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호 (축구 선수)

축구 선수, 미드필더,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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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14- 14: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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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호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화려한 유년 시절을 보낸 주역이자, 스페인 명문 FC 바르셀로나의 ‘라 마시아’가 길러낸 천재 미드필더입니다. 서울 대동초등학교 시절 전국 무대를 평정하며 차범근 축구상 대상을 수상한 그는, 스페인으로 건너가 세계 최고의 유망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성장했습니다. FIFA 징계라는 거대한 시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지로나와 다름슈타트를 거쳐 유럽의 선진 축구를 몸소 체험했으며, K리그 전북 현대에 입단하여 팀의 리그 5연패와 FA컵 우승을 이끄는 핵심 사령관으로 군림했습니다. 특히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브라질전에서 터뜨린 환상적인 골과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은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빛나는 훈장입니다. 현재는 잉글랜드 버밍엄 시티의 중원 사령관으로서 팀의 승격과 2026 북중미 월드컵을 향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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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서울에서 탄생]

대한민국 축구의 차세대 중원 사령관이 될 백승호가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교수인 아버지 백일희 씨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신체 발달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스포츠 가족의 배경 아래 자연스럽게 축구공과 친해지며 남다른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백승호는 1997년 3월 17일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연세대 체육교육학과 교수인 백일희 씨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친의 지도로 기본 근력과 유연성을 기르는 데 집중하며 축구 선수로서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그의 탄생은 훗날 한국 축구가 유럽 유스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역사적인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2004

[축구 입문 및 활동]

초등학교 입학 후 방과 후 축구 교실을 통해 본격적으로 축구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또래 아이들보다 압도적인 볼 컨트롤과 시야를 선보이며 주변 지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축구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이며 전문 선수가 되기 위한 기초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취미로 시작한 축구였으나 재능이 워낙 독보적이어서 전문가들로부터 엘리트 축구 권유를 받았습니다.
매일 훈련장에 가장 먼저 도착할 정도로 성실한 태도를 보이며 축구 선수로서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이 시기 기초적인 드리블과 패스 능력을 습득하며 탄탄한 기본기를 쌓았습니다.

2005

[저학년부 대회 우승]

초등학교 저학년부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유망주로서의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압도적인 개인 기량으로 상대 수비진을 무력화시키며 많은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지역 내 유소년 축구 관계자들 사이에서 '축구 신동'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기 전체를 읽는 시야가 매우 넓어 코치진을 놀라게 했습니다.
결승전에서 결정적인 골을 터뜨리며 팀에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이미 여러 중학교와 고등학교 스카우트들의 관찰 대상이 되었습니다.

2006

[대동초등학교 전학]

유소년 축구 명문인 서울 대동초등학교로 전학하여 엘리트 축구 교육을 본격화했습니다. 이곳에서 강신우 감독 등 지도자들의 세심한 지휘 아래 기술적 완성도를 비약적으로 높였습니다. 전국 단위 대회에 출전하며 주전 공격수이자 미드필더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더 넓은 무대에서 경쟁하기 위해 유소년 축구의 사관학교로 불리는 대동초등학교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 속에서 경기 운영 능력과 득점 감각을 동시에 배양했습니다.
학교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각종 유소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한국 축구의 미래로 주목받았습니다.

2007

[전국 소년체전 참가]

대동초등학교의 주축 멤버로 전국 소년체육대회에 참가하여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쟁쟁한 전국 유망주들 사이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며 팀의 성적을 견인했습니다. 큰 무대에서의 긴장감을 이겨내고 정교한 기술 축구를 구사했습니다.

소년체전 기간 동안 매 경기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전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중원에서의 조율 능력과 직접적인 득점 가담 능력이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이 대회를 통해 큰 경기 경험을 쌓으며 정신적으로도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8

[화랑대기 전국 대회]

경주에서 열린 화랑대기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에 출전하여 팀의 주역으로 활약했습니다. 수많은 팀이 참여한 대규모 대회에서 돋보이는 테크닉을 선보였습니다. 팀의 연승 행진에 기여하며 가장 주목받는 미드필더로 꼽혔습니다.

대동초등학교가 결승 무대까지 진출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상대 팀의 집중 견제 속에서도 창의적인 패스로 공격의 활로를 뚫었습니다.
대회 최우수 선수급 활약을 펼치며 유소년 축구계의 스타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2009

[전국 주말리그 석권]

대동초등학교 소속으로 주말리그 30경기에서 30골을 기록하는 경이로운 득점력을 과시했습니다. 팀을 전국 대회 우승으로 이끄는 동시에 본인은 득점왕과 MVP를 휩쓸었습니다. 초등부 무대에서는 더 이상 적수가 없는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매 경기 골을 터뜨리며 팀의 승리를 책임졌습니다.
정교한 킥 서비스와 창의적인 패스로 동료들에게 수많은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이 활약상을 바탕으로 국내외 축구계 관계자들에게 백승호라는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바르셀로나의 발견]

대한민국 유소년 대표팀 자격으로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FC 바르셀로나 유스 팀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테스트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의 영리한 플레이 스타일은 바르셀로나 철학에 완벽히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스페인 현지에서 열린 대회 도중 바르셀로나 유스 총책임자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바르셀로나는 즉각 백승호 측에 공식적인 입단 테스트와 계약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이는 한국 축구 역사상 유례없는 세계 최고 클럽의 직접적인 구애였습니다.

[다농 네이션스컵 참가]

세계적인 유소년 대회인 다농 네이션스컵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여 전 세계 유망주들과 실력을 겨뤘습니다. 세계 각국의 선수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 기술적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이 대회에서의 활약은 바르셀로나의 영입 의지를 더욱 굳히게 만들었습니다.

국제적인 감각을 익히며 자신의 플레이가 세계 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팀의 주축으로서 전 세계 스카우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대회 기간 동안 보여준 성숙한 경기 운영 능력은 현지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한일 교류전 맹활약]

일본에서 열린 한일 유소년 교류전에 참가하여 숙적 일본을 상대로 압도적인 실력을 뽐냈습니다. 창의적인 패스와 득점으로 팀의 승리를 주도했습니다. 일본 현지 관계자들도 백승호의 재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라이벌 전에서의 중압감을 이겨내고 경기장 전체를 지배하는 기량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기 이미 스페인행이 가시화되고 있었으며, 연일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했습니다.
한일 양국 유소년 축구 유망주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수준임을 입증했습니다.

2010

[차범근 축구상 대상]

유소년 축구 선수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제22회 차범근 축구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 전 감독으로부터 직접 상을 받으며 실력을 공인받았습니다. 역대 수상자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기량을 가진 유망주로 평가받았습니다.

2010년 2월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으며 전국적인 축구 신동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차범근 감독은 백승호의 기본기와 센스가 이미 성인 선수 못지않다고 극찬했습니다.
이 수상은 그가 스페인이라는 더 큰 무대로 나아가는 데 있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바르셀로나 유스 입단]

스페인으로 건너가 FC 바르셀로나의 유스 시스템인 ‘라 마시아’에 공식 입단했습니다. 인판틸 A 단계부터 시작하여 세계 최고의 유망주들과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바르셀로나 유스 입단이라는 신화를 쓰며 전 국민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바르셀로나의 유스 거주 시설인 라 마시아에 머물며 축구와 학업을 병행했습니다.
현지의 빠른 템포와 전술적 움직임을 익히며 점차 바르셀로나 스타일의 미드필더로 변모했습니다.
구단은 백승호를 차세대 1군 미드필더 자원으로 낙점하고 장기적인 육성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수원 삼성과 지원 합의]

스페인 유학을 떠나기 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유스팀 입단 예정 상태에서 지원금 합의서를 작성했습니다. 구단으로부터 매년 일정 금액의 유학 비용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향후 K리그 복귀 시 수원 입단을 약속했습니다. 이 계약은 훗날 그가 국내로 복귀할 때 커다란 법적 논란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수원 삼성은 유망주의 성장을 돕기 위해 3년간 총 3억 원 규모의 지원을 결정했습니다.
당시에는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대승적 차원의 지원으로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하지만 복귀 우선권과 위약금 규정이 포함된 이 합의서는 11년 후 양측의 갈등 원인이 되었습니다.

2011

[5년 장기 계약 체결]

바르셀로나 유스 팀에서의 뛰어난 성과를 바탕으로 구단과 5년 장기 계약을 맺었습니다. 구단이 외국인 유망주에게 이례적으로 긴 기간의 계약을 제안한 것은 그의 재능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의 성장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인판틸 단계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기량 덕분에 구단 고위층으로부터 높은 신뢰를 얻었습니다.
카데테 단계를 거치며 미드필더로서 전술적 이해도와 패스 정확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렸습니다.
현지 언론은 그를 메시의 뒤를 이을 재목 중 한 명으로 비중 있게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인판틸 A 승격]

유스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인판틸 A로 승격하여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축구 철학인 ‘티키타카’를 몸소 익히며 패스의 정교함을 더했습니다. 팀 동료들과 완벽한 호흡을 맞추며 지역 리그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현지 유망주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기술적 우위를 점하며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전술 훈련을 통해 공간을 창출하고 점유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 시기 백승호의 성장은 구단 내부 보고서에서도 최상급으로 평가받았습니다.

2012

[카데테 B 월반]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아 상위 연령대인 카데테 B로 전격 월반했습니다. 형들과의 경쟁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피지컬과 전술 소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구단은 백승호를 특별 관리 대상 영재로 분류하여 집중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월반 이후에도 주전 자리를 지키며 팀의 공격 전개를 도맡았습니다.
정교한 킥 능력을 바탕으로 팀의 세트피스 전담 키커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 시기 보여준 성장세는 바르셀로나 1군 데뷔가 머지않았다는 희망을 품게 했습니다.

[카데테 A 핵심 주전]

카데테 A 단계로 승급하여 팀의 부주장급 리더십을 발휘하며 중원을 장악했습니다. 바르셀로나 유스 시스템의 정통 미드필더로서 완벽하게 진화했습니다. 수많은 유럽 명문 구단들이 백승호의 성장을 예의주시하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경기장 전역을 누비며 공수 밸런스를 조절하는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현지 언론으로부터 '한국에서 온 사비 에르난데스'라는 극찬을 들었습니다.
팀의 전술적 핵심으로서 거의 모든 공식 경기에 풀타임 출전했습니다.

2013

[FIFA 징계 직면]

FIFA가 바르셀로나의 18세 미만 선수 영입 규정 위반을 이유로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습니다. 이로 인해 공식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된 백승호는 선수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실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오직 훈련과 친선 경기에만 매진해야 했습니다.

FIFA 규정 19조 위반으로 인해 만 18세가 될 때까지 모든 공식 리그 경기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선수 개인의 잘못이 아닌 구단의 행정 실수로 인한 피해였기에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가장 성장이 빨라야 할 청소년기에 실전 무대를 잃은 것은 치명적인 타격이었습니다.

[후베닐 B 계약 연장]

징계 중임에도 불구하고 구단은 백승호의 잠재력을 믿고 계약을 연장하며 신뢰를 보냈습니다. 후베닐 B 단계에서 훈련하며 성인 무대로 가기 위한 최종 담금질을 시작했습니다. 경기를 뛸 수 없는 답답함 속에서도 묵묵히 기량을 갈고닦았습니다.

구단은 백승호를 위해 특별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신체 능력을 강화했습니다.
비공식 친선 경기와 훈련 세션에서는 여전히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였습니다.
이 시기 축구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기 위해 정신적인 훈련도 병행했습니다.

2014

[성인 팀 B 훈련 합류]

징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기량을 인정받아 바르셀로나 B팀(2군 성인 팀) 훈련에 월반하여 참여했습니다. 프로 무대 형들과 경쟁하며 피지컬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성인 축구의 템포와 힘에 적응하기 위한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프로 선수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거친 몸싸움 속에서도 볼을 소유하고 연결하는 능력을 키웠습니다.
이 훈련 합류는 징계가 풀린 직후 바로 프로로 데뷔시키겠다는 구단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AFC U-19 대표 발탁]

김상호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U-19 대표팀에 소집되어 아시아 챔피언십에 참가했습니다. 징계로 인해 소속팀 경기를 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베트남전에서 교체 투입되어 감각적인 골을 터뜨리며 건재함을 알렸습니다.

오랜만에 치른 실전 경기에서 득점포를 가동하며 클래스를 입증했습니다.
하지만 감독의 전술적 선택으로 인해 선발 기회를 충분히 잡지 못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팀은 아쉽게 조기 탈락했으나 백승호 개인에게는 실전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대회였습니다.

2015

[출전 정지 징계 해제]

만 18세 생일을 맞이하며 길었던 FIFA의 출전 정지 징계에서 마침내 벗어났습니다. 다시 공식 경기에 나설 수 있게 되어 선수로서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바르셀로나 구단은 징계 해제와 동시에 그를 성인 팀인 바르셀로나 B팀에 등록시켰습니다.

징계 기간 동안 묵묵히 훈련하며 피지컬을 보강한 끝에 얻은 자유였습니다.
현지 언론은 징계가 풀린 백승호를 '바르셀로나가 숨겨둔 보물'이라 칭하며 복귀를 환영했습니다.
프로 무대에 정식으로 도전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완성한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후베닐 A 등번호 10번]

유스 팀의 최고 단계인 후베닐 A에서 팀의 상징인 등번호 10번을 부여받았습니다. 팀의 전술적 핵심이자 에이스임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한 것입니다. 징계 해제 이후 첫 시즌을 맞아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리그 경기와 유스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오가며 실전 감각을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그의 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스는 다시 한번 스페인 축구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팀 동료들을 아우르는 리더십까지 보여주며 에이스로서의 품격을 입증했습니다.

[1군 훈련 상시 합류]

루이스 엔리케 감독의 특별 지시로 바르셀로나 1군 훈련에 전격 합류했습니다. 리오넬 메시, 네이마르,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등 세계 최고의 스타들과 함께 땀을 흘렸습니다. 구단이 백승호를 단순한 유망주가 아닌 즉시 전력감 후보로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엔리케 감독은 백승호의 패스 타이밍과 영리한 움직임을 매우 높게 평가했습니다.
1군 주전 선수들과 패스 훈련(론도)을 소화하며 세계 최정상의 템포를 몸소 경험했습니다.
한국 선수로서 바르셀로나 1군 공식 훈련에 지속적으로 참여한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이었습니다.

2016

[바르셀로나 B팀 등록]

바르셀로나 성인 2군인 B팀에 정식으로 선수 등록을 완료하고 등번호 13번을 받았습니다. 유스 단계를 공식적으로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프로 축구 선수로서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세계적인 프로 무대인 세군다 디비시온 B에서 활약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행정적인 절차가 모두 마무리되면서 언제든 경기 출전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성인 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하면서도 자신의 기술적 강점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구단은 백승호가 B팀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아 1군으로 연착륙하기를 기대했습니다.

[바르셀로나 B 공식 데뷔]

세군다 디비시온 B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며 바르셀로나 성인 팀(B팀)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레반테 B팀을 상대로 짧지만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프로 선수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징계 공백을 딛고 일어선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완성했습니다.

후반 45분경 투입되어 비록 짧은 시간이었으나 프로 무대의 중압감을 이겨냈습니다.
이후 꾸준히 벤치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1군 승격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유스 단계를 공식적으로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성인 프로 축구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바르셀로나 B팀 잔류]

타 구단의 임대 제안을 뿌리치고 바르셀로나 B팀에 잔류하여 경쟁을 이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구단 내 치열한 주전 경쟁을 뚫고 1군으로 향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감독과의 전술적 궁합 문제로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팀의 전술이 보다 직선적이고 피지컬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며 백승호의 입지가 흔들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장에서의 성실함으로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이 시기의 인내는 훗날 그가 다양한 스타일의 축구에 적응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17

[U-20 월드컵 선제골]

대한민국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 기니와의 개막전에서 감각적인 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홈 팬들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완벽하게 과시하며 팀의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스페인 유학파의 실력이 결코 허상이 아님을 실전으로 증명했습니다.

박스 안에서 침착하게 공을 잡아 로빙 슛으로 연결하며 선제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이 골은 대회 전체의 서막을 알리는 상징적인 득점이자 한국 팀의 기세를 올린 골이었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스페인에서의 힘든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라며 소감을 밝혔습니다.

[아르헨전 승리 견인]

조별리그 2차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 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득점 후 선보인 독특한 골 세리머니는 국내외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세계 강호를 꺾고 일찌감치 16강 진출을 확정 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조영욱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이 골로 한국은 아르헨티나를 꺾고 죽음의 조에서 생존하며 축구 붐을 일으켰습니다.
백승호는 대회 기간 내내 높은 패스 성공률과 중원 장악력을 보여주며 에이스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U-20 월드컵 잉글랜드전]

조별리그 3차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중원의 핵심으로 출전하여 유럽의 강호와 맞붙었습니다. 시종일관 침착한 빌드업으로 경기 흐름을 조율했습니다. 비록 팀은 석패했으나 백승호 개인의 능력은 세계 무대에서도 경쟁력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잉글랜드의 강한 압박 속에서도 특유의 탈압박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중원 사령관으로서 팀의 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유럽 스카우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습니다.

[U-20 월드컵 16강전]

포르투갈과의 16강전에 선발 출전하여 분전했으나 팀의 조기 탈락을 막지 못했습니다. 대회 내내 보여준 활약으로 팀 내 최고의 평점을 받으며 유종의 미를 거뒀습니다. 월드컵 무대에서의 값진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적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쉬운 패배에 눈물을 흘렸으나 팬들은 그의 헌신적인 플레이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대회는 백승호가 바르셀로나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국내 팬들에게 '백승호'라는 브랜드가 축구 에이스로 각인된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지로나 FC 이적 결정]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7년간 정들었던 바르셀로나를 떠나 지로나 FC로 이적했습니다. 1군 합류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진정한 프로로서의 홀로서기를 시작했습니다.

지로나와 3년 계약을 체결하며 우선은 2군 팀인 페랄라다에서 실력을 쌓기로 했습니다.
라리가 승격 팀이었던 지로나의 전술에 적응하며 1군 호출을 기다렸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더 거칠고 피지컬이 강조되는 축구를 경험하며 한 단계 더 성장했습니다.

[페랄라다-지로나 B 데뷔]

지로나의 2군 팀인 페랄라다 소속으로 공식 경기에 출격하며 새로운 무대 적응을 시작했습니다. 스페인 성인 무대에서의 생존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팀의 중원 사령관으로 낙점되어 거의 모든 경기를 선발로 소화했습니다.

세군다 디비시온 B의 거친 환경에서도 특유의 패스 축구를 구사했습니다.
지로나 1군 감독인 파블로 마친의 눈에 들기 위해 성실한 자세로 임했습니다.
이 시기 경기 운영 능력이 성숙해지며 1군 호출을 받기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2018

[카탈루냐 슈퍼컵 우승]

지로나 1군 팀의 일원으로 카탈루냐 슈퍼컵에 출전하여 친정팀 바르셀로나를 꺾고 우승했습니다. 비공식 경기였으나 1군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지로나 구단 역사상 최초의 슈퍼컵 우승 멤버로 기록되었습니다.

바르셀로나 1군 주전들이 대거 출전한 경기에서 당당히 실력을 겨뤘습니다.
중원에서의 안정적인 조율로 지로나의 공격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지로나 코치진으로부터 1군 데뷔가 임박했다는 신뢰를 얻었습니다.

[지로나 1군 프리시즌]

지로나 1군 프리시즌 훈련에 합류하여 주전 선수들과 경쟁하며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연습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는 등 최상의 컨디션을 선보였습니다. 1군 등록을 향한 막바지 담금질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유세비오 사크리스탄 감독의 전술 하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중원 어느 위치에서든 제 몫을 다하는 다재다능함을 입증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 쿼터(Non-EU) 문제로 인해 정식 등록은 다소 지체되었습니다.

2019

[스페인 국왕컵 데뷔]

지로나 1군 소속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국왕컵 경기에서 선발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66분간 그라운드를 누비며 세계적인 수준의 미드필더진과 경쟁했습니다. 스페인 성인 무대 1군 데뷔라는 오랜 꿈을 마침내 이루었습니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아틀레티코를 상대로 주눅 들지 않는 패스를 선보였습니다.
중원에서의 강한 압박을 이겨내며 팀의 빌드업을 주도했습니다.
이 경기는 그가 지로나의 정식 1군 멤버로 인정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전 선발]

국왕컵 8강전에서 세계 최고의 구단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선발 출전했습니다. 루카 모드리치, 토니 크로스 등 세계적인 거장들과 중원에서 실력을 겨뤘습니다. 비록 패했으나 백승호 개인에게는 거대한 자산이 된 경기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주전으로 나선 모습에 한국 축구 팬들은 열광했습니다.
침착하게 압박을 풀어나가는 기술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을 상대로도 유효했습니다.
경기 후 스페인 언론은 백승호의 잠재력을 다시 한번 높게 평가했습니다.

[라리가 감격의 데뷔전]

FC 바르셀로나와의 라리가 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며 꿈에 그리던 리그 데뷔를 달성했습니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6번째로 라리가 무대를 밟은 선수로 기록되었습니다. 운명적이게도 유스 시절 성장했던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데뷔하는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리오넬 메시 등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같은 그라운드에서 라리가의 템포를 경험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으나 침착하게 볼을 배급하며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했습니다.
이로써 백승호는 한국 유소년 시스템이 낳은 유럽 성공 신화의 상징으로 우뚝 섰습니다.

[A대표팀 화려한 데뷔]

파울루 벤투 감독의 부름을 받아 이란과의 평가전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선발로 출전하여 중원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경기 후 팬들로부터 ‘벤투호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으며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란이라는 강한 상대를 상대로 탈압박과 전진 패스에서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대표팀 중원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빌드업 부재를 해결할 적임자로 평가받았습니다.
안정적인 경기 운영 능력으로 벤투 감독의 신임을 단숨에 확보했습니다.

[독일 다름슈타트 이적]

더 많은 출전 시간을 보장받기 위해 독일 2부 리그인 SV 다름슈타트 98로 이적했습니다. 지로나를 떠나 독일 특유의 피지컬이 강조되는 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기술적인 스페인 축구에 독일의 힘을 더하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이적 직후부터 팀의 핵심 미드필더로 낙점되어 등번호 14번을 부여받았습니다.
독일어와 영어를 배우며 현지 동료들과 빠르게 융화되었습니다.
다름슈타트 팬들은 바르셀로나 출신 미드필더의 합류에 큰 기대감을 표했습니다.

[독일 리그 데뷔전]

뉘른베르크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독일 무대 공식 데뷔를 알렸습니다. 이적 후 곧바로 주전 자리를 꿰차며 감독의 신뢰를 입증했습니다. 독일 축구 특유의 강한 압박에 능숙하게 대처하며 경기 전반을 조율했습니다.

9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의 무승부에 기여했습니다.
공수 양면에서 왕성한 활동량을 보이며 성공적인 정착을 알렸습니다.
현지 언론은 백승호의 합류가 다름슈타트 중원의 수준을 높였다고 평가했습니다.

2020

[주전 미드필더 맹활약]

다름슈타트의 중원 사령관으로서 거의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습니다. 정확한 패스 성공률과 세트피스 키커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독일 무대에서도 그의 기술 축구가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팀 전술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 공격 전개의 시발점 역할을 했습니다.
동료 미드필더들과의 유기적인 호흡으로 중원 장악력을 높였습니다.
이 시기 다름슈타트는 백승호의 활약에 힘입어 상위권 진입을 노렸습니다.

[독일 진출 첫 득점]

하노버 96과의 경기에서 강력한 슛으로 독일 무대 첫 골을 신고했습니다. 페널티 박스 정면에서 흘러나온 볼을 침착하게 처리하여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팀의 승리에 쐐기를 박는 귀중한 득점이었습니다.

수비적인 기여뿐만 아니라 공격 가담 능력까지 인정받은 골이었습니다.
현지 언론은 백승호의 정확한 타격 능력과 판단력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이 득점 이후 팀 내 입지는 더욱 단단해졌으며 팬들의 사랑도 커졌습니다.

2021

[전북 현대 이적설 대두]

K리그 최강팀 전북 현대가 백승호 영입에 관심을 보이며 국내 복귀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더 많은 경기 출전과 국가대표팀 복귀를 위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과거 수원 삼성과의 합의서가 걸림돌로 부각되었습니다.

선수 본인은 더 큰 무대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국내 복귀를 긍정적으로 검토했습니다.
수원 삼성 측은 합의 위반을 주장하며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 축구계에 유망주 지원과 이적에 관한 뜨거운 논쟁을 불러왔습니다.

[전북 현대 전격 입단]

유럽 생활을 뒤로하고 K리그 최강팀 전북 현대 모터스 입단을 확정 지었습니다. 입단 과정에서 수원 삼성과의 합의서 위반 논란으로 고충을 겪었으나 극적으로 이적이 성사되었습니다. K리그 무대에서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귀국했습니다.

이적료 문제와 법적 분쟁 가능성 등 험난한 과정을 거쳐 전북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등번호 5번을 부여받으며 전북 중원의 새로운 엔진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국내 팬들은 드디어 K리그에서 뛰는 백승호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어 열광했습니다.

[K리그 역사적 데뷔]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며 K리그 1 무대에 첫선을 보였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간결한 터치와 패스로 경기 흐름을 주도했습니다. 오랜 논란을 털어버리고 오직 축구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후반전 교체 투입 시 전주성(전북 홈구장) 팬들의 압도적인 환영을 받았습니다.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단계였음에도 불구하고 클래스가 다른 볼 배급을 선보였습니다.
이후 매 경기 출전 시간을 늘리며 전북의 전술적 핵심으로 빠르게 녹아들었습니다.

[K리그 데뷔 골 기록]

울산 현대와의 운명적인 ‘현대가 더비’에서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데뷔 골을 기록했습니다. 중요한 라이벌전에서 터뜨린 골이기에 그 가치와 임팩트가 매우 컸습니다. 전북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순간이었습니다.

날카로운 킥 궤적으로 상대 골키퍼가 손쓸 수 없는 골문 구석을 찔렀습니다.
득점 후 팀 동료들과 기쁨을 만끽하며 전북의 주역임을 선포했습니다.
이 골을 계기로 백승호는 전북의 세트피스 전담 키커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 데뷔]

전북 현대 소속으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데뷔하여 아시아의 강호들과 맞붙었습니다. 유럽 무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시아 무대에서도 압도적인 중원 장악력을 보였습니다. 팀의 토너먼트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다양한 아시아 팀들을 상대로 유연한 전술 변화를 선보였습니다.
팀의 전술적 유연성을 높이는 핵심 미드필더로서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이 대회를 통해 아시아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다시 한번 알렸습니다.

[K리그 1 우승 달성]

전북 현대의 K리그 1 5연패 달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우승 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시즌 중반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원의 조율사 역할을 완벽히 소화했습니다.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정규 리그 우승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최종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라이벌 울산을 제치고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시즌 내내 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전북의 공격을 원활하게 이끌었습니다.
우승 확정 후 동료들과 환호하며 국내 복귀 첫 시즌을 화려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시즌 베스트 11 선정]

2021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미드필더 부문 베스트 11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복귀 첫해 만에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로 공인받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논란을 실력으로 잠재운 백승호의 투지와 재능이 빛을 발한 결과였습니다.

기록과 경기력 모든 면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하며 전문가들의 표심을 얻었습니다.
시상대에서 소속팀 전북과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국내 무대에서도 명실상부한 톱클래스 선수임을 만천하에 알렸습니다.

2022

[국가대표 첫 골 신고]

아이슬란드와의 평가전에서 강력한 중거리 슛으로 성인 국가대표 데뷔 골을 터뜨렸습니다. 박스 밖에서 시원하게 날린 공이 골문 구석에 꽂히며 팬들을 환호케 했습니다. 대표팀 중원에서의 공격 가담 능력을 증명한 소중한 득점이었습니다.

이 골은 백승호가 A매치 5경기 만에 기록한 역사적인 첫 득점이었습니다.
후반전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 공간을 허문 뒤 기회를 창출했습니다.
벤투 감독은 백승호의 중거리 슛 능력을 팀의 새로운 공격 옵션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몰도바전 연속 골]

몰도바와의 평가전에서 정교한 프리킥으로 두 경기 연속 골을 기록했습니다. 수비벽을 넘기는 기술적인 킥으로 대표팀의 대승에 기여했습니다. 대표팀 내에서도 세트피스 전담 키커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다졌습니다.

연속 골을 터뜨리며 절정의 킥 감각을 선보였습니다.
중원 장악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득점원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한 시기였습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2022 월드컵 최종 명단 합류 가능성을 대폭 높였습니다.

[FA컵 우승 트로피]

전북 현대 소속으로 대한축구협회 FA컵 결승전에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시즌 마지막 대회에서 트로피를 추가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습니다. 리그 준우승의 아쉬움을 달래는 귀중한 우승이었습니다.

결승전 2차전에서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팀의 리드를 지켜냈습니다.
전북의 더블 달성에는 실패했으나 컵 대회 우승으로 명가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백승호는 우승 후 팬들에게 더 나은 모습을 약속하며 월드컵 체제로 돌입했습니다.

[월드컵 최종 명단 합류]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에 참가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26인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생애 첫 성인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되는 감격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벤투호의 핵심 중원 자원으로서 카타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안정적인 빌드업과 킥 능력을 높게 평가받아 치열한 경쟁을 뚫고 발탁되었습니다.
명단 발표 직후 가족과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필승의 각오를 다졌습니다.
조별리그 전 경기를 벤치에서 대기하며 동료들을 응원하고 자신의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브라질전 원더골 작렬]

브라질과의 월드컵 16강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어 환상적인 왼발 중거리 슛으로 골을 터뜨렸습니다. 세계 최강 브라질의 골망을 흔든 이 골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남을 명장면이 되었습니다. 비록 팀은 패했지만 대한민국 축구의 기개를 전 세계에 떨쳤습니다.

후반 31분경 박스 밖으로 흘러나온 볼을 지체 없이 슛으로 연결해 알리송 베케르를 무너뜨렸습니다.
이 득점은 FIFA 선정 대회 베스트 골 후보 10인에 오를 정도로 기술적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백승호라는 이름을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킨 인생의 골이었습니다.

2023

[K리그 이달의 선수]

전북 현대의 반등을 이끌며 K리그 1 5월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중원에서의 압도적인 활약과 해결사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였습니다. 개인 통산 첫 번째 이달의 선수상을 거머쥐며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임을 재확인했습니다.

5월 한 달간 절정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전북의 무패 행진을 주도했습니다.
정교한 킥과 노련한 수비 가담으로 팀 전력의 절반이라는 찬사를 얻었습니다.
이 활약으로 국가대표팀 재승선과 아시안 게임 와일드카드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었습니다.

[아시안 게임 주장 임명]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의 와일드카드로 발탁되어 주장의 중책을 맡았습니다. 황선홍 감독의 신뢰 아래 어린 후배들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금메달 획득을 통한 병역 혜택과 유럽 재진출이라는 목표를 위해 팀을 결집했습니다.

쿠웨이트와의 조별리그 1차전부터 선발 출전하여 완벽한 중원 조율을 선보였습니다.
주장으로서 그라운드 안팎에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첫 경기에서 대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향한 산뜻한 출발을 알렸습니다.

[아시안 게임 금메달]

일본과의 아시안 게임 결승전에서 주장으로서 풀타임 활약하며 2-1 역전승과 금메달 획득을 이끌었습니다. 대회 내내 성숙한 경기 운영과 강력한 중거리 슛으로 팀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마침내 병역 문제를 해결하며 유럽 무대 복귀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일본의 거센 압박을 노련하게 풀어내며 한국의 주도권을 유지했습니다.
금메달 확정 후 눈물을 흘리며 동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모습이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주장으로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대회 최우수 미드필더급 평가를 받았습니다.

2024

[버밍엄 시티 전격 이적]

잉글랜드 챔피언십 소속의 버밍엄 시티와 2년 6개월 계약을 체결하며 유럽 무대 복귀에 성공했습니다. 자유계약(FA) 신분으로 여러 유럽 클럽의 제안을 받았으나 잉글랜드 무대를 최종 선택했습니다. 바르셀로나 출신의 기술이 종가 영국에서 어떻게 발휘될지 기대를 모았습니다.

토니 모브레이 감독은 백승호의 다재다능함을 높게 평가하며 영입을 주도했습니다.
등번호 13번을 부여받으며 버밍엄 중원의 새로운 핵심으로 낙점되었습니다.
이적 직후 인터뷰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잉글랜드 무대에 서게 되어 영광이라며 소감을 밝혔습니다.

[잉글랜드 무대 데뷔]

웨스트브롬위치 알비온과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며 잉글랜드 챔피언십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거친 몸싸움과 빠른 공수 전환이 특징인 영국 축구에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팀의 중원에 안정감을 불어넣으며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습니다.

후반전 투입 이후 높은 패스 성공률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연계 능력을 보였습니다.
현지 팬들로부터 ‘기술이 뛰어난 미드필더’라는 호평을 받으며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이후 매 경기 출전 시간을 늘리며 버밍엄의 주전 자리를 확고히 했습니다.

[버밍엄 시티 데뷔 골]

시즌 최종전인 노리치 시티전에서 헤더로 버밍엄 이적 후 첫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팀의 1-0 승리를 확정 짓는 천금 같은 결승 골이었습니다. 비록 팀의 강등을 막지는 못했으나 본인의 기량만큼은 확실히 증명했습니다.

문전 쇄도에 이은 정확한 타점으로 골망을 흔들며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강등의 아픔 속에서도 백승호의 활약은 버밍엄 팬들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었습니다.
시즌 종료 후 여러 클럽의 이적 제의를 받았으나 팀에 남아 승격을 돕기로 결정했습니다.

[버밍엄과 재계약 체결]

팀의 핵심 자원으로 인정받아 버밍엄 시티와 2028년까지 장기 재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강등된 상황에서도 팀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며 승격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의지를 표했습니다. 구단은 백승호를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잉글랜드 내 여러 상위 리그 팀들의 관심을 거절하고 버밍엄 잔류를 택했습니다.
팬들은 백승호의 의리에 열광하며 팀 최고의 스타로 대우했습니다.
이 재계약은 그가 잉글랜드 무대에서 장기적인 커리어를 쌓는 핵심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5

[버밍엄 시티 승격 확정]

잉글랜드 리그 1(3부)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팀의 챔피언십 승격을 조기에 확정 지었습니다. 시즌 내내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팀의 중심을 완벽하게 잡았습니다. 강등 한 시즌 만에 다시 2부 리그로 복귀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버밍엄은 백승호의 중원 조율 아래 압도적인 승점을 쌓으며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백승호는 시즌 내내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리그 정상급 미드필더로 군림했습니다.
승격 확정 경기 후 팬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축제를 즐기며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PFA 올해의 팀 선정]

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PFA)가 선정한 리그 1 ‘올해의 팀’ 미드필더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동료 선수들이 직접 뽑은 상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남달랐습니다. 잉글랜드 무대 진출 후 첫 개인 수상을 달성하며 클래스를 증명했습니다.

시즌 내내 기복 없는 활약과 압도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은 결과였습니다.
버밍엄 시티 소속으로 다수의 선수가 선정된 가운데 백승호는 중원의 핵심으로 꼽혔습니다.
이 수상으로 백승호는 챔피언십 무대에서도 통할 최정상급 미드필더임을 다시금 알렸습니다.

[북중미 월드컵 예선 활약]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경기에 출전하여 대승에 기여했습니다. 홍명보 감독 체제에서도 꾸준히 중용되며 중원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했습니다.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대표팀의 본선 진출 가시화를 도왔습니다.

쿠웨이트 원정 등 까다로운 경기에서 교체 및 선발로 나서 중심을 잡았습니다.
유럽 무대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대표팀의 전술적 유연성으로 치환시켰습니다.
백승호는 이제 대표팀의 중참급 선수로서 후배들을 이끄는 리더십까지 발휘하고 있습니다.

2026

[챔피언십 상위권 도약]

버밍엄 시티의 중원 사령관으로서 팀의 챔피언십 상위권 안착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새해 첫 경기에서도 높은 패스 성공률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실력을 과시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승격이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 매 경기 헌신적인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시즌 대부분의 경기에 풀타임 출전하며 압도적인 체력과 기량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지 언론은 백승호가 버밍엄 시티의 승격 가능성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평가했습니다.
그의 활약은 2026년 여름 북중미 월드컵 본선에서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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