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표 (1967년)
정치인, 국회의원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7- 09:26:52
홍익표 의원은 한양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전문가 출신 정치인으로, 참여정부의 통일부 정책보좌관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을 거치며 경제와 외교 안보 분야에서 깊은 식견을 쌓았습니다. 2012년 제19대 국회에 입성한 이후 서울 성동구와 중구·성동구 갑 지역구에서 내리 3선을 기록하며 더불어민주당의 수석대변인,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등 당내 요직을 두루 역임했습니다. 특히 2023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되어 혼란스러운 당내 상황을 수습하고 이태원 참사 특별법 및 채상병 특검법 등 주요 입법 과제를 추진하며 강력한 원내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합리적인 정책 대안 제시와 날카로운 대여 투쟁력을 동시에 갖춘 의회주의자로 평가받으며, 2024년 총선에서는 당의 험지인 서초구 을에 도전하는 결단을 통해 기득권을 내려놓는 정치적 소신을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1967
홍익표 의원은 1967년 11월 20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서울의 역동적인 변화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시각을 형성했습니다.
본관은 남양 홍씨이며, 훗날 서울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배경이 됩니다.
1985
홍익표 의원은 관악고등학교에서 학업을 수행하며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는 고교 시절 성실한 학생으로 평가받으며 대학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1985년 졸업 이후 한양대학교로 진학하며 정치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홍익표 의원은 한양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며 학문적 기초를 닦았습니다.
대학 시절 그는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학생 운동과 학내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이는 그가 정치적 신념과 가치관을 정립하는 결정적인 시기가 되었습니다.
1989
4년간의 학업을 마친 홍 의원은 정치학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는 대학 재학 중 정치외교학과 학생회장을 역임하며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학부 졸업 후 곧바로 동 대학원 석사 과정에 진학하여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1991
홍 의원은 석사 과정을 통해 정치 이론과 실제 정책에 대한 심화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그는 대학원 시절 연구 역량을 인정받으며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석사 학위 취득 이후 군 복무를 위해 입대하게 됩니다.
1992
홍 의원은 제1군수지원사령부에서 정훈장교로 복무하며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군 복무 기간 동안 투철한 군인 정신으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학사 장교로서 36개월간의 긴 복무 기간을 충실히 보냈습니다.
1995
3년간의 정훈장교 복무를 마친 후 홍 의원은 사회로 복귀했습니다.
군에서의 경험은 그가 훗날 국방 및 통일 정책을 다루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전역 후 그는 경제 정책 연구 분야로 진출하며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합니다.
1996
그는 KIEP에서 북한 경제와 동북아 경제 협력 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국내외 경제 정책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으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연구 성과는 이후 통일부 정책 수립에 기여하는 계기가 됩니다.
2005
홍 의원은 다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정치학 박사'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그의 박사 학위는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정책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습니다.
이후 그는 대학 강의와 정책 자문 활동을 더욱 활발히 전개했습니다.
2006
홍 보좌관은 남북 관계의 발전과 통일 정책 수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실무 경험을 통해 국정 운영의 메커니즘을 익혔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그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07
홍 교수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북한 정치와 동북아 관계에 대한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수했습니다.
그는 이론 중심의 강의에서 벗어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교육을 제공했습니다.
교수 활동을 통해 그는 북한 문제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2008
시민사회 단체에서의 활동을 통해 그는 남북 민간 교류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홍 위원은 인도적 대북 지원과 사회문화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문을 수행했습니다.
이는 그가 현장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시각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9
그는 인천시가 서해 평화의 중심 도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남북 협력 사업을 제안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교류 모델을 정립하는 데 정책적 자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그는 지역과 중앙정부를 잇는 정책 가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12
당시 그는 정치자금법 위반 문제로 출마가 불투명해진 절친 임종석 대신 전략 공천을 받아 출마했습니다.
새누리당 김동성 후보를 꺾고 국회 입성에 성공하며 정치 인생의 본격적인 막을 올렸습니다.
이 당선으로 그는 성동구의 새로운 정치 일꾼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초선 의원으로서 그는 원내대변인과 전략기획위원장 등 주요 보직을 맡아 활약했습니다.
그는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으로서 자신의 전문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역구 주민들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지역 민원 해결에도 앞장섰습니다.
홍 의원은 날카로운 질의와 대안 제시를 통해 행정부를 감시하는 국회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습니다.
그는 피감 기관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고 실질적인 개선책 마련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상은 그가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의정 실력을 겸비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2013
[귀태 발언 논란 발생]
원내대변인 브리핑 도중 '귀태(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기시 노부스케를 언급하며 현재의 지도자들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해당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발언으로 여야 대치 국면이 격화되었고 국회 일정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발언 전문이 공개되면서 정치권 내부에서 큰 파장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발언으로 국정조사 등 국회 일정이 파행된 것에 대해 사과하며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사퇴 이후 그는 자성하며 평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 사건은 그에게 정치적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고된 시련이었습니다.
논란 속에서도 의정 활동의 끈을 놓지 않고 정책 중심의 감사를 진행한 결과였습니다.
그는 외교 안보 분야의 예산 낭비 사례를 적발하고 효율적인 예산 집행을 촉구했습니다.
전문가 출신다운 깊이 있는 질의로 동료 의원들과 언론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4
초선 의원으로서 매년 거르지 않고 우수 의원으로 뽑히는 이례적인 성실함을 보였습니다.
그는 대외 정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내며 정부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냈습니다.
이러한 꾸준함은 훗날 그가 지역구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강력한 명분이 되었습니다.
2015
이 법안은 대체공휴일 도입과 요일제 휴일 등을 골자로 하여 전 국민이 쉴 권리를 누리게 하는 내용입니다.
발의 당시 큰 주목을 받았으며, 훗날 '대체공휴일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민 경제 활성화와 휴식권 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정책적 시도였습니다.
2016
그는 정치학 박사 출신답게 민주주의의 의의를 설명하며 긴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국정원의 과거 사례들을 언급하며 국민 인권 침해의 위험성을 강력하게 경고했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그는 국민들에게 야당의 투쟁 의지를 선명하게 각인시켰습니다.
그는 스케치북 등의 시각 자료를 활용하여 복잡한 법안의 문제를 쉽게 설명했습니다.
방청객들을 배려하는 여유로운 태도로 당시 많은 지지자들로부터 '매너 의원'이라는 평을 얻었습니다.
그의 발언은 테러방지법의 독소 조항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선거구 조정에 따라 통합된 지역구에 출마하여 주민들의 선택을 다시 받았습니다.
45.07%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상대 후보들을 제치고 재선 의원이 되었습니다.
성동구 을에서의 성실한 의정 활동이 지역 확대 이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당내 전략기획위원장과 정책위원회 부의장 등 중책을 맡아 당의 전략을 설계했습니다.
재선 의원으로서의 무게감을 더하며 당의 핵심 스피커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 행정 전반을 다루는 위원회 활동을 통해 정책적 보폭을 넓혔습니다.
2017
그는 대선 정국에서 후보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상대 진영의 공세에 논리적으로 대응했습니다.
탁월한 정세 판단력과 정갈한 언어로 선거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대선 승리 이후 그는 정권 인수를 돕는 핵심 보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는 새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선정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실무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국정 운영의 핵심 가치를 정립하고 정책적 로드맵을 설계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정책 전문가로서의 역량이 정부 출범 초기에 고스란히 반영되었습니다.
2018
그는 당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복잡한 정치 현안에 대한 논평을 주도했습니다.
당정 협의 과정에서 나오는 정책적 합의를 국민들에게 명확히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매일 이어지는 브리핑을 통해 민주당의 얼굴로서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했습니다.
2019
그는 청년들의 통일 문제 등에 대한 인식을 설명하며 교육적 배경 등을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이 발언은 청년 세대를 폄훼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정치권에서 거센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본 의도와 다르게 해석된 부분에 대해 해명하며 수습에 나섰으나 파장은 이어졌습니다.
원내 제1당 수석대변인으로서 소수 정당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바른미래당 측은 즉각 공식 협상을 중단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이후 김관영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부적절한 표현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 내 사고 방지를 위한 법안 처리를 위해 야당과의 협상을 주도했습니다.
유가족들의 절실한 목소리를 입법 현장에 반영하여 신속한 처리를 도왔습니다.
국민 안전과 관련된 민생 법안 처리에 있어 행안위 간사의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지역별 소방 서비스 편차를 줄이고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국가직 전환의 필요성을 설득했습니다.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소방관 국가직화가 국회를 통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재난 대응 체계의 일원화를 통해 국민 안전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20
자치경찰제 도입과 국가수사본부 신설 등 경찰 조직의 대대적인 개편 내용을 담았습니다.
경찰의 권한 오남용을 방지하고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권력 기관 개혁의 완성을 위한 입법 활동에 주력하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다시 한번 선택을 받았습니다.
3선 의원이 됨으로써 당과 국회 내에서의 정치적 비중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지역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정책 추진의 동력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당의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등 핵심 요직을 맡아 국정 운영을 뒷받침했습니다.
상임위원회 위원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며 중진 의원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국회의 입법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원내 전략을 구상했습니다.
2021
당의 주요 정책 기조를 설정하고 부처별 정책 현안을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민생 대책 마련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여당의 정책 사령탑으로서 입법과 예산안 처리를 효율적으로 지휘했습니다.
2022
문화·예술·체육·관광 분야의 현안을 다루며 정책적 지원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팬데믹 이후 위축된 관광 산업의 회복과 예술인 지원을 위한 입법 활동을 독려했습니다.
합리적인 상임위 운영으로 여야 간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했습니다.
2023
혼란에 빠진 당내 상황을 수습하고 원내 결속력을 강화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취임 직후 당의 단합을 강조하며 원내 운영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높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야권의 사령탑으로서 정부·여당과의 거친 협상을 지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무능하거나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당시 진행 중이던 보궐선거 상황을 분석하며 야권의 승리를 자신했습니다.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원내대표로서의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통 행보였습니다.
참사 유가족들의 요구 사항을 법안에 반영하고 국회 통과를 위한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여당의 반대를 넘어서기 위해 패스트트랙 등 법적 절차를 효율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사회적 참사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적 결실을 맺는 데 헌신했습니다.
2024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야권의 일치된 목소리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보였습니다.
국방위원회 등 관련 상임위 활동과 연계하여 특검의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홍보했습니다.
정부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입법적 압박 수위를 높여갔습니다.
그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당의 승리를 위해 어려운 지역에 도전하는 용기를 보였습니다.
원내대표로서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 당내 공천 혁신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보수 텃밭에서의 정면 승부를 통해 민주당의 가치를 전파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보수 정당의 강력한 지지세와 상대 후보의 인지도를 넘지 못하고 고배를 마셨습니다.
낙선에도 불구하고 험지에서 기록한 득표율은 민주당에 유의미한 수치로 평가받았습니다.
선거 결과에 승복하며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임기 마지막 날까지 원내대표로서 남은 입법 과제들을 점검하고 당무를 수행했습니다.
12년간의 의정 활동을 통해 쌓은 경험과 성과를 뒤로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습니다.
동료 의원들과 지역 주민들의 환송 속에 국회를 떠났습니다.
당내 다양한 포럼과 강연에 참석하여 야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견해를 밝혔습니다.
원내대표 출신으로서의 식견을 바탕으로 복잡한 정국 현안에 대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당원들과의 소통 창구를 유지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보존했습니다.
그는 정치학 박사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시민들과 학생들에게 정치와 정책을 가르치려 했습니다.
다양한 미디어에 출연하여 자신의 정치 철학을 공유하며 대중과 소통했습니다.
강연 활동을 통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2025
원내대표 출신의 무게감과 정책적 역량이 서울시장 후보로서 적합하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성동구와 서초구에서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야권 내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당 안팎에서 그의 출마 가능성을 점치며 향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2026
[청와대 정무수석 임명]
이재명 대통령이 1월 18일 신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으로 홍익표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임명했습니다.
우상호 수석은 올해 6.3지방선거에서 강원지사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