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규 (농구 선수)
농구 선수, 국가대표, 센터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3- 11:56:39
김종규는 21세기 대한민국 농구를 상징하는 독보적인 센터이자, 압도적인 탄력과 기동력을 겸비한 '빅맨'의 표본입니다. 경희대학교 시절 '경희대 3인방'으로서 대학 농구의 황금기를 이끌며 전무후무한 연승 기록을 세웠고, 2013년 KBL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되며 프로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을 통해 국위선양에 기여했으며, 2019년 당시 역대 최고액인 12억 7,900만 원의 보수액을 기록하며 원주 DB 프로미로 이적하여 리그의 판도를 바꿨습니다. 영리한 수비 지능과 지치지 않는 기동력을 바탕으로 베스트 5와 수비 5걸을 휩쓴 그는, 2026년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과 K리그를 대표하는 대체 불가능한 기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1991
어린 시절부터 또래보다 유독 큰 체격 조건을 갖추어 운동선수로서의 잠재력을 보였습니다.
성남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농구를 접하게 되었고 초등학교 시절 본격적으로 농구공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훗날 대한민국 농구의 골밑을 책임질 대형 센터가 탄생하는 서막이었습니다.
2004
초등학교 시절 농구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지역 내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큰 키를 바탕으로 한 리바운드와 득점력은 이미 동년배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농구 명문 중학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다음 단계로 진학했습니다.
2007
중학교 시절 급격한 신체 성장과 함께 수비 및 블록슛 능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팀의 주축으로서 전국 대회의 상위권 입상을 주도하며 유망주 랭킹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기본기가 탄탄한 빅맨으로 성장하며 고교 농구계의 대어로 평가받기 시작했습니다.
2010
고교 시절 강력한 탄력을 바탕으로 한 호쾌한 덩크슛과 골밑 장악력을 선보이며 전미 농구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낙생고를 전국 대회 강팀으로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수집했습니다.
당시 대학 농구 최고의 대어로 손꼽히며 김민구, 두경민과 함께 경희대학교 진학을 확정 지었습니다.
김민구, 두경민과 함께 입학하며 만년 중위권이었던 경희대를 단숨에 최강팀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신입생 시절부터 주전 센터 자리를 꿰차며 대학 농구의 골밑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최부영 감독의 지도 아래 기동력 있는 센터로서의 완성도를 높이는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쳤습니다.
2011
대학 무대에서 김종규를 막을 수 있는 센터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매 경기 압도적인 기록을 쏟아냈습니다.
이 우승은 경희대 농구부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기록적인 성과로 남았습니다.
김종규는 이 활약을 바탕으로 대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성인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세계 각국의 유망주들을 상대로 자신의 탄력과 기동력이 국제 무대에서도 통함을 입증했습니다.
국제 대회를 통해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으며 고난도의 리바운드 기술을 실전에 접목했습니다.
이 대회에서의 활약은 그가 단순한 국내용 선수가 아님을 증명한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FIBA 아시아선수권대회 3위 기여]
성인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값진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막내 센터로서 선배 하승진 등을 보좌하며 중요한 순간마다 귀중한 블록슛과 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이 시리아, 필리핀 등 강호를 꺾고 3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알토란 같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아시아 수준의 강력한 신체 접촉을 경험하며 성인 무대용 빅맨으로 한 단계 진화했습니다.
2012
경희대학교의 리그 2연패를 주도하며 공수 양면에서 완벽한 지표를 기록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블록슛과 리바운드뿐만 아니라 속공 상황에서의 마무리 능력까지 겸비한 완성형 센터로 공인받았습니다.
이 수상으로 김종규는 대학 무대를 좁게 만드는 '괴물'이라는 평가를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2013
중국과의 개막전에서 이젠롄 등 NBA 출신 센터들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기량을 선보여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결정적인 덩크슛과 빠른 기동력으로 한국의 '양궁 농구'를 완성하는 최후방 보루 역할을 했습니다.
필리핀전 등 패배의 위기 속에서도 묵묵히 골밑을 지키며 대한민국 농구의 자존심을 세웠습니다.
[KBL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
창원 LG 세이커스에 의해 전체 1순위로 지명되며 프로 무대에 화려하게 입성했습니다.
드래프트 전부터 '김종규를 뽑는 팀이 즉시 우승 후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가치를 지녔습니다.
LG 세이커스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보물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대적인 환영 행사를 열었습니다.
김종규는 지명 직후 소감에서 겸손하면서도 당찬 포부를 밝히며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국가대표 일정을 마치고 곧바로 합류하여 신인답지 않은 노련한 경기 운영을 보여주었습니다.
첫 경기부터 선발 출전하여 골밑을 장악했으며, LG 팬들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습니다.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하며 연착륙에 성공했습니다.
자유투 라인 근처에서 도약하는 체공 능력과 강력한 파워로 심사위원과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역대급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단순한 선수를 넘어 농구계의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질도 뽐냈습니다.
이 수상으로 김종규라는 브랜드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2014
평균 10.7득점, 5.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LG 세이커스의 정규리그 1위 달성에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전체 1순위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완벽한 데뷔 시즌을 보내며 차세대 한국 농구의 간판임을 공인받았습니다.
시상식에서 그는 동료들과 코칭스태프에게 영광을 돌리는 성숙한 자세를 보였습니다.
[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
결승전에서 이란을 극적으로 꺾고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민적 영웅이 되었습니다.
아시아 최강 센터 하다디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투혼을 발휘하며 골밑을 사수했습니다.
금메달 획득을 통해 병역 특례 혜택을 받게 되어 커리어의 연속성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농구가 12년 만에 아시안 게임 정상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가장 빛나는 주역 중 한 명이었습니다.
2015
실력뿐만 아니라 수려한 외모와 팬 서비스로 많은 농구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코트 위에서의 열정적인 플레이가 팬들의 투표 참여로 이어지며 리그 최고의 스타성을 입증했습니다.
이후 김종규는 매년 올스타전에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며 리그의 얼굴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16
빅맨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부상을 철저한 재활을 통해 극복하며 강인한 멘탈을 보여주었습니다.
복귀 후 예전보다 더욱 정교해진 미들슛 능력을 선보이며 공격 범위를 넓혔습니다.
팀의 위기 상황에서 조기에 복귀하여 플레이오프 경쟁에 큰 힘을 보탰습니다.
2017
한국 특유의 조직력 농구에서 골밑을 지탱하는 버팀목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특히 높이가 강점인 중동 국가들을 상대로 영리한 리바운드와 수비를 선보였습니다.
대회 기간 내내 대표팀 내에서 가장 많은 출전 시간을 소화하며 헌신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2018
매 경기 더블더블급 활약을 펼치며 창원 홈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어린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로서 코트 안팎에서 모범적인 프로 정신을 실천했습니다.
LG 세이커스 역대 최다 리바운드 기록들을 하나씩 갈아치우며 전설로 남을 기록을 쌓았습니다.
2019
[원주 DB 프로미 전격 이적]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원주 DB 프로미와 역대 최고액 계약을 맺고 팀을 옮겼습니다.
보수 총액 12억 7,900만 원이라는 농구 역사상 유례없는 기록으로 KBL 전체를 놀라게 했습니다.
LG에서의 오랜 생활을 뒤로하고 우승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위해 원주행을 택했습니다.
이 이적은 KBL의 전력 판도를 단번에 바꾸는 '메가톤급'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 러시아 등 세계 최강팀들을 상대로 한국의 빅맨으로서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부상 위험을 무릅쓰고 매 경기 몸을 던지는 수비로 외신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비록 팀 성적은 아쉬웠으나 김종규 개인에게는 세계 무대의 벽을 직접 체감하고 성장하는 계기였습니다.
2020
[원주 DB 정규리그 1위 견인]
이적 첫 시즌 만에 팀을 정규리그 공동 1위로 올려놓으며 '김종규 효과'를 입증했습니다.
치나누 오누아쿠와 함께 강력한 '트윈 타워'를 형성하여 철벽 수비진을 구축했습니다.
이적료 논란을 실력으로 잠재우며 팀 내 최고의 에이스이자 승부사임을 증명했습니다.
코로나19로 시즌이 조기 종료되는 아쉬움 속에서도 DB 팬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공격과 수비 모든 지표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리그 넘버원 센터로 공인받았습니다.
수많은 전문가와 기자단으로부터 압도적인 득표를 얻으며 상징성을 더했습니다.
자신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며 원주 DB의 중심으로 완전히 뿌리내렸습니다.
[KBL 수비 5걸 및 수비 제왕 등극]
시즌 최우수 수비수 격인 수비 5걸에 포함되며 방패로서의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단순히 득점력이 좋은 센터를 넘어 상대 에이스를 지우는 수비 지능을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전술적 이해도가 높아야 가능한 도움 수비와 림 프로텍팅 능력에서 최고점을 받았습니다.
이 수상으로 김종규는 공수 완벽한 밸런스를 갖춘 현대 농구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2021
매 시즌 꾸준히 경기당 1개 이상의 블록을 기록하며 골밑의 수호신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상대 공격수의 슈팅 궤적을 읽는 탁월한 타이밍 감각은 리그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는 김종규가 리그에서 얼마나 오랜 기간 꾸준히 최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2022
라건아와 함께 대표팀의 트윈 타워로서 중동 및 오세아니아 국가들의 높이에 대응했습니다.
팀의 최고참급 선수로서 후배 센터들을 독려하며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어려운 경기 상황에서도 투혼을 발휘하며 한국 농구의 국제적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2023
이전보다 한층 더 성숙해진 리더십으로 코트 안팎의 가교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어린 선수들에게는 든든한 형으로, 코칭스태프에게는 신뢰받는 조력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주장 완장을 찬 이후 팀의 조직력이 한층 단단해졌다는 평가를 안팎에서 받았습니다.
2024
[KBL 정규리그 우승(와이어 투 와이어)]
원주 DB를 역사적인 '와이어 투 와이어'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끄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시즌 개막부터 종료까지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는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습니다.
김종규는 골밑에서 헌신적인 수비와 효율적인 득점으로 우승의 가장 큰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그는 명실상부한 '우승 청부사'로서의 명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강상재, 로슨과 함께 DB의 '트리플 타워'를 완성하며 리그 최고의 전력을 과시했습니다.
센터 부문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성적을 남기며 최고의 한 해를 마무리했습니다.
자신의 전성기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기록과 수상으로 완벽하게 증명했습니다.
정규리그 우승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전해진 결혼 소식에 수많은 팬의 축하가 쏟아졌습니다.
결혼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찾은 그는 농구에 더욱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안정적인 가정 생활은 그의 선수 생활 후반기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우승에 대한 열망으로 다시 한번 원주에서의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보수 총액에서도 여전한 가치를 인정받으며 리그 최고 수준의 예우를 받았습니다.
이 계약으로 김종규는 사실상 원주 DB의 살아있는 전설로 남을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2025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큰 부상 없이 시즌을 소화하며 전설적인 수치들을 쌓아 올렸습니다.
현역 선수 중 독보적인 골밑 지배력을 유지하며 기록 제조기로서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그가 기록하는 모든 수치는 이제 대한민국 농구 역사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2026
[현재까지 원주 DB의 기둥으로 활약 중]
현재 원주 DB 프로미의 핵심 센터이자 국가대표 빅맨으로서 변함없는 기량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기동력과 점프력을 유지하며 젊은 선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팀의 통합 우승을 목표로 매 경기 코트 위에서 투혼을 발휘하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김종규의 역사는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며, 대한민국 농구의 미래를 이끄는 든든한 버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