장남의 학문적 배경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연구 실적 몰아주기'로 의심받는 사례였습니다. 이 실적은 장남이 국책연구기관에 취업할 때 유리하게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커 연구 윤리 위반 논란을 낳았습니다.

2021

[장남 국책연구기관 취업]

장남 김성환이 박사 학위 취득 후 국내 주요 국책연구기관에 채용됩니다. 아버지와의 공저 논문이 주요 스펙으로 작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장남의 성공적인 한국 사회 안착은 부모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입시부터 취업용 연구 실적까지 아버지가 주도한 결과라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 기득권층이 부와 학위를 대물림하는 전형적인 사례로 비판받았습니다.

2022

[상경대학장 보직 취임]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장 겸 경제대학원장에 취임하여 대학 운영을 책임집니다. 글로벌 수준의 연구 지원 확대를 약속하며 임기를 시작합니다.

2022년 1월 취임한 김 교수는 연세 상경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그는 취임사에서 대우관 리모델링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보고하며 학교의 외형적 성장에도 기여했음을 강조했습니다. 행정 수장으로서 그는 대학의 운영 효율성과 연구 인프라 확충에 힘썼습니다.

[남학생 휴게실 건립 불허]

학장 재임 시절 남학생들의 휴게실 설치 요청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합니다. 여성 전용 공간만 허가하겠다는 방침으로 학생들과 충돌합니다.

김 교수는 공간 부족과 기존 관례를 이유로 남학생들의 복지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학장으로서 공정한 공간 분배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반발했습니다. 이 사건은 대학 내의 젠더 갈등을 증폭시켰으며 김 교수의 행정적 편향성을 비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3

[장남의 결혼과 분가]

장남이 결혼식을 올리고 용산구에 신혼집을 마련하여 거주하기 시작합니다. 실질적인 분가가 이루어졌으나 법적인 혼인신고는 미룹니다.

장남은 결혼 후 실질적으로 독립 가구를 형성하였으나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서초구 아버지 자택에 남겨두었습니다. 이는 훗날 아버지가 청약 가점을 계산할 때 '미혼 동거 자녀'로서 부양가족 수에 포함되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경제학적 지식을 현실의 부동산 게임에 적용한 행동이라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2024

[원펜타스 청약 당첨]

서초구 '래미안 원펜타스' 청약에 당첨되어 약 30억 원의 시세 차익을 확보합니다. 당첨 커트라인인 74점을 정확히 획득하며 화제가 됩니다.

2024년 7월 19일 획득한 74점은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단 1점만 낮았어도 탈락했을 상황이었습니다. 부양가족 4명을 포함시켜 만점 수준의 가점을 받았으나 이미 결혼하여 분가한 장남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주택법상 공급 질서 교란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심각한 도덕적 문제입니다.

[당첨 직후 장남 전입신고]

청약 당첨자 발표 직후인 날, 장남이 갑자기 용산 신혼집으로 전입신고를 마칩니다. 가점을 위해 주소 이전을 미뤘다는 정황이 드러납니다.

장남은 청약 당첨이 확정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주소지를 실제 거주지로 옮겼습니다. 이는 청약 기간 동안만 가점을 위해 서류상 동거를 유지했다는 확실한 방증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오직 당첨만을 위해 법망을 피해 간 치밀한 전략은 학자로서의 명성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습니다.

2026

[도덕적 해이에 대한 지탄]

부인 이혜훈의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지명 이후 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일련의 사건들로 도덕적 해이에 대한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대중은 김 교수가 평생 가르쳐온 이론을 꼼수와 편법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에 분노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너진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학문의 상아탑에 있는 교수가 보여준 이러한 행태는 사회적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자본을 훼손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현재 연세대 교수 재직]

숱한 논란 속에서도 여전히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서 강단을 지키고 있습니다. 정년을 앞두고 학문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6년 1월 현재 김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강의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30여 년의 학자 생활은 화려한 업적과 더불어 짙은 그림자를 함께 남겼습니다. 그가 보여준 전략적 선택들이 훗날 한국 사회의 공정과 정의라는 측면에서 어떻게 기록될지는 후세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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