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

조선업, 방위산업, 해양 에너지 솔루션, 선박 제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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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방위산업, 해양 에너지 솔루션, 선박 제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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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옥포만의 황무지에서 시작된 한화오션의 역사는 대한민국 중공업의 부흥과 시련, 그리고 극적인 재도약을 상징하는 대서사시입니다. 1973년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로 첫 삽을 뜬 이래, 대우그룹을 거쳐 대우조선해양(DSME)으로 독립하며 LNG 운반선과 잠수함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과시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분식회계라는 거센 파고를 넘어야 했지만, 2023년 한화그룹의 일원이 되어 '한화오션'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이제는 초격차 방산 기술과 친환경 에너지 솔루션을 결합하여 바다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글로벌 ‘오션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진화하며 미래 100년을 향한 대항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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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

[옥포조선소 기공식]

경남 거제군 아주리 옥포만에서 대한민국 조선 산업의 미래를 열 거대 조선소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국가 차원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기획된 역사적 출발이었습니다.

대한조선공사가 주도하여 동양 최대 규모의 조선소 건설을 목표로 첫 삽을 떴습니다.
당시 옥포만은 수심이 깊고 잔잔하여 대형 선박 건조에 최적의 입지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기공식은 훗날 세계 조선 시장을 호령하게 될 거대 야드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었습니다.

1974

[부지 조성 공사 본격화]

거친 해안선을 깎고 바다를 메워 거대한 선박 제작이 가능한 산업 기지를 만드는 토목 공사가 본격화되었습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지형 개조를 통해 조선소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현대적 중장비가 대거 투입되어 아주리 일대의 지형을 선박 건조에 최적화된 평지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국가 기간산업 확충을 위해 수많은 근로자가 밤낮없이 건설 현장에 매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토목 기술은 향후 조선소 확장 및 시설 보강의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1975

[1번 드라이도크 굴착]

조선소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드라이도크 굴착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대형 선박을 여러 척 동시에 지을 수 있는 거대한 웅덩이를 파내는 공정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규모의 설계를 통해 미래 초대형 선박 시장 선점을 노렸습니다.
단단한 암반층을 뚫고 정밀한 바닥 수평을 맞추는 고난도의 엔지니어링 기술이 동원되었습니다.
이 도크는 훗날 대우조선의 압도적인 생산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경쟁력이 되었습니다.

1977

[건설 자금난 발생]

조선 경기 불황과 막대한 건설 비용으로 인해 대한조선공사가 자금 압박을 받으며 조선소 건설이 위기를 맞았습니다. 국가 프로젝트의 중단 우려가 커지던 시기였습니다.

국제 조선 시황의 악화로 인해 외자 유치와 국내 자금 조달에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정부는 미완공된 조선소의 정상화를 위해 새로운 주인을 찾는 중대한 결단을 검토했습니다.
이 시기의 불확실성은 훗날 대우그룹이라는 강력한 추진체를 만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1978

[대우조선공업 공식 출범]

대우그룹이 옥포조선소를 인수하며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가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김우중 회장의 지휘 아래 부실했던 조선소가 그룹의 핵심으로 부상했습니다.

정부의 권유와 대우의 결단으로 조선소 건설은 새로운 동력을 얻어 비약적으로 빨라졌습니다.
대우건설 등 그룹 계열사의 역량이 총동원되어 설비 현대화와 공정 개선이 이뤄졌습니다.
'대우맨' 특유의 추진력이 조선업에 이식되며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79

[초대형 유조선 첫 수주]

공장이 채 완공되기도 전에 해외 선주로부터 초대형 유조선(VLCC) 수주에 성공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대우의 글로벌 영업망이 만들어낸 승리였습니다.

시설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완벽한 건조 이행과 품질을 약속하며 선주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수주를 통해 확보된 자금은 야드 건설과 전문 인력 양성에 다시 집중적으로 투입되었습니다.
해외 시장에 대우조선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깊게 각인시키는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1980

[1번 도크 공식 가동]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도크인 1번 도크가 가동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선박 건조 시대를 열었습니다. 옥포 야드의 생산 효율이 극대화되는 시점이었습니다.

거대한 블록들이 도크 안에서 조립되며 웅장한 선박의 형상이 갖춰지기 시작했습니다.
첨단 주수 및 배수 시스템을 통해 선박 진수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습니다.
이 도크는 현재까지도 한화오션의 주력 건조 시설로서 수많은 전설을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1981

[옥포조선소 종합 준공]

착공 8년 만에 세계적 수준의 설비를 완비한 옥포조선소가 화려하게 준공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조선업이 세계 무대의 주역으로 우뚝 섰음을 공식 선포했습니다.

준공식에는 국가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여 한국 중공업의 위대한 승리를 축하했습니다.
초대형 골리앗 크레인과 자동화 가공 라인이 한곳에 집약된 최첨단 야드가 완성되었습니다.
이날 이후 옥포는 365일 24시간 꺼지지 않는 불꽃과 함께 세계 바다를 향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1982

[1호 선박 바우 파이오니어 인도]

조선소 준공 이후 처음으로 제작된 선박이 성공적으로 선주에게 인도되었습니다. 도면상의 설계가 실제 거대한 배로 구현되어 바다에 뜬 첫 번째 결실이었습니다.

노르웨이 선주로부터 인도받은 이 선박은 철저한 품질 관리를 통해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현장 근로자들의 기술력이 세계 수준임을 실전에서 처음으로 입증한 사례였습니다.
1호선 인도를 시작으로 대우조선공업의 건조 스케줄은 쉴 틈 없이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1983

[반잠수식 시추선 건조]

일반 상선을 넘어 해양 에너지 개발을 위한 시추선 제작에 성공하며 기술력을 과시했습니다. 고부가가치 해양 플랜트 시장으로의 확장을 공식화했습니다.

미국 오데코(ODECO) 사의 프로젝트를 수주하여 가혹한 환경을 견디는 구조물을 완성했습니다.
정밀한 위치 제어와 복잡한 시스템 통합 기술을 확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훗날 대우조선이 해양 사업 분야에서 글로벌 강자로 도약하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수출 5억불탑 수상]

선박 수출을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수출 5억불탑을 수상했습니다. 대한민국 외환 확보의 중추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공장 가동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시장을 휩쓸며 막대한 실적을 쌓았습니다.
수출 중심의 경영 전략이 성공하며 국가적 효자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조선업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핵심 산업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 영광의 순간이었습니다.

1984

[케미컬 운반선 시장 진출]

고도의 내부 부식 방지 기술이 요구되는 화학제품 운반선 건조에 성공했습니다. 특수 화물 수송 분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며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특수 코팅과 정밀 파이프 시스템 설계 능력을 국산화하여 적용했습니다.
까다로운 유럽 선주들의 요구 사양을 완벽히 충족하며 엔지니어링 역량을 뽐냈습니다.
수익성이 높은 특수선 시장에서 대우조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시기였습니다.

[정밀 기술 연구소 설립]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해 전담 연구 조직을 설립하고 항공우주급 정밀 기술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기술 자립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경영진의 의지가 반영되었습니다.

선형 최적화와 에너지 절감형 추진 장치 등 독자적인 지적 재산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우수한 연구 인력들을 대거 영입하여 글로벌 기술 트렌드를 선도하고자 했습니다.
이때의 R&D 투자는 훗날 LNG선 시장을 석권하는 강력한 기술적 무기가 되었습니다.

1985

[해상 생산 설비 인도]

바다 위의 정유 공장이라 불리는 대규모 해상 생산 설비를 성공적으로 제작하여 인도했습니다. 해양 구조물 제작 분야에서 글로벌 메이저 파트너로 부상했습니다.

수만 톤에 달하는 구조물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조립하여 전 세계 오일 메이저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대형 프로젝트 관리 능력과 안전 시스템 운용 능력을 동시에 입증했습니다.
조선업을 넘어 해양 에너지 서비스 기업으로 가는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1987

[국산 잠수함 건조 착수]

대한민국 해군의 장보고급 잠수함 건조를 위해 독일과의 기술 협력을 맺고 본격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바다 밑 전략 병기를 우리 손으로 만드는 역사적 사명이었습니다.

잠수함 설계 기술을 완벽히 이식받아 국내 최초의 건조 공정을 수립했습니다.
수중 소음 제어와 내압 선체 용접 등 최고 수준의 극비 기술들이 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이 사업은 한화오션이 전 세계가 인정하는 '잠수함 명가'가 되는 결정적인 시발점이었습니다.

1988

[노사분규의 시련]

민주화 열풍과 함께 거세진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요구로 인해 장기 파업과 조업 중단 사태를 겪었습니다. 기업 존립을 위협하는 거센 내부 파고를 맞이했습니다.

노사 간의 격렬한 대립 속에서 기업 경영이 마비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고통스러운 학습이 되었습니다.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노사 화합이 필수적임을 깨닫게 된 중대한 시기였습니다.

1989

[희망경영 노사공동선언]

노사가 기업 살리기를 위해 극적인 대타협을 이루고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위기 속에서 임직원 모두가 하나로 뭉치는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했습니다.

김우중 회장이 직접 현장에 머물며 근로자들을 설득하고 파격적인 처우 개선을 약속했습니다.
'우리 회사는 우리가 지킨다'는 슬로건 아래 생산성 향상 캠페인이 전개되었습니다.
이 화합을 발판으로 대우조선은 놀라운 결속력을 보이며 경영 정상화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1991

[첫 국산 잠수함 이천함 진수]

옥포조선소에서 제작된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 잠수함 '이천함'이 당당히 물에 떴습니다. 자주국방을 향한 우리 해군과 기술진의 눈물겨운 결실이었습니다.

설계도를 직접 그려보며 조립한 첫 번째 잠수함으로 대한민국 국방사에 획을 그었습니다.
수중 작전 능력이 탁월한 비대칭 전력을 독자 생산함으로써 해군력을 강화했습니다.
잠수함 보유국이자 건조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며 국가적 자부심을 고취했습니다.

1992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수주]

글로벌 물류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 계약을 연이어 따냈습니다. 선박의 대형화 추세를 주도하며 시장의 지배력을 강화했습니다.

한 번에 수천 개의 컨테이너를 싣고 바다를 건너는 거대 선박의 효율적인 설계를 완성했습니다.
정밀한 블록 조립 공법을 통해 건조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여 선주를 만족시켰습니다.
유조선뿐만 아니라 컨테이너선 분야에서도 대우조선의 이름이 최고로 꼽히기 시작했습니다.

1993

[수출 10억불탑 수상]

5억불탑 수상 이후 단기간에 수출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대한민국 경제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글로벌 '대우'의 저력이 조선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전 세계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모든 종류의 선박을 옥포에서 만들어 보냈습니다.
국가 무역 수지 개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정밀 기계 강국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끊임없는 시장 개척과 영업 혁신이 만들어낸 값진 훈장이었습니다.

1994

[대우중공업 흡수 합병]

대우그룹 내 시너지를 위해 대우조선공업이 대우중공업으로 흡수 통합되었습니다. 조선, 건설기계, 철도차량을 아우르는 거대 중공업 법인이 탄생했습니다.

그룹 차원의 자원 배분과 기술 공유를 통해 해양 프로젝트 수주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옥포조선소는 대우중공업 조선해양사업본부로 명칭이 바뀌어 운영되었습니다.
이 시기 대우중공업은 대한민국 기계 산업의 상징이자 글로벌 경영의 핵심 전초 기지였습니다.

1995

[LNG 운반선 첫 수주 성공]

미래 에너지 시장의 꽃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건조 계약을 처음으로 성사시켰습니다. 가스 운반선 분야 기술 독립을 향한 위대한 첫걸음이었습니다.

영하 163도의 극저온을 견디는 특수 화물창 제작 기술 연구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기존 일본과 유럽이 독점하던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전략적 승부수였습니다.
훗날 한화오션이 전 세계 LNG선 시장을 평정하게 되는 영광의 시발점이었습니다.

1996

[통합 안전 관리 시스템 도입]

조선소 내 무재해 달성을 위해 인공지능과 데이터 기반의 통합 안전 관리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사람이 먼저인 따뜻한 중공업 현장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작업 현장의 위험 요소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예방하는 하이테크 솔루션을 적용했습니다.
안전 교육을 강화하고 개인 보호구 보급을 혁신하여 사고율을 대폭 낮췄습니다.
글로벌 선주사들이 야드 방문 시 가장 감명 깊게 보는 대우조선만의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1997

[국가적 외환위기 발생]

IMF 외환위기가 대한민국을 강타하며 대우그룹 전체가 경영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조선업 특성상 달러 결제 비중이 높아 환율 변동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수주 잔고는 넘쳐났으나 금융권의 자금 회수와 모그룹의 유동성 문제로 고통받았습니다.
하지만 임직원들은 현장에서 묵묵히 용접 불꽃을 튀기며 기업의 생존을 지켜냈습니다.
이 시기의 인내는 훗날 대우그룹 해체라는 대격변 속에서도 살아남는 저력이 되었습니다.

1998

[구축함 양만춘함 진수]

우리 해군의 주력 구축함인 양만춘함을 성공적으로 건조하여 대양 해군의 꿈을 앞당겼습니다. 수상함 제작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기술력을 재확인했습니다.

최첨단 레이더와 미사일 시스템을 선체에 완벽히 통합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방위산업 강국으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해상 전력을 한 차원 높였습니다.
잠수함에 이어 구축함까지 석권하며 종합 방산 조선소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1999

[대우그룹 해체 및 워크아웃]

거대 재벌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조선 부문도 채권단 주도의 워크아웃 절차에 돌입했습니다. 주인 없는 배가 된 대우조선은 독자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인력을 효율화하는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단행되었습니다.
임직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임금을 반납하고 생산성에 몰두했습니다.
기술 경쟁력은 여전히 세계 최고였기에 채권단은 기업의 회생 가능성을 높게 보았습니다.

2000

[대우조선해양 독립 법인 출범]

대우중공업에서 인적 분할되어 대우조선해양(DSME)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오직 바다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전문 조선 기업으로서의 선포였습니다.

초대 대표이사로 정성립 사장이 취임하여 책임 경영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로고를 새롭게 정비하고 글로벌 선주들과의 독자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모그룹의 리스크를 털어내고 오직 실력으로 시장의 냉정한 평가를 받기 시작한 날입니다.

2001

[증권거래소 재상장]

독립 법인으로서 주식 시장에 상장되며 기업 가치를 대외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투명한 경영 구조를 통해 투자자들의 신뢰를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상장 직후 조선업 호황기 진입과 맞물려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확보된 자본은 친환경 선박 연구와 스마트 설비 확충에 집중 투입되었습니다.
워크아웃 중에도 시장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였습니다.

[워크아웃 조기 졸업]

당초 계획보다 1년 이상 앞당겨 경영 정상화를 이루고 워크아웃을 공식 졸업했습니다. 기록적인 수주 성과와 경영 효율화가 만든 기적 같은 드라마였습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대우조선의 독자 생존 능력을 전격 승인했습니다.
전 세계 조선소 중 가장 모범적인 회생 사례로 꼽히며 하버드에서도 주목받았습니다.
이날 이후 대우조선해양은 10년이 넘는 장기 번영의 시대로 힘차게 진입했습니다.

2002

[세계 최대 FPSO 수주 쾌거]

바다 위의 정유 공장이라 불리는 부유식 생산 저장 설비 수주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단일 계약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기록하며 해양 강자로 부상했습니다.

수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고난도 시스템 통합 기술을 과시했습니다.
수천 명의 설계 인력이 투입되어 복잡한 공정과 안전 설계를 완벽히 구현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인도는 대우조선을 단순 조선소에서 해양 솔루션 기업으로 격상시켰습니다.

2003

[선박 건조 누계 500척 달성]

옥포 야드 가동 이후 누적 선박 인도 대수가 500척을 돌파하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전 세계 바다 곳곳을 누비는 대우의 기술력을 숫자로 증명했습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지속적인 공법 혁신과 자동화 투자가 빛을 본 성과였습니다.
인도된 선박들의 뛰어난 연비와 안정성이 입소문을 타며 재발주가 이어졌습니다.
대한민국 조선 산업의 압도적 위상을 실감케 한 기념비적 수치였습니다.

2004

[LNG선 수주 세계 1위]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LNG 운반선 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점유율을 기록했습니다. 고부가가치 선종을 중심으로 수익 구조를 완벽히 재편했습니다.

독보적인 화물창 단열 기술을 통해 가스 증발률을 세계 최저 수준으로 낮췄습니다.
'LNG선 하면 대우조선'이라는 공식이 글로벌 해운 업계에 각인된 시기였습니다.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효자 품목으로서 회사의 성장을 견인했습니다.

2005

[세계 최초 LNG-RV 개발 성공]

바다 위에서 LNG를 직접 기화시켜 육상으로 공급하는 재기화 선박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습니다. 에너지 수송과 공급의 역사를 바꾼 혁신적 성취였습니다.

육상 터미널 없이도 가스를 공급할 수 있어 섬나라 등지에서 혁명적 반응을 얻었습니다.
가스 기화 설비 제작 기술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입지를 다졌습니다.
이 기술은 현재 한화오션이 추진하는 미래 친환경 에너지 솔루션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2006

[수주 잔량 세계 1위 등극]

전 세계 조선소 중 가장 많은 일감을 확보하며 수주 잔량 기준 세계 최강자에 올랐습니다. 옥포 조선소의 야드가 빈틈없이 가동되던 영광의 시기였습니다.

안정적인 향후 4년 치 일감을 확보하며 경영의 가시성을 최고조로 높였습니다.
글로벌 오일 메이저들이 발주를 위해 옥포를 직접 찾아오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대한민국 조선 산업의 전성기를 이끄는 선두 주자로서 자부심을 드높였습니다.

2007

[인재 개발원 신설]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 대규모 교육 시설인 인재 개발원을 열고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사람이 곧 경쟁력이라는 철학의 실천이었습니다.

현장 기술직부터 경영 지원 인력까지 아우르는 맞춤형 직무 교육을 시행했습니다.
글로벌 리더십 교육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활약할 엔지니어들을 육성했습니다.
기업의 백년지대계를 준비하며 내부 역량을 탄탄히 다지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2008

[한화그룹 1차 인수 시도]

산업은행의 매각 발표에 따라 한화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어 인수가 추진되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최종 합의에는 실패했습니다.

한화는 방산 사업의 시너지를 위해 강력한 의지를 보였으나 자금 여건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보증금 반환을 둘러싼 장기적인 법정 공방이 시작되며 인수가 무산되었습니다.
결국 대우조선은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인 없는 경영 체제를 더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2009

[쇄빙 기술 연구소 발족]

지구 온난화로 열리게 될 북극 항로를 선점하기 위해 쇄빙 선박 원천 기술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미래의 틈새 시장을 파고든 혜안이 담긴 투자였습니다.

두꺼운 얼음을 깨며 항해할 수 있는 특수 선수부 설계와 추진 장치 연구에 집중했습니다.
수천 번의 모델 테스트를 거쳐 극한의 환경을 견디는 최적의 선형을 찾아냈습니다.
이 연구는 훗날 세계 최초 쇄빙 LNG선 수주라는 경이로운 실적으로 돌아왔습니다.

2010

[풍력 발전 시범 운영]

미국 풍력 업체 드윈트를 인수하며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조선 기술을 육상 및 해상 풍력 인프라로 확장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미국 현지에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고 상업 운전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했습니다.
탄소 중립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고 사업 다각화를 시도한 선제적 행보였습니다.
비록 초기 단계였으나 종합 중공업 그룹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전이었습니다.

2011

[인도네시아 잠수함 수출 성공]

인도네시아와 잠수함 3척에 대한 대규모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대한민국을 세계 5번째 잠수함 수출국으로 올렸습니다. 방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단순 제품 판매를 넘어 기술 전수와 현지 생산 협력을 포함한 패키지 딜을 성사시켰습니다.
독일 등 전통의 강국을 제치고 수주에 성공하여 전 세계 조선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한화오션 방산 역량의 글로벌 표준을 확립하고 동남아 시장의 핵심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2012

[영국 군수지원함 수주]

방산 종주국인 영국의 국방부로부터 대형 군수지원함 4척을 수주하는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선진 해군 시장에 국산 함정을 역수출하는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영국 해군의 까다로운 작전 성능과 안전 기준을 완벽히 충족하는 설계를 제안했습니다.
유럽 시장에서 한국 방산 제품의 위상과 신뢰도를 비약적으로 높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건조뿐만 아니라 사후 유지 보수 서비스까지 포함된 통합 패키지를 제공했습니다.

2013

[옥포가족 30주년 기념]

임직원과 거제 시민의 소통 창구인 사보 '옥포가족'이 창간 30주년을 맞았습니다.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해온 대우조선의 발자취를 기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조선소 현장의 생생한 소식과 근로자들의 삶을 기록하며 유대감을 강화해왔습니다.
지역 내 소외 계층을 위한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노사 화합을 넘어 기업과 도시가 공생하는 모범적인 모델을 보여주었습니다.

2014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인도]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인 18,000 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성공적으로 인도했습니다. 바다 위의 거대한 빌딩이라 불리며 물류 혁명을 주도했습니다.

압도적인 적재 용량에도 불구하고 최신 연비 절감 기술을 적용해 경제성을 높였습니다.
글로벌 해운사들의 대량 발주를 유도하는 쇼케이스 기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생산 공정을 정교하게 조율하여 사상 최단 기간 건조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2015

[대규모 부실 발생 및 위기]

수조 원대에 달하는 해양 플랜트 손실이 한꺼번에 드러나며 창사 이래 최대의 경영 위기를 맞았습니다. 장부상의 흑자가 실제로는 거액의 적자였음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습니다.

해양 프로젝트의 공기 지연과 저가 수주가 겹치며 부실의 고리가 깊어졌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경영진에 대한 전면 교체와 함께 대대적인 회계 정정 및 수사 절차가 진행되었습니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도산을 막기 위해 4조 원이 넘는 긴급 유동성 지원을 결정했습니다.

2016

[생존을 위한 자구안 실행]

기업 해체를 막기 위해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인력을 대폭 감축하는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임직원들은 임금을 반납하며 회사를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서울 본사 사옥을 매각하고 해외 법인들을 대거 정리하여 현금을 확보했습니다.
정든 동료들을 떠나보내는 아픔 속에서도 옥포 야드의 가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직 기술력 하나로 신뢰를 회복하여 다시 일어서겠다는 절박한 투쟁의 시기였습니다.

2017

[세계 최초 쇄빙 LNG선 인도]

수년간 준비해온 꿈의 선박 쇄빙 LNG 운반선을 성공적으로 건조하여 북극해로 떠나보냈습니다. 얼음을 뚫고 가스를 나르는 기적을 현실로 만든 기술의 승리였습니다.

두께 2.1미터의 얼음을 깨며 자력 항해할 수 있는 특수 설계가 적용되었습니다.
러시아 야말 프로젝트의 핵심 선박으로서 전 세계 에너지 업계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기술력만큼은 세계 1위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며 반등의 신호를 쐈습니다.

2018

[도산안창호함 성공적 진수]

국내 독자 기술로 설계하고 건조한 3,000톤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을 대중 앞에 선보였습니다. 잠수함 건조 기술의 완전한 자립화를 선언한 역사적 쾌거였습니다.

수직 발사관을 갖추어 강력한 보복 타격 능력을 보유한 전략급 무기체계입니다.
연료전지 시스템을 탑재해 수중 잠항 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린 최첨단 사양입니다.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잠수함 설계 강국으로 등극했음을 알린 선포식이었습니다.

2019

[현대중공업과의 합병 발표]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그룹에 매각하기로 하며 대형 조선 빅딜이 시작되었습니다. 국내 조선 산업의 과당 경쟁을 막기 위한 국가 차원의 고육책이었습니다.

거제 지역 사회와 노조는 독점 우려와 대규모 인력 감축 가능성 때문에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전 세계 조선 시장을 독식할 매머드급 기업의 탄생을 두고 외신들의 분석이 쏟아졌습니다.
이 합병안은 유럽연합 등 주요국의 기업결합 심사라는 험난한 파고를 마주했습니다.

2020

[디지털 트윈 스마트 야드]

가상 세계에 실제 조선소를 그대로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공법을 생산 라인에 본격 도입했습니다. 데이터 기반의 정밀 공정 관리를 통해 생산 효율을 혁신했습니다.

시운전 센터를 통해 실제 항해 없이도 가상 환경에서 선박 성능을 사전 테스트했습니다.
공정 지연 리스크를 AI가 미리 예측하여 관리하는 스마트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안착시켰습니다.
어려운 경영 여건 속에서도 미래 경쟁력을 위한 디지털 투자는 멈추지 않았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21

[카타르 LNG 대규모 예약]

카타르 국영 석유 회사로부터 대규모 LNG 운반선 건조 슬롯을 확보하며 사상 최대 물량을 예약받았습니다. 향후 수년 치의 안정적인 일감을 한꺼번에 확보한 쾌거였습니다.

전 세계적인 친환경 에너지 수요 증가와 맞물려 LNG선 명가의 위상을 재확인했습니다.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함으로써 경영 정상화의 가장 든든한 실탄을 마련했습니다.
품질과 납기 면에서 옥포 야드가 보여준 압도적인 신뢰가 만들어낸 장기 계약이었습니다.

2022

[현대중공업 합병 무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독점 우려를 이유로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의 합병을 공식 불허했습니다. 3년간 끌어온 조선 빅딜이 실패로 끝나며 새로운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LNG선 시장 점유율이 너무 높아져 자유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는 논리가 작용했습니다.
합병 무산으로 대우조선은 다시 산업은행 품에서 장기 표류할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시련은 훗날 한화그룹이라는 더 강력한 지원군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옥포 야드 파업 사태]

하청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1번 도크를 점거하는 초유의 파업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조선소의 심장이 멈춰 서며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사회적 파장을 낳았습니다.

비좁은 철창 안에 몸을 가둔 노동자의 모습은 조선업 하청 구조의 모순을 알렸습니다.
정부의 공권력 투입 검토 등 극한 대치 상황 끝에 노사 협상으로 극적 타결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대우조선의 근본적인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더욱 키웠습니다.

[한화그룹 인수 전격 발표]

한화그룹이 2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대우조선해양을 전격 인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4년 만에 다시 찾아온 주인을 반기며 거제도 전체가 희망으로 들썩였습니다.

육상 및 우주 방산의 강자 한화가 바다의 방산까지 품으며 통합 시너지를 예고했습니다.
조건부 인수 계약 방식을 통해 신속하고 투명하게 매각 절차가 진행되었습니다.
고질적인 자본 문제를 해결하고 안정적인 경영 주체를 맞이하는 역사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2023

[한화오션 공식 출범]

대우조선해양이 사명을 한화오션으로 바꾸고 한화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새출발했습니다. 옥포 조선소에는 대우의 파란색 대신 한화의 오렌지색 깃발이 올랐습니다.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권혁웅 부회장을 초대 대표이사로 선임하며 혁신을 예고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바다'를 위한 초격차 기술 중심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밝혔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과 연계한 육해공 통합 방산 체계가 마침내 완성되었습니다.

[글로벌 비전 2030 발표]

출범 100일을 맞아 2030년까지 매출 30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구체적인 성장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단순 조선업을 넘어 에너지와 방산을 아우르는 솔루션 기업임을 명시했습니다.

친환경 연료 추진선과 자율운항 기술에 수조 원 규모의 선제적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해상 풍력 발전 사업 진출을 통해 신재생 에너지 인프라 구축의 선봉에 서기로 했습니다.
우수 인재를 공격적으로 영입하고 거제와 판교의 R&D 네트워크를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1.5조원 유상증자 성공]

기술 투자 실탄 확보를 위한 대규모 유상증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습니다. 주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미래 성장을 위한 강력한 추진력을 확보했습니다.

확보된 자금은 해외 거점 방산 시설 인수와 무탄소 추진 체계 개발에 집중 사용되었습니다.
한화그룹의 책임 경영 의지를 확인시켜준 동시에 재무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했습니다.
조선업계에서 가장 탄탄한 현금 동원력을 가진 기업 중 하나로 올라섰습니다.

2024

[함정 MRO 전담 조직 강화]

배를 짓는 것에서 나아가 유지, 보수, 정비(MRO)를 전문으로 하는 독자 조직을 확대 개편했습니다. 글로벌 함정 서비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미국 해군 함정의 정비 물량 유치를 목표로 국제 기준에 맞는 프로세스를 정립했습니다.
해외 현지 거점을 활용한 글로벌 정비 네트워크 구축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행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로서 서비스 사업의 비중을 대폭 늘려가는 조치였습니다.

[미국 필리 조선소 인수]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 조선소를 인수하며 미국 본토 진출의 역사적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국내 조선사 중 최초로 미국 현지 야드를 확보한 쾌거였습니다.

미국의 자국 선박 보호법인 존스법 장벽을 넘어 현지 건조 및 정비가 가능해졌습니다.
미 해군 함정 사업 참여를 위한 가장 강력한 전초 기지를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글로벌 경영의 지평을 바다 위에서도 본격적으로 넓힌 한화의 승부수였습니다.

[미 해군 함정 MRO 첫 수주]

대한민국 조선소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해군의 군수지원함 정비 사업을 따냈습니다. 우리 정비 기술력이 미국 국방부로부터 공식 인정받은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미 7함대 소속 선박이 옥포 조선소로 직접 들어와 정밀 정비를 받는 파격적 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이 수주는 향후 수십 조 원 규모의 미국 함정 정비 시장 진입을 위한 첫 번째 마스터키가 되었습니다.
K-방산의 신뢰가 무기 판매를 넘어 후속 관리 서비스 영역까지 확장된 기념비적 사례입니다.

[AI 용접 로봇 전면 배치]

숙련공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능형 자동 용접 로봇을 현장에 대대적으로 도입했습니다. 노동 집약적인 조선소를 하이테크 제조 공장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딥러닝 기술을 통해 복잡한 곡면 블록까지 완벽하게 용접하는 정밀도를 구현했습니다.
작업자의 안전을 보호하고 불량률을 제로에 가깝게 낮추는 스마트 공정 혁신을 이뤘습니다.
전 세계 조선소 중 가장 진보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사례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탄소 제로 암모니아 추진선 검증]

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암모니아 추진 기술을 대형 선박에 적용하기 위한 실증 작업을 마쳤습니다. 바다 위 탄소 중립을 이끄는 퍼스트 무버로서의 의지였습니다.

환경 규제 강화에 맞춰 무탄소 연료 공급 시스템 기술을 선제적으로 독점 확보했습니다.
탄소 포집 및 저장 장치를 탑재한 선박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며 미래 해양 시장을 선점했습니다.
지구 해양 생태계 보호를 기업의 핵심 가치로 삼아 지속 가능한 경영을 실천 중입니다.

2025

[글로벌 오션 파트너 선언]

새해를 맞아 전 세계 오대양 육대주를 연결하는 통합 해양 솔루션 제공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습니다. 조선 기술에 에너지를 더한 새로운 차원의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해상 풍력 발전소 건설과 유지를 통합한 신개념 비즈니스 모델을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화그룹 계열사들과의 완벽한 협업을 통해 독보적인 에너지 밸류체인을 완성했습니다.
옥포의 백사장에서 시작된 꿈은 이제 전 세계를 하나로 잇는 거대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2026

[차세대 엔지니어 아카데미 확대]

자율운항과 무인 기술을 이끌 차세대 인재 육성을 위해 사내 교육 전문 기구를 확장 개편했습니다. 사람이 곧 기업의 핵심 기술이라는 철학을 더욱 굳건히 실천 중입니다.

국내외 우수 대학과 연계하여 실무 중심의 선박 엔지니어링 과정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걸맞은 소프트웨어 역량을 갖춘 조립 전문가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조선 산업의 백년지대계를 준비하며 기술 한화의 자부심을 바다에서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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