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정 (음악가)
피아니스트, 대학교수, 예술행정가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4- 14:27:27
대한민국 피아노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피아니스트들의 스승'으로 불리는 신수정은 한국 음악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이름을 올린 선구자입니다. 13세의 어린 나이에 서울시향과의 협연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그녀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유럽과 미국에서 수학하며 세계적인 기량을 닦았습니다. 26세라는 최연소의 나이로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어 수많은 제자를 양성했으며, 서울대 음대 최초의 여성 학장으로서 행정가적 면모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예술적 성취를 넘어 대원문화재단 이사장, 평창대관령음악제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클래식 음악의 저변을 넓혔고, 현재까지도 현역 연주자이자 존경받는 교육자로서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1942
[충북 청주에서 탄생]
한국 피아노계의 거목이 될 신수정이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이며 피아노를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향인 청주에서 기초적인 음악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신수정은 1942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성장을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에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이는 훗날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음악적 감수성을 키워나갔던 시기입니다.
1953
[전국 음악 콩쿠르 우승]
이화경향음악콩쿠르의 전신인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테크닉과 표현력으로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우승은 천재 피아니스트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제2회 이화경향음악콩쿠르(당시 전국 남녀 중고등학생 음악 경연대회)에서 초등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전쟁 직후의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실력을 입증한 성과였습니다.
이 대회 우승을 계기로 본격적인 전문 연주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1955
[서울시향과의 첫 협연]
13세의 나이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어린 연주자의 협연은 음악계에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대중에게 '피아노 신동'으로 이름을 각인시킨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등을 협연하며 공식 무대에 섰습니다.
이는 당시 한국 음악계에서 보기 드문 어린 천재의 등장이자 파격적인 대우였습니다.
연주 후 평단으로부터 한국 피아노의 미래를 짊어질 재목이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1956
[서울예술고등학교 입학]
예술 영재들이 모이는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동기들과 경쟁하며 예술적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실기 능력뿐만 아니라 이론적 토대도 견고히 다지는 시기였습니다.
예술 전문 교육 기관인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여 피아노 전공 학업을 본격화했습니다.
재학 기간 동안 수많은 교내외 연주회에서 독보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학교를 빛냈습니다.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차세대 주역으로 성장해 나가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959
[서울대학교 음대 입학]
국내 최고의 음악 교육 기관인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 시절 내내 학업과 연주 양면에서 독보적인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교수진의 큰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차세대 피아니스트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여 전문 연주자 코스를 밟았습니다.
대학 시절 이미 기성 연주가 못지않은 활동을 펼치며 선후배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학구적인 자세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섭렵하며 음악적 지평을 넓힌 중요한 시기입니다.
1960
[동아음악콩쿠르 1위]
국내 최고 권위의 동아음악콩쿠르 첫 회에서 피아노 부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우승을 통해 한국 최고의 젊은 피아니스트라는 타이틀을 공식적으로 얻었습니다. 콩쿠르 역사에 기록될 첫 번째 주인공으로서 실력을 완벽히 증명했습니다.
1960년 처음 개최된 제1회 동아음악콩쿠르에서 영예의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대회 우승은 그녀의 실력을 대외적으로 공인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 음악 콩쿠르 역사의 시작과 함께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963
[서울대학교 수석 졸업]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전체 수석으로 졸업하며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졸업 당시 뛰어난 성적과 실력을 인정받아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국내에서의 학업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세계 무대로 나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서울대 음대를 전체 수석으로 졸업하며 학문적 실력과 실기 능력을 동시에 인정받았습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생 대표 수상을 하는 등 화려한 학업 성취를 거두었습니다.
졸업 후 바로 세계적인 음악 도시인 비엔나로의 유학을 결정하게 됩니다.
1964
[비엔나 국립음대 유학]
음악의 본고장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음악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리하르트 하우저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정통 유럽 피아니즘을 전수받았습니다. 음악적 해석의 깊이와 테크닉을 완성해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음악아카데미(현 비엔나 국립음대)에 입학하여 유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리하르트 하우저(Richard Hauser)를 사사하며 독일-오스트리아 정통 클래식을 연구했습니다.
유럽 현지에서 다양한 공연에 참여하며 예술적 안목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웠습니다.
1967
[비엔나 국립음대 졸업]
까다롭기로 유명한 비엔나 국립음악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하며 세계적 수준의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졸업 연주회에서 현지 전문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성공적인 유학 생활을 마쳤습니다. 한국인 피아니스트의 위상을 유럽 본토에 알린 성과였습니다.
비엔나 국립음악아카데미를 최우수 성적(Reifeprufung)으로 졸업했습니다.
현지에서의 뛰어난 성취는 당시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도 큰 자극과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유럽 클래식의 정통성을 완벽히 흡수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졸업했습니다.
1968
[비엔나 데뷔 독주회]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정식 데뷔 독주회를 개최하여 유럽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현지 언론과 비평가들로부터 따뜻한 음색과 지적인 해석이라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국제적인 연주자로서의 경력을 본격적으로 쌓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비엔나 콘서트홀 등 주요 공연장에서 개인 독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오스트리아 언론으로부터 '내면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연주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성공적인 데뷔는 향후 유럽 무대 전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1969
[서울대 최연소 교수 임용]
26세라는 파격적인 나이에 모교인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한국 음악 교육 역사상 보기 드문 최연소 임용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연주 활동과 더불어 후학 양성이라는 새로운 사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69년, 만 26세의 나이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가 되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는 국립대학교 교수 임용 역사상 최연소 기록 중 하나로 꼽히는 사건입니다.
실기와 이론을 겸비한 젊은 교육자로서 대학 음악 교육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NHK 교향악단 협연]
아시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일본 NHK 교향악단과 협연하며 국제적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정교하고 섬세한 연주로 일본 음악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를 계기로 아시아 각국을 잇는 음악적 가교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NHK 교향악단과의 협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주목받았습니다.
해외 명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한국 연주자의 국제적 경쟁력을 입증했습니다.
이후 일본 내 유수 공연장에서 초청 연주를 정기적으로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1971
[미국 피바디 음악원 유학]
유럽에 이어 미국 음악을 탐구하기 위해 볼티모어의 피바디 음악원으로 향했습니다. 세계적인 거장 레온 플라이셔를 사사하며 새로운 음악적 관점을 수용했습니다. 유럽의 전통과 미국의 합리주의가 조화를 이루는 연주 스타일을 구축했습니다.
미국 피바디 음악원(Peabody Institute)에 진학하여 학구적인 탐구를 지속했습니다.
건반 위의 철학자로 불리는 레온 플라이셔(Leon Fleisher)에게 직접 지도를 받았습니다.
이 시기를 거치며 한층 더 성숙하고 객관적인 음악 해석력을 갖춘 연주자로 거듭났습니다.
1972
[베를린 필하모닉 협연]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한국인 피아니스트로서 드문 성취였으며, 그녀의 연주력이 세계 최정상급임을 입증했습니다. 베를린 현지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를 가지며 국제적인 명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최고의 앙상블과 호흡을 맞추며 한국 음악가로서의 예술적 위상을 높였습니다.
이 연주는 그녀의 긴 연주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1973
[한국문화예술상 수상]
한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문화예술상을 수상했습니다.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연주와 교육 분야에서 거둔 성과를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그녀의 예술적 행보를 격려한 상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 분야의 권위 있는 상인 한국문화예술상을 받았습니다.
국내외를 넘나드는 활발한 연주 활동과 후학 양성의 공로가 주요 요인이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실력을 동시에 인정받은 결과였습니다.
1975
[미국 독주회 투어 진행]
뉴욕, 워싱턴 등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순회 독주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습니다. 북미 클래식 팬들에게 한국 피아니즘의 정수를 선보였습니다. 명료한 타건과 깊이 있는 해석으로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뉴욕 카네기홀, 워싱턴 케네디 센터 등 미국 내 주요 무대에서 공연했습니다.
현지 비평가들로부터 테크닉과 감성이 완벽하게 조화된 연주자라는 호평을 얻었습니다.
국제 무대에서의 입지를 더욱 단단히 다지며 글로벌 커리어를 확장했습니다.
1980
[쇼팽 콩쿠르 심사위원]
세계 최고 권위의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심사위원으로서 세계 음악계의 권력 중심부에 진입했습니다. 한국 음악계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폴란드에서 열리는 쇼팽 콩쿠르의 심사를 맡아 세계적인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한국 피아노 교육의 수준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주요 국제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초빙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1985
[런던 심포니와 협연]
영국을 대표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유럽 활동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런던의 까다로운 관객들을 매료시키며 성공적인 공연을 이끌어냈습니다. 탁월한 앙상블 능력과 독주자로서의 카리스마를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런던 바비칸 센터 등 주요 공연장에서 런던 심포니와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었습니다.
영국 클래식 전문지들로부터 정확한 해석과 풍부한 표현력에 대해 찬사를 얻었습니다.
세계 5대 오케스트라들과 순차적으로 협연하며 연주자로서 최고의 영예를 쌓았습니다.
1990
[모차르트 서거 기념 연주]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연주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그녀가 특히 애정을 가진 모차르트 작품들을 통해 순수하고 투명한 음악 세계를 선보였습니다. 모차르트 해석의 권위자로서 다시 한번 각인되었습니다.
모차르트 서거 기념일을 전후하여 국내외에서 다수의 독주회와 협연을 가졌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 등 학구적이면서도 예술적인 프로젝트를 성공시켰습니다.
절제되면서도 아름다운 모차르트를 구현한다는 평단의 재평가를 받았습니다.
1992
[베이징 초청 독주회]
한중 수교 이후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베이징에서 초청 독주회를 가졌습니다. 중국 음악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양국 음악 발전을 도모했습니다. 아시아 피아노 음악의 연대를 확인하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한중 수교 초기 문화 사절단의 일원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연주했습니다.
베이징 콘서트홀을 메운 청중들에게 한국 피아니스트의 깊은 예술성을 선사했습니다.
이 공연은 향후 아시아 클래식 음악 네트워크 형성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95
[옥관문화훈장 수훈]
국가 문화 예술 진흥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연주자로서의 성취와 교육자로서의 헌신이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결과였습니다. 문화예술인으로서 최고의 영예 중 하나를 안았습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 발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훈했습니다.
음악 교육의 현대화와 클래식의 대중화에 힘쓴 점이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이 훈장은 그녀의 예술적 일생에 대한 국가적인 감사와 존경의 표시였습니다.
1996
[함부르크 방송교향악 협연]
독일 함부르크 방송교향악단과 협연하며 정통 독일 사운드와의 조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유학 시절 습득한 정통 해석법이 빛을 발한 연주였습니다. 독일 현지 관객들로부터 한국 피아니스트에 대한 높은 신뢰를 이끌어냈습니다.
독일 북부 방송교향악단(NDR)과 함께 브람스 등을 연주하며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탄탄한 구조감과 서정적인 감수성이 공존하는 연주를 선사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유럽 유수의 방송교향악단들과 지속적으로 협업하며 국제적 영향력을 과시했습니다.
2000
[음대 여성 최초 학장]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학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보수적인 대학 사회에서 여성 예술가가 행정 수장에 오른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부드러운 리더십과 추진력으로 음대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2000년 7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제17대 학장으로 공식 취임했습니다.
금녀의 구역으로 인식되던 학장직에 여성이 오른 것은 한국 음악계의 이정표였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국제 교류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하여 대학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2002
[음대 학장 연임 성공]
성공적인 첫 임기를 마치고 서울대 음대 학장으로 연임되었습니다. 대학의 국제화와 인재 육성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했습니다. 그녀의 리더십 아래 서울대 음대는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탁월한 행정 능력을 인정받아 학장직을 한 차례 더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해외 명문 음악 학교들과 자매결연을 확대하고 마스터클래스를 활성화했습니다.
교육자로서 후학들이 더 큰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004
[대관령음악제 위원장 임명]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운영위원장을 맡아 한국의 대표적인 클래식 축제로 키워냈습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대거 초청하여 음악제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강원도 평창을 클래식 음악의 성지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음악제의 기획과 운영 전반을 총괄하며 국제적인 축제로 발돋움시켰습니다.
세계적인 연주자들과의 두터운 인맥을 활용해 화려한 라인업을 구성했습니다.
한국의 자연 경관과 클래식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축제 문화를 정착시킨 공로가 큽니다.
2005
[대원문화재단 이사장 취임]
음악 영재 발굴을 위해 설립된 대원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들을 경제적으로 후원하고 무대 기회를 제공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민간 차원의 메세나 활동을 주도하며 한국 음악계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대원문화재단의 수장으로서 체계적인 아티스트 후원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대원음악상을 제정하여 우수한 성과를 낸 음악인들을 발굴하고 시상했습니다.
이 재단의 지원을 받은 많은 연주자가 이후 세계적인 무대로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2006
[한불 수교 기념 공연]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 파리에서 독주회를 개최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문화적 연대를 공고히 하는 뜻깊은 무대였습니다. 섬세한 프랑스 음악 해석으로 현지 청중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파리의 유서 깊은 공연장에서 기념 독주회를 열어 한국 예술의 품격을 보여주었습니다.
드뷔시 등 프랑스 작곡가의 작품을 완벽하게 소화해 현지 전문가들의 호평을 얻었습니다.
문화 외교관으로서 유럽인들에게 한국 클래식의 저력을 다시금 각인시켰습니다.
2007
[정년퇴임 및 명예교수]
38년간 몸담았던 서울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맞이하며 명예교수로 추대되었습니다. 한 평생을 바친 교육 현장을 떠나며 수많은 제자와 동료들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퇴임 후에도 그녀의 영향력은 대학 울타리를 넘어 계속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정식으로 정년퇴임하며 교직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녀가 배출한 수많은 제자는 현재 한국 음악계의 핵심적인 주역들로 성장했습니다.
명예교수로서 대학에 계속 적을 두며 후학들을 위한 조언과 지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008
[경암교육재단 이사 임명]
경암교육문화재단의 이사로 선임되어 학문과 예술 진흥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경암학술상 심사 등에 참여하며 예술 교육의 중요성을 사회에 전파했습니다. 교육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사회적 가치 실현에 힘썼습니다.
재단 이사로서 다양한 공익 활동과 문화 사업을 승인하고 기획했습니다.
예술 부문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원로 예술가로서의 엄정한 시각을 제공했습니다.
사회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는 프로젝트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독려했습니다.
2009
[조성진의 우승과 스승]
제자인 조성진이 하마마쓰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그녀의 지도력이 다시 조명받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 스승의 역할이 컸습니다. 제자의 성공을 격려하며 한국 피아노의 미래를 확신했습니다.
조성진이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할 때 든든한 멘토가 되어주었습니다.
테크닉 위주가 아닌 음악적 깊이를 강조한 그녀의 교육 철학이 빛을 발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훌륭한 스승 아래 위대한 제자가 나온다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2010
[리즈 국제 콩쿠르 심사]
영국의 명문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초빙되었습니다. 엄격하고 공정한 심사로 전 세계에서 모여든 유망주들의 기량을 평가했습니다. 국제 콩쿠르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권위자로 대우받았습니다.
영국 리즈에서 열린 세계적인 콩쿠르 심사위원단에 합류했습니다.
유럽 클래식계의 주요 인사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한국 음악계 소식을 전했습니다.
유망한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공적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2011
[세종문화회관 이사 임명]
세종문화회관의 이사로 임명되어 경영과 기획 전반에 대해 자문했습니다. 공공 공연장의 문턱을 낮추고 수준 높은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예술 현장의 목소리를 실제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이사회의 멤버로서 공연장 운영의 내실을 다지는 데 힘썼습니다.
시민들이 클래식을 더욱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획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예술 행정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공연문화 선진화에 이바지했습니다.
2012
[칠순 기념 헌정 음악회]
칠순을 맞아 제자들이 마련한 특별한 헌정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수십 명의 제자가 한자리에 모여 스승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음악으로 표현했습니다. 한 예술가의 인생이 제자들의 연주를 통해 아름답게 울려 퍼진 자리였습니다.
예술의전당에서 신수정 교수의 칠순을 축하하는 대규모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제자들이 직접 무대를 기획하고 연주하며 스승의 가르침에 보답했습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을 보여준 한국 음악계의 감동적인 사례였습니다.
2013
[제주 가시리 마을 공연]
제주의 작은 마을 가시리를 찾아가 주민들을 위한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화려한 공연장을 떠나 일상의 공간에서 음악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와 문화 소외 지역 배려에 직접 나선 행보였습니다.
제주 서귀포시 가시리 주민들을 위해 야외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소박한 공간에서 열린 이 연주회는 주민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 되었습니다.
음악은 모든 이의 것이라는 그녀의 소신이 담긴 의미 있는 활동이었습니다.
2014
[대원문화재단 이사장 연임]
대원문화재단의 이사장직을 연임하며 지속적인 후원 사업을 이끌었습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한국 클래식 음악의 기초를 다지는 데 집중했습니다. 변함없는 열정으로 후배 음악가들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었습니다.
재단 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후원 대상을 확대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젊은 연주자들이 경제적 걱정 없이 예술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한국 메세나 활동의 중심 인물로서 변함없는 신뢰를 받으며 연임했습니다.
2015
[제자 조성진의 쇼팽 우승]
제자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우승 직후 스승인 그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사제 간의 깊은 신뢰를 확인했습니다. 한국 클래식 음악의 새 역사를 쓰는 순간을 함께 기뻐했습니다.
조성진의 역사적인 우승은 그녀의 오랜 헌신과 교육이 결실을 본 순간이었습니다.
우승 확정 후 제자로부터 가장 먼저 연락을 받는 등 각별한 사제 관계가 화제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녀는 한국 최고의 음악 교육자로서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2016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한국 예술계 최고의 영예인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국가가 공인하는 원로 예술가로서 그 지위와 공로를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예술가로서 가질 수 있는 사회적 명예의 정점에 올랐습니다.
대한민국 예술인들의 명예의 전당인 예술원의 정회원이 되었습니다.
국가 예술 정책에 자문하고 후대의 예술 발전을 논의하는 중요한 책무를 맡았습니다.
평생을 바친 음악적 성취가 국가적으로 가장 높게 예우받은 사건입니다.
2017
[아태 쇼팽 콩쿠르 심사]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유망한 피아니스트들을 발굴하는 대회의 심사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지역 음악 교육의 수준을 높이고 국제적인 안목을 전수하는 데 힘썼습니다. 아시아 클래식 음악의 동반 성장을 도모하는 리더십을 보였습니다.
아태 지역 쇼팽 콩쿠르를 주관하며 심사의 공정성과 품격을 유지했습니다.
참가한 어린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피드백을 주며 성장을 독려했습니다.
아시아권 클래식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우수 인재를 발굴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2018
[평창 올림픽 기념 공연]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특별 문화 공연에 참여했습니다. 세계인의 축제 현장에서 한국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습니다. 스포츠와 예술이 하나 되는 화합의 무대를 선사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올림픽 문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린 야외 및 실내 연주회에 출연했습니다.
평창의 자연 배경과 어우러지는 피아노 선율로 방문객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국가적 대행사에 예술가로서 기여하며 축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습니다.
2019
[데뷔 65주년 독주회]
무대 데뷔 65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독주회를 통해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긴 세월 동안 다듬어온 깊이 있는 선율로 청중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여전히 현역으로서 무대에 서는 모습은 후배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예술의전당에서 65주년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기념하는 무대를 가졌습니다.
바흐와 베토벤 등 정통 프로그램을 통해 절정의 음악적 깊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수십 년간 변치 않는 열정으로 피아노 앞에 앉은 모습 자체가 하나의 감동이었습니다.
2020
[온라인 교육 채널 활성화]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비대면 마스터클래스를 열어 교육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방식으로 제자들과 소통하며 지도했습니다. 기술과 예술을 결합하여 중단 없는 음악 교육을 실천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학생들에게 실시간 피아노 지도를 제공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음악 교육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었습니다.
디지털 환경에서도 그녀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지도는 전 세계 학생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2021
[가정의 달 자선 공연]
가정의 달을 맞아 소외된 이웃들을 돕기 위한 자선 음악회에 기꺼이 참여했습니다. 연주료 전액을 기부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예술가의 표본을 보였습니다. 따뜻한 음악을 통해 사회적 온기를 나누는 데 정성을 다했습니다.
취약 계층 어린이를 돕는 기금 마련 연주회에 재능 기부로 무대에 섰습니다.
그녀의 선행은 음악계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되어 많은 동참을 끌어냈습니다.
음악이 가진 사회 치유의 기능을 몸소 증명한 아름다운 활동이었습니다.
2022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선출]
대한민국예술원의 수장인 회장으로 선출되어 한국 예술계 전체를 대변하게 되었습니다. 여성 음악가로서 예술원 회장에 오른 것은 매우 상징적이고 영광스러운 성취였습니다. 국가 예술 정책 전반에 원로로서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2022년 봄, 예술원 회원들의 투표를 통해 제40대 회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예술가들의 창작 지원과 복지 증진을 위한 행정적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으로서 정부 및 유관 기관과 활발히 소통하며 예술의 가치를 전파했습니다.
[팔순 기념 베토벤 공연]
만 80세를 기념하여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놀라운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짐 없는 연주로 청중들에게 경외감을 주었습니다. 인생의 깊이가 묻어나는 연주라는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얻었습니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팔순 기념 무대에서 강렬한 베토벤을 들려주었습니다.
세월을 이겨낸 그녀의 타건에 관객들은 전원 기립박수로 화답했습니다.
여전히 현역 연주자로서 무대를 장악할 수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인 공연이었습니다.
2023
[후배 양성 위한 특별 대담]
주요 언론과의 특별 대담을 통해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전했습니다. 테크닉보다 중요한 것은 음악을 대하는 정직한 태도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원로 음악가로서 한국 클래식의 미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음악 인생 전반을 회고하며 후대 연주자들이 경계해야 할 태도 등을 전했습니다.
한국 클래식의 비약적인 발전을 기뻐하며 내실 있는 성장을 주문했습니다.
그녀의 진심 어린 메시지는 많은 음악 전공생에게 지침서가 되었습니다.
[클래식 명예의 전당 헌액]
한국 클래식 음악 발전에 기여한 업적을 기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이제 한국 음악사의 지울 수 없는 기록으로 영구히 보존됩니다. 살아있는 전설로서 그 권위와 성취를 공식적으로 기리는 자리였습니다.
주요 음악 단체들이 주관하는 클래식 공로자 헌액식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연주자, 교육자, 행정가로서의 3대 업적이 모두 높이 평가된 결과입니다.
이 헌액은 그녀가 한국 음악계에 남긴 발자취가 얼마나 거대한지 증명했습니다.
2024
[국제 음악제 고문 위촉]
국내외 주요 국제 음악제들의 고문으로 위촉되어 기획 자문을 수행했습니다. 수십 년간 쌓아온 국제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음악제의 품격을 높였습니다. 후배 기획자들이 국제 무대와 교류할 수 있도록 가교가 되어주었습니다.
평창과 통영 등 주요 음악제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해외 저명 아티스트 섭외 등 실질적인 부분에서도 원로로서 큰 힘을 보탰습니다.
음악제가 단순한 행사를 넘어 예술적 가치를 보존하는 장이 되도록 자문했습니다.
[예술원 회장 임기 완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직의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명예로운 퇴임을 맞이했습니다. 재임 기간 중 예술계의 여러 난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임기 종료 후에도 예술원의 원로로서 지속적인 조언을 이어갔습니다.
예술원 수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며 조직의 위상을 공고히 했습니다.
퇴임식에는 수많은 예술인이 참석해 그녀의 리더십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 다시 음악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연주를 준비했습니다.
2025
[신년 기념 연주회 출연]
2025년의 시작을 알리는 신년 음악회에 출연하여 변함없는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선율로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새해 인사를 건넸습니다. 여전히 현장에서 호흡하는 예술가로서의 위용을 증명했습니다.
새해 첫 무대에서 모차르트와 쇼팽의 곡들을 유려하게 소화해냈습니다.
관객들은 여전히 맑고 영롱한 그녀의 피아노 소리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한 해를 음악으로 여는 그녀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스승의 날 제자들과 상봉]
스승의 날을 맞아 세계 각국에서 활동 중인 제자들과 온오프라인으로 조우했습니다. 수많은 제자가 그녀를 찾아와 음악적 가르침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했습니다. 한국 피아노계의 거대한 뿌리를 형성한 그녀의 지위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조성진 등 세계적인 스타가 된 제자들과 함께하며 음악적 대화를 나눴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여전히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영원한 스승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교육이 한국 피아노 음악을 어떻게 세계화시켰는지 보여주는 현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