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나 (밴드)
록 밴드, 라틴 록, 재즈 퓨전, 블루스 록, 사이키델릭 록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4- 09:57:43
산타나(Santana)는 1966년 멕시코 출신의 기타 거장 카를로스 산타나를 중심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전설적인 라틴 록 밴드입니다. 블루스와 록, 그리고 아프리카-라틴 리듬을 결합한 혁신적인 사운드로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며 음악사의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70년대 초반 재즈 퓨전으로의 과감한 음악적 변신과 영적인 탐구를 거쳐, 1999년 앨범 'Supernatural'을 통해 그래미 어워드 8개 부문을 석권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화려한 복귀를 달성했습니다. 반세기 넘게 카를로스 산타나의 독보적인 기타 톤을 중심으로 라틴 음악과 록의 경계를 허물며 전 세계 음악인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제공하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1966
[산타나 블루스 밴드 결성]
카를로스 산타나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커스 말론 등과 함께 밴드를 조직하며 전설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블루스 음악에 라틴 퍼커션을 접목하는 독특한 사운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카를로스 산타나는 마커스 말론(퍼커션), 로드 하퍼(드럼), 세르지오 로드리게스(베이스)와 함께 밴드를 창설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샌프란시스코의 사이키델릭 씬 내에서 이들의 라틴 리듬은 매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밴드의 이름은 초기에 '산타나 블루스 밴드'로 명명되었으나 이후 간단히 '산타나'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1968
[필모어 웨스트 데뷔 공연]
전설적인 공연 기획자 빌 그레이엄의 눈에 띄어 필모어 웨스트 무대에서 화려한 데뷔를 가졌습니다. 지역 사회를 넘어 메이저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빌 그레이엄은 산타나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여 인기 밴드들의 오프닝 무대에 세우며 전폭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공연 현장에서 보여준 폭발적인 에너지와 카를로스의 화려한 기타 솔로는 관객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이 무대를 통해 산타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기대받는 신인 밴드 중 하나로 부상했습니다.
1969
[콜롬비아 레코드와 계약]
데뷔 전부터 형성된 강력한 입소문을 바탕으로 메이저 레이블인 콜롬비아 레코드와 정식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본격적인 앨범 제작과 상업적 활동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클라이브 데이비스를 비롯한 레코드사 중역들은 산타나의 라틴 사운드가 대중적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계약 체결 후 밴드는 프로듀서 잭 리차드슨과 함께 첫 정규 앨범 녹음에 돌입했습니다.
이 계약은 산타나가 세계적인 밴드로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자본과 홍보력을 보장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드스탁 페스티발 충격적 공연]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펼치며 하룻밤 사이에 전 세계적인 스타로 도약했습니다. 무명에 가까웠던 밴드가 50만 관객 앞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산타나는 페어링 아웃된 'Soul Sacrifice' 연주를 통해 강렬한 퍼커션 솔로와 환각적인 기타 연주를 선보였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우드스탁'에 이들의 공연 실황이 담기면서 밴드의 명성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공연은 록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라이브 퍼포먼스 중 하나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
[데뷔 앨범 'Santana' 발매]
첫 번째 정규 앨범 'Santana'를 발표하며 빌보드 앨범 차트 4위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라틴 록이라는 장르를 대중음악의 주류로 끌어올린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앨범에 수록된 'Evil Ways'는 밴드 최초의 톱 10 히트 싱글이 되며 대중적 인기를 견인했습니다.
전통적인 라틴 리듬과 현대적인 록의 결합은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산타나는 록 음악계의 새로운 강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70
[두 번째 앨범 'Abraxas' 발표]
밴드 역사상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Abraxas'를 발매하여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달성했습니다. 밴드의 예술적 정점과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머쥔 앨범입니다.
플리트우드 맥의 곡을 리메이크한 'Black Magic Woman'과 티토 푸엔테스의 'Oye Como Va'가 수록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산타나 사운드의 전형을 완성했습니다.
'Samba Pa Ti'와 같은 서정적인 연주곡을 통해 카를로스의 기타 표현력이 극대화되었습니다.
1971
[앨범 'Santana III' 발매]
새로운 기타리스트 닐 숀이 합류한 가운데 세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하여 또다시 차트 1위를 기록했습니다. 밴드의 에너지가 최정점에 달했던 시기의 작품입니다.
카를로스 산타나와 17세의 신성 닐 숀의 트윈 기타 체제는 더욱 강력한 록 사운드를 만들어냈습니다.
'Everybody's Everything'과 'No One to Depend On' 등의 히트곡을 배출하며 인기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이 앨범을 끝으로 초기 오리지널 라인업이 분열되기 시작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1972
[음악적 변화의 시작 'Caravanserai']
기존의 팝적인 성향에서 벗어나 재즈 퓨전과 실험적인 사운드를 담은 'Caravanserai'를 발표했습니다. 밴드의 음악적 깊이를 확장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카를로스 산타나의 종교적 관심과 영적인 탐구가 음악에 투영되어 명상적이고 복잡한 구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존의 라틴 히트곡을 기대하던 대중들에게는 다소 난해했으나 평단으로부터는 최고의 예술적 시도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앨범을 계기로 그레그 롤리와 닐 숀은 밴드를 떠나 그룹 '저니(Journey)'를 결성하게 됩니다.
1973
[존 맥러플린과 협업 앨범 발표]
카를로스 산타나가 거장 기타리스트 존 맥러플린과 함께 'Love Devotion Surrender'를 발표했습니다. 재즈와 영적인 에너지가 결합된 강렬한 기타 연주의 향연을 보여주었습니다.
스리 친모이의 가르침을 따르던 두 사람은 종교적인 헌신을 주제로 앨범을 제작했습니다.
존 콜트레인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곡들을 수록하며 재즈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카를로스가 밴드 외부의 거장들과 교류하며 기술적으로 진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앨범 'Welcome' 발표]
재즈 보컬리스트 리온 토마스 등이 합류하여 더욱 심화된 재즈 퓨전 스타일의 앨범 'Welcome'을 공개했습니다. 영적이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아낸 시기의 대표작입니다.
전작 'Caravanserai'의 기조를 이어가면서도 더욱 다듬어진 편곡과 연주를 선보였습니다.
상업적 성공보다는 음악적 본질에 집중하며 산타나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습니다.
이 앨범은 70년대 산타나의 실험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난 수작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1974
[라이브 앨범 'Lotus' 녹음 및 발매]
일본 오사카에서의 환상적인 공연 실황을 담은 3매 세트 라이브 앨범 'Lotus'를 발표했습니다. 밴드의 경이로운 즉흥 연주 실력을 전 세계에 증명한 기록입니다.
당시 일본에서 한정판으로 발매되었다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재발매되며 전설적인 라이브 명반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정교한 패키지 디자인과 고품질의 녹음 상태로 소장 가치가 매우 높은 앨범으로 꼽힙니다.
공연 내내 멈추지 않는 에너지와 카를로스의 영감이 가득한 기타 솔로가 압권입니다.
[앨범 'Borboletta' 발매]
재즈 퓨전 노선을 유지하며 브라질 음악의 요소를 도입한 'Borboletta'를 발표했습니다. 플로라 퓨림, 아이어토 모레이라 등 저명한 재즈 뮤지션들이 참여했습니다.
펑크(Funk)적인 요소와 환상적인 분위기가 조화를 이룬 앨범으로, 밴드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혔습니다.
카를로스 산타나의 기타 톤은 더욱 맑고 투명해졌으며 명상적인 연주가 돋보였습니다.
예술적으로는 높은 성취를 거두었으나 대중적으로는 초기작에 비해 낮은 판매고를 기록했습니다.
1976
[앨범 'Amigos'와 'Europa'의 성공]
다시 리듬감 넘치는 라틴 록으로 회귀한 앨범 'Amigos'를 발표하여 상업적 인기를 회복했습니다. 수록곡 'Europa'는 산타나의 가장 사랑받는 연주곡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서정적이고 애절한 멜로디의 'Europa (Earth's Cry Heaven's Smile)'는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이 앨범을 통해 산타나는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복귀하며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대중 친화적인 사운드와 산타나 특유의 색깔이 가장 적절하게 배합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1977
[앨범 'Festival' 발표]
낙천적이고 춤추기 좋은 리듬을 강조한 앨범 'Festival'을 발표했습니다. 라틴 퍼커션의 즐거움과 흥겨운 밴드 앙상블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전작 'Amigos'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더욱 경쾌하고 대중적인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싱글 'Let the Children Play' 등이 라디오에서 자주 방송되며 인기를 얻었습니다.
카를로스 산타나는 밴드의 정체성이 라틴 음악의 활력에 있음을 이 앨범을 통해 재확인했습니다.
[더블 앨범 'Moonflower' 발표]
라이브 트랙과 스튜디오 트랙을 혼합한 혁신적인 더블 앨범 'Moonflower'를 공개했습니다. 밴드의 라이브 역량과 창작력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명반입니다.
줌비스(The Zombies)의 곡을 리메이크한 'She's Not There'가 대히트를 기록하며 차트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공연에서의 뜨거운 열기와 스튜디오에서의 정교함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 구성으로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앨범은 산타나가 70년대 후반 여전히 강력한 티켓 파워를 가진 밴드임을 입증했습니다.
1978
[앨범 'Inner Secrets' 발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보다 록적이고 팝적인 사운드를 강조한 'Inner Secrets'를 발표했습니다. 밴드의 사운드가 현대적인 세련미를 입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싱글 'One Chain (Don't Make No Prison)' 등이 팝 차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일부 팬들은 초기 사운드와의 괴리를 지적했으나, 산타나는 음악적 유연성을 보여주며 새로운 세대와 소통했습니다.
전반적으로 탄탄한 편곡과 프로덕션으로 밴드의 상업적 기반을 공고히 했습니다.
1979
[앨범 'Marathon' 발표]
강렬한 하드 록 성향을 띤 'Marathon' 앨범을 발표하며 80년대를 향한 음악적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새로운 보컬리스트 알렉스 리거우드와 함께한 첫 앨범입니다.
수록곡 'You Know That I Love You'가 빌보드 싱글 차트 35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기타 사운드는 더욱 날카로워졌고 전체적으로 직선적인 록 리듬이 앨범을 지배했습니다.
상업적으로는 무난한 성적을 기록하며 대형 경기장 투어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을 보탰습니다.
1981
[앨범 'Zebop!'과 대규모 히트]
80년대 초반의 대표작인 'Zebop!'을 발표하여 싱글 'Winning'이 메가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산타나가 다시금 전 세계적인 차트 점령에 나선 시기입니다.
러셀 발라드의 곡을 리메이크한 'Winning'은 세련된 건반 사운드와 카를로스의 절묘한 기타가 어우러져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앨범은 산타나가 복잡한 재즈 시대를 지나 현대적인 팝-록 밴드로 완전히 안착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미국 내에서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며 밴드의 대중적 영향력을 재확인시켰습니다.
1982
[앨범 'Shango' 발표]
팝과 라틴 비트가 조화를 이룬 앨범 'Shango'를 발표했습니다. 싱글 'Hold On'이 빌보드 차트 15위에 오르며 8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전자 악기의 비중을 높여 세련된 도시적 사운드를 구현하려 노력했습니다.
아프리카 신화에서 따온 제목처럼 근원적인 리듬에 대한 탐구도 잊지 않았습니다.
활발한 방송 출연과 투어를 통해 산타나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했습니다.
1985
[앨범 'Beyond Appearances' 발매]
80년대 중반의 사운드 트렌드를 적극 수용한 'Beyond Appearances'를 발표했습니다. 신디사이저와 드럼 머신 등 당시의 첨단 기술을 음악에 도입했습니다.
싱글 'Say It Again'이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나 기존 팬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습니다.
카를로스 산타나는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면서도 자신의 기타 연주 철학을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이 시기 산타나는 음악적 정체성을 재정립하기 위한 여러 실험을 지속했습니다.
1987
[앨범 'Freedom' 발표]
더욱 강력한 블루스 기반의 록으로 회귀한 앨범 'Freedom'을 공개했습니다. 밴드 초기의 에너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려 노력한 작품입니다.
버디 마일스 등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참여하여 사운드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평단으로부터 80년대 중반의 침체기를 벗어난 준수한 결과물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투어 활동을 강화하며 라이브 밴드로서의 명성을 다시금 견고히 쌓아 올렸습니다.
1988
[20주년 기념 재결합 공연]
밴드 결성 20주년을 기념하여 초창기 멤버들이 한무대에 서는 역사적인 공연을 가졌습니다. 산타나의 역사를 추억하고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이벤트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이 공연은 TV로 중계되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레그 롤리를 포함한 여러 옛 동료들이 모여 초기 히트곡들을 열정적으로 연주했습니다.
이 행사는 산타나가 미국 음악 문화에서 차지하는 거대한 유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1990
[앨범 'Spirits Dancing in the Flesh' 발표]
다양한 장르적 융합을 시도한 앨범 'Spirits Dancing in the Flesh'를 발매했습니다. 월드 뮤직과 록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운드를 선보였습니다.
커티스 메이필드의 곡을 리메이크하는 등 흑인 음악의 소울을 라틴 록과 결합했습니다.
음악적으로는 매우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90년대 초반의 대중음악 트렌드 변화로 큰 상업적 주목은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카를로스의 연주는 더욱 깊어졌다는 찬사를 받으며 밴드의 명맥을 이었습니다.
1991
[폴리도르 레코드로 이적]
오랜 기간 함께했던 콜롬비아 레코드를 떠나 폴리도르 레코드와 새로운 계약을 맺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밴드의 제2막을 준비하기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레이블의 변경은 음악적 자유도를 높이고 새로운 창작 에너지를 얻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당시 록 음악계의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산타나는 자신의 뿌리를 지킬 수 있는 파트너를 원했습니다.
이 이적을 통해 90년대 중반의 활동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1992
[앨범 'Milagro' 발표]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앨범 'Milagro'를 발표했습니다. 고인이 된 빌 그레이엄과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헌정하는 음악적 의미가 큰 작품입니다.
스페인어로 '기적'을 뜻하는 앨범 제목처럼 밴드의 재도약을 꿈꾸며 정성을 들였습니다.
다양한 타악기와 브라스 섹션을 동원하여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 사운드를 구현했습니다.
상업적 성공과는 별개로 산타나 음악의 정신적인 유산을 잘 담아낸 앨범으로 평가받습니다.
1993
[라이브 앨범 'Sacred Fire' 발매]
멕시코 시티에서의 열정적인 공연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을 공개했습니다. 고향 멕시코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펼쳐진 감동의 무대였습니다.
카를로스 산타나의 뿌리를 되새기는 이 공연은 영상물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라이브 강자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며 명곡들을 재해석하여 연주했습니다.
90년대 침체기 속에서도 산타나의 현장 에너지는 식지 않았음을 증명한 사례입니다.
1994
[우드스탁 '94 공연 참가]
전설적인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25주년 기념 공연에 참가했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다시 한번 감동의 라틴 비트를 선사했습니다.
25년 전과 마찬가지로 정열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축제의 분위기를 주도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에게 산타나의 클래식한 명곡들을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공연은 밴드가 세대를 관통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1998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록 음악 발전에 기여한 거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밴드의 역사적 가치가 공식적으로 추대된 명예로운 순간이었습니다.
카를로스 산타나를 비롯한 초기 핵심 멤버들이 함께 헌액되어 자리를 빛냈습니다.
이 헌액은 산타나가 라틴 록이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완성한 공로를 기리는 의미였습니다.
이후 산타나는 전설의 반열에 확고히 올라서며 후배 뮤지션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별 새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의 업적을 기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습니다.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서 밴드의 위상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사건입니다.
수많은 팬과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별 공개 행사가 열렸습니다.
산타나는 이 자리를 통해 자신들의 음악을 사랑해 준 팬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습니다.
할리우드 관광지의 주요 명소에 이름을 남기며 밴드의 불멸성을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1999
[싱글 'Smooth' 빌보드 1위 달성]
매치박스 트웬티의 보컬 롭 토마스가 피처링한 'Smooth'가 빌보드 싱글 차트 12주 연속 1위를 차지했습니다. 산타나 역사상 최대의 히트곡이 탄생한 순간입니다.
중독성 강한 기타 리프와 세련된 라틴 팝 리듬은 전 세계 라디오를 점령했습니다.
이 곡은 현대 록 음악사에서 가장 성공한 콜라보레이션 사례 중 하나로 꼽힙니다.
'Smooth'의 성공으로 산타나는 젊은 세대에게 가장 힙한 밴드로 다시 인식되었습니다.
[역사적인 복귀작 'Supernatural' 발매]
클라이브 데이비스와 재결합하여 아리스타 레코드에서 발표한 'Supernatural'이 유례없는 대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산타나 제2의 전성기를 연 역사적 앨범입니다.
롭 토마스, 로린 힐, 에릭 클랩튼 등 쟁쟁한 후배 및 동료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3,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차트 1위를 장기간 점령했습니다.
기존 팬들과 젊은 층을 모두 사로잡은 완벽한 기획과 음악성의 승리였습니다.
2000
[그래미 어워드 8개 부문 석권]
제42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등 8개 부문을 수상하며 마이클 잭슨과 타이기록을 세웠습니다. 산타나 최고의 영광의 날이었습니다.
한 명의 아티스트가 하룻밤에 8개의 트로피를 가져간 것은 팝 역사상 매우 드문 기록입니다.
카를로스 산타나는 수상 소감에서 음악을 통한 인류의 연합과 평화를 강조했습니다.
이 수상 결과는 산타나가 음악성과 대중성을 완벽히 재확보했음을 공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싱글 'Maria Maria' 차트 1위]
'Supernatural' 앨범의 또 다른 수록곡 'Maria Maria'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힙합 비트와 라틴 사운드의 완벽한 결합을 보여준 곡입니다.
프로듀서 와이클리프 존의 참여로 더욱 트렌디해진 사운드는 젊은 청취자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라틴 힙합의 가능성을 증명하며 클럽과 방송가를 동시에 장악했습니다.
이로써 산타나는 한 앨범에서 두 곡의 넘버원 싱글을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라틴 그래미 어워드 수상]
제1회 라틴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레코드' 등 3개 부문을 수상하며 라틴 음악의 거장임을 다시 입증했습니다. 라틴 음악의 자존심을 세운 역사적인 시상식이었습니다.
카를로스 산타나는 라틴 음악인들 사이에서도 정신적 지주로서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의 수상은 라틴 록이 세계 음악 시장의 주류가 되는 데 기여한 공로를 기리는 것이었습니다.
전 세계 라틴 커뮤니티에 산타나의 복귀 성공을 다시 한번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2
[앨범 'Shaman' 발표]
'Supernatural'의 성공 기조를 이어가는 후속작 'Shaman'을 발매했습니다. 미셸 브랜치, 채드 크로거 등 새로운 스타들과의 협업이 돋보인 작품입니다.
첫 싱글 'The Game of Love'가 대히트를 기록하며 산타나 열풍을 이어갔습니다.
더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과 협력하며 음악적 유연성을 실험했습니다.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데뷔하며 산타나의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증명했습니다.
[싱글 'The Game of Love' 히트]
미셸 브랜치의 청아한 목소리와 산타나의 경쾌한 기타가 만난 'The Game of Love'가 차트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세대를 뛰어넘은 음악적 소통의 정수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곡은 라디오 친화적인 멜로디와 연주로 그래미 최우수 팝 협동상을 수상했습니다.
카를로스는 젊은 뮤지션의 재능을 끌어내며 밴드의 사운드를 더욱 현대화했습니다.
산타나가 여전히 강력한 히트곡 제조기임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2005
[앨범 'All That I Am' 발표]
협업 시리즈의 세 번째 앨범인 'All That I Am'을 공개했습니다. 스티븐 타일러, 메리 제이 블라이즈 등 거물급 아티스트들과의 작업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싱글 'Just Feel Better'는 에어로스미스의 보컬 스티븐 타일러와 함께해 강렬한 록 에너지를 뿜었습니다.
다양한 스타일의 곡들을 한 앨범에 담아내며 산타나의 포용적인 음악관을 드러냈습니다.
이 앨범을 끝으로 산타나는 당분간 협업 위주의 앨범 제작에서 벗어나 다른 음악적 시도를 모색하게 됩니다.
2007
[베스트 앨범 'Ultimate Santana' 발매]
밴드 역사상 가장 핵심적인 곡들을 집대성한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초기 클래식과 90년대 이후의 히트곡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구성입니다.
미발표 신곡인 'Into the Night' (feat. 채드 크로거) 등이 추가되어 팬들에게 선물이 되었습니다.
밴드의 40년 역사를 요약한 이 앨범은 산타나의 위대한 음악 여정을 기념하는 의미가 컸습니다.
신규 리스너들에게 산타나 입문용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하며 꾸준히 판매되었습니다.
2009
[라스베이거스 하드락 호텔 상설 공연]
라스베이거스 하드락 호텔에서 상설 공연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팬이 산타나의 환상적인 라이브를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공연 제목 'Supernatural Santana'처럼 밴드의 대표적인 곡들을 완벽한 조명과 사운드로 선보였습니다.
이 장기 공연은 전 세계 관광객들을 불러모으며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산타나는 이 무대들을 통해 라이브 공연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0
[앨범 'Guitar Heaven' 발표]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곡들을 산타나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앨범을 공개했습니다. 클래식 록에 대한 경의와 산타나만의 독창적인 해석이 만난 작품입니다.
레드 제플린, 롤링 스톤즈, 도어즈 등의 곡들이 산타나의 라틴 비트와 기타로 재탄생했습니다.
크리스 코넬, 자코비 섀딕스 등 개성 넘치는 보컬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기타리스트로서의 산타나의 역량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며 차트 상위권에 진입했습니다.
2012
[앨범 'Shape Shifter' 발표]
대부분이 연주곡으로 구성된 정규 앨범 'Shape Shifter'를 발표했습니다. 보컬 협업에서 벗어나 순수한 기타 연주의 본질로 돌아간 시기입니다.
카를로스 산타나의 개인적인 창작 에너지를 온전히 쏟아부은 앨범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헌사와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곡들이 수록되었습니다.
화려한 상업성보다는 음악적 자아를 찾아가는 아티스트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2013
[케네디 센터 공로상 수상]
미국 문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케네디 센터 공로상을 수상했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아티스트의 전 생애 업적을 기리는 권위 있는 시상입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축하 공연과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산타나는 멕시코 이민자 출신으로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습니다.
이 수상은 밴드 산타나와 카를로스 개인의 명예를 가장 높여준 사건 중 하나입니다.
2014
[앨범 'Corazón' 발매]
라틴 음악계의 현역 스타들과 대거 협업한 앨범 'Corazón'을 발표했습니다. 스페인어권 뮤지션들과의 작업을 통해 밴드의 라틴 정체성을 재강조했습니다.
후아네스, 피트불, 글로리아 에스테판 등 쟁쟁한 라틴 아티스트들이 참여했습니다.
이 앨범은 빌보드 라틴 앨범 차트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전통적인 라틴 리듬을 현대적인 프로덕션으로 녹여내어 글로벌 팬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2016
[앨범 'Santana IV' 기적의 재결합]
70년대 초반 전성기 라인업이 다시 모여 제작한 앨범 'Santana IV'를 공개했습니다. 45년 만에 성사된 올드 팬들의 꿈과 같은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레그 롤리, 닐 숀, 마이클 카라벨로 등이 참여하여 초기 산타나 사운드를 완벽히 재현했습니다.
협업 시스템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원년 멤버들의 앙상블에 집중한 작품입니다.
발표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 5위에 오르며 고전적인 라틴 록의 위력을 과시했습니다.
2017
[이즐리 브라더스와 협업 앨범 발표]
전설적인 알앤비 그룹 이즐리 브라더스와 함께 'Power of Peace'를 제작했습니다. 록과 소울의 역사적인 만남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평화와 화합을 주제로 한 다양한 명곡들을 리메이크하여 수록했습니다.
로널드 이즐리의 깊은 보컬과 카를로스의 정열적인 기타가 만나 독특한 케미스트리를 형성했습니다.
음악을 통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밴드의 오랜 철학이 잘 반영된 앨범입니다.
2019
[EP 'In Search of Mona Lisa' 발표]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본 영감을 담은 EP를 발매했습니다. 예술적 영감을 즉각적으로 음악화하는 산타나의 창의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카를로스 산타나가 모나리자를 관람하며 느낀 신비로운 감정을 기타 선율로 표현했습니다.
단순한 소품집을 넘어선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갖춘 곡들이 수록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정규 앨범 'Africa Speaks'가 나오기 전 팬들의 기대감을 높여주었습니다.
[앨범 'Africa Speaks' 발표]
아프리카의 근원적인 리듬과 멜로디를 탐구한 앨범 'Africa Speaks'를 공개했습니다. 프로듀서 릭 루빈과 협업하여 날것의 에너지를 담아냈습니다.
보컬리스트 부이카의 강력한 가창력과 산타나 밴드의 즉흥 연주가 어우러졌습니다.
대중적인 성공보다는 밴드의 음악적 근원을 찾는 예술적 여정에 집중했습니다.
평단으로부터 최근 몇 년간 산타나가 내놓은 가장 야심 찬 수작이라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2021
[앨범 'Blessings and Miracles' 발매]
다시 한번 다채로운 뮤지션들과 협력한 앨범 'Blessings and Miracles'를 발표했습니다. 롭 토마스와 다시 호흡을 맞춘 곡 등이 수록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싱글 'Move'는 'Smooth'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듯한 강력한 라틴 팝 사운드를 선보였습니다.
크리스 스테이플턴, 스티브 원우드 등 다양한 연령과 장르의 아티스트가 힘을 보탰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희망과 기적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2022
[미국 투어 중 카를로스 산타나 실신]
공연 도중 탈수와 피로 누적으로 카를로스 산타나가 실신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전 세계 팬들이 그의 건강을 걱정하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디트로이트 근처의 야외 공연장에서 무대 위에 쓰러진 후 즉시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검사 결과 큰 이상은 없었으나 당분간의 휴식을 권고받고 투어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이후 카를로스는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무대에 복귀하여 팬들의 뜨거운 응원을 받았습니다.
2023
[다큐멘터리 'Carlos' 공개]
카를로스 산타나의 전 생애와 밴드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밴드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조명한 최고의 기록물입니다.
공개되지 않았던 희귀 영상들과 카를로스의 솔직한 인터뷰가 담겼습니다.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 했던 한 거장의 철학적인 고찰을 깊이 있게 다루었습니다.
산타나 팬들에게는 밴드의 60년 역사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2024
[월드 투어 지속 및 신곡 예고]
여든을 앞둔 카를로스 산타나가 이끄는 밴드가 전 세계를 돌며 라이브 공연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멈추지 않는 창작열과 공연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라스베이거스 상설 공연과 대규모 야외 페스티벌 출연을 병행하며 왕성하게 활동 중입니다.
최근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영감을 주는 새로운 앨범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산타나는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는 에너지로 팬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