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스포츠 구단, 야구팀, KBO 리그, 제일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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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07- 12:5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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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는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대구·경북을 연고로 탄생하여 한국 야구의 역사를 써 내려온 명문 구단입니다. '푸른 사자'라는 별칭답게 강력한 타력과 투수력을 바탕으로 KBO 리그 사상 유일무이한 통합 4연패와 아시아 시리즈 제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만수, 양준혁, 이승엽 등 시대를 상징하는 슈퍼스타들을 배출하며 팬들에게 자부심을 안겼으며, 2016년 라이온즈 파크 시대를 열며 제2의 도약을 선언했습니다. 끊임없는 도전 정신과 시스템 야구의 정수를 보여주는 삼성 라이온즈는 오늘날에도 대구를 상징하는 최고의 문화 자산이자 승리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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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삼성 라이온즈 창단]

대구 및 경북 지역을 연고지로 하여 한국 프로야구의 시작을 알리는 공식 창단식을 가졌습니다. 삼성그룹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가장 강력한 선수단을 구성하며 출범했습니다.

대구 제일모직 강당에서 이건희 회장 등 그룹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 출범했습니다. 초대 감독으로 서영무 감독을 선임하고, 투수 황규봉, 이선희와 타자 이만수 등 당대 최고의 아마추어 스타들을 대거 영입했습니다. 엠블럼은 사자를 형상화했으며, 팀 컬러를 파란색으로 정해 '푸른 사자들'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프로야구 역사적 첫 경기]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MBC 청룡을 상대로 한국 프로야구 개막전이자 구단 역사상 첫 경기를 치렀습니다. 이 경기는 전국에 생중계되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삼성은 선발 이선희를 내세워 승리를 노렸으나 연장 끝에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아쉬운 패배를 기록했습니다. 비록 경기는 패했지만 삼성이 가진 강력한 우승 후보로서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명승부였습니다. 당시 역사적인 한국 프로야구의 첫 투구와 첫 타석이 모두 이 경기를 통해 기록되었습니다.

[이만수 1호 안타 및 홈런]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이만수 선수가 한국 프로야구 통산 1호 안타와 1호 홈런을 동시에 기록했습니다. 전설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순간이었습니다.

5회 초 MBC 선발 유종겸을 상대로 좌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역사에 이름을 새겼습니다. 이 기록은 KBO 리그 역사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최초'의 타이틀로 남아 있습니다. 이만수는 이 홈런을 시작으로 대구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헐크'로 성장하게 됩니다.

[구단 역사상 첫 승리]

대구구장에서 삼미 슈퍼스타즈를 상대로 5-1 승리를 거두며 구단 창단 첫 승리의 기쁨을 맛봤습니다. 연고지 팬들 앞에서 거둔 뜻깊은 승리였습니다.

황규봉 선수가 선발 등판하여 완투승을 거두며 팀의 에이스임을 증명했습니다. 대구 시민운동장 야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삼성의 첫 승리에 열광하며 대구 야구 붐을 일으켰습니다. 이 승리를 시작으로 삼성 라이온즈는 원년 시즌 전기리그 우승을 향한 거침없는 질주를 시작했습니다.

[오대석 KBO 1호 사이클링 히트]

오대석 선수가 삼미와의 경기에서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기록하는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습니다. 한국 야구사 최초의 대기록이었습니다.

유격수로서 공수주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이며 상대 수비를 무력화시켰습니다. 한 경기에서 모든 종류의 안타를 기록하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며 삼성의 공격력을 과시했습니다. 이 기록은 삼성 라이온즈가 기술 야구에서도 앞서나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전기리그 우승 달성]

압도적인 승률로 1982년 프로야구 전기리그 1위를 차지하며 한국시리즈 진출권을 우선 확보했습니다. 창단 첫해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임을 입증했습니다.

박영길 타격코치의 지도 아래 장효조, 이만수 등이 버틴 타선은 리그 최강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전기리그 막판까지 이어진 치열한 순위 싸움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정상을 지켰습니다. 이 우승으로 삼성은 대구 야구의 전성기를 여는 서막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원년 준우승 기록]

OB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으로 첫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우승은 놓쳤지만 명문 구단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최종전에서 김유동에게 만루 홈런을 허용하며 눈앞에서 우승 트로피를 놓쳤습니다. 비록 준우승이었으나 투타의 조화로 리그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거듭났습니다. 이 패배의 경험은 훗날 삼성이 우승을 향한 집념을 불태우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1983

[천재 타자 장효조 입단]

실업 야구의 전설이었던 장효조 선수가 드디어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타격의 달인'이 합류하며 삼성 타선은 완성형이 되었습니다.

입단 첫해부터 타격왕을 거머쥐며 정교한 타격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었습니다. 장효조의 합류로 삼성은 '이만수의 힘'과 '장효조의 정확도'를 동시에 갖춘 무결점 타선을 구축했습니다. 팬들은 그의 부드러운 스윙에 열광하며 대구구장을 푸른 물결로 가득 채웠습니다.

[이충남 감독 대행 체제]

서영무 초대 감독이 성적 부진과 건강 악화로 일선에서 물러나고 이충남 감독 대행이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시즌 중 급박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우승에 대한 압박감이 컸던 삼성은 체질 개선을 위해 코칭스태프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이충남 대행은 일본 야구의 정밀함을 이식하려 노력하며 팀을 수습했습니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선수들은 흔들리지 않고 가을 야구를 향한 희망을 이어갔습니다.

[에이스 김시진의 비상]

김시진 선수가 입단 첫해부터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하며 팀의 확고한 에이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안경 쓴 우완 투수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정교한 제구력과 낙차 큰 커브를 바탕으로 리그 타자들을 압도했습니다. 김시진의 활약으로 삼성은 황규봉 이후를 책임질 차세대 선발 투수를 확보했습니다. 그는 훗날 한국 프로야구 투수 중 최초로 100승 고지에 오르는 전설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84

[김영덕 감독 취임]

OB 베어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김영덕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의 제2대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우승을 위한 삼성의 강력한 승부수였습니다.

데이터 야구와 철저한 관리 야구를 도입하여 팀의 전력을 극대화했습니다. 선수단의 기강을 잡고 효율적인 선수 기용으로 시즌 내내 선두권을 유지했습니다. 김영덕 감독의 영입은 삼성이 우승을 향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리그에 던졌습니다.

[정규 시즌 전기 리그 우승]

정규 시즌 전기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정규 시즌 전기 리그에서 우승을 달성하며 시즌의 강팀임을 입증했습니다.

[이만수 타격 트리플 크라운]

이만수 선수가 타율, 홈런, 타점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타격 3관왕에 올랐습니다. 타격 역사에 남을 대기록이었습니다.

홈런 23개, 타점 80개를 기록하며 타선의 파괴력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특히 타율 부문에서는 시즌 막판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소수점 차이로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이 기록은 당시 삼성의 타력이 타 구단들을 압도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한국시리즈 통한의 준우승]

롯데 자이언츠와의 한국시리즈 7차전 혈투 끝에 최동원의 투혼에 막혀 다시 한번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우승 문턱에서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습니다.

유두열에게 역전 3점 홈런을 허용하며 다잡았던 우승 트로피를 놓쳤습니다. 최동원이라는 거물 투수에게 4승을 헌납하며 삼성은 에이스 투수의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이 패배는 삼성 라이온즈에게 가장 아픈 역사 중 하나로 기록되지만 전력 보강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5

[팀 통산 200승 달성 (역대 최초)]

팀 통산 200승을 달성하며 역대 최초로 이 기록을 세운 팀이 되었습니다.

1985년 7월 14일, 삼성 라이온즈는 팀 통산 200승을 달성하여 KBO 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이정표를 세운 팀이 되었습니다.

[전·후기 통합 우승 달성]

1985년 시즌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석권하며 한국 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없이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완벽한 지배력을 보여준 시즌이었습니다.

김시진과 김일융이 각각 25승씩을 거두며 단일 시즌 동일 팀 20승 투수 2명 배출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전체 승률 0.706이라는 경이적인 성적으로 상대 팀들을 압도했습니다. 이후 리그 규정이 개정되어 한국시리즈가 의무화될 정도로 삼성의 전력은 독보적이었습니다.

1986

[16연승 기록 수립]

구단 역사상 16연승을 기록하는 대기록을 수립했습니다.

1986년 6월 14일, 삼성 라이온즈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구단 역사에 길이 남을 16연승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만수 선수 최초 100홈런 달성]

이만수 선수가 프로 통산 최초로 100호 홈런을 달성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의 대표 타자 이만수 선수가 KBO 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 통산 100호 홈런을 기록하며 전설적인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팀 통산 300승 달성 (역대 최초)]

팀 통산 300승을 달성하며 역대 최초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삼성 라이온즈가 KBO 리그 최초로 팀 통산 300승을 달성하며 구단의 역사를 한 페이지 더했습니다.

[해태와의 시리즈 패배]

해태 타이거즈와의 한국시리즈에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호남과 영남의 라이벌전이 본격화된 시기였습니다.

선동열을 앞세운 해태의 마운드를 공략하지 못하며 타선이 침묵했습니다. 대구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큰 경기 징크스를 깨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후 삼성과 해태의 대결은 '가장 재미있는 한국시리즈 매치'로 자리 잡았습니다.

1987

[김시진 통산 100승 금자탑]

김시진 투수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했습니다. 삼성 마운드의 역사적 성취였습니다.

최동원보다 앞서 100승 고지에 오르며 당대 최고의 우완 투수임을 증명했습니다. 그의 기록은 삼성 라이온즈가 투수 육성에도 큰 강점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김시진은 대구 시민들에게 승리의 보증수표로 불리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김시진 선수 개인 통산 100승 달성 (역대 최초)]

김시진 선수가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하며 역대 최초로 이 기록을 세운 투수가 되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의 에이스 김시진 선수가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하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정규 시즌 전·후기 리그 우승]

정규 시즌 전·후기 리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1987년 정규 시즌에서 전기 리그와 후기 리그를 모두 우승하며 시즌을 압도했습니다.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준우승]

또다시 해태 타이거즈에 가로막혀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정규 시즌은 삼성이 주도했으나 가을의 주인공은 해태였습니다.

강타선이 해태의 투수진을 뚫지 못하며 고전한 끝에 무너졌습니다. 정규 시즌 성적은 최상위권이었으나 단기전에서의 집중력 차이를 뼈아프게 느꼈습니다. 이때부터 삼성 라이온즈는 '정규 시즌 강자, 가을 약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됩니다.

1988

[엄학규 제4대 감독 취임]

김영덕 감독의 후임으로 엄학규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팀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우승의 갈증을 풀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내부 코칭스태프 출신으로 팀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어 조직력 강화에 힘썼습니다. 선수들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밝은 팀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해태의 독주 체제를 깨뜨리기에는 전력상의 한계를 보이며 고전했습니다.

1989

[정동진 제5대 감독 부임]

삼성 라이온즈의 초창기를 함께했던 정동진 코치가 감독으로 승격되었습니다. 팀 컬러의 명확한 정립을 목표로 했습니다.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살린 맞춤형 훈련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특히 수비 강화에 공을 들이며 실점 억제를 통한 승수 쌓기에 집중했습니다. 정동진 감독은 이듬해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이만수 선수 최초 150홈런·500타점 달성]

이만수 선수가 프로 통산 최초로 150홈런과 500타점을 달성했습니다.

이만수 선수가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150홈런과 500타점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기록을 동시에 달성했습니다.

[권영호 선수 최초 100세이브 달성]

권영호 선수가 KBO 리그 최초로 개인 통산 100세이브를 달성했습니다.

권영호 선수가 프로 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 통산 100세이브를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0

[팀 통산 500승 달성 (역대 최초)]

팀 통산 500승을 달성하며 역대 최초로 이 기록을 세운 팀이 되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가 KBO 리그 최초로 팀 통산 500승을 달성하는 금자탑을 세웠습니다.

[LG에 패하며 준우승 기록]

창단 후 처음으로 서울 연고 팀인 LG 트윈스와 한국시리즈에서 만났으나 4전 전패로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큰 경기 울렁증이 이어졌습니다.

잠실구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신바람 야구의 LG에게 완전히 주도권을 내주었습니다. 압도적이었던 정규 시즌 타선이 가을만 되면 침묵하는 패턴이 반복되었습니다. 이 패배로 인해 삼성은 대대적인 코칭스태프 교체와 전력 보강 계획을 수립하게 됩니다.

[김성근 감독 취임]

김성근 감독이 제6대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김성근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의 제6대 감독으로 부임하며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1991

[팀 통산 5,000득점 달성 (역대 최초)]

팀 통산 5,000득점을 달성하며 역대 최초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삼성 라이온즈가 KBO 리그 최초로 팀 통산 5,000득점을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1992

[우용득 제7대 감독 취임]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우용득 감독이 지휘봉을 넘겨받았습니다. 팀의 전통을 살리면서 신구 조화를 꾀했습니다.

노장 선수들의 경험과 신예들의 패기를 결합하여 안정적인 전력을 유지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삼성은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상위권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 시기 양준혁 등 대형 신인들이 등장하며 팀의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1993

[신인왕 양준혁의 화려한 데뷔]

상무 제대 후 입단한 양준혁 선수가 타격 전 부문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보이며 신인왕을 차지했습니다. '괴물 신인'의 등장이었습니다.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타격왕을 차지하며 프로 무대를 평정했습니다. 특유의 '만세 타법'은 리그의 상징적인 모습이 되었으며 삼성 타선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양준혁은 이후 삼성 라이온즈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타자로 성장하여 수많은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종범에 막힌 한국시리즈]

해태 타이거즈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신인 이종범의 도루에 휘둘리며 또다시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역대급 명승부였으나 결과는 준우승이었습니다.

박충식 투수가 연장 15회까지 혼신을 다해 던졌던 투혼의 경기가 이 시리즈에서 나왔습니다. 삼성이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가을 중 하나였으나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 경기 이후 박충식은 삼성 팬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감동의 아이콘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1994

[팀 통산 800승 달성 (역대 최초)]

팀 통산 800승을 달성하며 역대 최초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삼성 라이온즈가 KBO 리그 최초로 팀 통산 800승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5

[이승엽 사자의 일원 합류]

경북고를 졸업한 특급 유망주 이승엽이 삼성 라이온즈에 정식 입단했습니다. 한국 야구 역사를 바꿀 '라이언 킹'의 탄생이었습니다.

당초 투수로 입단했으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백인천 감독의 권유로 타자로 전향했습니다. 타자 전향 첫해부터 재능을 보이며 삼성의 차세대 거포로 주목받았습니다. 이승엽의 성장은 삼성 라이온즈가 명실상부한 홈런 군단으로 거듭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홈 구장 최다 관중 동원]

홈 경기 최다 관중인 623,970명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한 시즌 동안 홈 구장에 623,970명의 최다 관중을 동원하며 팬들의 높은 관심을 증명했습니다. 63경기 중 37경기가 매진되었습니다.

[백인천 제8대 감독 부임]

프로야구의 전설 백인천 감독이 부임하여 기술 야구의 전파에 힘썼습니다. 선수들의 타격 이론 정립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승엽의 타격 폼을 교정하여 그를 리그 최고의 타자로 성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정밀한 기술 지도로 삼성 타선의 파괴력을 한 단계 더 진화시켰습니다. 비록 팀 성적은 기복이 있었으나 한국 야구의 질적 향상에 기여한 시기였습니다.

1997

[이승엽 첫 시즌 MVP 수상]

이승엽 선수가 홈런 32개를 때려내며 생애 첫 홈런왕과 함께 정규 시즌 MVP를 차지했습니다. 명실상부한 사자 군단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만 21세의 어린 나이에 리그를 평정하며 전 국민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부드러운 타격 폼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거리로 대구구장을 환호로 가득 채웠습니다. 이 시기부터 대구 팬들은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서면 홈런을 기대하며 기립 박수를 보냈습니다.

[서정환 제9대 감독 부임]

서정환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의 제9대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서정환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의 제9대 감독으로 부임하며 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1999

[이승엽 아시아 홈런왕 도전]

이승엽이 시즌 54홈런을 기록하며 아시아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전 국민이 삼성의 야구에 열광했습니다.

홈런 한 개 한 개가 전국적인 뉴스가 되었으며 관객들은 잠자리채를 들고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기록 달성에는 아쉽게 미치지 못했으나 한국 야구의 위상을 세계에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의 화력 야구가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2000

[팀 통산 2,000홈런 달성 (역대 최초)]

팀 통산 2,000홈런을 달성하며 역대 최초로 이 기록을 세운 팀이 되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가 KBO 리그 최초로 팀 통산 2,000홈런을 달성하는 기록적인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코끼리 김응룡 감독 영입]

해태를 9번 우승시킨 김응룡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의 제11대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우승을 향한 삼성그룹의 마지막 종착지였습니다.

라이벌 팀의 상징이었던 감독을 영입하는 파격적인 행보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준우승에 지친 구단과 팬들의 갈증을 해소해 줄 유일한 대안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김응룡 감독은 취임 일성으로 '삼성의 준우승 징크스를 깨겠다'고 선언하며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2001

[해결사 마해영의 합류]

롯데에서 마해영 선수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며 이승엽과 함께하는 '이-마' 공포의 타선을 완성했습니다. 우승을 위한 타선 보강의 정점이었습니다.

마해영은 클러치 상황에서의 해결 능력을 보여주며 삼성의 결정력 부족을 해결했습니다. 이승엽에게 집중되던 견제를 분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오며 팀 득점력을 배가시켰습니다. 이 영입은 훗날 2002년 기적 같은 우승의 결정적인 단초가 되었습니다.

[정규 시즌 우승]

정규 시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01년 정규 시즌에서 81승 52패의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시리즈 준우승]

한국시리즈에서 2승 4패로 두산 베어스에 패배하며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2승 4패로 두산 베어스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2002

[양준혁의 극적인 친정 복귀]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던 양준혁 선수가 FA 계약을 통해 다시 삼성 라이온즈로 돌아왔습니다. 프랜차이즈 스타의 복귀에 팬들이 환호했습니다.

양준혁의 복귀로 삼성은 이승엽, 마해영, 양준혁으로 이어지는 역사상 최강의 클린업 트리오를 구축했습니다. 팀 내 리더로서 선수단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며 우승 분위기를 고취시켰습니다. 스타플레이어들이 한데 모이며 삼성 라이온즈는 '무적 함대'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첫 한국시리즈 공식 제패]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이승엽의 동점 홈런과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창단 21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대구 야구 역사의 가장 극적인 밤이었습니다.

9회 말 투아웃 상황에서 터진 이승엽의 3점 홈런은 삼성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뒤이어 타석에 들어선 마해영이 우측 담장을 넘기는 끝내기 홈런을 터뜨리며 승부를 마감했습니다. 오랜 준우승의 한을 씻어내며 삼성 라이온즈는 진정한 KBO 리그의 챔피언으로 등극했습니다.

2003

[이승엽 선수 세계 최연소 300홈런 달성]

이승엽 선수가 세계 최연소로 개인 통산 300홈런을 달성했습니다 (26세 10개월 4일).

이승엽 선수가 26세 10개월 4일이라는 놀라운 나이로 세계 최연소 개인 통산 300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이승엽 56호 홈런 대기록]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이승엽 선수가 56번째 홈런을 터뜨리며 아시아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한국 야구가 세계를 놀라게 한 기록입니다.

대구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역사적인 홈런 공을 잡기 위해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이 기록은 이승엽이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고의 타자'임을 공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는 이 기록을 기념하기 위해 외야에 특별 기념벽을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2004

[이만수 22번 영구결번]

원년 스타 이만수 선수의 공로를 기려 그의 등번호 22번을 구단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습니다. 전설에 대한 최고의 예우였습니다.

이만수는 삼성 라이온즈의 상징이자 한국 프로야구 공격형 포수의 전범이었습니다. 은퇴 후에도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은 그의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 결번식은 삼성 라이온즈가 구단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9차전까지 이어진 혈투]

현대 유니콘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사상 초유의 9차전 승부를 벌였으나 아쉬운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잦은 무승부로 인해 이례적인 장기전이 되었습니다.

빗속에서 치러진 혈투 끝에 삼성은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고배를 마셨습니다. 선수들의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을 보여주어 팬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비록 준우승이었으나 삼성이 가진 끈질긴 저력을 다시 한번 증명한 시리즈였습니다.

[김응용 사장 승진 및 선동열 감독 취임]

김응용 감독이 구단 사장으로 승진하고, 선동열 수석 코치가 제12대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김응용 감독이 구단 사장으로 승진 발령되고, 그 자리에 선동열 수석 코치가 제12대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취임하며 지휘봉을 잡게 되었습니다.

2005

[끝판대장 오승환의 등장]

신인 2차 1라운드로 지명된 오승환 선수가 데뷔 첫해부터 리그를 압도하는 구위를 선보였습니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탄생했습니다.

특유의 묵직한 돌직구를 앞세워 상대 타자들을 압도하며 신인왕을 차지했습니다. 첫해부터 한국시리즈 MVP까지 거머쥐며 삼성의 수호신으로 우뚝 섰습니다. 오승환의 등장은 삼성이 '역전 불허'의 이미지를 굳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양준혁 선수 통산 최다 안타 신기록 달성]

양준혁 선수가 통산 최다 안타 신기록인 1,772개를 달성했습니다.

양준혁 선수가 SK 와이번스와의 문학 경기에서 종전 장종훈 선수의 기록(1,771개)을 넘어선 통산 최다 안타 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두산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

선동열 감독 취임 첫해에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4전 전승을 거두며 완벽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강력한 마운드의 힘이 돋보였습니다.

불펜 투수들이 상대 타선을 완벽히 봉쇄하며 단 한 번의 리드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김응룡 전 감독이 사장으로 부임한 뒤 거둔 첫 우승으로 현장과 행정의 조화를 증명했습니다. 대구 시민들은 우승 퍼레이드에 환호하며 삼성 왕조의 시작을 예감했습니다.

2006

[오승환 선수 아시아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신기록]

오승환 선수가 아시아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신기록인 47세이브를 달성했습니다.

오승환 선수가 현대 유니콘스와의 수원 경기에서 종전 이와세 히토키 선수의 기록(46개)을 넘어선 아시아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한화 꺾고 우승 2연패]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한국시리즈 2연속 제패를 달성했습니다. '지키는 야구'가 KBO 리그의 대세임을 확립했습니다.

배영수 등 선발진과 권오준, 오승환으로 이어지는 불펜진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한 뒤 한국시리즈에서도 빈틈없는 야구로 정상을 지켰습니다. 이로써 삼성은 2000년대 중반 명실상부한 최강팀의 자리를 굳건히 했습니다.

2007

[양준혁 2000안타 대기록]

두산과의 경기에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습니다. 꾸준함의 대명사가 일궈낸 값진 결실이었습니다.

대구 홈 팬들의 기립 박수 속에서 역사적인 안타를 터뜨리며 기록의 사나이임을 입증했습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성실함으로 쌓아올린 이 기록은 후배 선수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는 양준혁의 대기록 달성을 축하하기 위해 특별한 헌정 행사를 거행했습니다.

2008

[구단 엠블렘 및 유니폼 교체]

구단의 엠블렘과 유니폼을 새롭게 교체했습니다.

구단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엠블렘과 선수들이 착용하는 유니폼을 새롭게 디자인하여 교체했습니다.

2010

[양준혁 등번호 10번 영구결번]

푸른 사자의 상징이었던 양준혁 선수의 은퇴와 함께 그의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습니다. 삼성 야구의 한 시대가 갈무리되었습니다.

은퇴 경기에서까지 전력 질주를 하는 모습으로 팬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장효조 이후 삼성의 타격을 이끌었던 전설에 대한 마땅한 예우였습니다. 그의 번호는 이만수의 22번과 함께 대구구장의 벽면에 영원히 새겨졌습니다.

2011

[류중일 제12대 감독 취임]

프랜차이즈 출신 류중일 감독이 부임하며 공격과 수비가 조화된 '신바람 야구'를 선언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역대 최고의 황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자율 야구를 바탕으로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강력한 수비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타선의 공격력을 극대화하여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류중일 감독은 취임 첫해부터 통합 우승을 이끌며 지도력의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

[팀 통산 2,000승 달성 (한국프로야구 최초)]

LG 트윈스와의 대구 경기에서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팀 통산 2,000승을 달성했습니다.

LG 트윈스와의 대구 경기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팀 통산 2,000승을 달성하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SK 꺾고 통합 우승 달성]

정규 시즌과 한국시리즈를 모두 제패하며 5년 만에 왕좌를 탈환했습니다. 명가 재건의 신호탄을 화려하게 쏘아 올렸습니다.

오승환이 뒷문을 완벽히 잠그고 타선이 적재적소에 터지며 SK 와이반스를 압도했습니다. 류중일 감독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팀에 녹아들며 완벽한 팀워크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삼성은 다시 한번 KBO 리그를 지배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아시아 시리즈 한국 첫 우승]

일본 챔피언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꺾고 한국 팀 최초로 아시아 시리즈 정상에 올랐습니다. 한국 야구의 자부심을 아시아 전역에 알렸습니다.

대만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정밀한 작전 야구와 마운드의 힘으로 일본 팀을 제압했습니다. 장원삼 투수의 눈부신 호투와 집중력 있는 타격으로 국제 무대에서 승전고를 울렸습니다. 삼성 라이온즈는 이 우승으로 아시아 최고의 야구 클럽이라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2012

[라이언 킹 이승엽의 귀환]

일본 생활을 마친 이승엽 선수가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로 전격 복귀했습니다. 사자 군단의 정신적 지주가 돌아온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복귀와 동시에 팀의 중심 타선을 이끌며 실력과 리더십을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후배들에게 큰 산과 같은 존재로 자리 잡으며 팀의 연승 행진에 기여했습니다. 팬들은 이승엽의 복귀에 열광하며 대구구장을 연일 매진으로 화답했습니다.

[통합 우승 2연패 달성]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다시 한번 승리하며 2년 연속 통합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거칠 것 없는 사자 군단의 위세였습니다.

이승엽 선수가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하며 완벽한 귀환을 자축했습니다. 탄탄한 마운드와 응집력 있는 타선은 리그 최강의 전력임을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는 이로써 2010년대 왕조 구축의 기틀을 확고히 다졌습니다.

2013

[이승엽 통산 홈런 신기록]

SK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352호 홈런을 터뜨리며 양준혁을 넘어 한국 프로야구 개인 통산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한국 야구사의 정점이었습니다.

문학구장에서 터진 이 홈런은 전 국민의 축하 속에 기록되었습니다. 이승엽은 이 기록으로 전설의 계보를 공식적으로 이어받았습니다. 삼성 라이온즈는 이승엽이라는 살아있는 전설을 보유한 최고의 구단으로서 위상을 높였습니다.

[통합 우승 3연패 위업]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대역전극을 펼치며 3년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삼성 정신의 승리였습니다.

시리즈 초반 열세를 극복하고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박한이 선수가 시리즈 내내 맹타를 휘두르며 MVP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3연패 달성으로 삼성 라이온즈는 명실상부한 '무적 왕조'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2014

[임창용 선수 국내 복귀]

임창용 선수가 국내 복귀에 합의하며 삼성 라이온즈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일본에서 활약했던 임창용 선수가 국내 복귀에 합의하며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다시 입게 되었습니다.

[KBO 최초 통합 4연패]

넥센 히어로즈를 꺾고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정규 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사자 왕조의 화려한 정점이었습니다.

나바로, 최형우 등 타선과 안지만, 임창용 등의 마운드가 완벽한 조화를 보였습니다. 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삼성 라이온즈의 이름을 역사에 깊이 새겼습니다. 류중일 감독은 4년 연속 우승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보유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2015

[이승엽 KBO 통산 400홈런]

포항구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한국 야구 역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400홈런 고지를 밟았습니다. 누구도 넘보기 힘든 대기록의 완성이었습니다.

좌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이 터지자 중계진과 관중 모두가 열광했습니다. 이 기록은 이승엽의 성실함과 천재성이 결합되어 만들어낸 한국 야구의 금자탑입니다. 삼성 라이온즈는 포항구장에 이 기록을 기리는 기념물을 설치하여 그날의 영광을 보존했습니다.

[정규 시즌 5연패 기록]

KBO 리그 사상 최초로 5년 연속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리그 지배력을 과시했습니다. 왕조의 건재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한두 번의 우승이 운이 아님을 5년 연속 1위라는 결과로 증명해 냈습니다. 시즌 내내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는 철저한 관리 야구의 승리였습니다. 비록 한국시리즈에서는 아쉬운 결과를 얻었으나 정규 시즌만큼은 삼성의 독무대였습니다.

[한국시리즈 준우승]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에 1승 4패로 패배하며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5년 연속 통합 우승이 좌절되었습니다.

한국시리즈 직전 주축 선수들의 원정도박 혐의로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악재 속에 두산 베어스에 1승 4패로 패하며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이로써 KBO 최초 5년 연속 통합 우승 달성이 좌절되었습니다.

2016

[제일기획으로 운영 주체 변경]

삼성 라이온즈의 운영권이 삼성그룹 전자 계열에서 제일기획으로 이관되었습니다. 마케팅과 데이터 중심의 자생력 강한 구단 운영을 지향했습니다.

효율적인 구단 운영과 스포츠 비즈니스 역량 강화를 위한 그룹 차원의 결정이었습니다. 전폭적인 지원 대신 성과와 효율을 중시하는 새로운 구단 문화가 도입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삼성 라이온즈가 프로 구단으로서 새로운 독립 경영 모델을 찾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파크 개장]

오랜 정든 대구 시민운동장을 떠나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로 홈 경기장을 이전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팔각형 다이아몬드 야구장이었습니다.

메이저리그급 시설과 탁월한 관람 시야를 갖추어 대구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관중석과 경기장의 거리를 최소화하여 팬들이 더욱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즐길 수 있게 했습니다. 라팍 시대를 열며 삼성 라이온즈는 팬 서비스와 인프라 면에서 리그 최고 수준으로 도약했습니다.

[김한수 제13대 감독 부임]

삼성의 원클럽맨 김한수 감독이 부임하여 팀의 재건을 위한 중책을 맡았습니다. 왕조 이후의 세대교체를 주도했습니다.

젊은 유망주들을 적극 기용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의 체질 개선을 꾀했습니다. '경쟁하는 야구'를 표방하며 선수들에게 끊임없는 성장을 독려했습니다. 비록 성적은 과도기적 어려움을 겪었으나 구자욱 등 새로운 주역들의 성장을 도왔습니다.

2017

[구단 역대 최악의 개막 한 달 성적]

4승 2무 20패 (승률 0.154)를 기록하며 구단 역대 최악의 개막 후 한 달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개막 후 한 달간 4승 2무 20패 (승률 0.154)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며 KBO 리그 출범 이후 역대 최악의 개막 한 달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종전 삼미 슈퍼스타즈 9승 23패 승률 0.281)

[대규모 벤치클리어링 및 이승엽 선수 450홈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대규모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하여 사상 초유의 두 선발투수 동시 퇴장 및 총 5명의 선수 퇴장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승엽 선수는 이 경기에서 개인 통산 첫 450호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윤성환 선수의 빈볼성 투구로 인해 두 차례의 대규모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윤성환, 카를로스 비야누에바 등 두 선발투수가 사상 초유로 동시 퇴장당했으며, 총 5명의 선수가 퇴장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한편 이승엽 선수는 이 경기에서 KBO 리그 개인 통산 첫 450호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이승엽 은퇴 및 36번 영구결번]

국민 타자 이승엽 선수가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홈런 2개를 터뜨리며 화려하게 은퇴했습니다. 그의 등번호 36번은 구단 세 번째 영구결번이 되었습니다.

전국 구장을 돌며 진행된 은퇴 투어는 한국 야구사에 유례없는 영광스러운 행보였습니다. 은퇴식에서 대구 팬들은 눈물로 전설의 마지막을 배웅하며 감동을 나눴습니다. 이승엽은 떠나는 순간까지도 삼성 라이온즈의 자부심이자 한국 야구의 보물로 남았습니다.

2018

[정규 시즌 6위 기록]

정규 시즌 6위를 기록했습니다.

2018년 정규 시즌에서 6위를 기록하며 가을 야구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끝까지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019

[정규 시즌 8위 기록]

정규 시즌 8위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습니다.

2019년 정규 시즌에서 8위를 기록하며 아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허삼영 제15대 감독 부임]

데이터 분석 전문가 출신 허삼영 감독이 부임하며 '데이터 야구'의 정수를 보여주려 했습니다. 전력 분석의 힘을 극대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현장 경험과 데이터의 조화를 통해 효율적인 승리 공식을 찾는 데 주력했습니다. 선수들의 컨디션을 과학적으로 관리하고 상대 팀에 대한 정밀 분석으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그의 부임으로 삼성은 시스템에 기반한 현대적 야구단으로 한 단계 더 진화했습니다.

2020

[오승환 한·일·미 400세이브]

오승환 투수가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와 한·일·미 통산 400세이브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세계가 인정한 '끝판대장'의 위엄이었습니다.

잠실 두산전에서 세이브를 기록하며 대기록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한 구위를 과시하며 삼성 마운드의 중심을 잡아주었습니다. 이 기록은 오승환의 철저한 자기 관리와 끊임없는 도전이 만들어낸 위대한 결과였습니다.

2021

[사상 첫 1위 결정 타이브레이크]

KT 위즈와 정규 시즌 공동 1위에 올라 사상 최초의 1위 결정전을 치렀습니다. 정규 시즌 막판까지 이어진 사자 군단의 저력이 돋보였습니다.

라이온즈 파크를 가득 메운 팬들의 응원 속에 명승부를 펼쳤으나 아쉽게 패했습니다. 비록 2위로 정규 시즌을 마감했으나 6년 만에 가을 야구에 복귀하며 명가 재건을 알렸습니다. 이 시즌의 선전으로 삼성 라이온즈 팬들은 다시 한번 우승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2022

[박진만 제16대 감독 취임]

왕조 시절 유격수이자 수비의 달인이었던 박진만 감독이 부임했습니다. 기본기를 강조하는 '강한 삼성'으로의 회귀를 선언했습니다.

감독 대행 시절 보여준 지도력을 인정받아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선수들에게 강도 높은 훈련과 실전 감각을 강조하며 팀의 기틀을 다시 잡았습니다. 박진만 감독의 리더십 아래 삼성은 다시 한번 상위권 도약을 위한 담금질에 들어갔습니다.

2023

[오승환 KBO 통산 400세이브]

오승환 선수가 SSG와의 경기에서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개인 통산 400세이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살아있는 전설의 행보는 계속되었습니다.

대구 홈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며 대기록을 완성했습니다. 리그 역사상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개척하며 삼성 라이온즈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이 기록은 오승환이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임을 다시 한번 공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4

[한국시리즈 아쉬운 준우승]

강력한 화력을 앞세워 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KIA 타이거즈에 패하며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사자 군단의 화려한 부활을 알린 시즌이었습니다.

구자욱의 부상 등 악재 속에서도 젊은 선수들이 투혼을 발휘하며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박진만 감독의 리더십 아래 팀이 하나로 뭉쳐 정규 시즌 2위라는 쾌거를 이루어냈습니다. 비록 준우승이었으나 삼성 라이온즈가 다시 리그의 강자로 돌아왔음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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