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그룹
기업, 가전제품, 엔터테인먼트, 게임, 금융, 반도체
최근 수정 시각 : 2026-01-09- 18:41:19
전쟁의 폐허 속에서 20명의 청년이 세운 작은 통신공방은 오늘날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과 문화의 제국, 소니로 성장했습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시작으로 워크맨, 트리니트론 TV, 플레이스테이션 등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꾼 혁신적 제품들을 끊임없이 쏟아내며 전자 왕국의 자존심을 지켜왔습니다. 하드웨어 제조를 넘어 영화, 음악, 금융에 이르는 거대 생태계를 구축한 소니는 경영 위기를 딛고 이제 '감동(Kando)'을 전달하는 크리에이티브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서 새로운 도약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기술에 대한 집념과 개척자 정신은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소니를 지탱해온 가장 강력한 원동력입니다.
1945
[도쿄 통신 연구소 설립]
이부카 마사루가 도쿄 니혼바시의 시로키야 백화점 건물에 도쿄 통신 연구소를 세우며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전쟁 직후의 혼란 속에서도 기술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청년들의 열망이 모였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라디오 수리와 단파 수신기 제조를 통해 기술력을 쌓았습니다.
백화점 내의 작은 사무실에서 7명의 직원과 함께 소박하게 출발한 이 연구소는 소니의 실질적인 모태가 되었습니다. 군수용 통신 장비를 다루던 이부카 마사루의 기술적 배경이 민수용 제품 개발로 전환되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당시 일본 내 라디오 수급이 부족했던 상황 덕분에 연구소의 전문적인 수리 서비스는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1946
[창업 취지서 초안 작성]
이부카 마사루는 기술자의 이상향을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창업 취지서를 직접 작성했습니다. 자유롭고 활달한 공장 분위기를 조성하여 기술자가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 정신은 소니의 기업 문화인 '도전과 창의'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취지서에는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소니 특유의 독자적인 개척자 정신이 명확히 명시되었습니다. 단순한 이윤 추구를 넘어 기술의 힘으로 일본 문화를 재건하겠다는 숭고한 목표를 구체화한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현재까지도 소니 그룹 전체의 경영 철학을 지탱하는 가장 귀중한 정신적 유산으로 평가받습니다.
[도쿄 통신 공업 공식 출범]
이부카 마사루와 모리타 아키오가 공동으로 자본금 19만 엔을 투자하여 도쿄 통신 공업 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20명의 직원이 합류하여 본격적인 통신 기기 및 정밀 기기 제조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기술의 이부카와 경영의 모리타라는 환상의 콤비가 결성된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설립 당시 사무실은 도쿄 시나가와구 고텐야마의 작고 낡은 건물이었으나 열정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모리타 가문은 양조장을 운영하던 재력을 바탕으로 초기 자본금 확보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며 사업을 뒷받침했습니다. 일본의 기술력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청년들의 순수한 열정이 모여 글로벌 전자 제국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1949
[마그네틱 녹음 테이프 개발]
미군이 사용하던 테이프 레코더를 분석하여 일본 최초의 자기 녹음 테이프인 '소니 테이프'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종이 베이스에 자성체를 고르게 도포하는 어려운 공정을 거쳐 독자적인 기록 매체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소니가 오디오 시장의 강자로 부상하는 첫 번째 기술적 성취였습니다.
화학적 지식이 전무했던 초기 단계에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자성 재료 배합비율을 찾아냈습니다. 종이를 가늘게 잘라 자성체를 입히는 방식은 당시 매우 혁신적이고 대담한 시도로 평가받았습니다. 이 기술적 성과는 이후 출시되는 일본 최초의 테이프 레코더 양산을 가능하게 한 핵심 동력이었습니다.
1950
[일본 최초 테이프 레코더 G형 출시]
일본 최초의 테이프 레코더인 'G형(G-Type)'을 시장에 선보이며 기록 기술의 신기원을 열었습니다. 무게가 35kg에 달하는 거대한 기기였지만 소리를 포착하고 재생하는 성능은 압도적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관공서와 학교에서 기록용으로 사용되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정부 기관의 회의록 작성과 교육 현장의 어학 교육용으로 주문이 쏟아지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당시 가격은 일반 직장인 월급의 수십 배에 달하는 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공급이 부족할 정도로 인기였습니다. 소니는 이 제품의 성공을 통해 '소리를 저장한다'는 새로운 문화를 일본 사회에 처음으로 정착시켰습니다.
1953
[트랜지스터 제조권 획득]
미국 웨스턴 일렉트릭으로부터 트랜지스터 제조에 관한 특허 라이선스를 획득하기 위해 거액을 투자했습니다. 당시 자본금의 상당 부분인 2만 5천 달러를 지불하며 진공관을 대체할 차세대 소자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소니가 소형 전자제품 시장의 제왕으로 올라서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부카 마사루가 직접 미국을 방문하여 트랜지스터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확인하고 계약을 성사시켰습니다. 주변에서는 무모한 투자라는 비판이 많았으나 경영진은 기술의 미래를 믿고 대담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후 소니는 반도체 정밀 공정 기술을 내재화하며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트랜지스터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1955
[SONY 브랜드 명칭 최초 사용]
전 세계 어디서나 발음하기 쉽고 기억하기 좋은 'SONY'라는 브랜드를 제품에 처음으로 적용했습니다. 라틴어 'Sonus(소리)'와 귀여운 소년을 뜻하는 'Sonny'를 결합하여 젊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담았습니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사명보다 브랜드를 앞세운 파격적인 마케팅 전략이었습니다.
기존의 '도쿄 통신 공업'이라는 이름이 외국인들에게 발음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이 자국어 명칭을 고집하던 관습을 깨고 영문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매우 혁신적이었습니다. 이후 '소니'는 품질과 기술력을 상징하는 전 세계적인 대명사로 자리 잡으며 브랜드 파워를 키워나갔습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 TR-55 출시]
일본 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인 'TR-55'를 출시하며 라디오 소형화 트렌드를 주도했습니다. 휴대성이 뛰어나고 전력 소모가 적은 이 제품은 대중의 생활 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소니가 글로벌 가전 시장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실질적인 첫 번째 히트 상품입니다.
제품 전면에 소니(SONY) 로고를 큼지막하게 새겨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공격적인 홍보를 펼쳤습니다. 거실의 전유물이었던 라디오를 개인이 휴대하는 기기로 재정의하여 청년층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습니다. 이 제품의 성공은 전 세계 라디오 시장의 패러다임이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전환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1957
[포켓용 라디오 TR-63 개발]
와이셔츠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은 세계 최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개발하여 출시했습니다. '포켓터블(Pocketable)'이라는 신조어를 마케팅에 도입하며 해외 시장 수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소니를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주머니에 잘 들어가지 않자 특수 제작된 커다란 주머니의 셔츠를 영업 사원들에게 입혀 홍보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미국의 틴에이저들이 개인용 오디오로 이 제품을 선택하며 하나의 거대한 문화 현상을 창출했습니다. 단일 모델만으로도 당시 소니 매출의 상당 부분을 책임질 만큼 상업적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1958
[소니 주식회사로 사명 변경]
브랜드와 회사의 이름을 일치시키기 위해 회사 명칭을 '도쿄 통신 공업'에서 '소니 주식회사'로 공식 변경했습니다. 대주주와 은행들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모리타 아키오 사장은 브랜드 가치가 회사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신념을 지켰습니다. 일본 기업 역사상 브랜드를 사명으로 채택한 최초의 사례 중 하나입니다.
전통적인 한자 명칭이 신뢰감을 준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글로벌 표준을 지향하는 영어 사명을 선택했습니다. 이 결정은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소니라는 브랜드를 더욱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마케팅적 승리였습니다. 이후 소니는 사명 자체가 강력한 보증 수표가 되어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을 비약적으로 확대했습니다.
[도쿄 증권거래소 제1부 상장]
일본 내 최고 권위의 도쿄 증권거래소 제1부에 주식을 정식으로 상장하며 우량 기업으로서 지위를 공인받았습니다. 창립 12년 만에 이룬 쾌거로, 대규모 자본 조달의 길이 열리며 공격적인 설비 투자가 가능해졌습니다. 소니의 투명 경영과 성장 가능성을 시장이 공식 인정한 결과입니다.
상장 직후 소니의 주가는 기술력에 대한 기대로 급등하며 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기업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현대적인 주식회사 시스템을 일본 내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습니다. 이후 소니는 주주 중심 경영을 펼치며 일본 자본 시장의 선진화를 이끄는 벤치마킹 모델이 되었습니다.
1960
[소니 미국 법인(SCA) 설립]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공략을 위해 뉴욕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직접 판매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모리타 아키오 부사장이 직접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현지 비즈니스를 진두지휘하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일본 기업의 대미 진출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중간 유통업자를 거치지 않고 소니가 직접 마케팅과 AS를 관리하며 미국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뉴욕 5번가에 소니 쇼룸을 개설하여 세련된 디자인과 첨단 이미지를 미국인들에게 각인시켰습니다. 미국 법인의 성공적인 안착은 이후 소니가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핵심 기지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초 트랜지스터 TV 출시]
세계 최초의 휴대용 트랜지스터 텔레비전인 'TV8-301'을 선보이며 TV의 소형화 시대를 열었습니다. 거실에만 고정되어 있던 TV를 야외로 끌어내어 시청 환경의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당시 우주선에 탑재될 법한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로 불리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8인치 화면을 갖춘 이 제품은 전용 배터리를 사용하여 자동차나 야외에서도 시청이 가능했습니다. 초기에는 높은 가격과 기술적 난관이 있었지만 소니의 독보적인 기술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제품이 되었습니다. 이 제품을 통해 축적된 소형화 노하우는 훗날 트리니트론 컬러 TV 개발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61
[일본 기업 최초 미국 ADR 발행]
미국 자본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주식 예탁 증서(ADR)를 일본 기업 최초로 성공적으로 발행했습니다. 일본 기업으로서는 전례 없는 도전이었으며 미국 투자자들에게 직접 주식을 판매하는 대담함을 보였습니다. 소니가 국제적인 신용도를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공인받은 순간입니다.
발행 당시 미국 금융권의 매우 까다로운 회계 기준을 통과하며 일본 기업의 신뢰도를 크게 높였습니다. 모리타 아키오 사장은 '진정한 글로벌 기업은 자본 또한 세계에서 모아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다른 일본 대기업들의 잇따른 미국 증시 진출을 이끄는 결정적인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1965
[가정용 VTR CV-2000 출시]
세계 최초의 가정용 오픈 릴 방식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를 개발하여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전문가들만 다루던 영상 기록 기술을 일반 가정의 안방으로 보급하는 역사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 TV 프로그램을 녹화하여 원하는 시간에 다시 보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했습니다.
당시 방송국용 장비의 10분의 1 가격으로 소형화와 저가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혁신을 보여주었습니다. 흑백 영상을 테이프에 기록하는 초기 형태였으나 영상 저장 기술의 대중화를 이끈 선구적 제품입니다. 이 제품은 훗날 베타맥스와 VHS의 치열한 포맷 전쟁으로 이어지는 비디오 기술의 직접적인 조상입니다.
1966
[긴자 소니 빌딩 개관]
도쿄의 번화가 긴자에 소니의 첨단 기술과 브랜드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랜드마크 빌딩을 세웠습니다. 꽃잎 모양의 독특한 층별 구조를 채택하여 방문객들이 자연스럽게 전 층을 관람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수십 년간 도쿄를 방문하는 관광객과 팬들의 성지로 불리며 소니의 얼굴 역할을 했습니다.
건축가 아시하라 요시노부가 설계한 이 건물은 나선형 구조의 내부 설계가 큰 특징이었습니다. 신제품 발표회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예술 전시가 열리며 트렌드 세터들의 모임 장소가 되었습니다. 소니 빌딩은 기업이 소비자에게 브랜드 가치를 직접 전달하는 '체험형 마케팅 공간'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1968
[CBS·소니 레코드 합작사 설립]
미국의 거대 미디어 기업 CBS와 손을 잡고 일본 내 합작 음반사인 CBS·소니 레코드를 설립했습니다. 하드웨어 제조사가 콘텐츠 사업에 직접 뛰어든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그룹의 사업 확장을 예고했습니다. 소니가 종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전략적 포석이었습니다.
이 회사는 훗날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로 성장하여 세계 음악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됩니다. 해외 아티스트의 음반을 일본에 효과적으로 보급하고 유능한 현지 가수를 발굴하는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제품과 소프트웨어가 결합할 때 최고의 시너지가 난다는 소니의 경영 철학이 실질적으로 구현된 사례입니다.
[트리니트론 컬러 TV 시스템 발표]
기존 방식보다 압도적으로 밝고 선명한 화질을 구현하는 독자적인 브라운관 기술 '트리니트론'을 전격 발표했습니다. 경쟁사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선명도를 앞세워 전 세계 컬러 TV 시장의 표준을 다시 썼습니다. 소니를 화질의 대명사이자 전자 제품의 정점으로 각인시킨 위대한 기술적 승리입니다.
단일 전자총과 격자 방식 마스크를 사용하여 빛의 산란을 최소화하고 색 재현력을 극대화했습니다. 출시 직후 전 세계 소비자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얻으며 소니의 가장 강력한 스테디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기술적 성과로 소니는 일본 기업 최초로 방송계의 오스카상인 '에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1970
[뉴욕 증권거래소 공식 상장]
일본 기업 역사상 최초로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 직접 상장되어 세계 자본 시장의 심장부에 진입했습니다. 소니의 브랜드가 뉴욕 월가에 울려 퍼지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대기업임을 전 세계에 공표했습니다. 경영 투명성과 글로벌 신인도를 극대화한 역사적인 이정표입니다.
상장 기념식에서 모리타 아키오 사장이 직접 종을 울리며 전 세계 미디어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글로벌 기준의 엄격한 공시와 회계 원칙을 준수하며 서구 자본 시장에서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이 상장은 소니가 전 세계 투자자들의 자금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글로벌 확장을 지속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1971
[U-matic 컬러 VTR 출시]
방송 및 교육용으로 설계된 세계 최초의 카세트 방식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를 개발하여 보급했습니다. 다루기 불편했던 오픈 릴 방식에서 벗어나 누구나 쉽게 비디오 테이프를 넣고 뺄 수 있도록 혁신했습니다. 영상 저장 및 재생 기술의 새로운 글로벌 표준을 제시한 혁명적 제품입니다.
3/4인치 테이프를 사용하는 U-matic 방식은 뛰어난 화질로 전 세계 방송국을 단숨에 매료시켰습니다. 취재 현장에서 신속하게 영상을 기록하고 편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여 뉴스 보도의 질을 높였습니다. 이 제품은 훗날 가정용 비디오 시스템인 베타맥스 개발의 직접적인 기술적 모태가 된 중요한 장비입니다.
1975
[가정용 베타맥스 VCR 출시]
일반 가정을 겨냥한 소형 비디오 카세트 레코더 '베타맥스(Betamax)' 시스템을 출시하며 비디오 시대를 열었습니다. 영화의 감동을 집에서 재현하고 원하는 TV 프로그램을 예약 녹화하는 혁신적인 기능을 제공했습니다. 전 세계 가전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거대한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소니는 타협 없는 고화질을 강점으로 내세워 전 세계 가정에 비디오 붐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경쟁 방식인 VHS와의 치열한 '포맷 전쟁'이 발발하며 마케팅 역사에 길이 남을 사례가 되었습니다. 초기 시장 점유율은 압도적이었으나 녹화 시간 연장 등의 문제로 힘겨운 표준 경쟁을 이어가게 됩니다.
1979
[전설의 워크맨(Walkman) 탄생]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 TPS-L2'를 출시하며 인류의 음악 감상 방식을 영원히 혁명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만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개인형 오디오 시대를 열어 세계적인 문화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전 세계 젊은이들의 필수 아이템이자 소니를 상징하는 영원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모리타 아키오 사장이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걷는 젊은이들을 보고 영감을 얻어 개발을 지시했습니다. 녹음 기능을 과감히 빼고 재생 전용으로 소형화한 이 발칙한 발상은 전 세계적으로 4억 대 이상 판매되었습니다. 워크맨은 단순한 전자기기를 넘어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소니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1982
[세계 최초 CD 플레이어 출시]
필립스와 공동 개발한 콤팩트 디스크(CD)를 재생하는 최초의 플레이어 'CDP-101'을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잡음 없는 깨끗한 디지털 사운드의 시대를 열며 아날로그 음반 시장의 종말과 디지털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오디오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기념비적인 기술적 사건입니다.
디스크 한 장에 수록된 곡을 즉시 검색하고 반복 재생할 수 있는 기능은 소비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소니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음반사(CBS·소니)를 통해 콘텐츠 보급까지 동시에 추진하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CD의 등장은 음악 산업 전체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완전히 전환되는 거대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1985
[8mm 캠코더 핸디캠 브랜드 출시]
한 손으로 들고 촬영할 수 있는 소형 캠코더 '핸디캠(Handycam)' 브랜드를 선보이며 영상 혁명을 주도했습니다. 거대했던 비디오 카메라를 획기적으로 줄여 누구나 쉽게 일상의 소중한 순간을 담을 수 있게 했습니다. 전 세계 가정의 영상 기록 문화를 완전히 뒤바꾼 소니의 역작입니다.
CCD-M8 모델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비디오 카메라로 기록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라는 슬로건 아래 가족 여행과 자녀의 성장을 담는 필수 가전이 되었습니다. 핸디캠은 이후 수십 년간 소니의 대표 브랜드로서 세계 캠코더 시장 점유율 1위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1988
[미국 CBS 레코드 인수 성공]
세계 최대의 음반사인 미국 CBS 레코드를 전격 인수하여 글로벌 음악 시장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습니다. 일본 기업의 대규모 해외 콘텐츠 기업 인수 사례 중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로 손꼽힙니다. 이를 통해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가 탄생하며 소프트웨어 파워가 극대화되었습니다.
마이클 잭슨 등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의 판권을 소유하게 되며 막대한 수익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가전 기기를 제조하는 회사에서 그 기기 안에 담길 영혼(콘텐츠)까지 관리하는 회사로 진화했습니다. 이 인수는 훗날 소니가 디지털 시대의 지적 재산권(IP)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결정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1989
[미국 컬럼비아 픽처스 인수]
미국의 자존심인 거대 영화 제작사 컬럼비아 픽처스를 인수하여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진출했습니다. 음악에 이어 영화까지 집어삼키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완벽한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에 '할리우드의 영혼을 일본이 샀다'는 거대한 충격을 안긴 사건입니다.
인수 금액이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34억 달러에 달해 전 세계 비즈니스 업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초기 경영의 난관을 극복하고 스파이더맨 등 수많은 블록버스터를 성공시키며 소니 픽처스로 거듭났습니다. 소니는 이를 통해 영상 가전 제품의 판매를 촉진하는 강력한 콘텐츠 공급망을 영구적으로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1994
[플레이스테이션(PS) 전격 출시]
소니의 첫 번째 가정용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을 출시하며 게임 산업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압도적인 3D 그래픽 연산 능력과 CD-ROM 매체를 무기로 닌텐도와 세가를 압도했습니다. 게임을 단순한 완구를 넘어 세련된 성인용 엔터테인먼트로 격상시킨 혁명적 제품입니다.
출시 당일부터 혁신적인 실시간 3D 렌더링 성능으로 게이머들에게 시각적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소니의 반도체 기술과 영상 처리 노하우가 결집되어 당시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 완성도를 자랑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1억 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소니 그룹을 지탱하는 새로운 핵심 기둥이 되었습니다.
1996
[VAIO 브랜드 PC 사업 진출]
오디오와 비디오 기술을 접목한 개인용 컴퓨터 브랜드 '바이오(VAIO)'를 출시하여 PC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업무용 도구에 불과했던 PC에 감각적인 디자인과 강력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입혀 스타일리시한 브랜드로 키웠습니다. PC가 디지털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이 될 것임을 예견한 도전이었습니다.
보라색의 독특한 본체 컬러와 슬림한 디자인은 당시 투박했던 PC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영상 편집과 음악 감상에 최적화된 하드웨어 사양을 갖추어 전 세계 창작자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바이오는 한때 소니의 프리미엄 기술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디지털 가전 브랜드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1999
[감성 로봇 강아지 아이보 출시]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탑재 감성 로봇 '아이보(AIBO)'를 출시하며 반려 로봇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스스로 학습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이 로봇은 소니의 최첨단 로봇 공학과 AI 기술력이 집약된 결정체였습니다. 기술의 소니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미래형 아이콘으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25만 엔이라는 고가임에도 인터넷 예약 개시 20분 만에 준비된 물량이 완판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사용자와의 상호작용 방식에 따라 성격이 변하는 지능형 알고리즘은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된 기술이었습니다. 아이보는 단순한 기계가 아닌 인간과 교감하는 파트너로서 로봇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2000
[플레이스테이션 2 전 세계 돌풍]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기로 평가받는 '플레이스테이션 2(PS2)'를 출시하여 게임 시장을 평정했습니다. 단순한 게임기를 넘어 DVD 플레이어 기능까지 수행하며 거실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으로 우뚝 섰습니다. 전 세계 게이머들을 열광시키며 소니를 게임 산업의 절대 강자로 등극시킨 주인공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1억 5,500만 대 이상의 기록적인 판매량을 올리며 독보적인 시장 지배력을 과시했습니다. 이모션 엔진이라 불리는 강력한 연산 소자를 탑재하여 실사에 가까운 화려한 그래픽을 구현해냈습니다. PS2의 성공은 소니가 플랫폼 생태계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장기적인 수익 구조를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5
[TV 브랜드 브라비아(BRAVIA) 런칭]
기존 아날로그 TV 브랜드를 대체하는 새로운 LCD TV 브랜드 '브라비아'를 전 세계에 출시했습니다. 압도적인 화질과 세련된 디자인을 앞세워 평면 TV 시장의 패권을 되찾기 위한 공격적인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소니 TV 제국의 화려한 부활을 알린 성공적인 브랜드 전환이었습니다.
브라비아는 출시 직후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모았습니다. '모든 색은 선명하게 보인다'는 화질 철학을 바탕으로 소니의 모든 기술력을 스크린에 집중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소니의 프리미엄 가전을 대표하는 가장 강력하고 신뢰받는 브랜드 파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2
[히라이 카즈오 사장 취임 및 재건]
게임 사업부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히라이 카즈오가 그룹 전체의 수장이 되어 소니의 재건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원 소니(One Sony)'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적자에 빠진 사업부의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소니의 영혼인 '감동'을 경영 전면에 내세운 감성 경영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부진했던 PC 사업을 매각하고 TV 사업부를 분사하는 등 뼈를 깎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쳤습니다. 임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소니 특유의 창의적인 도전을 적극 장려하는 조직 문화를 부활시켰습니다. 그의 탁월한 리더십 아래 소니는 수년 만에 역대 최고 이익을 경신하며 기적 같은 부활에 성공했습니다.
2021
[소니 그룹 주식회사 공식 출범]
지난 63년간 사용해온 '소니 주식회사' 사명을 '소니 그룹 주식회사'로 바꾸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전자, 게임, 엔터테인먼트, 금융 등 각 사업부의 자율성을 높이고 그룹 차원의 시너지를 극대화했습니다. 소니가 거대 복합 기업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쓰는 제2의 창업 선언입니다.
지주회사는 그룹 전체의 장기적인 비전 설정과 자본 배분 등 전략적 기능에만 집중하도록 개편되었습니다. 기존 사명인 소니 주식회사는 가전 사업을 전담하는 자회사가 물려받아 전문성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소니가 단순 제조사를 넘어 문화와 기술을 융합하는 복합 기업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2024
[미래 모빌리티 브랜드 아필라 공개]
혼다와의 합작사인 소니 혼다 모빌리티를 통해 첫 번째 전기차 브랜드 '아필라(AFEELA)'의 양산형 모델을 공개했습니다. 소니의 압도적인 엔터테인먼트 기술과 이미지 센싱 역량을 자동차라는 이동 수단에 완벽히 이식했습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움직이는 거실을 구현하겠다는 야심찬 비전입니다.
고성능 이미지 센서와 AI 기술을 활용하여 자율주행의 안전성과 즐거움을 동시에 확보하고자 합니다. 차량 내부를 고화질 게임과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최상의 미디어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혁신을 시도 중입니다. 소니는 이제 가전과 콘텐츠를 넘어 모빌리티 시장을 선점하며 미래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키워나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