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틸

기업인, 투자자, 페이팔 마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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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25- 20: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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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틸은 '경쟁은 루저들을 위한 것'이라 믿으며 독점을 찬양하는 '제로 투 원'의 철학자입니다. 1998년 페이팔 창업으로 전자 결제 혁명을 일으킨 후, 페이스북의 첫 외부 투자자이자 팔란티어의 설립자로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주류(리버럴) 문화에 반기를 드는 강력한 '콘트라리안'으로, 언론사 고커를 파산시키고 트럼프와 JD 밴스의 킹메이커로 활동하며 기술 권력을 정치 권력으로 확장시킨 현대사의 가장 논쟁적인 인물입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967

[프랑크푸르트의 이방인]

서독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한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잦은 이사와 학교 내의 괴롭힘 속에서 '반지의 제왕'과 'SF 소설'에 심취하며, 대중과 영합하지 않는 독자적인 세계관을 형성합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남아공과 나미비아 등지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형성된 불안감이 훗날 '자유지상주의'와 '불멸'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짐.

1977

[체스판 위의 전략가]

캘리포니아 정착 후 체스에 몰입하여 전미 랭킹 7위(21세 이하)에 오르고 내셔널 마스터 타이틀을 획득합니다. 제로섬 게임인 체스를 통해 수읽기의 중요성과 함께 '치열한 경쟁은 참여자를 피폐하게 만든다'는 역설적인 교훈을 얻습니다.

FIDE 레이팅 2199점 기록. 훗날 '경쟁 회피' 철학의 씨앗이 됨.

1987

['스탠포드 리뷰' 창간과 문화 전쟁]

스탠포드 대학 재학 중, 캠퍼스 내의 진보적 다양성 정책(PC주의)에 반발하여 보수주의 성향의 신문 '스탠포드 리뷰'를 창간합니다. 이는 훗날 실리콘밸리를 지배하게 될 '페이팔 마피아' 인맥의 초기 요람이 됩니다.

동성애자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캠퍼스의 퀴어 문화를 비판하는 등 논쟁적인 행보를 보임.

1993

[경쟁의 지옥, 설리번 앤 크롬웰 탈출]

뉴욕 최고 명문 로펌에 입사했으나, 동료들이 똑같은 목표를 위해 무한 경쟁하는 모습을 보고 '지옥'이라 느끼며 7개월 만에 퇴사합니다. 이 경험은 '경쟁은 자본주의의 반대말'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계기가 됩니다.

이후 크레디트 스위스에서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일하며 거시경제 감각을 익힘.

1996

[틸 캐피털 매니지먼트 설립]

뉴욕의 대형 로펌 '설리번 앤 크롬웰'을 7개월 만에 퇴사하고 실리콘밸리로 돌아와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100만 달러를 모아 첫 투자 회사를 설립합니다. 하지만 초기 투자는 실패로 돌아가며 쓴맛을 봅니다.

안정적인 엘리트 법조인의 길을 스스로 걷어차고 벤처 투자와 창업의 길로 들어선 결정적 전환점.

1998

[페이팔 창업]

맥스 레브친과 함께 암호화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지갑 회사 '컨피니티'를 설립합니다.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세계 통화'를 만들겠다는 자유지상주의적 이상이 투영된 프로젝트였습니다.

이후 일론 머스크의 X.com과 합병하여 '페이팔'이 됨.

1999

[로스 IRA 연금술의 시작]

서민용 비과세 은퇴 계좌인 '로스 IRA'를 개설하고, 자신의 스타트업 주식을 주당 0.001달러라는 헐값에 매입해 채워 넣습니다. 이는 훗날 수조 원의 세금을 합법적으로 회피하게 만드는 전설적인 재테크의 시작점이었습니다.

당시 계좌 가치 1,664달러. 2019년 기준 50억 달러로 불어남.

2000

[CEO 쿠데타와 일론 머스크 축출]

일론 머스크가 신혼여행을 떠난 사이 이사회를 소집하여 머스크를 CEO 자리에서 해임하고 스스로 CEO에 복귀합니다. 기술적 지향점(리눅스 vs 윈도우) 차이와 경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냉혹한 결단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도 머스크와 틸은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존중을 유지함.

2002

[이베이 매각과 '페이팔 마피아'의 탄생]

페이팔을 이베이에 15억 달러에 매각하며 약 600억 원의 자금을 확보합니다. 이 자금은 훗날 유튜브, 링크드인, 테슬라, 스페이스X 등을 만드는 '페이팔 마피아'의 종잣돈이 되어 실리콘밸리의 생태계를 재편합니다.

매각 이후 페이팔을 떠나 헤지펀드 '클라리엄 캐피털'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투자자의 길을 걸음.

2003

2003.05 1해당 사건의 피인용 횟수를 나타냅니다. 36세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설립]

9/11 테러 이후 안보 위기 속에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테러를 막는 기술을 목표로 '팔란티어'를 설립합니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의 외면 속에서 CIA의 투자를 이끌어내며 '국방 AI'의 초석을 다집니다.

페이팔의 금융 사기 탐지 알고리즘을 대테러 추적 시스템으로 발전시킴.

2004

[페이스북 첫 외부 투자]

하버드 중퇴생 마크 저커버그를 만나 단 50만 달러(약 6억 원)를 투자하고 지분 10.2%를 확보합니다. 이 전설적인 앤젤 투자는 훗날 수조 원의 수익으로 돌아오며 그에게 '미다스의 손'이라는 명성을 안겨줍니다.

페이스북 이사회에 합류하여 저커버그의 멘토이자 든든한 방패막이 역할을 수행함.

2007

[고커의 아웃팅 보도]

가십 미디어 '고커'의 자매지인 '밸리왜그'가 '피터 틸은 완전 게이, 사람들은 다 안다'라는 기사로 그의 성 정체성을 강제로 공개합니다. 사생활을 침해당한 틸은 이 사건을 계기로 언론사에 대한 은밀하고도 치명적인 복수를 다짐합니다.

이후 약 10년간 고커를 파산시키기 위한 법적 소송을 비밀리에 후원하는 '그림자 전쟁'을 준비함.

2010

['틸 펠로우십' 설립]

'대학 교육은 거품이다'라고 주장하며,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하는 학생들에게 10만 달러를 지원하는 장학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다. 이는 고등 교육 시스템에 대한 도발적인 실험이자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 등이 이 프로그램의 수혜를 입음.

2011

[뉴질랜드 시민권 비밀 취득]

거주 요건을 채우지 않았음에도 뉴질랜드 시민권을 비밀리에 취득합니다. 이는 전 지구적 재앙이 닥쳤을 때 탈출할 수 있는 안전가옥을 확보하려는 '둠스데이 프레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2017년에야 대중에게 알려지며 논란이 됨.

2012

[헐크 호건 소송의 배후 설계]

고커가 헐크 호건의 성관계 영상을 유출하자, 틸은 비밀리에 호건에게 변호사 비용 1,000만 달러를 지원합니다. 합의가 아닌 '고커의 파산'을 목표로 한 이 치밀한 대리전은 억만장자가 미디어를 무너뜨린 전례 없는 사건이 됩니다.

코드명 'Mr. A'를 통해 비밀리에 접촉.

2014

[저서 '제로 투 원' 출간]

스탠포드 대학 강의록을 바탕으로 한 경영서 '제로 투 원'을 출간합니다.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는 그의 역설적인 철학은 전 세계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필독서이자 바이블이 됩니다.

0에서 1을 만드는 '창조적 독점'만이 진보를 이끈다는 기술적 메시아주의를 설파함.

2016

[헐크 호건 소송과 고커의 파산]

레슬러 헐크 호건의 성관계 영상을 유출한 고커를 상대로 호건이 제기한 소송에 틸이 막대한 소송 비용을 비밀리에 지원했음이 드러납니다. 결국 1,600억 원의 배상 판결로 고커는 파산하고, 틸은 9년 만에 복수를 완성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는 비판과 사생활 보호를 위한 정의 구현이라는 옹호가 엇갈림.

[공화당 전당대회 지지 연설]

실리콘밸리의 압도적인 반트럼프 정서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전당대회에 연사로 나서 트럼프 지지를 선언합니다. "나는 게이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외치며 공화당의 정체성 변화와 트럼프 당선을 돕습니다.

이후 트럼프 인수위원회에 참여하며 기술 업계와 백악관을 연결하는 핵심 고리가 됨.

2018

[실리콘 밸리 탈출과 LA 이주]

실리콘 밸리를 '민주당 일당 독재 국가'라고 비난하며 본거지를 LA로 옮깁니다. 이는 리버럴한 기술 업계와의 이념적 결별이자, 자신만의 정치적 요새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이동이었습니다.

파운더스 펀드 등 주요 거점을 모두 이전.

2019

[구글을 향한 '반역' 비판]

구글이 미 국방부와의 협력은 거부하면서 중국의 AI 연구는 돕고 있다며, 구글 내부에 중국 스파이가 침투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FBI 수사를 촉구합니다. 이는 빅테크와 국가 안보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워싱턴 정가에 '기술 기업의 애국심' 문제를 공론화하며 팔란티어의 입지를 강화함.

2021

[50억 달러 로스(Roth) IRA 스캔들]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를 통해 피터 틸이 서민용 비과세 은퇴 계좌인 'Roth IRA'에 페이팔 초기 주식을 넣어 50억 달러(약 6조 원) 규모로 불린 사실이 폭로됩니다. 합법적이지만 극단적인 절세 전략으로 거센 사회적 비난을 받습니다.

1999년 주당 0.001달러에 산 페이팔 주식을 비과세 계좌에 넣어 천문학적인 세금을 회피함.

2022

[메타(페이스북) 이사회 사임]

약 17년간 몸담았던 메타 이사회를 떠나며 실리콘밸리와의 작별을 공식화합니다. 사임의 표면적 이유는 '중간선거에 집중하기 위함'이었으며, 이후 완전히 정치 킹메이커로서의 행보에 올인합니다.

저커버그와의 오랜 동행을 끝내고 자신의 정치적, 이념적 목표를 위해 독자 노선을 선택함.

[JD 밴스의 상원 입성 견인]

자신의 투자 회사 직원이었던 JD 밴스의 오하이오 상원의원 선거 캠프에 1,500만 달러(약 200억 원)라는 기록적인 금액을 후원하여 당선시킵니다. 이는 '신우파(New Right)' 세력을 워싱턴 주류로 진입시킨 결정적 승리였습니다.

블레이크 마스터스 등 자신의 사상에 동조하는 후보들을 지원하며 공화당 내부를 개조하려 시도함.

2024

[그림자 속의 부통령 설계자]

도널드 트럼프가 JD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과정에서 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이로써 피터 틸은 실리콘밸리의 자본과 기술을 백악관의 차기 권력과 직접 연결한 막후의 설계자가 되었습니다.

일론 머스크, 데이비드 삭스 등 '페이팔 마피아' 멤버들이 밴스 지명에 힘을 실어줌.

2025

[팰런티어 시위와 감시 자본주의 논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이민자 추방 정책에 팰런티어 기술이 사용되는 것에 반발하여 대규모 시위가 발생합니다. 시위대는 틸을 '감시 자본주의의 정점'이라 비난했지만, 팰런티어는 정부 효율성 부서(DOGE)와 협력하며 승승장구합니다.

뉴욕과 LA 사무실 앞에서 시위대 체포 사태 발생.

[적그리스도 강연과 신학적 전회]

샌프란시스코에서 '적그리스도'를 주제로 연속 강연을 엽니다. 세계화된 질서가 전체주의를 불러온다는 정치신학적 경고를 담은 이 강연은, 그의 관심사가 세속적 정치를 넘어 문명적, 종교적 차원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르네 지라르와 칼 슈미트의 이론을 결합해 현대 문명 위기 진단.

2026

[부유세 저지 투쟁 선전포고]

캘리포니아의 '억만장자 부유세' 도입을 막기 위해 300만 달러를 쾌척하며 로비 전쟁을 시작합니다. 이는 자신이 구축한 자유지상주의적 요새를 방어하기 위한 선전포고이자, 국가의 재산권 침해에 맞서는 실력 행사였습니다.

소급 적용 조항에 반발하여 적극적인 자금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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